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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주일예배설교

하나님의 큰 용사가 되어 (삿 7:9-18)

by 소리벼리 2022. 1. 25.

[삿 7:9-삿 7:18]

(삿 7: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삿 7: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삿 7:11)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삿 7:12)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삿 7: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삿 7: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삿 7: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삿 7: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삿 7: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삿 7:18)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 우리가 읽은 본문은 기드온과 300용사가 미디안 군사 13만 5천명의 군사와 싸워 승리를 이루는 전쟁 역사상 가장 기가 막힌 승리를 나타낸 장면입니다.  

 

  • 미디안 족속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그 미디안 족속이 두려워서 포도원 틀에서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던 므낫세에서 가장 작은 가문, 그 집안에서도 가장 약한 자였던 기드온을 택해서 "큰 용사"다라고 부르시며 그에게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내었다"(6장 1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1. 우리가 읽은 본문 9절은 "그 밤에"란 구절로 시작됩니다. 그 밤은 어떤 밤입니까? 

기드온이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과 몇가지 사연을 거쳐서 미디안 족속과 아말렉 족속과 전쟁하기 위해서 백성들을 모으니 3만 이천명 정도가 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보시고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 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들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여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삿 7:2) 하면서 (1) 두려워하는 자를 돌려 보내니 2만 이천명이 돌아가고 만명이 남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미디안 병사의 숫자가 얼마인줄 아십니까? 자그만치 13만 5천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병사를 다 모아보았자 3만 이천명인데 그것같다 이겨도 기적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기면 또 스스로 자랑하여 내 손이, 내 노력이, 내가 잘해서 이겼다 할까봐 그 숫자를 줄이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물가의 시험 (4절) 

더 기가 막힌 것은 나머지 만명이 남았는데 하나님께서 "백성이 아직도 많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서 개처럼 핥아서 마시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는 또 다 돌아가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시험코자 하시는 말씀입니까? 

당장의 문제 앞에서 허둥대다가 허겁지겁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에 무릎꿇는 자들을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가 삼백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고난 앞에서도 그들의 시선을 하나님께 거두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자그만치 9천 700여명이 돌아갔습니다. 3만 2천명 중에서 3만 천 700명이 다 사라지고 300명만 남은 것입니다. 

미디안 족속은 얼마라구요? 13만 5천명입니다. 

미디안이라는 지금 그들의 앞에 닥친 

자꾸 줄이기만 하시는데 여러분 기드온의 심정을 한 번 헤아려 보십시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그리고 미디안을 치라고 연약한 자 기드온을 불러놓고 자꾸 힘을 실어도 모자란데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 줄여라. 더 줄여라... 하면서 내가 의지하고 있던 것들을 자꾸만 없애고 줄이고 하실 때 그런 상황을 내가 겪는다고 생각하면 속이 막 타들어갈 것입니다. 조마조마 하면서 "하나님, 나 못해요..." 그러겠지요. 

 

저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일기처럼 묵상한 내용을 남기곤 하는데 이 본문을 2013년에 묵상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 때 건물 렌트비가 제 사례비보다 많을 때이고,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전도사님도 계셨습니다. 최소한으로 꼭 필요한 것만 지출해도 교회 한달 지출비가 최소 7000불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

그 때 교회 은행잔고는 1000불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안수집사로 계시던 집사님께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시면서 교회를 옮기셨습니다. 또 한 성도가 성도들사이에서 시험이 들어 출석을 않고 있었습니다. 

남은 성도 20여명, 한달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 7000불,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제가 감당해야 할 제 학비, 생활비....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숨이 막혔을 때였습니다. 그 때 기록한 묵상일기의 내용입니다. 

 

"자꾸 숫자에만 눈이 간다. 내가 이겨야 할 숫자. 내가 감당해야 할 숫자. 내가 살아야 할 숫자. 내가 써야만 하는 숫자. 내가 가지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숫자...." 

자꾸만 숫자에만 눈이 간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계속 숫자를 없애신다. 계속 줄여나가신다. 숫자를 보면서 절망하고 숫자만을 위해 기도한다. 지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내겐 믿음이 없는 것일까? 헛된 믿음만 있는 것일까? 믿음이라 여겼던 고집만 있었던 것일까? 사라지는 숫자를 보면서 입술이 타고 믿음이 타고 마음이 탄다. 하나님, 내 눈에서 숫자를 지워주세요. 숫자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네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숫자를 지워 주세요. 숫자가 아니라 성도의 얼굴이, 그들의 영혼이 보이게 해 주세요..." 

정말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그 밤에...는 기드온에게도, 이 본문을 읽는 저에게도 고난을 통해 거품을 제거하는 기간이었다. 
    고난은 32,000 에서 내가 의지하는 세상의 거품, 자존심의 거품, 정욕의 거품을 빼서 300 으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문제나 환경과 싸울 나의 32,000 의 안전장치를 모두 내어버리고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짓는 300 용사와 하나님만을 안전장치로 삼는 '거품제거기간'이다. 그 거품이 제거되는 그 때에... 그 밤에... 하나님은 작전은 개시되고 일하시기 시작한다. 

 

  • " 그 밤에"는 줄어가는 숫자를 보면서 하나님께 고통을 호소하고 토로하는 시간이고, 왜 32000 을 300 으로 줄여가시는지 답이 안가는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이다.  
    정말 힘들고 이해가 가지도 않지만 그래도 절대로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다고 토로하는 하나님과의 대화시간이고, 가나안 정탐을 하고 부정적인 열명의 시각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시각으로 바꿔지는 시간이다. 

 

그게 "그 밤에... "로 표현되는 내 개인의 정화의 시간이다. 
어제 새벽에 나누었던 토기가 완성하기 직전에 겪어야 하는 '불가마'라는 고난의 시간이 지난..사르밧이라는 정련의 시간, 정금이 되기까지 겪어야 하는 시간, 바로 ."그 밤에" 이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지금 그 "그 밤에"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고 구하시며 기드온에게 주어졌던 큰 용사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그 밤에" 등장하는 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 "그 밤은" 내가 의지하는 것을 모두 내려 놓는 시간임과 동시에 하나님이 내게 다가오시는 시간입니다. 나의 입장에서는 어려움과 고난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제 의지할 것이 없냐? 이제 내가 너의 써포터, 돕는자, 심부름꾼이 아니라 너의 주인, 너를 다스리고, 너를 인도하는 구원자로 등장하는 시간입니다.  

 

  •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변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관점입니다. 인간적인, 세상적인 관점이 바뀌어서 영적인 관점, 믿음의 관점,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 속에서 세상적인 관점, 세상적인 기준에 대해서 세뇌당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내가 가진 것, 내가 가진 실력만큼 사는 것이 최상입니다. 가장 잘 되었을 때가 그렇습니다, 자기 그릇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나에게 맡겨진 것만을 하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의 자기 인생의 그릇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해, 기도를 통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관점, 믿음의 관점을 가진 사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합니다,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꿈꾸게 하시고, 그것을 위해 준비하게 하시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니다. 믿음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은 자기 인생의 크기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기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미지근하던 인생이 열정을 품게 되고, 안된다고만 여겼던 것들을 믿음 안에서는 내게 맡겨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3. 두려워하고 있는 기드온을 하나님께서는 부하와 함께 진영으로 내려가 그들의 말을 듣게 합니다. 

(삿 7: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 내려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수가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해변의 모래 같은지라. 눈에 보이는 상황은 암울합니다. 변한 것이 없고 그들의 수는 자신을 압도합니다. 그런데 내려가서 염탐하니 그 병사들 중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꿈을 말하는데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앞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하면서 기드온의 칼이 자기의 진영을 무너뜨릴 것을 이야기하며 두려워합니다.
  • 하나님이 행하신 대로 순종했더니 무엇이 바뀝니까? 관점이 바뀐 것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현실에서 희망이 보입니다. 자기는 미디안을 두려워하는데 그들은 이미 기드온의 칼이 자기를 무너뜨릴 것이라 염려하며 두려워합니다. 300명으로 13만 5천을 상대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이 가라 하는 곳으로 갔더니 오히려 미디안이 기드온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 보리떡 한 덩어리가 들어와 미디안 진영을 무너뜨렸다는데 보리떡 한 덩어리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실 때에 사탄이 나타나 돌덩이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유혹합니다. 그 때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마 4:4) 광야에서 내리는 떡덩이는 무엇입니까? 만나입니다.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광야에서 드렸던 소년의 보리떡 다섯개는 무엇입니까? 주님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말씀 앞에 온전한 순종입니다. 그러니까 떡덩이가 들어와 그것이 기드온의 칼이 되어 미디안의 진영을 무너뜨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말씀하시면서 17절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우리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곧 우리의 검입니다. 
  • 관점이 바뀌니까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두려움이 없어지니까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선포합니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삿 7:15) 

 

4.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클라이막스) 

  • 지금 300명의 용사는 어떤 용사입니까?  3만 2천명 중에서 가리고 가려서 뽑은 정예 군사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자들입니다. 그럼 그런 정예 부대를 통해서 전쟁을 한다면 전략적으로는 게릴라 전이라든가 그들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도저히 상식밖의 일을 명하십니다. 
  •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라. (16절) 
  •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1) 나팔 :

  • 이스라엘의 전쟁은 항상 나팔을 분 자들이 가장 앞에 섭니다. 나팔은 곧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사망권세를 멸하시고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며 외치며 진격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기드온의 명령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 기준과 잣대로 부정하게 적용했다고 비판하지 않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듯 이들은 기드온의 말을 듣고 순종하며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그것이 곧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논쟁으로 시간 끌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에게 순종하며 나아갈 때 전쟁은 승리합니다. 

 

2) 빈항아리

  • 항아리는 담는 것입니다. 
  •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 항아리는 우리 모습입니다. 우리 영혼입니다. 깨지기 쉬운 연약한 우리 마음 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빈항아리를 가져오라 명하십니다. 내 욕심, 내 판단, 내 기준 다 버리고 오직 순종하는 빈 마음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전쟁에 나와서 그 빈항아리를 깨뜨리라 하십니다. 부스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숫자를 의지하고, 약을 의지하고, 환경만을 의지하는 가득찬 항아리를 비우고 가져와서 깨뜨리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며 남긴 글 

  • "항아리가 뭘 뜻하죠?" 하고 묻는데, "넌 거기에 뭘 담고 싶니?" 라고 되물으신다. 항아리에 무엇을 마실까...의 물을 담는 게 아니라, 항아리에 무엇을 먹을까...의 양식을 담는 게 아니라, 항아리에 횃불을 담으라신다. 횃불은 성령입니다. 내 두려움과 내 욕심과 내 기준을 버리고 그 속에 성령의 기름, 성령의 충만, 활활 불타오르는 꺼지지 않는 기도로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대로 너희도 그리하여....(사 7:17절) 

 

* 능력은 하나님을 믿는대서 나옵니다. 능력은 순종에서 나옵니다. 

그냥 믿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만이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단지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다 할테니 내 부족한 것 도와주세요. 가만히 계시다가 내가 못하면 도와주세요...그런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오직 그 분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방법, 내 기준, 내 관점을 버리고 철저히 그가 하는대로 내가 행하는 것이 신앙생활 입니다. 

 

결론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며 그 시기를 실패의 시간이 아니라 승리의 시간으로 바꿀 수가 있었습니다 

비겁하고 소심했던 자에서 하나님의 큰 용사되기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숫자만 바라보다가 비로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영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개척 2년째, 새해를 맞이하면서 정말로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잘 갖추어진 교회가 아닌 아무 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개척교회를 다닌다고 결정하는 것,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정말로 감격스런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할 이유입니다. 

 

그런데 가장 기뻐해야할 순간에 또한 가장 힘들 때에 힘이 되었던 말씀을 주십니다, 

어려울 때에 숫자만을 두고 기도했듯이, 잘되고 부흥 할 때도 숫자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내 그릇 안에 만족함이나 교만함이 아니라 빈그릇 안에 성령을 담아 삶이라는 이름의 전쟁터에서 끝까지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잘될 때도 안될 때도 있습니다. 잘되면 목이 굳어지고 안되면 움츠려드는 것이 세상 인생살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교만해질 이유도, 소심해질 이유도 없습니다. 주 안에 생명이 있고 만족이 있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우리 트레이시제일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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