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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7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0.06.13 마태복음 5장 7절 (긍휼)

마태복음 5장 7절 긍휼

 

지난 주 설교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어떤 의인가? 하나님의 의

내가 의로와지기 위해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 주리고 목마른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말슴에 길들여 지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길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내 노력과 내 의지만 가지고는 절대로 다가갈 수 없음을 절절히 깨닫고 

내 안의 성령이, 주님의 은혜가, 다가갈 수 없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예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왜? 신앙 생활을 하면 할수록,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할 수록 우리가 깨닫는 것은 말씀이 날 거룩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은 내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요

내 안에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이 자꾸만 나오기에 주님께서 날 불쌍히 여기사 날 다스려 달라고, 인도해달라고, 함께 해 달라고...주리고 목마른 것 

심령이 가난한 것이 내 자신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라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말씀 생활 하면서, 기도생활 하면서도 여전히 거룩해지지 못하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말씀 안에 비추어진 나를 바라보며 목말라 하는 것.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주신 복? 배부를 것이다. 

 

무엇으로? 다시 한 번 말씀으로, 은혜로, 하나님의 통치로, 하늘의 만나로.... 

 

지난 주 까지의 복 - 내면의 복,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복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열리게 되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 나라 

 

이제 다섯 번째 복 부터는 구체적인 내 삶 가운데서 펼쳐지게 되는 하나님 나라 사람들의 모습. 

그 첫 번째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1. 당시의 사회에서 통용되던 긍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 부모는 오직 건강한 자녀만을 키울 책임이 있다.  

세네카 - 건강하게 출생하지 못한 자는 신의 저주를 받은 자요, 또한 저주받은 삶을 산다. 

 

사랑받고, 대접받고, 존경받고, 인정받고 ->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고, 자격 없는 자가 있다. 

어떻게 저러한 철학자가 이런 말들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당시만 그런가? 그들의 말은 지금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가? 

 

지굼도 여전히 세상은 받을만한 사람에게만 베풉니다. 은혜도 그렇고 상도 그렇고 축하도 그렇다. 상을 받을만한 사람, 축하를 받을 만한 사람, 은혜도 받을만한 수고와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사랑도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만 베풀고 그것을 당연히 여기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생기면 분노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속상해한다. 

 

2. 이와 반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긍휼은 무엇인가? 

 

먼저 구약에서 표현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집약한 단어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인애 - 헤세드 - 하나님의 성품 -사랑, 긍휼, 자비로 표현

그 하나님이 예배보다 백성들에게 더욱 원하신 것 - 바로 헤세드 - 인애, 자비, 긍휼, 사랑 

하나님의 무엇을 알기를 원하나? 바로 그 분의 헤세드. 그 분의 사랑, 긍휼 

 

긍휼- 구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을 집약한 단어 

 

[애 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그 긍휼은 무엇인가? 

 

  • 긍휼은 받은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오히려 따스한 손을 내미는 것이 긍휼이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베푸는 것이 긍휼이다. 그저 사랑하고픈 마음으로 베풀기만 하는 것이 긍휼입니다.

긍휼은 누구의 마음인가? 바로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는 자녀를 보면 돕고 싶다. 못하면 대신 해 주고 싶고 필요한 것 있으면 사주고 싶고, 말 안들어도, 때로 애 때문에 속을 태우고, 고생을 해도 자신의 몸이 부서져라 피곤해도 자녀에게 해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바로 긍휼이다. 

긍휼은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내 옆의 이웃에게, 내게 맡기우신 영혼에게 넓히는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46-47에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가족에게 문안하는 것은 긍휼이 없이도 가능하다. 그러나 죄인 취급을 하던 세리를 사랑하고, 짐승 취급을 하던 이방인을 문안하기 위해서는 긍휼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렇듯 긍휼은 자격을 묻지 않고,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도 베프는 사랑이다.  

 

  • 그래서 긍휼에는 조건도 없지만 대가도 없다.

 

대가를 바라고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있는가? 내가 널 키우는 데 얼마 들었으니까 너 크면 갚으라....

아니 다 주고 키워줘어도 죽을 때까지 더 남겨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글흉은 그 마음을 이웃에게로 향하게 한다. 다른 사람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 사람에게 부모의 마음을 주신다.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은 마르지 않는다. 

 

사랑하여 죽고 못살던 연인들이 왜 헤어지나? 서로 바라는 것이 채워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긍휼한 마음은 대가를 생각지 않는다. 아니 그 모든 대가를 주님이 이미 치루셨기에 감사함으로 행한다. 

 

  • 긍휼은 단순히 동정이나 불쌍한 느낌의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긍휼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언제나 마음과 행동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긍휼과 짝이 되는 단어 - 성실 "지속되고 반복되는 행동" 

[롬 12: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우리말 긍휼로 번역된 헬라어 ‘엘레에오’는 마음으로 느끼는 자비, 용서, 친철, 은혜의 구체적인 행동을 뜻합니다. 즉 마음과 행위가 동반된 것이 긍휼입니다.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직접 병문안을 가거나 아니면 전화를 걸어 위로의 말을 전해 주고, 가슴이 답답한 일을 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시간을 내어서 들어준다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긍휼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언제나 마음과 행동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설파하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참된 긍휼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안 인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때 율법사가 이같이 답했습니다. (누가복음 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우리말 “자비”로 번역된 단어가 ‘엘레오스’ 긍휼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을 베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 저에게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다윗입니다. 다윗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둘람 굴에서의 다윗.

[삼상 22:1-2]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에게 긍휼이 없었던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광야에서 그 400명을 거둘 수가 있었겠습니까? 압제 받은 자, 빚을 진 자, 원통한 자, 억울한 자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한들, 어디 자랑거리나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다윗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그들을 책임졌습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긍휼을 베풀었던 400명을, 하나님은 다윗의 용감한 군사로 만드셨고, 그 400명의 손으로 다윗의 생명을 지켜주셨고, 그 400명을 통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다윗의 거처를 광야의 동굴에서 이스라엘의 왕궁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베푸신 긍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긍휼을 베풀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참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랑의 출발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4. 어떻게 긍휼한 자가 될 수 있는가? 

예수를 바라볼 때 우리는 예수 닮을 수 있다. 

예수는 긍휼히 여기는 자의 모델이 되시고 원천이 되신다.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으셨겠습니까?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 긍휼이 불붙듯 일어나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8: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여전히 불의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것,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믿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이 없었던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나 있었겠습니까? 주님이 긍휼을 베풀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서 이처럼 귀한 예배의 자리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도들 간에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가 있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리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긍휼 때문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분의 긍휼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그 분의 긍휼하심을 닮지 못한다. 

주님은 긍휼을 넘어 우리의 아픔을 체휼하신다고까지 하셨다. 

체휼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체험하시면서 함꼐 하신다는 것이다. 

 

5. 결론 

신앙인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때 

기도 중에나, 찬송 중에나, 말씀을 읽으면서 "그 분이 내 마음을 아시고, 그 분이 내 마음을 위로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심령으로 느낄 떄" 

 

그런데 여러분, 우린 언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본 적이 있는가? 

아니 되보려고 애쓴 적이 있는가? 

 

하나님 나라 사람들에게 주님은 "긍휼함을 얻은 너희여, 이제 너희도 나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라..." 

 

그런 자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가? 너흭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긍휼히 여김을 받았는데? 

무슨 말일까? 우리에게 주어진 영혼에 대해 긍휼한 마음을 가지면서 비로소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긍휼히 여겼는지를 더 깊이, 더 진실하게 경험할 것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속을 이해하지 못하고 늘 반항하고 투정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하는 말 - 너도 애 낳아서 키워봐....

키워보면서....비로서 깨닫게 되는 그 깊은 사랑. 

 

저희 어머니가 목회하면서 여자 성도 한 분이 여자 목사라고, 어떻게 여자가 목사가 되냐고....그러러면 다른 교회를 가든가, 여전히 나와서 다 좋은데 여자 목사라서 이 교회는 안된다.....

 

끙끙 앓다가 하신 기도 " 하나님, 저 집사님, 주의 종 되게 해 주세요...주의 종의 마음을 알려면 주의 종 되야 하잖아요...: 

 

언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진정 깨달을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긍휼한 사랑을 하면서, 그 아픔을, 그 깊은 사랑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주님 닮고 실지 않으세요? 주님 마음 알고 싶지 않으세요?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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