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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4장 7-9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0.02.08 비전, 내 안에 어떤 세상이 있는가? (민수기 14장 7-9절)

비전, 내 안에 어떤 세상이 있는가? (민수기 14장 7-9절)

 

1. 되돌아보기

지난 시간, 마가복음 4장 18-22절 말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는 장면을 가지고 비전을 소명과 사명과 연관시켜 살펴 보았다.

 

비전은 하나님이 보는 시각으로 나를 보고, 타인을 보고, 세상을 보는 눈을 얻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아무리 애써 보아야 하나님의 눈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 "에바다"하듯이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경험케 하신다. 그래서 비전은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아는 마음이 곧 소명이다.

소명은 Calling, 곧 하나님이 나를 특별한 목적을 향하여 선택하시고 부르셨음을 깨닫는 마음이다. 그리고 부르신 자에게 주신 것이 사명, 곧 부르심에 대한 특별한 임무, 소명에 대한 책임감이다.

소명은 나를 부르신 자를 아는 것이고 사명은 내가 무엇을 위해 부름을 받았는지, 나의 임무를 아는 것이다.

 

믿는 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소명은 거룩에의 초대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 비전을 갖기 위해서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먼저 거룩이다. 뜻을 정하여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정결케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거룩한 자에게 주시는 것이 사랑할 수 있는 비전을 주시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참 형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고 그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2. 도입 - 비전, 하나님의 안목으로 나를 보는 것. 나를 진정 사랑하는 것.

오늘은 그 중에서 소명을 받은 자로서의 나. 사명을 이루어야 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과연 어떤 눈을 갖게 하시길 원하시는가? 나에 대한 비전을 갖는 것,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민수기 14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내가 비전을 가진 다는 것은 단지 꿈을 꾼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목을 가지고 나를 본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나를 볼 적에 우리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죄와 벌>을 쓴 도스도에프스키는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모습대로 본다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른채 살아간다.

 

3. 하나님의 안목과 자신의 안목

하나님이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출애굽의 사명을 주어 부르셨을 때에 모세는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나는 입이 둔한 자입니다." (출 4:10, 13) 라고 말했다.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라"라고 부르셨을 때에 예레미야는 "나는 어린아이라 말할 줄을 모릅니다"라고 대꾸했다.

[렘 1:5-6]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동시대를 살았던 이사야를 선지자로 불렀을 때, 이사야는 더 나아가 "화도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로다" (사 6:5)라고 말했다.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예수님의 수제자로 부르셨을 때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라고 말했다.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불렀을 때, 기드온은 미디안이 무서워 두려워 떨던 겁쟁이였다.

 

4.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 - 열등감과 교만함, 자기비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끔찍이 위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안목으로 나 자신을 보지 못한다.

대부분 참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열등감이다. 열등감은 하나님 주신 나의 고유함을 바라보는 대신에 남을 통해 자신을 보려는 것이다. 끊임없이 비교함을 통해 나의 가치를 매기는 것이다. 그래서 열등감과 교만함은 결국 하나이다.

남과 비교해서 우쭐한 것이 교만이고 남과 비교해서 움츠려 드는 마음이 열등감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교만함을 통해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경쟁하고, 판단하고, 높이 올라가려 하지만 그러한 삶은 끝이 없고, 쉼이 없고, 결국 남을 무너뜨리려하다가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 멸망하게 된다.

열등감과 교만함은 사탄의 강력한 무기이다.

 

이와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의미로 우리의 비전을 가로 막는 것은 '자기 비하', 혹은 '자기 학대'이다.

남과 비교하며 교만하거나 열등의식을 갖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기 안에 갇혀 끊임없이 자기를 비하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열등감이나 교만함이 잘못된 자기 사랑의 표시라면 자기 비하는 전혀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의 표현이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전을 포기한 인생이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에 비추어 다른 사람을 본다. 자신의 영혼의 창으로 다른 사람을 보고 내 안에 있는 세상을 통해 모든 것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가 모든 관계 형성의 열쇠이다.

 

열등감이나 교만함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남을 대할 때도 끊임없이 나 자신과 비교한다.

그 사람이 나보다 잘 난 것이 있으면 내가 겸손해져서 다가가고

그 사람이 나보다 못하다 생각하면 교만하여져서 함부로 대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나보다 잘 나 보이면 나 자신의 교만함을 위해 상대하지 않고

나보다 못나 보이면 자신의 만족을 위해 다가가는 사람도 있다.

 

자기를 비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역시 무심한 것 같으나 혐오하거나 아얘 상대하지 않는다.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은 자식을 대할 때도 자신과 자녀의 인격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자기 비하의 전형 적인 예

"이런 못된 놈의 자식" "00놈의 자식"

자기의 자녀에게 이런 욕을 하는 것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결국 자기가 못된 부모, 00이라는 존재라는 것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5. 자기 안의 세계를 드러내는 것 - 언어

그 사람의 언어를 보면 그가 비전의 사람인지, 열등감과 자기 비하의 사람인 지 알 수 있다.

 

작년 말에 야고보서 말씀을 통해 우리 육신에 있어서 혀, 말의 역할 - 배의 키, 말의 재갈-> 결국 인생의 목적, 방향이 말에 달려 있다는 것.

 

[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이 행하시기 전에 이미 우리가 그 방향으로, 목적대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하시면서 행하신 것 -

- 열 가지 재앙으로 바로를 굴복시킨 것

- 홍해를 갈라 백성을 건너가게 하시고 애굽 병사들을 물리치신 것

-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그들의 삶을 인도하신 것

- 만나를 내리신 것

-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신 것

- 공중의 매추라기로 배불리 먹이신 것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실 수 있는 갖가지 기적의 선물 세트를 다 보여 주신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이 주리라고 약속하신 땅에 이스라엘의 12지파 대표 각 1명씩을 뽑아 정탐하러 보낸다.

정탐한다는 것은 보라는 것이다. 자세히 보라는 것이다.

 

이 때 그들의 안목이 드러난다. 누가 하나님의 안목을 가지고 보는지, 누가 열등감과 자기비하로 자신과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보는지....

 

먼저 정탐한 자들이 본 내용 (객관적 사실)

[민 13:27-28]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이 사실을 가지고 열 명의 정탐꾼은 어떻게 표현하는가? (사실의 해석) 

[민 13:31-33]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부정적 언어)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 (비교에 의한 열등감)

악평하여 이르되 (잘못된 판단)

거주민을 삼키는 땅 (거주민이 누군가? 가나안 민족, 아낙 자손- 그들이 땅에 삼켜졌는가?) - 사실 왜곡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 자기 비하.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 - 막연한 추측에 의한 잘못된 판단.

-> 라합을 비롯한 가나안인이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갔을 때에 두려워 떨었더라.

 

실재 가나안 사람들의 히브리인들에 대한 반응.

[수 2:9-11]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을 통해 보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안목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바라본 것은 라합과 가나안 사람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들만을 보았다.

 

비전은 무엇? 하나님의 안목으로 자신을 보는 것.

 

그들은 왜 자신들을 그렇게 보았는가?

하나님 이전에 애굽에 있을 때의 자신들에게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노예생활 하던 자신들의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우리가 애굽에 있었을 때에는..'

"우리가 애굽에 있었더라면..."

 

그들의 내면에 있는 세계는 애굽의 세상. 노예로서 항상 부러워하고 눌려하던 그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

 

[민 14: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 불신앙은 불신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

멸시 : These people treat me with contempt

contempt: 무시하다. 모욕하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욕했다. 왜? 그들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어디서? 애굽에서...

그들이 당한대로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이다.

 

6.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

[민 14:7-9]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심히 아름다운 땅 Vs 거주민을 삼키는 땅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우리가 여호와를 기뻐하면 (경멸하지 않고 환영하고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 (무시하지 않고) 인도하고, 들이시고, 주신다.

Guide, Get a ticket in the Entrance, and give them to the land.

거역하지 말라. - 인정하라. 받아들이라. 맞이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 왜 여호와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와 갈렙은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지 않고 귀족이었나? 모세처럼 왕족이었나?

아니다. 똑같이 노예였다.

더군다나 갈렙의 족보를 살펴보면

[민 32: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그나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아들로서 에돔족속의 조상이다.

 

새벽예배시간에 에스더서 - 하만 - 아말렉 족속 아각의 후예,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후예

그런데 그 똑같은 에서의 후예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의 사람

 

갈렙의 족보는 어떻게 이어지는가?

 

[대상 2:18-20]헤스론의 아들 갈렙이 그 아내 아수바와 여리옷에게서 아들을 낳았으니 그 낳은 아들은 예셀과 소밥과 아르돈이며 아수바가 죽은 후에 갈렙이 또 에브랏에게 장가 들었더니 에브랏이 그로 말미암아 훌을 낳았고 훌은 우리를 낳았고 우리는 브살렐을 낳았더라

 

그는 아수바와 여리옷, 그리고 마지막에 에브랏이라는 아내를 맞게 되는데 한 성서학자에 의하면 아수바와 여리옷은 애굽에 있을 때에 얻은 처요, 에브랏은 출애굽 당시의 아내

그에게서 나은 아들이 훌, 그 훌의 손자가 브살렐

훌은 누구인가? 아말렉 족속과 전쟁에서 모세의 손이 내려가지 않도록 붙들어준 사람

초대교회 역사가 요세푸스는 훌을 미리암의 남편이라고 소개.

 

그리고 그의 손자 브살렐 - 오홀리압과 더불어 광야에서 성막을 짓는데 총 책임자.

 

[출 31:2-5]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

 

에돔의 후예였던 갈렙의 자손이 어떤 지파에 속하게 되는가? 유다지파....

다윗과 예수님의 지파.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열악한 배경과 환경에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하나님을 향했다. 그는 하나님의 안목으로 그 땅을 바라보았고,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고, 나중에 가장 고령이면서도 기개있게 아무도 가지 않은 땅, 헤브론 땅을 취하면서, 비전의 사람이 된다.

 

7. 결론 여러분 안에 어떤 세상이 있는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치유받은 세상, 하나님이 충만한 세상을 지니고 그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가?

아니면 신앙 생활 하면서도 여전히 이전의 세상, 부모와 타인으로부터 욕먹던 나, 멸시받던 나를 가지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천국의 시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세상의 삶의 다인것 같은 세상의 풍조와 문화와 가치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이젠 그 세상을 떠나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인도하시고, 들어가게 하시고, 우리에게 거저주신 그 땅 안의 사람, 천국의 시민권자로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한다.

비전은 결국 하나님이 바라보는 나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 회복된 나로 세상을 바라볼 때, 꿈이 열리고, 열매가 열리고, 하늘 문이 열린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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