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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송구영신예배

2022-23 송구 영신 예배

by 소리벼리 2023. 1. 8.

송구 예배 요한복음 21장 1-11절

 

짲어진 그물, 찢어지지 않는 그물 

올 한 해를 지나면서 몇번을 묵상하며 같이 나누었던 본문, 며칠전의 아침묵상을 통해서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음에도 육신적으로 함께 동행하지 못하는 제자들이 갈팡질팡하며 부활의 기쁨, 구원의 기쁨에도 참여하지 못하며, 모여 있던 제자들이 하나 둘씩 흩어지며 다시 옛날 어부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모습.

그들에겐 어떤 제자의 모습도,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터벅 터벅 밤새 수고하였지만 밤새 물고기 하나도 낚지 못한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 다시 처음 그들을 불렀던 그 때의 장면으로

첫 사랑을 회복하라. (당시 에베소 교회를 담당하고 있던 요한을 통해 에베소 교회에게 주신 말씀) - 아마도 이 때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았을까? 

 

밤 새 고기를 잡았지만 잡지 못하였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했더니 너무 많아 들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는 것 - 누가복음 5장의 베드로를 불렀을 때의 모습과 동일하다. 

 

틀린 것 - 누가복음 5장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 무리가 아닌 제자의 신앙, 깊은 물을 체험하는 신앙 (물: 고난을 통해 세례받는 것, 연단을 통해 정금같이 단련되는 것) 

             예수와 함께  고난에 동참했고, 나름 신앙의 깊은 체험도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지금 예수 앞에 있는 예전 모습 그대로다. 

             다시 고기 낚는 어부가 되었다. 마음은 상하고 밤새 몸도 상했다. 그야말로 찢어진 그물모양이다. 깊은 체험이 있어도, 주님을 따르는 열심이 있어도 찢어진 그물 같은 모습이 될 때가 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의 자리를 버리고 히브리 인을 위해 살고자 했는데 도망자 신세가 되어 미디안으로 도망하는 모세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를 죽이고 승리했지만 이세벨 여왕의 한 마디에 로뎀나무에 기대 죽기만을 청하는 엘리야 - 다 찢어진 그물같은 인생이다. 

             

때로 우리도 찢어진 그물이 된다. 주의 일에 열심내다가 상처입고 오해를 받고, 넘어지고, 침체를 경험하고 슬럼프를 경험한다. 

 

그런데 미디안에서 40년간 찢어진 그물로 살던 모세를 불러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여주며 다시 그를 부르시는 것처럼

로뎀나무가에서 죽기만을 청하던 엘리야를 어루만지고 음식을 먹이며 호렙산까지 인도하시는 것처럼 

베드로를, 요한을 다시 만난 예수님은 

 

이제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라 하신다.

배 오른편이란 말은 이제 진짜 바른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다. 내가 주도하고, 내가 결단하는 신앙이 아닌 그 분이 이끌어가시는 삶,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신앙으로 다시 부르신다. 

실패한 우리를, 넘어진 우리를 불러 다시 시작하게 하시며 이젠 찢어지지 않는 그물로 살게 하신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데에 철저히 동역자로, 청지기로 살게 하신다. 

여러 아픔도 갈등도 있었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성도들의 삶이, 영혼이,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며 바라보는 나 자신의 영혼도 찢어지지 않는 그물 되기를 소망했고 기도했고, 그리고 바라보게 하셨다. 더 단단한 그물이 되게 하셨다. 이 표어의 말씀은 한 해를 지났지만 우리 자신이 찢어진 그물처럼 여겨질 때마다 두고 두고 곱씹어야 할 말씀이다. 

 

내가 일하는가? 그 분이 일하시는가? 내가 주도하는가? 그 분이 주도하시는가?       그 분이 일하시는 곳엔 내 영혼도 육신도 강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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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42-47절 전혀 새로운 교회 공동체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새워 찢어지지 않는 그물되게 하신 그 제자들은 사도행전 2장에 가서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이른바 예수를 주로 모신 자들이 모여 예수가 머리되신 성령의 공동체 - 기독교의 교회 시대를 연 것이다. 

이 전의 성전 - 법궤 (언약궤) 가 상징하는 하나님의 임재 

                   - 그 언약궤를 중심으로 구별된 제사장, 레위인들만이 만지고 제사하며 예루살렘 성전으로 꽃 피웠던 제도와 건물과 권위 중심의 공동체 

                   

그런데 어부였던 제자들이 사도가 되고, 성전에 들어오지도 못했던 여성들이 리더가 된다.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에 예수의 피로 인해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 임재 앞에 설 수가 있다. 예수 외에 다른 중보자가 없다. 

그리고 성령이 이제 믿는 자의 마음 속에 거하신다. 

 

42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그들은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자들, 신분이나 학벌이나 지도층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와 함께 했던 제자였고, 성령을 받은 자들이었다. 

역시 예수를 주로 영접하여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그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른다. 

사람이, 제도가 따르라고 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다. 성령 안에서 질서가 생기는 것이다. 

이전의 제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성령의 질서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따라 교제한다. 그냥 교제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들의 가르침,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교제하는 것이다.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누는 교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교제이다. 

떡을 떼는 것 - 단지 식사가 아니다. 그들은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 만나의 역사를 통해, 최후의 만찬을 통해 떡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떡을 나누는 것은 단지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떡을 떼며 그리스도의 몸이, 지체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나눈 한 형제가 되는 것이요,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이다. 

공동체 없는 교회가 과연 교회인가? 교제가 없는 신앙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신앙인가? 
그리고 그러한 산 교제가 되기 위해, 영적인 공동체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 기도에 힘쓰는 것이다. 

 

그들은 왜 모여서 예배하고 흩어져서 또 교제했는가? 그들은 바쁘지 않았는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승천한 줄로만 알았던 예수가 그들의 모임에,  그들이 모일 때마다 함꼐 함을 경험한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났음에도 당장 그들 눈 앞에 없으니까 무기력했던 그들이 

기도하며 성령이 임하니 모일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예수가 함께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자기만 알던 그 사람들이 서로를 위하고 예수님처럼 서로를 향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눌 수 있는 존재들,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간 것이다. 

 

우리는 모여서 예배하고 흩어져서 교제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그냥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만나서 말씀을 나누고, 만나서 기도하며, 예수가 함께 하는 것을 경험하고 증언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예수는 장사하는 교회를 허물으시고 "내 아버지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신다. 

모여서 함께 기도할 때에 예수를 경험한다. 그 현장에 예수가 함께 한다. 그런 한 해가 될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의 몸이 되고 예수님을 나타내는 몸이 되고 예수님의 일을 하는 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