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35-39 (예수, 기도를 통해 안식하고 방향을 정하다)
예수의 공생애
세례 요한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세례를 통해 예수의 공생애 시작
세례 받자 마자 사탄의 시험을 이기심. 그 사탄은 누구인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걱정없이, 어둠없이, 죄없이 살던 인간을 유혹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이끌려 끊임없이 죄악 속에서 살도록 인간을 사망의 길로, 유혹한 자.
그 이후로 인간의 삶- 헛된 욕망을 위해 살다가 헛되이 죽는 인생들...
하나님을 떠난 새로운 즐거움, 행복들을 생산해 내지만 결국 그 끝은 사망의 길.
그런 사탄의 시험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을 이야기하시고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시며 사탄아 물러가라 하시면서 사탄의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물리치신 예수님.
그런 후에 사람들을 만나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귀신을 내어 쫓고, 병자들을 고치심.
귀신들의 왕, 사탄을 물리치셨는데 왜 구석 구석, 별 사람들을 다 찾아다니며 또 귀신을 쫓고 병자들을 고치며 말씀을 전해야 하는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이 임하셨는데 왜 그럼에도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를 영접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데 왜 끊임없이 말씀 읽으며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우리 필요와 쓸 것을 이미 아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기도해야 하는가?
사탄의 영향력, 흔적, 유혹, 시험...여러가지 사탄의 세력이 여전히 남아있고, 영향력을 미치고, 또 넘어가도록 유혹하기 때문이다.
구석구석 사탄의 영향력을 치워야 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날 이끌도록,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복음은 무엇인가? 사탄의 세력은 이제 끝이 났다. 하나님의 사랑이 임했다. 이제 저주에서 풀려났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믿음의 역사가 나타났음을 알리는 것이다.
기다리던 메시야가 왔다. 이제 어둠의 시절은 끝이 났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임했다.
이제 원수는 힘을 잃었다. 주님만 힘있다. 주님만 내가 사는 세상에서 권세있다고 외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 전날의 사역
- 안식일 - 회당에서 말씀전함, 귀신 들린 자 귀신을 쫓고... 베드로의 집 - 장모의 열병을 치료...
그리고 저녁무렵 동네의 모든 귀신 들린 자, 병든 자 치료...
- 그런데 35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왜 지친 몸을 이끌고 기도하시는가?
기도가 주님께는 안식이었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두운 이 세상에 오신 것.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기 위해서 견뎌야 하는것. 만나야 하고, 살아야 하는 것
같은 유대인들까지도 함께 하기 싫어하는 병든자, 가난한 자, 눌린 자, 포로된 자..., 그들을 만나시고 만지시고, 함께 주무시고, 그리고 가르치시고, 제자 삼으시는 일.
사랑하기때문에 하지만 육신적으로는 참을 수 없는 괴로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날 자체가 그 분께는 너무나 큰 고통.
사랑을 위한 고통.
그런 세상 가운데서 오직 숨돌리고, 하늘의 기운을 맛보고, 그래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서 다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기도.
오직 세상의 방해 없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하늘의 영원한 보좌를 체험할 수 있는, 그 유일한 회복의 시간... 오직 기도의 시간.
휴식보다 더 깊은 안식.
잠 보다 더 달콤한 휴식. 주님의 기도시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자신의 할 일을 알고, 할 수 있도록 충전을 받는 시간.
그런데 육적인 사람에게는 가장 힘든 시간. 도대체 적응이 안되는 시간.
더군다나 피곤함을 무릎쓰고 새벽미명에 기도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간.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시간은 이토록 힘겨운 싸움이다.
- (막 1:37)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 사람들이 이토록 좋아하고 난리인데 왜 여기 있습니까?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오천명을 먹이실 때에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온 유대인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양을 할 때에도 오히려 주님은 한적한 곳을 찾아 홀로 기도하셨다.
흥분과 칭찬, 환호 속에서 자기가 할 일을 망각하지 않으셨고, 자기 능력에 도취되어서 교만해지지 않았다.
제자들에게 기도를 강요하지 않았다. (기도는 노동이고 노동은 곧 기도다)
-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 단 한 번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권유한 것을 제외하고는 기도를 강요하지 않으셨다. 그저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 기도는 하셔야 되요!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육적인 사람에서 영적이 사람이 되는 것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다.
그런데 그것은 권면이나 강요로 되어 지는 것이 아니다.
기도 훈련, 기도 훈련하는데 과연 기도를 훈련해서 얼마나 그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기도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의식하지 않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놓아두고 기도하신 것처럼, 의식하지 않고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덧 제자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오는 것 처럼 따라오는 것이다.
(눅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막 9:28-29]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했다고 하는데 나와도 대면해 주십시오. 한나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 나의 기도도 들어 주십시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다.
자기 사명, 자기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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