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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3.30 부활의 완성 (누가복음 24장 49-53절)
  2. 2012.10.13 조지 폭스의 일기 -5

 

부활의 완성 (누가복음 24장 49-53절) 

 


 

1. 십자가: 죄없는 자가 죄인을 위해 죽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 즉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잡히신 예수- 목요일 날 밤 

 

처음- 유대인들의 공회에서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서 심문 -

 

"네가 그리스도냐?"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유대에 파견된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짐. 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이므로 처형권이 없기 때문. 

 

빌라도가 심문

 

갈릴리 출신이란 소리를 듣고 갈릴리 지방을 치리하던 분봉왕 헤롯에게로 넘겨짐 (그도 당시 예루살렘에 와 있었음) 

 

다시 빌라도에게 넘겨져서 최후로 십자가형 선고 

 


 

하루에 가야바에게서 빌라도에게로, 빌라도에서 분봉왕 헤롯으로, 그에게서 다시 빌라도로...4번씩 법정에 서심. 

 

법정을 통해 밝혀진 것. 그는 무죄하다. (눅 23:4, 14, 15, 22) 

 

그러나 백성들의 소리 "십자가에 못박으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의 법정에서 재판받으시는 장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왜? 그는 열방의 심판자요, 또 장치 이 땅을 심판하러 재림하실 바로 그 심판자가 인간의 법정에서 심판받으시는 장면

 


 

그리고 그 결과 

 

죄가 없음에도 최고형- 십자가...

 

그러면서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는 장면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다 이루었다" 

 


 

이 재판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사역, 죄없는 자가 죄인을 위해 죽는 십자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지 않은가? 

 


 

  •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 너희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면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그 사탄의 유혹의 끝에 사탄의 목적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 

 

죄인의 재판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죽게 된 것. 

 


 

하나님 없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결과---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재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21장- 예수의 무덤 - 동산에 아무도 장사되지 아니한 무덤

 

동산이란 말- 어떤 신학자는 이것을 잃어버린 동산 에덴으로 해석한다. 

 

선악과로 말미암아 생명이 끊겼던 그 곳에 예수께서 들어가셔서 생명의 나무를 충만케 하신 사건. 

 

그 생명의 힘이 충만하게 흘러넘친 것이 바로 부활이다! 

 


 

부활이란 선악과로 말미암아 일어난 모든 죄의 사슬, 죽음의 권세에서 생명의 나무가 다시금 충만하게 승리한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승리로 사탄의 모든 유혹이 실패로서 끝난 사건이다. 

 


 

2. 부활하신 날....제자들은?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 정작 예수를 따른 제자들은 십자가의 공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도망다니는 신세이다. 문을 걸어잠그고 방안에 숨어 있다. 

 

부활하신 주님의 소식을 듣는데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는데도 그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영적으로 주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구속하시고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셨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그 승리를 누리는 자가 없다. 

 


 

주님은 승리했는데 그들은 여전히 실패자로 살아가고 있다. 왜? 주님의 부활이 그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을까? 

 

이 천지가 개벽할 만한 사건이 왜 그들에겐 털끝하나 변화를 주지 못할까? 

 

오히려 제사장들은, 로마 군사들은 혹이나 예수가 살아나신다는 예언이 이루어질까 무덤을 지키면서, 또 사라진 시체를 보며 뇌물을 주고 입막음하려 하고 있는데, 달리 말해 세상은 부활의 사건을 가지고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데 정작 믿는 자들은 부활의 소식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3. 유월절과 부활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유월절을 사이에 두고 발생합니다. 

 

유월절이 무엇입니까? 

 

출애굽의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열 번째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가게 된 날입니다. 

 

사망의 권세가 이스라엘의 집을 넘어갔다해서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애굽을 이긴 날입니다. 

 

세상과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홍해를 건넌 날입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넌 기쁨도 잠시 그들은 또다시 불평하고 원망하고, 연약한 그들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행복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굽에 있을 때가 더 좋았다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지만 그들 자신은 무엇하나 할 수 없는 연약함 투성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부활절을 맞이한 제자들같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그들은 숨어있습니다. 고통스러워 합니다. 

 

사람들이 주님 부활하셨다고 하는데 못믿겠다고 합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고 불평합니다. 

 

주님이 직접 와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는데도 잠시 기뻐할 뿐 이제 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합니다. 

 

사탄은 패배했는데 그들 역시 패배한 자들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주님이 행하신 일도 수도 없이 듣고 믿고 예배를 드리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못하고 능력은 없고, 삶에 지쳐 허덕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구원받은 사람인가? 구원의 능력이 있는가? 구원은 먼 미래의 일인가 고민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부활절을 맞아도 기쁘지 않습니다. 전혀 내 삶과는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4. 칠칠절, 오순절 

 

칠칠절은 무엇입니까? 

 

드디어 40년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들어가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둘 시기가 되어 보리와 밀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자기들을 구원하여 안식을 누리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로서 그들은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였습니다. 이제 진짜 노예가 아닌 주인의 삶, 열매 맺는 삶.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을 통해서 승리하신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시지 않고 40일간이나 머물면서 제자들을 만나십니다. 

 

마치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40년을 함께 하며 매일같이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던 하나님의 동행처럼 주님도 40일 동안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말씀을 주시고 사랑을 주십니다.  

 

허무함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나는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약속하십니다. 

 


 

40일이 지나 하늘나라로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눅 24:49)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5)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주님이 부활하시건 멀건 여전히 힘없이, 능력없이 살고 있었던 제자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씁니다. 

 


 

구약의 오순절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비로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하게 하신 사건이라면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교회가 세워지게 하시고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이 비로서 제자들에게까지 임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은 비로서 육체적, 영적 연약함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니며 두려움없이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구약의 오순절이 열매 맺을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비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열매맺을 수 있게 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라면 신약의 오순절은 신앙의 열매,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없었던 영적 불구자였던 제자들이 비로서 성령으로 거듭나서 자신들의 육체의 소욕과 연약함을 이기고 예수의 능력으로 무장되는 날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오순절을 통해서 나의 십자가와 부활이 되고, 그의 승리가 나의 승리로서 체험되는 날이 바로 오순절날인 것입니다. 

 


 

5. 부활절의 완성은 기도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이 내 삶의 부활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부활절을 내 삶의 부활절로 이루기 위해서는 전혀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위로 부터 하늘의 능력이 입힐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6.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누가복음은 복음서 중에서 가장 기도를 많이 강조하고 소개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누가는 잘 알다시피 의사입니다. 그는 과학적인 눈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의사의 눈에 비친 복음의 신비는 바로 기도였습니다. 

 

누가 복음에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묻고, 예수께서 함께 있지 아니한 자리에서 귀신을 내어 쫓지 못해서 망신당한 이유가 기도가 부족하여서,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적에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해서 기도에 실패한 모습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누가 복음에 나와 있는 제자들은 철저히 기도에 실패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위로 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늘 실패했던 제자들이 이 말씀에 순종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하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러한 복음은 사도행전의 마가다락방 사건...예수의 열두 제자들과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와 아우들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기도로 충만한 그들에겐 이제 복음서에서의 예수만 곁에 없으면 정말로 무능했던 나약함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감옥에 갇히고, 매맞고 핍박이 일어나도 기도하는 그들 앞에서 전혀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이 그들을 위해 탄식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담대케 하시고, 언제나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신비가 아닙니다. 초월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능력입니다. 

 

성령을 거역하면 우리는 실패자가 됩니다. 

 

주님이 부활해도 우리는 여전히 무능한 패배자의 삶을 삽니다. 

 

그러나 기도해서 성령충만하면 비로서 그 부활이 내 능력이 됩니다. 

 

내 삶이 됩니다. 

 

아파도 됩니다. 

 

세상에서 실패해도 됩니다. 

 

그래도 기도하면 승리합니다.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런데 기도에 실패하면 죽습니다. 기도는 부활의 완성입니다. 

 

부활의 완성은 바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서 읽기는 하였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나, 이제 계시를 통해 열쇠를 가지신 분이 그 문을 여셨으며 생명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로 나를 인도하셨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1647년의 글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영적인 유익을 얻지 못한 폭스는 어느 자신의 문을 여는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이 체험이 있은 후에 그는 성령을 통해 성경이 크게 열리는 체험을 주시고, 사물의 이치에 '문이 열렸다' 고백한다. 또한 체험들을 통해 그는 자신이 '빛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을 보게 되었고, 어둠과 죽음과 유혹과 불의와 불경건 등이 빛 가운데 분명히 드러남'을 보았다. 비로소 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위대함을 깨닫고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바로 성경에서 말한 '성령,' 폭스의 표현을 빌자면 '자신 안의 내면의 ' '경험' 것이다. 

 

성도님들과 함께 출애굽 당시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혹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가까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훈련을 받았는지를 읽으면서 부러워 하는 모습들을 발견하곤 한다. 우리도 모세처럼, 제자들처럼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한다면 훨씬 실수하지 않고 믿음을 가질 있을 같다는 하소연이다. 마치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지고 변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모르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분명한 뜻을 알기 위해 목사를 찾고 영성가를 찾고 신비가를 찾는다. 자신의 내면 안에 여전히 계신 ' ', ' ' 망각하곤 말이다.

목회를 하면서 계속 드는 절망은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 구약 시대 사람들처럼, 제자들처럼 여전히 실패하고 자기 멋대로 살고 변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우연찮게 나에게 숙제처럼 주어진 조지 폭스의 저널은 점점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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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