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8장 1-9절 사무엘의 실패
다시 사무엘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무엘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막상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각자가 왕이 되고 우상을 섬겼던 사시시대를 마치고 왕정의 시대가 열리는 배경을 나눈 성경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의 상징인 다윗의 시대가 열렸는지를 알리는 성경입니다.
사순절 본문 이전에 우리는 사무엘상의 7장까지를 나누었고 오늘은 8장을 나눕니다.
사무엘상 8장은 사무엘의 전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를 전합니다. 우리는 사무엘의 실패를 통해 우리 자신의 신앙의 교훈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7장의 끝은 사무엘의 치리로 인한 태평성대의 소식을 전합니다.
(삼상 7:13)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보호)
(삼상 7:14)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회복과 평화)
15-17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는 말의 반복
그러니까 7장에 사무엘의 시대가 열렸는데 8장의 시작은 사무엘이 늙었더라로 시작됩니다. 보호하심과 회복, 평화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 삼상 8:1) 사무엘이 늙으매...
8장의 시작을 통해서 몇가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경은 평화의 시대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왕궁에서 보낸, 그리고 미디안 광야에서 보낸 평화의 세월은 단 2장으로 압축합니다. 평화의 때는 하나님이 잘 보여지지 않습니다. 문제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곧 문제의 역사입니다.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만약 드라마를 하는데 문제도 없고 갈등도 없으면 그것은 드라마일 수가 없습니다.
둘째, 사무엘이 늙을 때부터 오히려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됩니다.
8장에 사무엘이 늙었다고 나오지만 이 때부터 사무엘의 사역이 주춤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때부터 하나님의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됩니다. 사울을 세우고 다윗을 세우고 그들의 흥망성쇄를 사무엘이 함께 합니다.
아브라함의 사역이 75세때 하나님의 부름으로 시작되고, 모세의 사역은 80세때 시작됩니다.
세상은 점점 '빨리', '일찍'을 외치면서 늙으면 빨리 은퇴하라고 말하는데 성경처럼 노인들을 잘 대접하는 세계가 없습니다. 누구보다 일찍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던 사무엘도 사실 늙고 나서 비로서 성경의 한 역사를 장식합니다.
(삼상 8:3)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에게는 요엘과 아비야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아들이 사무엘을 따라 의를 행하지 않고 뇌물을 받고 백성들의 원성을 듣는 악한 제사장들이 됩니다.
참 당황스러운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다루면서 이들의 잘못된 행위 뒤에는 아버지의 영적인 둔감함과 나태함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선지자 중의 대표자라고 할 정도로 성실하고 의로운 자였습니다. 그러면 홉니와 비느하스와는 반대되는 그런 아들들이 나와야 되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내용이 아니겠습니까?
이 구절을 설명하기 위해 몇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가정에는 소흘했다.
어릴적 너무 일찍 성전에 맡겨져서 아버지의 상에 대한 학습이 없었다. 어릴적 부터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나랏일과 성전일은 잘 돌보았지만 가정일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사무엘에 비해 두 아들이 뛰어나지 못한 것이지 요엘과 아비야가 결코 악한 사사가 아니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바로 사무엘의 둘째 아들 아비야 계열의 제사장이라고 소개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런 설명들은 변명정도로 여겨지지 두 아들의 악한 행위에 대한 적당한 설명은 되지 못합니다.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었고, 기도하는 자의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우리에게 피하고 싶은 구절입니다.
또한 모세도 실수하는 장면이 나오고 다윗도 실수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앞에 실수하는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인생의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답을 구하지 못할 일들이 많고, 하나님의 섭리 역시 때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 분명한 것은 엘리가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생각하여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이 곧 엘리의 죽음을 이끌었지만 사무엘은 자녀들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앙은 여전히 굳건히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 5절)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않으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그 원인은 사무엘은 늙어 다스릴 만한 힘이 없고 아들들은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을 세워 자신들을 다스리게 해달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살펴 볼 수 있는 백성들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그들은 스스로 서지 못하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사시기서의 가장 큰 핵심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때에 왕이 없으므로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시기 시대는 각자 개인이 왕이 되어 활동하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사사도 이스라엘 전체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이쪽 지파, 저쪽 지파 다양하게 주십니다.
그런데 그런 긴 사사시대를 지나면서 그들은 스스로 왕이 될 수 없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중재자가 필요하고, 그들을 다스릴 대언자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나무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해결책의 기준으로 그들이 생각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답을 구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와 같이" 믿지 않는 나라들이 그들의 판단 기준이 된 것이지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나라 중에 뛰어나게 하시어 열방을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생각은 광야에서와 마찬가지로 항상 "나도 저들처럼..."하면서 세상이 기준이 되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세상 가운데서 불러내어 구별코자 하시는데 그들은 계속해서 그들을 바라보며 닮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 6절)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자신이 늙었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과 누군가의 입을 통해 당신 이제 늙었어 하는 것은 너무 다르지요? 거기다가 자기의 자식들이 잘못했어도 그것을 직접 지적하며 바꾸어 달라고 말하는 것 때문에 사무엘은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의 상함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사무엘은 위로하십니다.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렸다고 말씀합니다. 상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마음을 어루만지십니다.
하나님의 답은 무엇입니까?
7절)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9절) 먼저 듣고 경고하고 가르쳐라.
여기서 먼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왕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가/아닌가입니다.
사무엘은 백성이 왕을 세워 달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3가지 메시야직에 대한 예언을 통해, 제사장, 선지자와 함께 왕을 세울 것을 미리 계획하셨습니다.
그 왕의 계보를 따라 다윗왕이 나고 그 다윗왕의 계보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왕을 백성들이 요구한다고 들어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차근차근 왕을 세울 단계를 가르쳐 주십니다.
먼저 백성의 이야기를 다 들으라!(7절) 9절에도 먼저 듣고 경고하고 가르쳐라! -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무엘의 생각을 만지시길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10절부터 사무엘의 행동을 보면 무엇부터 행합니까?
먼저 왕을 세웠을 때에 나타나는 부작용부터 이야기 합니다. 경고부터 하는 것이지요.
17절- 18절 )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왕을 세우면 이제 하나님이 너희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백성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19절) 백성이 하나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NO!
소통의 단절이 옵니다.
21절)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22절)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 하나님은 듣고 경고하고 가르치라 하셨는데 사무엘은 가르치고 경고하고 듣는다. 순종의 순서가 바뀌었다.
이 구절은 처음에 백성이 사무엘에게 요구하며 사무엘로 하여금 백성을 설득하는 내용을 띠지만 자세히 들여야보면 오히려 하나님이 사무엘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목회도 마찬가지고 자녀양육도 마찬가지고,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목사가 성도들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성도가 목사를 가르치는 것이고,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자녀에게도 부모가 배웁니다.
우리는 엘리와는 달리 기도의 사람이었던 사무엘이 왜 자식농사에는 실패했을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때로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사람 말 듣기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의 요구가 자신의 기준으로 볼 때에 너무 말이 안 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어찌보면 자녀들이 이런 저런 요구를 하는데도 사무엘은 자신의 신앙 기준을 자녀들의 기준으로 삼아 엄격하게 금지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 못하는 것이 많을수록 자녀들은 불만이 쌓이고, 결핍되는 마음을 물질로서 채웠는지 모릅니다.
감정이 상한 상태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한 감정의 기도도 하나님께서는 즐거이 받으시고 그의 마음을 어루만지십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실패는 상한 마음으로 기도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 후에도 그 상한 마음이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상한 마음 그대로 백성들을 상대하다가 오히려 백성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게 됩니다.
어쩌면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는 익숙하지만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은 필요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많은 기도의 사람들도 이런 실수를 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왜 실수입니까? 우리는 솔로몬에게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왕상 3:7-9]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 (예전 성경: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은 종이고 작은 아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가장 낮추고 하나님을 높임과 동시에 백성들을 주의 택하신 백성, 큰 백성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높입니다.
이것이 참 왕의 마음임을 보여 줍니다.
- "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주님은 비유로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기를 간구했지만 제자들도 사람들도 듣는 데 실패합니다. 듣는 데 실패하니까 십자가를 진다는데 누가 크냐 싸우고 부활을 이야기 했는데도 모두 도망갑니다.
참 지혜는 무엇입니까? 참 왕은 무엇입니까? 잘 다스리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잘 듣는 자입니다. 듣는 것이 지혜입니다.
가르치려고만 한다면 언제나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들어야 하지만 사람들의 말도, 자녀들의 말도, 형제들의 말도 잘 듣는 것, 깊게 듣는 것, 경청이라는 것은 예를 다하여 듣는 것입니다.
머물르면서 듣는 것입니다.
잘 드러나지 않는 실패였지만 이 실패를 통해 사무엘은 한단계 더 성숙하게 됩니다. 가르치는 자에게서 듣는 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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