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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주라'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9.03 마태복음 10:5-8절

 

[마 10:5-8]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한 국밥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난후 식당 안이 좀 한가한 시간이었습니다. 식당 주인도 한숨을 돌리며 신문을 보고 있을때, 허름한 옷을 입고 있던 할머니 한분과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있던 어린 소년이 식당으로 들어왔습니다. 

할머니는 엉거주춤 앉으신 채로 국밥 하나를 시키셨습니다. 두 사람이 들어와서 국밥은 한 그릇만을 주문한 것입니다. 할머니는 하나 시킨 국밥을 소년에게로 밀어 놓으셨습니다. 소년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정말 점심 드셨어요?” “그럼, 어여 많이 먹거라” 

 

할머니가 깍두기 한점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동안 소년은 국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다 먹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이 두 사람에게 다가갔습니다. “할머니 오늘 운이 참 좋으십니다. 저희 식당에서는 100번째 손님에게는 돈을 받지 않거든요. 그런데 할머니가 우리집에 100번째 손님이세요. 축하드려요.”

 

누가봐도 돈이 없어서 국밥 한 그릇만을 시킨 할머니와 소년에게 식당 주인은 돈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났습니다. 주인이 보니까 전에 왔던 그 소년이 국밥집 길 건너편에 쭈그리고 앉아 무엇인가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소년은 국밥집에 손님이 들어갈 때 마다 동그라미 안에 돌을 던져넣고 수를 세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세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다 지날 때까지도 채 50개를 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소년은 100번째 손님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마음이 급해진 주인은 주변의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바쁘지 않으면 우리 국밥집으로 오게. 오늘은 공짜니까 얼른들 와서 국밥 한 그릇씩 먹고 가지? 올 때 그냥 오지 말고 다른 친구들도 데리고 와. 오늘은 무조건 공짜니까” 

그렇게 주인이 동네방네 전화를 돌렸고, 그 덕택에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소년의 셈도 빨라졌습니다. “여든하나.여든둘..여든셋...” 그리고 마침내 아흔아홉개의 돌멩이가 동그라미 속에 들어갔을때 소년은 얼른 할머니의 손을 잡고 국밥집 안으로 들어와 국밥 한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이번에도 두 사람이 와서 한 그릇만을 시킨 것입니다. “할머니 이번엔 내가 사드리는 거야!”

 

지난 번에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소년이 깍두기를 오물거렸습니다. 그 사이에 할머니는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계셨습니다. 국밥을 맛있게 드시던 할머니가 “좀 남겨주랴?”라고 말을, 꺼냈을때 소년은 배를 앞으로 쑥내밀고 말했습니다 . “아니. 난 배불러 이거봐 할머니...” 

물끄러미 그 장면을 지켜보던 주인은 정말로 100번째 손님이 된 그들에게 다가가 “이번에도 100번째 손님이 되셨네요”라며 돈을 받지 않았고, “오늘부터는 100번째 손님에게 국밥 한 그릇이 보너스입니다”라며 국밥 한그릇을 식탁에 내려놓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배부르다던 소년은 좋아라며 보너스로 나온 국밥 한 그릇을 단숨에 비웠습니다. 

할머니도, 소년도, 그리고 식당 주인도 저마다 사랑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상대의 형편을 이해하고, 상대의 자존심을 배려하며,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 식당 안에는 봄날 햇살처럼 따스한 사랑이 훤히 비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가 이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는 비난하고 질책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욕하고 싸우고 손가락질하지만, 교회만큼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따스한 사랑이 훤히 비추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의 형편을 이해하고,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함께 울어주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로고스 교회가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고 보듬어주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상대를 배려하고 품어주는 따스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실망한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게 되고, 넘어진 사람자들이 일어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시며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상에 내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1기 사역은 홀로 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역을 예수님이 직접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무리들을 가르치셨고 예수님이 직접 더러운 귀신을 쫓아 내셨고 예수님이 직접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1기 사역을 마무리 하시고 새롭게 2기 사역을 시작하시는데, 그것은 제자들을 통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12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 홀로 사역하시는 것이 아니라 12제자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영적인 전쟁을 하고 세상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권능, 즉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제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기에 예수님은 그들을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성령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왜 주시는가? 


(마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절: 누구에게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냐면 무리-> 왜? 그들이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여 기진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주신 것인가? 제자들에게 

(마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마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 하나님께 추수할 일꾼들을 좀 붙여 주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붙여주신, 만나게 하신 자들이 제자들... 

그런데 그 제자들, 추수꾼들의 모습이 어떠했는가? 

어부들, 못 배운 자들, 억센 사람들, 우뢰와 같은 사람들....

나도 종종 기도하면서 일꾼 보내주세요...하고 기도한다. 

내가 기도하면서 마음에 그리는 일꾼...

성경도 많이 알고, 신앙의 모범이 되고, 흠이 없는....-> 아 이 기도가 잘못된 기도구나... 예수님의 제자들...그들을 제자되게 하기 위해서...3년간을 함께 하면서 교육하고, 모범을 보이심...


암튼간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해서 응답받은 사람들이 12제자들. 

그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며 병과 악한 것들을 고치는 능력을 부어주심. 

그리고 그들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말며,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0:5-6) 


잃어버린 양은 구원받지 못한 자입니다. 예수 안믿는 자이거나 믿었지만 지금 믿음을 잃어버린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냥 무작정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라고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의 길”은 당시에 헬라 세계 즉 먼 외국 땅을 가리킵니다. 요즘으로 치면 아프리카나 태국과 같이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의 선교지, 복음의 불모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은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는 하지만 순수한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은 늘 적대 관계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을 하면,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입니다. 같은 민족은 같은 조상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복음에서 제외된 나라가 사마리아인의 고을이요 북한입니다.

예수님은 그같은 이방인의 길, 사마리아인의 고을로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대신에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집”은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우리와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고,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오가는 이웃들, 내 형제들, 내 가족들을 가리킵니다. 그 사람들에게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전도와 선교에도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도 이스라엘의 집이 가장 먼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 사도행전 1:8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은 구름을 넘어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지상명령입니다. 그런데 그 명령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성령의 권능이 임해야 전도와 선교를 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어떤 순서로 전파되는가 하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이라는 순서입니다. 가장 가까운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그리고 그 다음 가까운 유대 그리고 그 다음이 사마리아 그리고 마지막이 땅끝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대상도 나와 가장 가까운 내 집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형제, 내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리고 그다음에 가까운 이웃, 친구, 내가 속한 학교, 직장, 그리고 내 나라, 내 민족, 세계입니다. 

사도바울- 이방인의 선지자로 부름 받은 자. 그런데 사도행전을 잘 읽어보면 그는 어느 곳을 가든지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다. 별 효과도 없고, 오히려 죽을 때까지 그 유대인들때문에 괴로움 당하고, 감옥에 갖히고, 도망을 당하는데도 어느 곳을 가든지 먼저 유대인들에게...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양에게 갈 때 무작정 가는 것이 아니라, 메세지를 들고 가야 합니다. 그들에게 가서 전할 메세지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메세지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양에게 가서 전할 내용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메시지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

잃어버린 양들에게 제일 먼저 천국을 전해야 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천국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예요. 천국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이 전하셨던 메시지의 핵심도 천국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도, 말씀도 치유도, 사역도 모두 천국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또 신약성경의 처음인 마태복음에만 천국이라는 단어가 무려 36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국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천국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면서 천국도 함께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그 천국을 세상에 알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천국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천국에 대해서 뭘 좀 알아야 “가까이 왔다”느니, “천국에 함께 가자”라고 말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천국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천국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곳인지를 믿음으로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천국이 어떤 곳입니까? 요한계시록 21:3-4절의 말씀입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죽음도 없고 애통하는 것도 없고 곡하는 것도 없고 아픔이 없는 곳이 천국입니다. 너무 기뻐서 울 일이 없습니다. 죽음과 아픔이 없기에 슬픔도 없습니다. 영원히 복락을 누리며 행복을 누리고 기쁨을 누리는 곳이 천국입니다. 이 땅에서는 매일이 눈물이고 애통이고 아픔이고 끝내는 죽음인데, 천국에는 그같은 슬픈 일들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애통해 하는 사람들이 복을 받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복을 받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여러분 천국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십니까? 요한계시록 21:18-21입니다.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번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세상의 보든 명품, 세상의 모든 보석, 모든 아름다운 보물들로 만들어진 곳이 천국입니다. 물론 이 구절은 비유입니다. 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각종 보물들로 장식해도 천국의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이 천국을 소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와 같은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들은 흔히 ‘천국’하면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도 “예수 믿고 꼭 천국에 함께 가자”라고 말합니다. 

 

천국이 정말 죽어야 가는 곳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즉, ‘천국이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데, 그것은 ‘하나님 죽고 싶습니다 죽어서 천국가고 싶습니다’라는 기도가 되고 맙니다. 

 

친구에게 전도하면서 “예수 믿고 천국 가자”라고 하는 말도 “함께 죽자, 함께 죽어서 천국 가자”라는 말이 됩니다. 천국이 과연 그런 의미이겠습니까? 

 

물론 천국은 이 세상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하지만 꼭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그 보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천국은 죽어서도 갈 수 있지만 살아서도 갈 수 있습니다. 천국은 죽어야만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살면서도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신비입니다. 그 신비로운 천국이 지금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천국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현실 세계에서도 천국을 누리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저 하늘 나라와 접속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저 영원한 천국을 우리 안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7:21을 통해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즉 천국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천국을 소유하고만 있다면, 그 사람은 죽음도 없고 애통하는 것도 없고 아픔도 없고 슬픔도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씀을 드리면 천국을 소유하고 있기에 이 땅에서 당하는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죽음이 변하여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천국을 누가 누리고 누가 소유할 수 있는가? 누가 천국의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 믿음이 있다면 우리 안에 천국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천국도 얻을 수 있습니다. 


천국의 문은 분명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천국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과 접속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접속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믿음이 있기를 정말로 바랍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믿음, 아무리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고 상처 투성이라고 해도 예수님과 이어지는 믿음만 있다면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믿음만 있다면 천국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제자들이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서 단지 천국의 메시지만을 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 8절 상반절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기독교는 말 뿐인 종교가 아닙니다. 반드시 삶이 뒤따르는 종교입니다. 천국의 메시지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삶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병든 자에게 천국은 그 병이 낫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 진정한 천국입니다.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신들이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간다면 그야말로 천국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병든 자를 고치며고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단순히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씀의 본질은 세상 사람들이 천국을 누리고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살릴 수는 없지만, 외로운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가난한 사람들을 물질로 도와주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상처 입은 자들을 치유해주고,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천국의 삶을 전해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말 뿐인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입으로만 떠드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국에는 입술만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말만하고 삶으로 실천하지 않아서 입술만 천국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몸으로, 우리의 시간으로, 우리의 물질로 잃어버린 양에게 천국의 삶을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천국의 삶을 거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 하반절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무슨 일을 했습니까? 우리의 허물과 추악한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혔습니까? 우리가 가시관을 썼습니까? 우리가 저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도대체 무슨 공로가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도 거저 받았고, 하나님의 용서도 거저 받았고, 영원한 생명도 거저 받았고 아름다운 천국도 거저 받았습니다.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사랑도 용서도 천국도 거저 주어야 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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