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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 (출애굽기 3장 1-5절) 


모세의 삶은 우리에게 신앙인의 삶의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하는지에 대한 신앙인의 삶의 모델을 보여 줍니다. 그는 120년간의 삶을 살았는데 그 삶은 40년씩 3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처음 40년간은 이스라엘민족으로 태어났으나 죽음을 피해 물가에 던지어져 바로의 공주의 아들, 즉 애굽의 왕자로서 애굽의 선진 학문과 동시에 유모가 된 친모로부터 이스라엘의 신앙교육을 받으면서 살았던 시기입니다.  무디 목사님은 이 시기를 가리켜 “I am Something”의 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때는 자시의 자존감이 강해지는 시기입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임을 깨닫는 기간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그 민족이 가장 어려운 중에서도 자신들을 압제하는 애굽의 왕자가 되어서 특별함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삶의 목표를 굳게 세우고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앙인이었습니다. 

히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포기한 것 

1) 바로 공주의 아들로 사는 것 - 권력과 명예 -> 이생의 자랑 

2) 죄악의 낙 - 육신의 정욕 

3) 애굽의 모든 보화 - 재물 -> 안목의 정욕 


신앙인의 모습 - 죄악의 근본이 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포기하고 사는 자... 

그리고 나서의 삶 - 광야 가운데서 자기 소유의 양은 한 마리도 없이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삶... 40년 동안 - 40년이란 기간은 육신의 한계점.... 육신으로 이룰 수 있는 한계의 기간 -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서 금식하며 보낸 기간, 예수께서 금식하신 기간,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


그는 자기가 포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연단의 땅 광야에서 살고 있었다. 

->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신앙행위...


그는 좋은 환경 속에서도 세상이 즐거움에 빠져 신앙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구원하리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가 배운 학문과 교양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사용하리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뜻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꿈도 주시고 신자에게 좋은 뜻도 주시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뜻, 내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 과정도 하나님의 길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 중의 하나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선한 뜻을 세웠는데 그것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발생하는 좌절감, 실망감, 상처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세히 보면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 자신을 의지하는 삶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의 자리보다도 이스라엘 백성의 리더로서 그들을 위하고자 하는 삶의 목적을 가졌지만 그 이루는 방법은 철저히 애굽적, 즉 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왕자인 자신이 이스랴엘 편을 들면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를 지지할 테고 또 애굽 병사들도 어느 정도 자기가 가진 힘과 권세로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을 테이지만 그 결과는 애굽 병사 한 사람을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애굽의 병사들은 두려워져서 미디안 광야로 피해 40년간을 양을 치는 목자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무디 목사님은 이 기간을 가리켜 "I am Nothing"의 기간이라 표현합니다. 즉 내가 이 정도 밖에 안되는구나하면서 자기의 한계를 극명하게 깨닫게 되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이 시기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이 시기에 모세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원망감, 반항감으로 가득찬 시기일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선한 뜻을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 자기의 뜻을 꺾으신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이거나 아니면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내면적으로 채워져 있는 불만과 불안의 시기입니다. 성경이 인간 중심적인 책이면 이 시기의 모세의 상태를 좀 더 자세히 다룰테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를 다루고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 일하시는 책이기에 이러한 시기에 대해 잘 다루지 않습니다. 요셉이 팔려가서 당했을 고난, 야곱이 라반에게 도주해서 일어났을 불안감의 시기.... 그저 한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룹니다. 


이 모세의 불만과 반항심이 표출된 사건- 

하나님의 끈질긴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을 향해 떠나고자 하는 모세에게 발생한 사건 


[출 4:24-출 4:26]

(출 4:24)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하시는지라

(출 4:25)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출 4: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난해한 구절 - 왜 부르시고 그를 죽이시려 하는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 

[창 17:7-10]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들이 출생 후 8일만에 할례를 행하면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이다. -> 모세: 신앙생활 중에도 온전히 말씀을 행하지 않았다. 다 포기했다고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십보라가 모세가 죽을 위기를 당하자 곧바로 할례를 행하는가? 

그들은 하나님 믿는 백성이라면 당연히 자식에게 할례를 베풀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는 미디안이니까... 아무도 안보니까... 이제 이렇게 살아가 그냥 죽을 것이니까... 

현실의 삶 속에서 마땅히 해야할 성도의 의무를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알면서 불순종하는 불신앙의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반항의 표시이자 모세의 쓴 뿌리다. 


그러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을 수도 있다. 내가 애굽의 그렇게 좋은 환경, 높은 학식을 배웠는데 그것을 다 잊어버리게 하다니.. 그러면서 자신이 꿈꾸었던 비전도 잃어버리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신앙생활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가 애굽으로 돌아가려 하자 마자 하나님은 그의 신앙적인 불순종을 꾸짖으시고 십보라는 단번에 그 불순종이 할례를 뜻하는지를 알았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을 수 있다. 았다.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을 수 있다. 


I am nothing의 기간동안 모세는 철저히 자기의 한계를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신앙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거짓을 드러나게 하신다. 요나에게 찾아와 니느웨로 가라 했을 적에 드러나는 요나의 거짓 의, 반항심, 고집.... 


  • 하나님이 그런 중에 이제 모세를 통해 원래 꿈꾸워왔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일을 행하시겠다고 부르는 것이 오늘의 본문 말씀이다. 애굽에서의 40년, 광야에서의 40년 끝무렵에 만난 호렙산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은 5절의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라는 하나님의 음성과 모세가 보았던 불붙은 떨기나무이다. 

이 사건은 무디 목사님의 표현을 빌자면 비로서 I am Nothing 에서 I am Real Christian, I am God's person이 되도록 하는 하나님의 부르시는 사건입니다. 


네 신을 벗으라! 

(출 3:5)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다. 신을 벗으라는 소리는 룻기서 말씀에 보면 바로 권리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다. 


[룻 4:7-8]

(룻 4:7)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룻 4:8)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


배경 설명 - 룻을 얻기 위해서 보아스가 기업무를 자에게 찾아가 룻의 권리를 양도받는 장면..


신을 벗으라 -> 당신에게 나의 모든 권리를 양도합니다. 나의 소유권을 포기합니다라고 표현하는 이스라엘의 전통 

하나님이 네 신을 벗으라-> 네 권리를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영적지도자들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장면

1) 모세-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신 말씀

2) 여호수아 - 여리고성 가까이 갔을 때에 군대장관이 말씀하신 장면


왜 하나님은 광야가운데서 40년 동안이나 연단 가운데 삶의 아무 의욕도 없고 희망도 잃어버린 모세를 찾아가 네 권리를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무엇을 더 포기하라는 것인가? 그 단서가 바로 불타는 떨기나무이다. 


1절에 보면 모세는 장인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아마도 양떼를 먹이기 위해서 좋은 목초지가 있는 땅으로 이동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호렙산에 이른 듯 하다. 호렙산은 그 뜻이 건조한 땅이라는 의미이다. 습기가 없어서 생명체가 잘 살지 못하는 땅, 한 번 불 붙으면 모든 것이 다 타버리는 땅.. (이것은 무슨 나무든지 불만 붙으면 활활 탈 수 밖에 없는 물리적의미의 건조한 땅이기도 하지만 목적도 없이 의욕도 없이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모세의 영적 상태를 가리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건조한 땅, I am Nothing의 땅 호렙산은 동시에 바로 하나님의 산 이었다. 희망 없는 곳에 생명력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땅이었다. 그곳에서 떨기나무가 타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떨기나무 가운데서부터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자가 모세에게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건조한 땅에서 불이 붙었다면 그 나무가 금새 타서 없어져야 하는데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왜 하필이면 모세에게 이런 기적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을까? 

40년전 애굽의 백성을 죽이고 의기양양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싸우는 틈에 끼어든 모세-> 

내가 너의 편이다. 내가 널 도와줄께.. 내가 이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줄께…내가 애굽의 왕자지만 난 이스라엘 편이다. ? 자기 뜻, 자기 방법, 자기 의를 통해서 일하던 모세-> 동족에게도 버림받고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광야로 도망쳐버리는 모세. 


이제 네 방법, 네 뜻, 네 열정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일할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메시지. 

내가 널 불타오르는 지도자로 만들 것이다. 그러나 네가 아무리 불타올라도 네 육신이 쇠하지 않고 네 영혼이 다치지 않고 오직 내 능력으로 널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 네 육신의 털끝도 상하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니 네 권리를 나에게 주어서 나로 널 통해 일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내 능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날 불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 능력이라고 하면 실수한다.

엘리야-> 400여명의 이방 선지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이사벨 여왕이 쫓아온 다는 말에 “주님 이제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하며 낙심하는 선지자. 왜 자기 능력대로 일했다고 생각하나. => 로뎀나무 아래로 인도해서 그를 안식시키고 물과 음식을 공급해 주시지만 그 사역이 거기서 끝난다. 내가 내 능력대로 일한다고 생각할 때 내 사역이 끝이 날 수도 있다. 


하나님 주신 능력으로 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불타오르게 주를 위해 일할지라도 내 육신은 털끝도 상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라. 

일하는 자는 주가 버리지 않는다. 건강도 주시고 믿음도 주시고 열매도 주실 것이다. 

사탄은 여전히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너 너무 무리했잖아. 이제 쉬어야지. 너 그렇게 기도하다가 이제 다친다. 못일어난다. 육신이니까 쉬어야지.  


여러분 일터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타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지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이제 네 능력, 네 방법, 네 열정으로 일하지 말고 그 모든 권리를, 그 모든 짐을 나에게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맡기십시오. 그 분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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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묵상 9 18 출애굽기 24:1-18

[출 24:1-출 24:18]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1. 모세, 그리고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 70인의 장로, 그리고 백성들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하나님은 항상 무리들과, 제자들, 그리고 가까운 제자, 그리고 하나님의 종을 부르신다. 마치 120명의 성령 받은 사람들, 70명의 제자, 12명의 제자, 그리고 3명의 수제자,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 나는, 그리스도의 나는 어느 그룹에 속한 자인가? 무리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그들의 관심은 오직 매일 매일의 그들의 삶과 먹고 마시는 양식이다. 그것이 없을 경우 그들은 언제나 불평하고 원망한다. 70인의 장로들은 백성들을 재판하고 권면하지만 여전히 스스로 서지 못한 자이다. 말씀 안에 있을 때는 권위가 주어지지만

 

것이 없으면 한낮 노인일 뿐이다.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는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지만 백성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옳은 대로 행하는 자이다. 여전히 스스로 진리 안에 우뚝 선자는 아니다. 오직 모세만이 하나님과 가까이, 가까이 나아갔다.

이러한 구분은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것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느냐에 나의 위치가 정해지는 것이다.

 

  1.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 하나님은 짐승의 피로서 그들의 죄를 덮으시고 말씀으로 그들을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신다. 위에 축복의 언약을 세우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했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 그렇게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살과 피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리스도와 인간들과 함께 거하시며 하나님을 뵈옵고 먹고 마신 것처럼 이스라엘 장로들도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실 있었다. 왜냐하면 피로서 그들의 죄를 덮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거하기를 원하신다. 그렇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1. 모세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율례를 전하자 백성들은 소리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하며 응답한다. 모세는 이를 기록하고 얼마 지나 하나님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돌판에 기록해 주신다. 백성들이 모든 것을 준행하리이다라고 응답하는 대답이 얼마나 가볍게 느껴지는가? 도대체 납득이 안가도록 믿을 수가 없다. 돌판 대신 성령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여전히, 여전히 우리의 결심과 고백은 납득이 안갈 정도로 믿을 수가 없다. 여전히….

 

  1. 모세와 여호수아

전제적으로는 모세 또한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모세가 예표하는 이는 세례 요한이다. 그의 홍해의 사건은 세례 요한의 세례 사건을 연상시키며 가나안 앞에서 들어가지 않고 여호수아에게 사명을 양도하는 장면은 모세의 역할이 구원을 예비하는 자임을 상기시킨다. 아론과 장로들을 백성들과 함께 머물게 하고 여호수아 만을 데리고 위로 올라 구름과 하나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는 모세,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여호수아… 묘한 감동을 일으켜준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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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6 출애굽기 20 18-26

[출 20:18-출 20:26]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직접적인 음성에 두려워 떠는 백성

-> 며칠 전까지 모세를 원망함을 통하여 하나님께 불평했던 백성들. 하나님의 광대하심 앞에서 서지 못하고 물러나 모세를 의지하는 백성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가?

-> 때문

-> 하나님의 임재 이유-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 (범죄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 두려워하지 않는 )

질문)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두려움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는가?

사랑이든 경외함이건 하나님의 뜻은 우리와 함께 거하고 범죄하지 않으려 하심.

 

  • 백성은 멀리 서있고 모세는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 같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백성은 멀리 서고 모세는 가까이 가는가? 우리는 어떤 자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가까이 가는 자인가? 점점 멀리 가는 자인가?

빛이 아닌 흑암으로 가는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점점 자신의 무지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다.  편견과 선입견에 갇힌 하나님은 우상이다. 우상은 나를 위해 내가 만든 것이다.

 

  •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외식하거나 꾸미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제단을 쌓으라..
  • 층계로 오르지 말라-> 이방민족의 제사에서의 성적 문란함 정죄하고 금지…(여러 이유 중의 하나…. 다른 의미는 무엇일까?)

 

질문)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과 두려워 떠는 백성들, 그리고 가까이 가는 모세.

하나님은 두려움 가운데 임하셨는가? 그럴 밖에 없었는가?

그리스도의 다가옴과 하나님의 임재는 어떻게 같은가? 어떻게 다른가?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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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수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9.06 08:50

    "백성은 멀리서있고 모세는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너무나 너무나도 원하는것, 날마다 주님께 가까이 가는것입니다
    주님께서 날부르실때 나에게 말씀하실때 항상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길 원합니다
    내눈을 여시고, 내귀를 여시고,내마음을 지키시어 날마다 가까이.....
    아... 말씀이 너무 너무 좋고, 만족이고 기쁨이고 나에 호흡입니다


    • 문미경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2.09.06 22:48

      말씀이 나에게도 호흡이 되기를....그렇게 자연스레 느낄날이
      오길....

  2. 문미경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09.06 22:46

    다듬은 돌.....하나님께 가려면 나를 다듬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깨끗하고 잘 다듬어진 돌이 돼야 하나님이 좋아하실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민도 됐고, 많이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나를 애써 다듬은척,
    포장한척 하면서 하나님께 은근슬쩍 잘 보이려했습니다.
    그냥...나를 드리면 되는건데....있는 그대로를 드리면 되는건데.
    부끄러웠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2.09.07 11:11 신고

      그 모습 그대로가, 충분히, 하나님께서 가장 흡족히 받으시는 그런 예배입니다. 집사님이 고민하고, 염려하고, 신앙적으로 갈등하고 목말라 하는 그 모습 그대로가, 지금은 만족이 없는 그런 갈증이지만 바로 하나님이 찾아가셨던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집사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