달력

82019  이전 다음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부활의 완성'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4.07 사랑, 부활의 완성 (요한복음 21장 1-14절) (1)
  2. 2016.03.30 부활의 완성 (누가복음 24장 49-53절)

 

사랑, 부활의 완성 (요한복음 21장 1-14절) 


부활! 

부활은 단지 죽은 자가 살아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지 사흘 되는 나사로가 무덤 속에서 나오는 장면, 그것도 놀라둔 장면이지만 성경은 그것을 부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활(resurrection)이 아니고 단지 소생(resuscitation)입니다. 소생은 단지 부활의 표징, 부활의 그림자입니다. 부활이란 다시 살아나는 것 훨씬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선포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왔다고 하는 믿음입니다. 부활 신앙은 예수가 다시 살아난 그 날, 그 새벽, 이 세상이 뒤집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왔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던 세상, 죽음이 왕노릇 하던 세상, 죽음이 생명을 삼키던 세상에서 생명이 왕노릇하고 빛이 어둠을 이기고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이 도래했음을 믿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한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부활에 대한 반응

1. 그런데 그 부활의 소식을 가장 초조하게 기다렸던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유감스럽게도 종교 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 (마 27:62-64)...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속이던 자가 말한 것을 두려워하여 지금 병사들을 보내어 사흘 동안이나 무덤을 지키자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 속이는 자이고 누가 진실한 자인지를 보여주는 대목) 

그리고 나서 안식 후 첫날, 그러니까 주일날 새벽에 부활 사건이 일어납니다. 여인들이 와서 빈무덤을 보고 놀라는데 여인들과 함께 무덤이 열리는 것을 본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입니다. 

  • (마 28:4)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이들은 지금 로마의 군사들이지요. 그러니 이 부활사건, 자기들이 지키던 시체가 없어졌으면 누구에게 보고를 해야 하면 로마로부터 파송받은 총독 빌라도에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보초를 잘못선 벌로 사형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대제사장을 찾아갑니다. 


  • (마 28:12-15)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했다는 것은 산헤드린을 소집하여 공식적인 회의를 열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들이 하나님을 신실히 믿고 하나님을 정말 두려워하는 신앙인들이었다면 병사들의 보고를 받고 어떻게 해야 했겠습니까?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예수가 정말 부활 했다면 그를 찾아나서서 회개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정말 그가 메시야인가 확인해 보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 소식은 회개나 신앙을 그들에게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예수가 부활했냐가 아니라 동료 유대인들에게 그 소식이 퍼지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며 그들 자신의 영향력과 힘과 부가 심각하게 소멸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최고 종교회의를 열어 내린 결과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첫째,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어 (뇌물을 준 것이지요) 

둘째, 그들로 하여금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하라. (거짓말을 시킵니다) 

셋째,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사형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해 주겠다...) 


2. 더 어처구니가 없는 부활에 대한 반응은 다름아닌 제자들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가 그 소식을 열한 사도와 다른 이들에게 전합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의 소식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막 16:11)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이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를 만난 뒤 바로 제자들에게 알립니다. 그런데 이 때에도 역시 

(막 16: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지금 예루살렘 있는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과 빌라도를 비롯한 정치가들은 예수의 부활 소식을 가리기 위해 여러 조작질을 가하고 있는데 오히려 제자들은 함께 신앙생활 했던 여러 증인들이 부활 소식을 전하는 데도 전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떨 때 보면 정말 신앙생활을 믿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닐 안믿을랴구 안믿을랴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결국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기도 밤낮 해도 결국은 자기 감정대로, 주님이라고 하면서도 순종없이... 신뢰함없이. 믿음없이... 


그렇게 문을 꼭꼭 닫고 부활의 소식을 믿지 않으려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샬롬, 평강이 있을지어다"하고 다가오십니다. 


말씀으로-> 증언으로-> 직접 찾아오셔서 


부활 후 제자들을 만나 예수님께서 하신 첫 말씀은 “샬롬!”, 우리말로 하면 “안녕!”하는 인사의 말씀입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가 하는 인사, 송구영신예배가 끝나고 하는 인사, 새배하러 가서 어른들께, 혹은 새배하는 자들에게 인사하는 말! 새해 (하나님의) 복 많이 받으세요!! 하듯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샬롬, 평강이 있을지어다.” 

우리의 달력은 1월 1일을 새해로 하지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한 교회력은 오랫동안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새해”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안식 후 첫날, 제 8일은 예수님으로 인한 새로운 역사, 새로운 창조가 시작됨을 알리는 중요한 성경의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날, 새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3.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다시 고기 잡으러 가는 제자들...

아니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힘없이, 기쁨없이, 평안 없이 그저 고기 잡으러 가고 있는 것일까요? 일상의 어려움에 홀로 남겨진 사람들. 

능력의 하나님을 경험하며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삼일 만에 마라의 쓴 물 앞에서 불평하듯이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이 일상에 남겨져서 힘없이 고기 잡으러 나온다. 주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자기에게 남겨진, 자기 홀로 감당해야 할 세상을 본 것이다. 주님이 부활하시건 말건, 세상이 바뀌건 말건, 자기에게만 관심있는 자는 세상이 바뀌었는지, 전혀 상관이 없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이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하는 이유를 보게 됩니다.  1) 가장 근본적인 이유야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 사정이 있습니다.  2)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드리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3) 가정사가 복잡해서 드리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4) 기독교에 대한 불신,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불신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5) 게을러서 들리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신다는 겁니다.  너무 좋으신 분입니다.  실패해서 좌절하고 있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뭐라고요.  “고기를 많이 잡았냐고요. 가정은 평안하냐. 직장생활은 한만 하냐. 사업은 잘 되냐. 너, 괜찮니? 아프진 않니? 살만하니?”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끝임 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다만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무슨 말입니까? 다시 세상으로 나가서 일해보았는데 열매가 있느냐? 기쁨이 있느냐? 만족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내가 지시한 곳에 그물을 다시 던져보렴. 다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준 계명대로 순종해보렴…하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전합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봅니다. “주님이시다.” 


육지에 올라서 하신 일은 더욱 제자들을, 그리고 읽는 우리들마저도 감동시킵니다. 

믿음 없는 그들을 혼내시거나, 설교를 하신다거나, 무엇을 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손수 떡을 가져다 주시고 물고기를 가져다가 그들을 먹이십니다. 


왜 실수 했냐고?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고? 왜 나를 배반했냐고? 왜 또 세상으로 갔느냐고 탓하시지 않고 네가 배고파서 그렇다. 네가 피곤해서 그렇다. 네가 힘들어서 그렇지...


그 십자가의 고통과 엘리엘레 라마 사박다니, 하는 영적인 고통과 심장이 파열되는 사랑의 고통을 뚫고 사망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그동안 예수 없이 그들의 삶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얼마나 힘들었냐? 배고프지? 그 동안 고생했어…”하면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너무 너무 포근합니다. 너무 너무 좋습니다.  저는 이런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우리는 탓하는데 익숙합니다. 난 힘든데 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넌 왜 네 생각만 하고 내 생각은 해 주지도 않니? 


그런데 주님은, 주님의 부활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앞에서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배고프지? 힘들지?"하는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장면, 시몬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날 사랑하느냐? 


그 질문은 네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아니 또 실패해도 내가 널 사랑한다. 네 사랑은 실패해도 난 널 끝까지 사랑한다....내가 널 사랑한다.....는 세번의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부활의 완성은 또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부활의 완성 (누가복음 24장 49-53절) 

 


 

1. 십자가: 죄없는 자가 죄인을 위해 죽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 즉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잡히신 예수- 목요일 날 밤 

 

처음- 유대인들의 공회에서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서 심문 -

 

"네가 그리스도냐?"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유대에 파견된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짐. 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이므로 처형권이 없기 때문. 

 

빌라도가 심문

 

갈릴리 출신이란 소리를 듣고 갈릴리 지방을 치리하던 분봉왕 헤롯에게로 넘겨짐 (그도 당시 예루살렘에 와 있었음) 

 

다시 빌라도에게 넘겨져서 최후로 십자가형 선고 

 


 

하루에 가야바에게서 빌라도에게로, 빌라도에서 분봉왕 헤롯으로, 그에게서 다시 빌라도로...4번씩 법정에 서심. 

 

법정을 통해 밝혀진 것. 그는 무죄하다. (눅 23:4, 14, 15, 22) 

 

그러나 백성들의 소리 "십자가에 못박으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의 법정에서 재판받으시는 장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왜? 그는 열방의 심판자요, 또 장치 이 땅을 심판하러 재림하실 바로 그 심판자가 인간의 법정에서 심판받으시는 장면

 


 

그리고 그 결과 

 

죄가 없음에도 최고형- 십자가...

 

그러면서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는 장면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다 이루었다" 

 


 

이 재판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사역, 죄없는 자가 죄인을 위해 죽는 십자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지 않은가? 

 


 

  •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 너희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면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그 사탄의 유혹의 끝에 사탄의 목적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 

 

죄인의 재판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죽게 된 것. 

 


 

하나님 없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결과---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재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21장- 예수의 무덤 - 동산에 아무도 장사되지 아니한 무덤

 

동산이란 말- 어떤 신학자는 이것을 잃어버린 동산 에덴으로 해석한다. 

 

선악과로 말미암아 생명이 끊겼던 그 곳에 예수께서 들어가셔서 생명의 나무를 충만케 하신 사건. 

 

그 생명의 힘이 충만하게 흘러넘친 것이 바로 부활이다! 

 


 

부활이란 선악과로 말미암아 일어난 모든 죄의 사슬, 죽음의 권세에서 생명의 나무가 다시금 충만하게 승리한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승리로 사탄의 모든 유혹이 실패로서 끝난 사건이다. 

 


 

2. 부활하신 날....제자들은?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 정작 예수를 따른 제자들은 십자가의 공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도망다니는 신세이다. 문을 걸어잠그고 방안에 숨어 있다. 

 

부활하신 주님의 소식을 듣는데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는데도 그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영적으로 주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구속하시고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셨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그 승리를 누리는 자가 없다. 

 


 

주님은 승리했는데 그들은 여전히 실패자로 살아가고 있다. 왜? 주님의 부활이 그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을까? 

 

이 천지가 개벽할 만한 사건이 왜 그들에겐 털끝하나 변화를 주지 못할까? 

 

오히려 제사장들은, 로마 군사들은 혹이나 예수가 살아나신다는 예언이 이루어질까 무덤을 지키면서, 또 사라진 시체를 보며 뇌물을 주고 입막음하려 하고 있는데, 달리 말해 세상은 부활의 사건을 가지고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데 정작 믿는 자들은 부활의 소식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3. 유월절과 부활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유월절을 사이에 두고 발생합니다. 

 

유월절이 무엇입니까? 

 

출애굽의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열 번째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가게 된 날입니다. 

 

사망의 권세가 이스라엘의 집을 넘어갔다해서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애굽을 이긴 날입니다. 

 

세상과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홍해를 건넌 날입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넌 기쁨도 잠시 그들은 또다시 불평하고 원망하고, 연약한 그들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행복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굽에 있을 때가 더 좋았다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지만 그들 자신은 무엇하나 할 수 없는 연약함 투성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부활절을 맞이한 제자들같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그들은 숨어있습니다. 고통스러워 합니다. 

 

사람들이 주님 부활하셨다고 하는데 못믿겠다고 합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고 불평합니다. 

 

주님이 직접 와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는데도 잠시 기뻐할 뿐 이제 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합니다. 

 

사탄은 패배했는데 그들 역시 패배한 자들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주님이 행하신 일도 수도 없이 듣고 믿고 예배를 드리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못하고 능력은 없고, 삶에 지쳐 허덕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구원받은 사람인가? 구원의 능력이 있는가? 구원은 먼 미래의 일인가 고민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부활절을 맞아도 기쁘지 않습니다. 전혀 내 삶과는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4. 칠칠절, 오순절 

 

칠칠절은 무엇입니까? 

 

드디어 40년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들어가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둘 시기가 되어 보리와 밀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자기들을 구원하여 안식을 누리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로서 그들은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였습니다. 이제 진짜 노예가 아닌 주인의 삶, 열매 맺는 삶.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을 통해서 승리하신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시지 않고 40일간이나 머물면서 제자들을 만나십니다. 

 

마치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40년을 함께 하며 매일같이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던 하나님의 동행처럼 주님도 40일 동안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말씀을 주시고 사랑을 주십니다.  

 

허무함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나는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약속하십니다. 

 


 

40일이 지나 하늘나라로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눅 24:49)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5)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주님이 부활하시건 멀건 여전히 힘없이, 능력없이 살고 있었던 제자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씁니다. 

 


 

구약의 오순절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비로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하게 하신 사건이라면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교회가 세워지게 하시고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이 비로서 제자들에게까지 임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은 비로서 육체적, 영적 연약함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니며 두려움없이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구약의 오순절이 열매 맺을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비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열매맺을 수 있게 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라면 신약의 오순절은 신앙의 열매,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없었던 영적 불구자였던 제자들이 비로서 성령으로 거듭나서 자신들의 육체의 소욕과 연약함을 이기고 예수의 능력으로 무장되는 날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오순절을 통해서 나의 십자가와 부활이 되고, 그의 승리가 나의 승리로서 체험되는 날이 바로 오순절날인 것입니다. 

 


 

5. 부활절의 완성은 기도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이 내 삶의 부활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부활절을 내 삶의 부활절로 이루기 위해서는 전혀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위로 부터 하늘의 능력이 입힐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6.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누가복음은 복음서 중에서 가장 기도를 많이 강조하고 소개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누가는 잘 알다시피 의사입니다. 그는 과학적인 눈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의사의 눈에 비친 복음의 신비는 바로 기도였습니다. 

 

누가 복음에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묻고, 예수께서 함께 있지 아니한 자리에서 귀신을 내어 쫓지 못해서 망신당한 이유가 기도가 부족하여서,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적에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해서 기도에 실패한 모습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누가 복음에 나와 있는 제자들은 철저히 기도에 실패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위로 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늘 실패했던 제자들이 이 말씀에 순종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하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러한 복음은 사도행전의 마가다락방 사건...예수의 열두 제자들과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와 아우들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기도로 충만한 그들에겐 이제 복음서에서의 예수만 곁에 없으면 정말로 무능했던 나약함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감옥에 갇히고, 매맞고 핍박이 일어나도 기도하는 그들 앞에서 전혀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이 그들을 위해 탄식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담대케 하시고, 언제나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신비가 아닙니다. 초월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능력입니다. 

 

성령을 거역하면 우리는 실패자가 됩니다. 

 

주님이 부활해도 우리는 여전히 무능한 패배자의 삶을 삽니다. 

 

그러나 기도해서 성령충만하면 비로서 그 부활이 내 능력이 됩니다. 

 

내 삶이 됩니다. 

 

아파도 됩니다. 

 

세상에서 실패해도 됩니다. 

 

그래도 기도하면 승리합니다.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런데 기도에 실패하면 죽습니다. 기도는 부활의 완성입니다. 

 

부활의 완성은 바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