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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갈길'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06.02 그리스도인의 갈 길 (디모데후서 2장 1-13절)
 

그리스도인의 갈 길 (디모데후서 2장 1-13절) 


요즘 성도들의 한결 같은 소망은 참 교회, 참 목회자, 참 성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좀 들어갔을 만하면 쏟아지는 교회의 문제들, 목회자들의 문제들이 방송이나 신문 지상에 오르락 내리락 할 때 마다 신앙의 회의를 느끼며 안타까울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모델로서 초대교회를 말합니다. 초대교회같은 교회를 다니고 싶어합니다. 

예수를 직접 본 사람들이 말씀을 증거하는 교회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처음으로 공동체적인 성령을 체험했던 교회. 

베드로나 야고보, 바울과 바나바 같은 신앙의 영웅들이 말씀을 증거하며 가르쳤던 교회....

그런 곳에 있으면 우리의 신앙도 잘 자랄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초대교회는 신앙의 문제가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은 아주 작은 사건으로부터 인해 군열이 가게 됩니다. 

헬라파 과부와 히브리파 과부를 돕는 문제로 인해 사도들이 골치를 썪게 됩니다. 

이래도 한 쪽에서는 말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그러한 물질 문제가 얼마나 교회를 괴롭혀 왔는가를 보여주는 예를 보여줍니다. 


결국 말씀과 성령, 표적과 이적이 많았던 초대교회도 몇몇 물질 문제를 통해서 균열이 되다가 이를 틈다 여러 이단 사상들과 내외부적 탄압으로 인해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교회는 어떠합니까?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입니다. 다음 시간에 살펴 볼 2장 23절에는 에베소 교회에서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딤후 3:2-7]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여 남을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않으며 거룩하지도 않으며...

무정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메마르다는 것입니다. 가시인생이라 건들면 욱 하고 일어나고 사납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무인하니....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고.....그런 여자들은 항상 배우는 것 같지만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 무엇입니까? 자기 욕심에 이끌려 살다가 결국 구원얻지 못할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바로 초대교회의 모습이 이랬습니다. 


이 모습을 지금의 교회에 적용한다고 해도 어느 말씀 하나 속하지 않는 말씀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결론은 무엇입니까? 이상적인 교회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시작 때 부터 돈문제, 이단 문제, 여자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것 때문에 늘 말썽이었고, 지금까지도 이것과 싸워오고 있고, 그리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싸워 나가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낭만주의 낭만주의....다른 집을 바라보면서 참 화목하겠다. 행복하겠다...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현실주의.... 

낭만주의 VS 현실주의


그러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목회자에게 이것 저것 다 경험한 목회자인 바울이 당부하는 것: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라. 


현실에 무릎꿇지 말아라. 다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든 따라가지 말아라. 네 신앙을 단단히 하라! 

그리고 잃지 말아야 하는 것"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공식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비밀이 아니다. 복음은 넓은 곳에 선포된 공언이다!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여기까지가 복음의 사명입니다.  


내가 믿음 안에서 단단히 서서 주위에 흔들리거나 휩쓸리지 않고

다른 충성된 자, 신실한 자를 찾아 내가 받은 은혜를 전하여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세우는 데 까지 하면 통로로서의 내 사명은 완수되는 것입니다! 


배우는 자로만 있어서도 안되고 가르치는 자로서만 머물러서도 안됩니다. 내가 잘 배워 남을 가르쳐 또 그가 가르치는 데까지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믿음의 통로, 복음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오해도 받고, 배신도 당하며, 모욕도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군사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군사로 부름받은 자입니다. 병사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 생활이 좋아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보수가 좋아서 군대가는 사람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주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저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합니다. 말로는 예수를 주님이라 하면서 실재로는 나의 심부름꾼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낯추었습니다. 그래서 내 믿음이 흔들리고 불평이 들어올 때마다 예수를 기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위해 사는지, 예수가 날 위해 사는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이 매인 것에 낙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매여도 복음은 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국에서 연거퍼 진 후에 기자 회견에서 그가 한 말, 나 이세돌이 진 것이지 절대로 인간이 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다음 게임에서 결국 알파고를 이겼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고난받고 실패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복음의 실패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철저히 복음에 매인자 였지 자신에 매인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기 자신에 매여 있는지 모릅니다. 

내 마음이 않좋으면 남이 은혜를 받던 안받던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기뻐야지 주님도 생각하지 내가 속상하면 주님의 마음은 항상 그 다음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지금 비록 부족하고 넘어지고, 떠나가는 사람들 투성이었지만 그들도 구원받을 자로서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힘들어도 그 힘듦을 통해서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기쁘게 견딜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조금 내 기준에 모자라면 얼마나 깎아 내리기 좋아합니까? 

저 사람은 구원도 못받을 사람, 아애 사탄취급 할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를 괴롭히고, 교회를 떠나가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있어도 결코 그들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은 그리스도의 미쁘심, 변함없으심, 완전하심에 근거한 믿음이었습니다 .

그 사람들의 현재 상황, 자신의 노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다 도망친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처럼 말입니다.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신실한 사명자, 충성된 일꾼은 어느 교회든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러한 디모데와 같은 충성된 일꾼들에 의해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런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이 되어 돈, 섹스, 권력에 넘어가지 않고, 주님을 닮고 따라가는 그런 성도,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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