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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7.10 빌립보서 1:27-30 금요예배 빌립보서 강해
 

[빌 1:27-30]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빌 1: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이전 까지의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넘어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파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는 다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며 그것을 자기의 유익으로 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바로 앞부분에서 자기가 현재 처해 있는 사정과 그리고 현재 느끼고 있는 깊은 심정에 대해 고백하고 나서 갑자기 테마를 바꾸어 빌립보교회를 향해 실제적인 권면의 말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빌립보교인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는데 그 말이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입니다.


"오직"- "Whatever happens" - 무슨일을 당하던지, 다른 말로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에 있어서든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치에 맞게 살아라. 


“생활하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1장 27-30절의 말씀은 우리 한글성경에서는 다섯 개의 문장으로 나뉘어 번역이 되어있지만 원래 헬라어 성경에서는 하나의 긴 문장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긴 문장의 핵심을 이루는 주동사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생활하라”는 동사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씀드리면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명령의 말씀이 오늘 본문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빌립보교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생활하라”는 이 동사는 바울이 평소에 흔히 사용하던 단어가 아니라 오늘 여기서만 특별히 신중하게 선택해서 사용한 단어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무얼까? 

내가 너희와 함께 있던 없던 너희는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1장 5절에 보면 서두에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도 잘하고 바울을 비롯한 전도자들을 잘 섬기는 선교도 잘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본격적인 본론에 들어가서 첫번째 그들에게 말씀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데 그치지 말고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삶을 강조하는 바울의 주장이지요.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하는 말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전도를 할때, 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 분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이 되셨고 우리에게 하늘의 처소를 예비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믿으시면 당신도 구원받으십니다. 천국의 백성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분이 행하신 것을 믿는 믿음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은혜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기에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다시 말해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할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라는 소리 아닙니까? 

그러니까 신앙생활하면 편하고  축복받는다고 해서 예수 믿었는데 신앙생활 할수록 힘들어 지네요. 갈수록 요구하는 것이 많네요. 아무리 해도 하나님이 만족하지 않으시는 것 같네요...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전도할 때에 사람들에게 나가서 "예수 믿으시고 구원 받으세요. 그런데 고난도 받으셔야 합니다." 하고 전도한다면 누가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초신자에게는 말하지 말고 신앙 안에, 교회 안에 깊이 들어온 자들에게만 고난을 주는 것일까요? 그럼 약장수나 다를 바가 없지요. 달콤하게 꼬셔놓고 이젠 이것 저것 다 가져 간다면,,,,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자,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을 위해 주신 통로는 모세에게 주신 계명, 혹은 율법, 그리고 범죄할 때마다 선지자들을 통해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큰 짐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들에게 짐이었습니다. 틈만나면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하면서 죄악을 범합니다. 


구약식대로 지금 전도를 한다면 

"우선 율법표를 작성하고 생활 계획표, 점검표, 체점표"등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이렇게 살면 복받는다. 이렇게 살면 천국간다. 이런식으로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학교에서, 학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이런 생활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 모릅니다. 

자기가 혹은 외부에서부터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맞추어서 살려고 바둥바둥 애를 쓰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우리를 살피시는 분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속마음도 꽤뚫어 보시고, 우리가 숨을 것도 없지요. 그런 분이 나를 항상 지켜보면서 계획표대로 잘 살고 있는지, 체점하고 계신다면 어떨까요? 

이런 삶 속에서 평안을 누리면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얼마못가서 다시 죄를 짓고,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삽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그들이 의지하는 중보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모세와 같은 리더였고, 아론 같은 제사장이었고, 엘리야 같은 선지자 였습니다. 다윗 같은 왕이 었습니다. 

자신들은 늘 실패해도 이들 만큼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보호자처럼 섬겼습니다. 


이들의 역할은 평범한 인간과는 좀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들 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에 늘 정통해야 했고, 잘 지켜야했고, 그리고 이들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진노했다. 회개하자 하면 그 땐 다같이 회개해야 했습니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무서우신 하나님보다 이들 선지자나 제사장을 훨씬 의지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철저히 자기들과는 다른 신령한 자들이었니다. 이들은 옷도 자기 들과는 다르게 입었고 먹는것, 자는 것, 생활하는 것이 보통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달랐습니다. 

 백성들은 의례 그들은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대접하고 봉양했지요. 왜냐하면 그들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막아주고 축복을 빌어주는 일종의 "생명보험"같은 존재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누구도 이들과 함께 살거나, 닮거나, 이들의 사역을 나누거나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자신들과는 분리된 다른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자신들은 여전히 죄를 지어도 이들 선지자나 제사장 만큼은 죄를 짓지 말아야 했고, 왜냐하면 이들이 죄를 지으면 정말로 하나님의 분노로부터 피하고 중보할 존재가 없어지니까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그에게는 구약 시대에 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지켜주던 제사장, 선지자, 왕이라는 삼중직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과는 전혀 다른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신을 구별하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다니셨습니다.

 구약의 병자들과 죄인들은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을 찾아와서 예물을 드리거나 제사를 드려 (아니면 나아만 장군처럼 시키는 일을 해야) 하나님 앞에 죄를 사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찾아다니시거나 자기를 찾아오는 자들을 외면치 않으시고 아무런 요구 없이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본인이 직접 빛으로 오셨지만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하십니다. 

 배가 고파 굶주린 자들을 보며 제자가 묻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고 하십니다. 

 그들의 발을 씻기 시며 "내가 선생되어 너희의 발을 씼겼으니 너희도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을 보이신 다음에 너희들이 나가서 귀신을 쫓고, 병자를 고쳐주고 천국의 복음을 전하라 하십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자기의 재산을 다 가지고 지키기 위해서 모세를 따르고 선지자를 따랐는데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거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결국은 나를 닮아라. 나처럼 살아라. 너희들이 예수로 살아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처럼 살기 위해 보내 주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예수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의 십자가를 함께 지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곧 성도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어서 그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고 더 얻어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 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하려 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교회에 널리 퍼진 복음은 그야말로 귀가 번쩍 띠게 해주는 기가막히게 좋은 소식뿐이어서 예수 믿는 것이 성공의 보증 수표를 받는 것처럼, 혹은 건강에 이상이 없음이라고 확인시켜주는 건강진단서를 받아쥐는 것처럼 형통의 신학과 건강과 치유의 신학이 교회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 속에 여전히 물질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교회 생활에서도 재물이 그 사람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현실은 그 뒤에 이와 같이 예수 믿으면 구원 받고 형통하게 된다는 신학과 기복주의 사상이 자리하고 있는것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신들은 변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신령한 자들을 앞세워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복을 받으려는 능력없는 자들로만 가득 차 있는지 모릅니다. 여전히 자신이 바로 서서 예수를 닮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있고 카리스마 있는 목회자 만나서 기도받고, 안수받고, 축도 받아 축복을 보장받는 그런 무리들, 언제나 주위에 휩쓸리고, 다른 사람들이 황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자 하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대로 따라가는 믿음없는 신앙인이 되고 있지 않나 반성해 봅니다.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30절)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고난이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는 바울의 이야기가 진리라면, 반대로 고난이 없는 신앙생활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삶을 살지 않는 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고난이 없는 안위한 신앙생활도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

제가 오늘 본문의 바울의 의미를 잘 못 해석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고난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고난이 따라옵니다.

너무 고난이 없고 평탄하기만 한 삶은 오히려 내가 복음에 합당하게 살고 있지 않는 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합니다.

롬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상속자에게는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난이 따른다면 고난도 당연히 받을 수 있다.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고난이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증거이다. 고난을 통과하는 자만이 떳떳하게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반드시 물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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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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