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62021  이전 다음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마리아, 평안의 의미를 새롭게 하다. (눅 1:26-38)

 

[눅 1:26-38]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어제- 요셉을 통해 의로움의 의미를 일깨웠다면 

오늘 - 그 아내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 주시는 꿈과 평안의 의미를 살펴보자. 

 

 우리가 바라는 평안 - 문제가 없고, 갈등이 없고, 호수같이 평화로운 평안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죄의 근본을 몰아내고, 원인을 몰아내는 평안

                                 - 폭풍 가운데서도 주와 함께 함으로 얻을 수 있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 

                                 

[눅 1:27-28]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1. 하나님 주시는 평안 - 한 번도 가지 아니한 길을 주님과 함께 가는 길  

정혼했다. 

흔히들 말하는 동정녀 신학 - 예수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인간의 씨를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 잉태 

처녀를 통해서 태어나야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

그러면 정혼하지 아니한 정말 결혼을 모르는 처녀이지 왜 정혼한 여인을 택했나. 

그러면 마리아가 갈등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지... 

 

정혼했다는 것은 정해진 길이 있는 상태. 약속된 삶이 있는 상태.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때에 임한다. 

 

"본터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 미리 주어진 삶을 떠나는 데서부터, 머물던 곳을 벗어나는 데서 부터, 말씀 따라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모세-> 이제 미디안에서 아내를 만나 잘 정착하고 살고 있는데, 그렇게 삶을 정리하고 있는데 애굽으로 가라 하신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다녀와서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다시 방문했던 도시들을 방문하려 짐을 꾸리고 사람을 모아 출발하려고 하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 - 마게도냐로 가라 한다. 

 

내가 익숙한 삶의 테두리 안에서 살 것인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아니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으로 걸어갈 것인가? 

주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신다. 말씀은 곧 꿈, 비전으로 온다.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님의 꿈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에게 온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온 이 하나님의 꿈을 외면하고 삽니다. 그 꿈을 살피지 않고 영접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만물에게 종살이 하듯 삽니다. 

그런데 이 말씀, 하나님의 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비로서 그 꿈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과 똑같은 꿈을 꾸며,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님의 꿈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에게 온 것입니다. 

 

2. 하나님 주시는 평안 - 우리의 죄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평안, 적극적 평안 

 

요나 - 비둘기, 평화라는 의미

존경받던 당대의 국민적인 선지자, 예언자. 국가 부흥의 원동력 

그런데 그에게 원치않는 말씀을 주셔서 그의 근본을 보게 하신다. 불손종하는 똥고집

자기 마음에 안드니까 완전히 거꾸로 향하는 못된 근성 

 

모세를 부르실 때에 일곱번이나 애굽으로 가라 

못갑니다. 안갑니다.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난 말을 못합니다....(믿음 좋고 지혜롭던 그의 민낯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의 죄를 끄집어 내서 드러내서 고치게 하시는 평안

우리의 죄를 수술하시는 평안 . 

베드로의 성급함을 끄집어 내시고, 바울의 잘못된 열심을 거꾸러 뜨리고, 솔로몬의 잘못된 지혜의 망상을 무너뜨리고...

 

우리는 잘못을 감추고, 외면하고, 방치하지만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의 연약함 중심으로 들어오셔서 끄집어 내신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돌을 굴러내라" 하시면서 그 무덤 깊은 곳으로 와서 죽은 나를 살리신다. 

 

  • 마리아의 고백 

[눅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 앞서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가브리엘의 말에 웃다가 벙어리가...

모세- 거역하다, 길 가에서 죽을 뻔한...

아브라함과 사라 - 이삭을 낳는다는 말에 웃음...

마리아의 고백- 전적인 믿음의 고백 -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엘리사벳이 45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물론 하루 하루 살아가면 자꾸 비전을 놓쳐 버립니다. 꿈을 잃어버립니다. 

현실의 장벽에 막혀 버립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교회이고 신앙의 공동체 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 앞서 그 꿈을 받은 자입니다. 비록 남편 사가랴는 불신으로 인해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아이를 잉태한 엘리사벳은 말씀의 능력을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마리아의 믿음의 선배요, 먼저 경험한 자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마리아는 고백했지만 하나님은 마리아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엘리사벳에게 보냅니다. 

 

둘 다 애를 낳을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둘 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견뎌야 할 환경과 남들의 시선이 말도 못합니다. 

엘리사벳은 남편이 예배하러 들어가서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애를 가져도 자랑하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청첩산중입니다. 요셉의 집안에게는 어떻게 말할 것이며, 자신의 앞날은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둘을 만나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게 하십니다. 서로 축복하게 하십니다.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의 꿈을 쫓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격려하고 위로하고 축복하는 곳입니다. 말씀과 사랑 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곳입니다. 네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라고 보장해 주는 곳입니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은혜의 길이요, 축복의 길임을 확신합니다. 

 

말씀을 받았으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병든 믿음, 죽은 믿음은 항상 두 마음을 가집니다.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망설이는 사람은 결국 넘어집니다. 무너집니다. 

열매맺지 못합니다.

애굽으로 갈까 망설이는 사람은 결국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지다. 

신앙은 불신앙이 망치는 것이 아니라 두 마음을 품은 신앙이 망치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신앙이 날 어렵게 합니다.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통해 믿음을 굳건히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하여 고백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컫으리로다." (47-48) 

 

남들이 날 어떻게 보든 마리아는 흔들리지 않고 다시 집으로 향합니다. 집을 나올 때의 발걸음은 두려움이었는데 돌아가는 발걸음은 견고함이었고 평안함이었습니다. 

교회를 나갈 때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흔들린 마음, 두려웠던 마음, 염려했던 마음이 정리되고, 안정되고 평안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신앙은 꿈 꾸는 것입니다. 

허무 맹랑한 꿈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주시는 꿈

그 꿈이 이루기 까지는 세상을 견뎌야 합니다. 씨앗이 자라야 합니다. 열매맺을 때까지 물을 주어야 합니다. 

말씀은 씨를 뿌리는 것이요, 말씀 가운데 나에게 주시는 믿음은 곧 잉태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예배, 교회는 이 말씀이, 꿈이 태어날 수 있도록 물을 주고 가꾸고 보호하는 곳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 입니다. 

꿈을 꿉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받읍시다.

아브라함은 아무 열매 없이 75세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삭을 낳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80평생 의미없이 광야에 도피해 살다가 하나님의 꿈을 받고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목동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꿈이 있으면 죽음도 의미가 없습니다. 영원 가운데 세상에서도 천국 가운데 살고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을 삽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꿈으로 미국의 정신을 일깨웠습니다. 

예배는 꿈꾸는 자들이 모인 처소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때 주님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꿈을 회복하는, 새로운 꿈을 소망하는 꿈꾸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 꿈, 그리고 성탄 (누가복음 1장 26-38절) 


결혼을 앞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결혼할 남자와 약혼을 한 상태입니다. 

집안끼리 약혼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신랑의 얼굴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그 사람을 상상하며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조금은 설래기도 하면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몇개월만 기다리면 신랑이 혼수 예물을 들고 신부의 집으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마을엔 며칠동안 잔치가 열리면서 이 두사람의 결혼을 온 마을이 축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제가 끝나면 여인은 신랑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큰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이 여인을 방문하여 청천병럭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청천벽력이라는 것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내린다는 뜻입니다. 푸르를 것 같은 여인의 삶에 일대 혼란이 찾아옵니다. 


혼인을 앞둔 여인에게 "네가 아이를 밸 것이라"(31절) 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이 여인에게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28절) 하고 말합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라니요? 그것도 신랑의 아이도 아닌 한번도 들은 적도 없는 성령으로 아이를 벤다니요...

유대인의 법으로 결혼하지 아니한 여인이 아이를 갖게 되면 곧 처형입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돌을 던져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혼한 상태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마리아 뿐만 아니라 신랑될 사람의 인생도 큰 일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 벼락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28절) 라고 말합니다. 

도저히 은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평안하라구요? 

여러분 같은면 이런 상황에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의 놀람을 보고 천사가 거듭 이야기 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그러면서 그녀에게서 날 자가 누군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큰 자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며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자" (32절)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녀를 통해 태어날 것을 말씀하시는 것, 신학적 용어로 말하면 예수님의 나심을 알려준다 해서 "수태고지"라고 불리는 사건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만약 이러한 삶의 선택이 여러분에게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마리아라면 여러분은 어떤 삶을 택하시겠습니까? 이미 예정되어 있는 요셉과의 단란한 가정이 기다리고 있기에 천사의 초대에 모세처럼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택할 만한 자를 택하소서..."하시겠습니까? 마리아와 같이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하시겠습니까? 


  • 마태복음에는 이러한 예수의 나심을 부친인 요셉에게 말하고 있고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Canon, 모든 것의 척도, 기준. 그런 성경이 예수의 일생을 네개의 복음서에 각각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서를 공관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쓴 글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것, 같은 사건을 바라보아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다른 해석이 나타납니다. 

누가복음은 신약성경 저자 중 유일한 이방인이었던 의사이자 바울의 동역자였던 누가가 쓴 글입니다. 

누가는 의사이기 때문에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였습니다. 

그가 관심있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의 내용이지요. 

누가복음 1장 1절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라고 시작합니다. 다른 복음서보다 누가복음은 이 사실을 묘사하는데 탁월한 복음서입니다. 다른 복음서보다 더 자세히 묘사하고 설명합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려


그러면서 세례요한의 탄생과 예수의 탄생, 사가랴의 반응과 마리아의 반응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이요 하나님 앞에 의인이며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없이 행하던 자라고 묘사합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천사장 가브리엘이 친히 잉태를 말하는데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하면서 

천사의 말에 자기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부정합니다. 어쩌면 마지막 율법의 선지자로서 나타나는 세례요한의 한계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는 율법적으로 제사장이요 그 모든 규례와 계명을 흠없이 지킨 자였지만 정작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에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합니다. 형식은 온전한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신앙입니다. 

 그런데 그 꿈은 내가 스스로 꾸는 꿈이 아닙니다. 

 내가 꾸는 꿈이 Dream이라면 신앙 안에서의 꿈은 Vision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꿈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꿈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꿈입니다.  

 기도할 때, 말씀읽을 때, 전심으로 찬양할 때, 성령을 통해 보여주는 꿈입니다. 

 약속된 꿈이고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꿈입니다. 

 

 그러나 그 꿈이 말처럼 평안하게 오지 않습니다

 내가 누려왔고 살아왔던 익숙한 길, 나의 느낌에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버리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그분의 인도함과 보호하심이 내가 나를 의지하고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주가 사는 길입니다. 

내가 보기에 죽을 것 같은 길인데 주 안에서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함께 길을 떠날 때 나이가 75세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을 꿈꿀 수 없는 그런 나이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자기에게 익숙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그분이 지시한 땅으로 떠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끌고 나올 때의 나이는 80입니다. 200만명이나 되는 백성들을 그것도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쫓아오는데 그 길을 떠납니다. 애굽의 궁궐은 아니지만 미디안 광야에서 아이낳고 결혼하고 단란하게 살고 있는 안식처를 버리고 위험천만한 길로 떠납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복의 일등공신입니다. 가나안 가장 좋은 땅을 달라해도 누가 뭐라할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가지 않는 땅, 또다시 전쟁을 해야지 취할 수 있는 땅, 그 땅을 내게 달라고 합니다. 

 

 내힘으로 할 수 없는 길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나는 길입니다. 

 "오직 성령이 내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덮힐 때에 갈 수 있는 땅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가시겠습니까? 

 

 38절에 보면 마리아가 고백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난 주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고백이 아닙니다. 이 말이 얼마나 대단한 신앙의 고백인지...모세를 보아도, 그리고 바로 앞의 사가랴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신앙 좋다던 그들도 하나님이 비전을 보여 주셨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자기 상황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부정합니다. "나는 입이 뻣뻣한 자입니다.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나는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보고 온 열 명의 정탐꾼은 "저 땅이 좋아보이기는 하는데 저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메꾸기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예수의 부친이던 요셉에게 이루어진 수태고지의 사건을 마태복음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 축소된, 혹은 외면당한 역할, 요셉 

성경 및 초대교회에 있어서 마리아의 중요성은 많이 강조되어 온 반면 요셉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언급되어 오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8절 – 19절) 

  • 요셉은 당시 마리아와 정혼한 상태로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 결혼 문화는 한국의 전통혼례와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남녀 간의 결혼은 주로 그들의 부모나 가족을 통하여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신랑측의 가족이 증인을 데리고 신부측 가족을 방문해서 결혼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신부측 부모님들이 허락하면 약혼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결혼할 당사자인 남녀는 결혼 전까지 한 번도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약혼을 한 후 결혼까지 남녀는 서로 결혼을 준비하며 상대방을 그리게 됩니다. 
  • 아마도 그 준비기간 동안에 요셉은 약혼녀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아이라는 것을 요셉은 알고 있었겠지요. 그럴 경우 이스라엘 율법은 파혼은 물론이고 이 일을 동네방네 알려서 파혼의 책임이 있는 여인을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마땅히, 혹은 당연히 유대인 남자로서 해야 하고 또는 해 오던 일이었지요. "당연한 생각" 
  • 요셉도 아마도 그 당연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유대인 남성으로서 당연히 율법대로 그녀의 죄를 드러내고 죄를 도말하게끔 세상에 알려서 자신은 의를 지키고 마리아는 죄를 받도록 하는 생각을 당연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신의 약혼녀 마리아를 보호하고 지켜 주고 싶다고 결심하고 행합니다. 율법을 넘어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성경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율법을 따르지 않고 사람을 살리려고 마음 먹고 행동한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부합되고 당연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넘어서는 생각, 사람을 살리려는 생각을 한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 제사장이었던 사가랴조차 넘어서지 못한 율법의 문턱을 넘은 것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20절) 

  • 아마도 요셉은 며칠 밤을 세며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생각이 참 많았겠지요. 유대인의 법을 따를까, 잘 모르지만, 혹은 부정하지만 저 여인이 욕먹지 않도록 조용히 일을 처리할까? 생각이 복잡한 요셉은 아마도 그런 생각들로 지쳐서 잠시 잠이 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생각에 지쳐있는 요셉을 하나님께서 잠들게 하신 것 같습니다.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듯 하나님은 요셉을 잠들게 하십니다. 왜 잠들게 하십니까? 꿈을 꾸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1) 

  • 내가 무언가 근심이 되어 잠도 못이루고 뒤척이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나를 잠들게 하시며 천사를 통해 말씀하여 근심을 바꾸어 기쁨되게 하시는 사건. 복음은 이렇게 어둠 속에 빛으로서 우리에게 오신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 왜 복음입니까? 바로 꿈 같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현실 속에서 논리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꿈 같은 일이 일어났기에 바로 복음입니다. 사람은 꿈을 꿉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현실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있었던 신비한 하나님과의 교제, 그 영혼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꿈을 꾸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우리가 영혼이신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영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워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꿈이 담겨져 있는 씨앗이요, 반드시 열매맺게 되어 있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에 왔으되 세상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고 증거합니다. 

그렇지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하나님의 꿈에 참여하고 그 꿈의 성취를 맛보는 권세를 주셨다고 요한복음 1장에 기록되어 있지요.


이 말씀 대신에 꿈을 넣어 한 번 말을 바꾸어 봅시다. 

하나님이 꿈을 꾸시면 곧 만물이 되고, 생명이 되고, 인간이 됩니다. 

하나님의 꿈은 곧 실현이고 창조입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꿈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꿈을 인간에게도 주어서 인간이 만물에게 명하면 그것이 이름이 되고 순종했는데 죄로 말미암아 말의 권능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꿈을 꾸면 말씀이 되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데 

인간은 꿈을 꾸어도 죄로 말미암아 이루어 지지 않고 말을 하여도 서로가 신뢰하지 않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말을 신뢰하지 않으니까 만물도 인간의 말을 듣지를 않지요. 

아무리 꿈을 꾸어도 실현되지 않으니까 이젠 꿈을 꾸는 것 자체를 잊어버립니다. 꿈꾸려고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만물을 이루는 근원이 꿈에서부터 시작되어 말씀으로 나타나고 이 말씀이 만물이 되고 육신이 되었는데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 안에서 살아가지만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고 만물 속에서 갇혀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님의 꿈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에게 온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온 이 하나님의 꿈을 외면하고 삽니다. 그 꿈을 살피지 않고 영접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만물에게 종살이 하듯 삽니다. 

그런데 이 말씀, 하나님의 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비로서 그 꿈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과 똑같은 꿈을 꾸며,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회는 꿈꾸는 직업입니다. 아니 그리스도인의 삶은 꿈꾸는 삶입니다. 

성탄은 그 꿈이 나에게 오는, 하나님의 꿈이 나에게로 내려오는 설레는 시간입니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은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12.28 06:25

    아멘 !!!

 

복이 있도다. (누가복음 1:45-56) 


결혼을 앞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결혼할 남자와 약혼을 한 상태입니다. 

집안끼리 약혼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신랑의 얼굴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그 사람을 상상하며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조금은 설래기도 하면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몇개월만 기다리면 신랑이 혼수 예물을 들고 신부의 집으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마을엔 며칠동안 잔치가 열리면서 이 두사람의 결혼을 온 마을이 축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제가 끝나면 여인은 신랑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큰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이 여인을 방문하여 청천병럭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청천벽력이라는 것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내린다는 뜻입니다. 푸르를 것 같은 여인의 삶에 일대 혼란이 찾아옵니다. 


혼인을 앞둔 여인에게 "네가 아이를 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이 여인에게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하고 말합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라니요? 그것도 신랑의 아이도 아닌 한번도 들은 적도 없는 성령으로 아이를 벤다니요...

유대인의 법으로 결혼하지 아니한 여인이 아이를 갖게 되면 곧 처형입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돌을 던져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혼한 상태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마리아 뿐만 아니라 신랑될 사람의 인생도 큰 일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 벼락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도저히 은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평안하라구요? 

여러분 같은면 이런 상황에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의 놀람을 보고 천사가 거듭 이야기 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그러면서 그녀에게서 날 자가 누군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큰 자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며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자"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녀를 통해 태어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삶의 선택이 여러분에게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마리아라면 여러분은 어떤 삶을 택하시겠습니까? 

 지금 당장 기다리고 있는 현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살아가고 있는 그러한 일상적인 삶 안에서 크게 변할 것도 없지만 전혀 위험할 것도 없는 그런 삶을 택하겠습니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미래의 약속, 하나님의 보장을 믿고 위험천만할 길을 떠나겠습니까? 

 신앙생활이 이런 두 삶 사이의 선택이라면 여러분들은 과연 어떤 삶을 택하시겠습니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신앙입니다. 

 그런데 그 꿈은 내가 스스로 꾸는 꿈이 아닙니다. 

 내가 꾸는 꿈이 Dream이라면 신앙 안에서의 꿈은 Vision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꿈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꿈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꿈입니다.  

 기도할 때, 말씀읽을 때, 전심으로 찬양할 때, 성령을 통해 보여주는 꿈입니다. 

 약속된 꿈이고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꿈입니다. 

 

 그러나 그 꿈이 말처럼 평안하게 오지 않습니다. 

 내가 누려왔고 살아왔던 익숙한 길, 나의 느낌에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버리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인도함과 보호하심이 내가 나를 의지하고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주가 사는 길입니다. 

 내가 보기에 죽을 것 같은 길인데 주 안에서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함께 길을 떠날 때 나이가 75세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을 꿈꿀 수 없는 그런 나이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자기에게 익숙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그분이 지시한 땅으로 떠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끌고 나올 때의 나이는 80입니다. 200만명이나 되는 백성들을 그것도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쫓아오는데 그 길을 떠납니다. 애굽의 궁궐은 아니지만 미디안 광야에서 아이낳고 결혼하고 단란하게 살고 있는 안식처를 버리고 위험천만한 길로 떠납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복의 일등공신입니다. 가나안 가장 좋은 땅을 달라해도 누가 뭐라할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가지 않는 땅, 또다시 전쟁을 해야지 취할 수 있는 땅, 그 땅을 내게 달라고 합니다. 

 

 내힘으로 할 수 없는 길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나는 길입니다. 

 "오직 성령이 내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덮힐 때에 갈 수 있는 땅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가시겠습니까? 

 

 저는 영문학과를 나왔습니다. 요즘은 어학연수나 유학이 필수처럼 여겨지지만 특별히 영문과 학생에게 어학연수나 유학은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개척교회를 하는 저의 형편상 유학은 꿈도 꿀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대학 학비도 주유소니 편의점에서 밤마다 일하지 않으면 충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뜻하지 않게 군대에서 군종이 되었습니다. 신학교 출신 병사들도 몇 있었는데 일반대 다니는 제가 군종이 되어서 2년 2개월 중 9개월을 교회에서 근무했습니다. 대학 들어가서 새벽예배 안나가니까 군대 군종을 시켜서 날마다 새벽예배를 인도하게 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짜리가 병사들뿐 아니라 장교나 장교 부인을 자리에 앉혀놓고 새벽예배를 인도한 것입니다. 

 

군대에 있으면서 처음으로 유학에 대해서 기도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남들이 다 가고 이야기해도 꿈꿀 수 조차 없어서 기도할 수 없었는데 새벽예배 나와서 날마다 기도하다가 어느날 부턴가 유학에 대해서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저도 유학가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보내 주세요.." 

"어디로 가고 싶으냐?" 

제가 미국 대학 아는 것이라곤 하버드하고 버클리밖엔 없었습니다. 하버드는 너무 욕심부리는 것 같아 "버클리 보내주세요"했지요. 

96년에 재대했으니까 딱 10년만에 전 버클리 신학대학 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도 처음엔 깨닫지 못하다가 박사과정 들어가니까 버클리대학에서 함께 입학허가서가 나왔습니다. 그 때 군대에서 했던 기도가 생각 난 것이지요. 


대학을 마치고 하나님은 제 인생에 개입하셔서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목회를 하고 형님이 신학을 해도 입할 때 까지 제가 신학을 하리라고는 나도 제 가족도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동문이라고 보내준 주소록을 보니까 저희과 사람중에 신학교 나와서 목사 된 사람이 저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레 신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신학교 들어갈 때의 나이가 27살 때였는데 들어가면서 했던 기도가 "남보다 늦게 시작했으니까 40살 때까지 열심히 준비해서 40살때부터는 하나님의 일 잘 감당하는 사역자가 되게 해주세요."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확하게 40살 되던 해 1월 첫 주 부터 이 곳 로고스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전 제가 가는 이 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인도한 길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하거나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날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약속하시고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자기가 가는 길에 확신을 가지고 가는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38절에 보면 마리아가 고백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난 주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고백이 아닙니다. 이 말이 얼마나 대단한 신앙의 고백인지...모세를 보아도, 그리고 바로 앞의 사가랴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신앙 좋다던 그들도 하나님이 비전을 보여 주셨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자기 상황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부정합니다. "나는 입이 뻣뻣한 자입니다.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나는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보고 온 열 명의 정탐꾼은 "저 땅이 좋아보이기는 하는데 저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메꾸기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하시겠다는데 저들은 자기 자신만 보고 상대방만 봅니다. 도무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엘리사벳이 45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물론 하루 하루 살아가면 자꾸 비전을 놓쳐 버립니다. 꿈을 잃어버립니다. 

현실의 장벽에 막혀 버립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교회이고 신앙의 공동체 입니다. 


마리아는 고백했지만 하나님은 마리아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엘리사벳에게 보냅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만나는 이 장면은 너무 인상적이어서 중세 때부터 많은 유명한 화가들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둘 다 애를 낳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둘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견뎌야 할 환경과 남들의 시선이 말도 못합니다. 

엘리사벳은 남편이 예배하러 들어가서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애를 가져도 자랑하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청첩산중입니다. 요셉의 집안에게는 어떻게 말할 것이며, 자신의 앞날은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둘을 만나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게 하십니다. 서로 축복하게 하십니다.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의 꿈을 쫓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격려하고 위로하고 축복하는 곳입니다. 말씀과 사랑 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곳입니다. 네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라고 보장해 주는 곳입니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은혜의 길이요, 축복의 길임을 확신합니다. 


말씀을 받았으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병든 믿음, 죽은 믿음은 항상 두 마음을 가집니다.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망설이는 사람은 결국 넘어집니다. 무너집니다. 

열매맺지 못합니다.

애굽으로 갈까 망설이는 사람은 결국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지다. 

신앙은 불신앙이 망치는 것이 아니라 두 마음을 품은 신앙이 망치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신앙이 날 어렵게 합니다.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통해 믿음을 굳건히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하여 고백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컫으리로다." (47-48) 


남들이 날 어떻게 보든 마리아는 흔들리지 않고 다시 집으로 향합니다. 집을 나올 때의 발걸음은 두려움이었는데 돌아가는 발걸음은 견고함이었고 평안함이었습니다. 

교회를 나갈 때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흔들린 마음, 두려웠던 마음, 염려했던 마음이 정리되고, 안정되고 평안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전 지금도 하나님 주신 꿈을 꾸며 삽니다.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주신 꿈을 심습니다. 

그것이 보여야지 끝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남편을 위해 기도해도 이런 꿈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입니다. 


한 분 한 분이 천하 보다 귀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들입니다.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의 꿈으로 가득찬 교회가 로고스 교회입니다. 


아기 예수 온 날, 우리는 다시 꿈을 꾸는 자들이 됩시다. 

그리스도가 바꿀 나의 인생, 그분이 주실 기쁨과 평안. 

은혜를 입은 자여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네가 복이 있다. 능하신 이가 이제 내게 큰 일을 행사실 것이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