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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

개인 글 모음 /2012~ 2012. 11. 26. 22:53

내 안에 누룩을 제하고 다시 보좌 앞에 섭니다.

내가 아픔을 느끼는 것은 내가 아직 꺠끗함을 얻지 못함이요

내 마음이 요동함은 내 믿음이 아직 연약하기 떄문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내가 거주하기 원하며 오직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살기 원합니다.

 

내 영혼이 이제 당신을 향하며

내 입술이 당신의 이름만을 부르며

내 손이 합하여 주께 간구하나이다.

 

고개를 쳐 들어 다시 세상이 들어오면

다시 눈 감아 당신이 세상 위에 있도록

나의 삶을 기도되게 하여 주소서.

 

내 안의 때를 보여 주신 주님

사랑합니다.

 

내 안에 누룩을 제하고

이제 다시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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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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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깨끗한 그릇

본문: 디모데후서 2 20-26

[딤후 2:20-26]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큰 집에 주인이 여러 그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비싼 금 그릇도 있고, 아주 이쁘게 생긴 은 그릇도 있고, 다듬질을 잘한 나무그릇도 있고, 그리고 반듯하게 생긴 흙으로 만든 질그릇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좋은 손님이 왔을 때에만 내어 놓는 좋은 고상한 목적을 위한 그릇도 있고, 어떤 것은 그저 종들이 마음대로 먹도록 바깥에다가 내어 놓는 하찮게 취급하는 그릇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당연히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금그릇이나 은그릇은 존귀한, 아주 고상한 목적을 위해,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에나, 아주 특별한 날에만 쓸 테이고, 나무그릇이나 흙으로 만든 질그릇은 하찮은 목적을 위해서, 아무 때나 쓰는 그릇이 되겠구나…. 대다수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1)

è  If a man cleanses himself from the latter, he will be instrument for noble purposes, made holy, useful to the Master and prepared to do any good work.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금 그릇, 은 그릇은 귀한 용도로 고상하게 쓰여지고,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은 하찮은 용도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금 그릇이나 은 그릇, 나무그릇이나 질그릇, 그 재료에 상관없이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 내가 내 재료가, 내 달란트가, 내 능력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능력 있고, 부유하고, 똑똑한 자를 쓰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자를 쓰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습니까? 참으로 아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진리의 말씀이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할 때에도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외모로 사람을 택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느니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실 때에도 독사의 자식들아 하시면서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11:39)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교회에서까지 바라고 행해왔던 교육은 언제나 큰 그릇이 되게 하는 교육” “금 그릇이 되게 하기 위한 교육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만큼 1등을 좋아하고 최고를 좋아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올림픽 나가서도 금메달 아니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최고가 되기 위해선 친구와도 경쟁해야 하고 늘 남을 넘어서도록 교육받아 왔습니다. 자신을 깨끗이 하고, 남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교육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조차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최고가 되는 것이 곧 쓰임 받는 것이며, 사회에 유익한 것이고, 결국은 남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이라고, 일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에 올라서라는 그런 가치관, 그런 인생관이 어느덧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됩니다. 일단 성공을 하면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과정이 어땠든 성공만 하면 그 결과만 남는다는 그런 생각들 속에서 우리 세대는 교육받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삼성과 LG같은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을 일구어냈고, 세계 20대 대형 교회 중 절반 이상을 가진 성공한 기독교 나라가 되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한국 기독교의 특징을 말할 때 기업의 특징과 많이 닮아있다고 말을 합니다. 물질 만능주의, 결과 중심주의, 성과주의, 시스템주의, 관료주의.

물론 기독교는 복의 종교입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부자가 되며, 세상적으로 성공한 것을 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시편에도 보면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1:1-2)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8복을 이야기하실 때에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 ( 5:1-10)이 복 있는 자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시편의 복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러한 복을 하나님 말씀하신 복이라고 뚜렷이 증거하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예수 믿었더니 병이 나았더라, 가난에서 해방되었더라. 큰 차를 몰게 되었더라. 그건 그냥 부스러기처럼 따라오는 부록이지 중심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축복이라고 하면 복음을 질 나쁘게 하는 것입니다. 축복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죄로 물든 나의 심령, 사탄 마귀가 지배하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씻고 하늘나라의 심령을 가지고 사는 것, 그것이 축복입니다.

제가 큰 교회 보다는 바른 교회, 성도가 없어도 깨끗한 교회,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12명의 제자를 세우는 목회를 하겠다고 하니까 저보고 열정도 없고, 비전도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목사라고 말을 합니다. 야심이 없다고 말들을 합니다. 저의 됨됨이를 평가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다는 것이고, 좀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순진하다는 표현입니다. 그 속에는 좀 어리석고 모자란 것 같다는 인상도 좀 받습니다.

전 양 부모님 모두 3대째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3형제가 다 목회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유학오기 전 전도사로 6년을 섬기고, 선교잡지의 기자로, 편집주간으로 2년동안 한국의 유수한 교회를 방문하여 목사님들을 취재하고 그 중 몇 분의 존경 받는 목사님들로부터 한국교회는 지금 절대 절명의 위기가 올 것이다. 아니 지금 이미 그 위기 속에 살고 있다. 바른 영성, 바른 복음, 바른 신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씀을 듣고 고민하며 영성을 공부하기 위해 이 곳에 왔습니다.

저희 학교는 개신교 다섯 교단, 가톨릭 네 교단이 각각 합쳐져서 만든 연합체 학교 입니다. 목사에서부터 감독, 사제, 신부, 수녀들이 함께 모여 수업을 하고 지금 시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필요하고 절박한 것이 무엇인지를 교단과 교파, 종파를 초월해서 고민들을 하고 격하게 논쟁합니다. 아주 보수적인 학교에서는 가톨릭과 함께 수업을 한다고 해서 자유주의니 위험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부건 수녀건 목사건 우리가 함께 고민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무엇이 옳은가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성경 안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교파를 초월하고 국가를 초월해서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우선 순위를 예수를 닮는 것이고 그의 삶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복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잘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고 간증할지는 몰라도 내가 예수 믿어서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그 분을 닮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분을 닮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저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쓰임 받는 그릇이 되고 싶고 그렇기 위해서 내가 힘써야 하는 것은 내가 금그릇, 은그릇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함을 말씀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면 목동으로도 쓰임 받을 수 있고, 왕으로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깨끗하지 못하면 설사 내가 금그릇이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존귀함만 자랑하다가 끝이 나게 됩니다.

평생 목회해서 좋은 교회를 세우고 존경 받다가 마지막에 교회 세습한다고 해서 본인의 사역도 다 금이 가게 하고 교회도 술렁이게 만들고, 한국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자기 의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쓰임 받는 도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금그릇이라는 것을 애써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금그릇이던 질그릇이던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지 내가 재료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원숭이가 인간이 될 수 없듯이 우리가 우리 재료 자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은 깨끗한 그릇이 되라는 것입니다.

전 순진하지 않습니다. 목회하는 것에 있어서는 어리지만 나기 전부터 고민하며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품을 수 있는 가장 큰 지혜, 가장 큰 야망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정하시는 그릇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 그릇은 금그릇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입니다.

두 번째의 반전은 20절의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의 이런 것에 대한 해석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è  If a man cleanses himself from the latter, he will be instrument for noble purposes, made holy, useful to the Master and prepared to do any good work.” 

영어로 표현하면 “from the latter” 가 의미하는 것이 16절에서부터 19절에 나타나는 망령되고 헛된 것을 말하고, 경건하지 아니한 것에서부터 떠나라는 것인지, 아니면 바로 전 절에서 나타나는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을 말하는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대부분의 해석은 내용상으로 16절의 말씀을 받는다는 것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문법상으로 보면 이런 것, 영어로 from the latter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시체를 받습니다. 그러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하면 네게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에서부터 자신을 깨끗이 하면 거룩하게 되고,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쓰임 받을 것이고, 어떤 선한 일에 대해서도 준비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성막에서도 다루었지만 우리 인간은 조각목 같은 존재입니다. 가시 많고 상처많고 쓸모없는 나무가 조각목입니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에 침을 발라 안수하실 때에 소경의 첫 마디는 나무 같은 사람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흙으로 빚어서 만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우리가 모두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은 깨지기 쉬운 연약한 그릇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조각목을 성막의 도구로 쓰실 때에는 나무를 깎아 거기에 금을 입히고 금 테를 둘러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입히워 사용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케 하여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 인간의 그릇은 나무그릇이고 질 그릇이지만 우리가 자신을 깨끗이 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은그릇, 금그릇으로 만들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초라한 나무그릇, 질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하며 자신을 깨끗이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금으로, 은으로 덧입게 하셔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사울은 금그릇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자 그의 좋은 체격, 인물, 자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버림받아 저주받은 왕이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우리를 바꾸실 수 있고, 그 분의 말씀만이 나를 온전케 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평생 열정과 비전과 내 모든 꿈을 담고 추구하는 목회와 삶은 깨끗한 그릇이 되는 나, 깨끗한 그릇이 되는 가정, 그리고 깨끗한 그릇이 되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망치는 것은 정욕입니다. 사탄의 공격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게 하는 데서 옵니다. 모든 죄의 근간이 정욕에 있습니다.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을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2)

의는 관계가 바른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바른 것이 곧 의로운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정욕을 피하고 자신을 고귀하게 간직할 수 있습니다. 주위의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때에, 또는 자기가 관계 맺는 사람들의 자질이 좋을 때에 또한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을 때에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비록 힘들더라도 믿음 있는 자들만이 물질적인 성공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두려움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새 계명이 서로사랑하라. 사랑 가운데 화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곧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이라는 말씀입니다.

2013년 제게 주신 목회의 꿈은 30명 교회에서 가장 깨끗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를 닦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장 100, 200명 교회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인원에서, 우리가 가진 위치에서 가장 깨끗한 교회,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20, 30명 교회 중에서 주인으로부터 깨끗한 그릇으로 인정된다면 우리의 모습이 연약해도 존귀한 목적, 고상한 목적을 위해서 우리교회는 쓰임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룩하심이 교회에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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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며칠 후면 2012년도도 마지막 달을 맞이합니다. 마지막 달을 맞이하는 마음은 감사하기도 하고 또 다음해를 기대하게도 합니다. 새벽마다 기도하며 2013년도 목회에 대한 비전을 그리다 보면 가슴이 뛰기도 하고, 또한 그 바라는 실상들이 하나님의 성취가 되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나 자신의 마음도 다지게 됩니다.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한 결심은 연약해진 내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역사는 연약한 우리들의 헌신과 순종을 통해서 결실 맺어지기에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역이 우리의 게으름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멈추어지지 않도록 무장하고 단련하고 담대하게 걸어나가도록 기도합니다.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겸손히 순종함을 통해서 또한 내가 강해지는 훈련입니다. 오직 신앙 안에서만 겸손과 강함이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약한 자를 통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주님은 연약한 나를 강하게 하시는 분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로고스 교회 성도 여러분! 12월 한 달은 우리 로고스 교회 온 성도의 마음 속에 꿈을 꾸며, 그 꿈을 함께 나누며, 함께 2013년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꿈을 증거하는 한 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겸손한 순종 가운에 강함을 유지하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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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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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교회 (계시록 2:9-10) [ 2:9- 2:10]

 'I know your tribulation and your poverty (but you are rich), and the blasphemy by those who say they are Jews and are not, but are a synagogue of Satan. 'Do not fear what you are about to suffer. Behold, the devil is about to cast some of you into prison, that you may be tested, and you will have tribulation ten days. Be faithful until death, and I will give you the crown of life.

에베소 교회의 표지- 사랑, 첫사랑을 회복하라.

서머나 교회의 표제- 고난

사랑과 고난은 같이 간다. 진실한 사랑은 고통과 함께 온다.

C.S. 루이스 고통의 문제의 저작 배경, 영화 <Shadow Land>

옥스포드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평생 독신으로 책을 쓰며 살았던 루이스. 반지의 제왕을 지은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쓰자 루이스가 쓴 글이 나니아 연대기.” 두 교수 모두 기독교의 진리를 어떻게 쉽게, 여러 사람이 읽게 할 수 있을까?

그는 고통에 관한 글을 많이 썼고 고통에 관한 수업도 유명했다.

그 수업가운데 유명한 구절을 몇 가지 들면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조각가가 인간형상으로 깎아 내리는 돌덩어리 입니다. 끌로 때리면 너무 아프지만 고통을 우리를 완벽하게 합니다.” “고통은 귀머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이제는 아이방에서 나와 타인과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고통입니다.”

한 여인을 만나기까지 고통은 그의 가장 중요한 강의의 주제였다. 그러나 삶은 아니었다.

그가 노후에 편지교류를 통해 교류한 조이 그래샴이라는 미국의 여류시인과 서신왕래를 하게 됨. 나중에그녀가 이혼을 하고 영국에 와서 그녀의 영주권을 위해서 서류상의 형식적인 계약결혼을 하게 됨.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골수암에 걸림.

그녀가 죽어가고 있고 얼마 후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루이스는 이전의 모든 고통에 대한 정의를 새로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누구를 사랑하면 그 고통을대신해주고 싶다. 하나님도 더 하실 것이다.

그녀의 병이 진전되었을 때에 둘이 여행을 가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다가 대화하는 내용.

조이: 딴 곳에 가긴 싫어. 그냥 지금 여기서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일이 생기는 것도 싫고, 모퉁이 지나면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날 것도 싫어요.” “그 때 겪게 될 고통은 지금 누리는 행복의 일부분이야.”

그녀가 죽고 나서 그녀를 회상하면서 그는 고백한다.

난 인생에서 두 번의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한 번은 소년으로서, 한 번은 남자로서. 처음엔 안전한 길을 선택했고, 나중엔 고통스러운 길을 선택했다.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은 그 때 누렸던 행복의 일부분이다.”

사랑과 고통처럼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는 당대의 도시 중에서 제일을 다투는 유명한 라이벌 도시였다. 천해의 항구로 아시아의 자존심이라 불렀으며 소아시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중 하나였다. 그러나 기독교 인들에게 그 곳은 고통의 도시였다. 그래서 이 교회에 주는 편지의 내용은 고난이다.

과거에 당했고, 현재 당하고 있는 환난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장차 다가올 더 심한 시련에 대한 경고. 그리고 끝까지 견디라는 격려가 이 편지의 전부이다. 서머나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그들은 어떤 일을 당할 지 아무도 모르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 살았다.

에베소에 아데미 신전이 있었다면 서머나에는 로마를 인격화한 신인 여신 데아 로마가 있었고, 이 때문에 서머나는 로마 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도시로 명성을 얻었다. 제국과 황제, 즉 로마와 케사르에 대한 숭배와 충성은 이 도시의 가장 강력한 특징이었고, 특권을 주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만이 우상 숭배의 이유로 케사르를 주로 부르지 않았고 신전에서 예배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애국심이 없는 민족의 반역자였다.

가장 그들은 박해하도록 모략했던 자들은 다름 아닌 유대인들. -> 자신들은 공식적으로 제사의 의무를 면제 받았는데, 그들 자신에 대한 눈총을 그리스도인들을 중상모략하여 당국과 대중의 비위를 맞추었다. 사도행전-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을 끝까지 추적하여 죽이려고 하는 자들은 다름아닌 유대인들. 사도행전의 끝은 그러한 유대인들을 눈멀고 귀먹었다고 한탄하며 끝을 맺는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이 받았던 고난

1.     궁핍

-       내가 네 궁핍을 안다. (9): 가장 번창한 도시에서 가장 소외되고 핍박받았던 자들이 그리스도인들. 유대인들과 이교도들이 상종하지 않으려 했던 자들. 빈곤- 초대교회, 중세시대 까지도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따르고자 했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방법.

2.     비방 내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9)

-       유대인들: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악한 소문을 퍼뜨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핍박을 당하게 함. 그리스도인이 모인 회당을 사탄의 회당이라고 했다.

è  궁핍과 비방: 그들이 이미 견디고 있던 환란.

è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2:10)

1.     감옥: “마귀가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10)

-       바울 이래로 초기 교회 사도와 성도들은 수 많은 감옥에 갇혀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 로마의 감옥들은 찬송과 기도로 거룩하여졌고 그리스도의 임재로 밝아졌다.

2.     죽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10) 나를 위해 죽을 각오로 충성하라. -> 폴리캅이라는 초기 교회 가장 유명한 주교가 이 곳에서 순교. 사도 요한이 직접 임명한 서머나의 주교.

-       자기를 추적해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음식과 물을 대접한 뒤, 잠시 물러나 기도할 시간을 청하고 두 시간 가량 기도했다. 총독에게 끌려가서 케사르에게 제사를 드리고 맹세하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그리스도를 욕하라!”고 강요했지만 거부

-       내가 지난 86년간 그 분을 섬겼거늘 그분은 내게 잘못하신 일이 하나도 없소. 그런데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단 말이요.”란 말을 마치고 화형에 처함.

-       화형장에서의 마지막 기도: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여, 전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저를 그리스도의 잔에 동참하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셔서 순교자들의 대열에 두시니 감사합니다.”

l  그리스도인과 박해

-       산상수훈의 마지막 복: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가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5:11-12)

-       사도 바울: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29) -> 사랑과 고난이 단짝이듯 믿음과 고난도 단짝이다.

-       본훼퍼: 고난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달 수 있는 배지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을 수는 없는 법이다.

예수님의 위로와 격려

l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죽도록 충성하라.

-       충성하라 ( Be Sincere, Be faithful!!) 그리스어로 충성하라는 말은 믿음을 굳게 하라는 말이다. 믿음이 충만하게 하라!.

-       두려움과 믿음은 정반대. 공존할 수 없다.

( 56: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 5:36)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충성은 곧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가?

그 분은 처음이며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그 분은 그 분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환난 중에도 우리를 지키시며 마지막 날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실 분이다. 두려움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그 분을 믿는 믿음만이 우리에게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죽기까지 충성하라는 말은 무엇인가?

죽음을 맞이하도록 우리가 믿음을 지킬 때에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임하기 때문이다.

폴 틸리히 벼랑 끝 신앙.

사람들은 벼랑 끝에 몰리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신앙인도 떨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절규한다. 그런데 그 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떨어져 보라는 것이다. 차라리 자신이 붙잡고 있는 선에서 떨어져 내리면 하나님이 받아 주신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선 그어놓고 내가 믿고 싶은 만큼만 믿겠다며 두 눈 감으면 그 것은 벼랑 끝에 선 신앙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벼랑 끝으로 내 몰았지만 실상 벼랑끝으로 내 몰린 것은 자신들이지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것은 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서라도 나를 의지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 믿음을 드렸을 때에 비로서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이 여호와 이레 주께서 예비하신다는 말씀이다.

막다른 홍해에 발을 디딜 때에 비로서 홍해가 갈라진다. 그 말씀은 어린 양이고 어린 양은 곧 예수 그리스도. 내가 막다른 골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지할 때, 하나님의 예비하심. 그리스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l  내가 네 환란을 안다. (2:9)

-       힘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을 이해하는 분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마음을 털어놓을 분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님은 교회의 고난과 교회된 성도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아신다. 그 분은 한 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우리의 고난이 아무리 깊고 커도 그 분은 다 아시고 또한 돌보아 주신다.

l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이다. (9)

-       그 분의 가치관은 보이는 물질적 세계가 아닌 우리의 영적인 세계를 보신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시고 모든 일에 풍족하다고 하신다.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다고 하신다.

-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9) 라고 하신다.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을 가리켜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 6:10)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허용하시지 않는 한 어떤 고난도 우리를 삼킬 수 없다. 그 분은 우리가 현재 당하는 고난과 미래에 당할 환난도 아신다. 그러나 고난은 제한된 고난이고 지나갈 고난이고 약속이 보장된 고난이다.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10)

사탄이 어떤 고난을 가져와도 예수님은 더 넓은 날개 가운데서 우리를 보호하신다. 고난의 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시고자 하는 것은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보시는 순간, 모든 고난을 몰고오는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시고 우리에게 예비된 축복을 주신다.

 

마귀는 신자들을 밀까부듯 무너뜨리려고 고난을 가지고 우리에게 덤빈다. 때로 하나님도 그런 사탄을 용납하시고 허용하실 때가 있다. 기도에 깨어있지 않을 때, 성도에게 이런 고난이 온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하나님이 사탄의 공격을 허용하시는 의도는 우리 인간의 이해로 어려운 것이지만 그 중 한가지 말씀에 분명히 나와 있는 이유는 우리를 연단케 하시기 위해서다. 시험은 정금같이 단련된 믿음을 우리에게 준다.

 

l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이기는 자에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10-11)

-       그 분께서 주시는 구원은 영원한 것이고 영원히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고, 다시는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것이다.

-       에베소교회에게 주신 약속: 생명나무-잃어버렸던 생명의 나무를 공급.

-       서머나 교회: 생명의 관- 경주의 결승점. 승자에게 주시는 화관.

l  진실하면 고난을 받는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자. 믿음이 충만한 것이 곧 충성이다. Faithful. 죽기까지 믿음을 지키면 그가 우리를 보호하시고 벼랑 끝에서 예비한 복을 주신다. 그리고 이긴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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