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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장 16-20절: 예수를 따르다. 


교회력으로 보면 오늘부터 4주동안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혹은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4주 동안 예수를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 마음 가짐에 대해서 나누어 볼까 합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입니다. 이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냥 우리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가 우리를 불렀기 때문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렀다. 이것을 어떤 성경에서는 잔치에 초대한 것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포도원에 모집된 일꾼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떤 비유에서는 주인이 맡긴 청지기로서 표현하기도 합니다. 모든 말씀의 공통적인 전제는 그분이 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날 부르셨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을 우리는 소명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신자의 삶은 이 소명의식으로 시작됩니다. 

소명의식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가 부르셨다는 의식입니다. 

목사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 혹은 성도(Saint)라고 불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선택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소명의식이 없으면 신앙생활의 매사가 불평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구태여 예배 드리는지, 왜 예배만 드리면 되지, 구태여 성경공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직분도 맡으며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하는지, 

그런데 소명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신앙 생활의 모든 것에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부르셨고 그가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새들백 교회의 릭워렌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분명한 소명이 있는 사람"의 다섯가지 삶의 유익을 소개합니다. 

1. 삶의 의미를 부여해준다 : 분주하면서도 돌아보면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

2. 삶의 동기가 유발된다.: 

3.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해준다. 남이 하면 나도 하고 싶고 보면 보는대로 원하는 대로 다 하고 싶지만 능력은 안되고.... 목적이 있으면 목적에 맞는 것을 행한다. : 

4. 초점을 맞춘 삶을 살게 해준다. 

5. 영생을 준비할수 있다.: 세상은 열심히 일해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 돈만 벌면 성공할 줄 알았는데 성공하기도 어렵고 성공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돈은 있지만 가정은 깨지고 부족함은 없는데 건강이 상하고....


오늘 본문에 보니까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두 형제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삶과 후의 삶이 구분이 됩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 그들은 물고기 낚는 어부였습니다. 

물고기 잡는 어부의 삶은 마치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 햇빛이 내리쬐는 한 낮에 물을 기르기 위해 우물가를 찾은 그 여인의 고단한 삶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들의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날마다 쉼없이 고단하게 일해야 하는 일꾼의 삶입니다. 자기를 위하고 가정을 위하는 것 같지만 결국 자기 몸을 축내는 인생여정입니다. 날마다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하루 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변화에 대한 희망이 없습니다. 그저 하루 하루 먹고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살기 위해 억지로 일하는 것입니다. 하고만 싶다면 쉬고 싶고 남들처럼 즐기고 싶은데 살기 위해 오늘도 하기 싫은 삶의 현장으로 습관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이 누가복음 5장에 자세히 기술되고 있습니다. (눅 5:1-11) 

1절: 무리는 해변가에서 말씀을 듣는데 어부들은 대신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갑자기 그 어부들의 배에 오르셔서 가르치시기 시작하십니다. 

배에 오르셨다는 것은 그의  삶 가운데로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해변가에서 예수의 말씀을 들을 때에도 베드로는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직분은 고기 잡는 어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의 우선순위는 항상 고기 잡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야만 아내와 장모를 돌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부가 그의 책임이었고, 삶의 목적이자 곧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이 오셔서 자기 배에 오르셨습니다.  

자기 인생에 들어오셔서 듣지도, 들리지도 않는 말씀을 계속 들려 주십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쩌면 베드로는 저건 나와 상관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 

먹고 살기 괜찮은 사람들만 듣는 말씀이라 여겼는지 모릅니다. 


광야에서,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질문은 언제나 "너의 삶을 주관하시고 너의 하루 하루를 책임지시는 주권자가 누구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키신 전쟁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은 되었지만 정작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바알과 아세라를 더 의지했습니다. 

하나님보다 매일의 삶을 위해 그들의 신을 삼는 것. 그것이 다름아닌 우상숭배였습니다.  


베드로는 광야에서의, 가나안에서의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천국의 귀한 말씀을 들려주어도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말씀은 먼 얘기이고 뚱딴지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직접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하늘의 말씀을 들려주신 후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리고 순종하자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다. 

하루 하루 걱정스레 살던 베드로에게, 이것 때문에 따르지 않던 진리의 말씀을, 결국 진리의 말씀이 그의 삶의 고통을 다 사라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 앞에 베드로는 "나는 죄인입니다." 비로서 자기의 불신앙을 고백하고 주님을 영접합니다. 


"나를 따라 오라"

이것은 새로운 삶으로의 부르심이고 초대입니다. 

무엇으로의 초대입니까? 

우리 삶에 목적을 주고, 방법을 주고, 모델을 주고, 약속을 주고. 보장을 주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신앙 생활은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시다가" 

38년된 병자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동안이나 물이 동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물이 동하기를 기다렸다는 것은 은혜가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향해 부르시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그분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주님이 해변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그물던지는 시몬과 안드레를 보시는 주님! 보다 (Observe) -> 그냥 본 것이 아니라 자세히 관찰하여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들이 열심히 고기 잡는 것을 주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흑암을 보시면서 천지를 창조하실 계획을 세우신 주님. 그 지으신 것을 바라보시며 보시기 좋았더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보시면서 가능성을 보시고, 물질서 가운데 질서를 보시고, 보실 뿐만 아니라 계획을 세우시고 훈련시키시고 가다듬어 가시는 주님. 

이런 분의 눈에 띄이고 싶지 않으십니까? 

스카우터- 운동선수, 연예인...길거리에서 경기장에서, 공연장에서....계속 돌아다니시면서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보석을 찾아 헤메이는 사람들 

부르시는 그 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고생하는 그들을 보시면서 안타까이 여기시는 마음- 저렇게 해서 무엇을 남길까? 무슨 유익이 있을까? 무슨 열매를 거둘까? 

그러면서도 그들의 성실한 열심을 보면서 저것을 목적에 맞게 사용하기만 한다면.... 하시면서 그 열매를 이미 보시는 주님! 

대가의 눈에 띄이기만 한다면.... 기타를 치면서도, 공부를 하면서도, 운동을 하면서도 대가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한마디...

미국에서의 공부- 한국은 페이퍼를 써도 대개 조교가 체점을 하거나 점수만 주지 코멘트를 자세히 주지 않는다. 

그런데 유학와서 제일 놀랐던 것 - 쓰는 나도 잘 모르는 영어를 꼼꼼히 살피면서 자세히 코멘트 달아주는 교수들. 

그들이 살폈기에 한 번 한 번 페이퍼를 쓸 때마다 실력이 느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는 데 누가 코멘트해 주냐에 따라서 그 오디션의 성격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주님의 눈에 띠는 것-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우리 삶에 코멘트 해 주십니다. 그 코멘트에 맞게 살아가면 우리 인생에 목적이 생기고, 방법이 생기고, 보장이, 약속이, 생명이,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세상의 스카우터들은 일단 부르고 나서 보장하지 않지만 주님은 그냥 부르실 뿐만 아니라 책임을 지십니다. 끌고와서 능력안되면 버리는 그것이 아니라 따라오라 하신 다음에 내가 너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훈련시키시고 책임지시는 주님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람은 하루 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 분이 하신 일을 보면서, 시키신 일에 순종하면서 주님이 사람들을 고치고 말씀하실 때에 그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생명을 얻은 자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마침내 성령을 부어주셔서... 성령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하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안변한다 안변한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변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쉽게 기적적으로, 전권적으로 변하는 간증들만 많이 들어서 그렇지 광야길을 지나게 하듯 우리 삶에 우리의 자유의지를 하나 하나 주님 앞에 순복하면서 조각목이 성전이 되듯,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  예수가 제자를 삼는 장면

예수가 지나가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를 주목하시고....

이제 우리는 어떻게 예수의 제자가 되는가? 

말씀을 살피다가 지나가다가 나의 눈에 띠는 말씀이 있으면 넘기지 말고 주목하여 관찰하면서 말씀 가운데 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 

말씀 안에서 나에게 초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이 내 영혼을 다 비추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주권 아래에서 그 분이 하실 말씀만을 내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레마의 말씀이고 바로 계시입니다. 

계시는 주님이 원하셔서 원하는 만큼만 내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계시의 간증과 설교는 주목하면서 정작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에 둔감합니다. 

나에게 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의 팬, 은혜 받는 사람들의 팬은 많은데 정작 은혜의 당사자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은혜의 당사자는 주목하는 자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주목하셨지만 이제 말씀 앞에서 우리가, 내가 주목 할 때에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주목해서 말씀을 살피고 주목해서 기도하고 주목하여 찬양하는 것입니다. 


  •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더라. 

-이제 이전의 삶으로부터 돌이켜 새로운 목적, 주님을 위한 삶, 영혼을 구하는 삶. 이제 그 목적을 위하여 이전의 삶에서부터 돌이킨 것입니다. 

일의 동기, 일의 목적,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이제 하루 하루 자기만을 위해서, 끝없는 다람쥐 챗바퀴 돌던 삶에서 떠나 주님을 따르는 삶, 부르심의 목적에 합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 

가정을 부리고 삶의 일터를 떠나라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내 삶의 목적을 바꾸고 그 목적에 맞게끔 살라는 것이다. 

빵장수 야곱 : 뉴욕 베이글 팩토리의 노아 벤샤- 지금은 강연과 철학자로서 삶의 지혜를 나누어 주는 자. 

인앤 아웃: 맥도날드과 칼주니어가 주름잡던 시대. 가장 신선하고 페스트 푸드지만 영양가 있는... 최초의 드라이브 인 드루 가게, 절대 가게끼리 경쟁시키지 않겠다.... 미국 최고의 식품 평가..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 

               

  • 목적이 바뀌지 않고 예수를 따르면 열매없는, 능력없는, 소망없는 크리스찬이 됩니다.  

여전히 고기 잡는 목적을 가지고 예수를 따른다면....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가 없습니다.  부르심을 알고 소명을 가진 사람만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왜? 그 삶이 더욱 값지고, 그 삶이 더욱 행복하고, 그 삶이 더욱 즐겁기 때문입니다.  


  • 보이스 피싱.... 

- 사기꾼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번 통화하다보면 결려들게 만드는 사기꾼. 무엇으로 사기를 치는가? 목소리로, 화술로...

- 무엇에 당첨되었다고 해서 배송비만 내면 공짜로 준다고 하면서 결국은 상품을 파는 사기꾼들... 이젠 발전해서 아무것도 주지 않고 통장의 것을 뺴어가는 악질 사기꾼... 

 

그리스도는 무엇으로 사람을 낚게 하는가? 삶으로, 진리로, 십자가로, 사랑으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물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나, 내 가족 만을 위한 삶에서 주를 향해, 세상을 향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자아 성취, 자아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면 혼돈 속에서 목적없이 헤메이는 내 삶에 질서가 잡힙니다. 방향이 생깁니다.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한마디로 너무 너무 좋습니다. 

그 분의 부르심을 들으면 신앙생활을 왜 하는지 궁금증이 사라집니다. 불평이 사라집니다. 

'주님이 쓰시겠다 하라"하니 나귀새끼를 내어 주는 주인처럼 모든 것의 이유는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따릅시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됩시다. 목적이 있는 삶을 삽시다. 

Posted by 소리벼리

 

나를 따르라 (요 21:18-19) 


요한복음에는 부활 이후의 특별한 일,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특별히 베드로와 요한에게 사명을 주시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날 사랑하느냐 하시면서 내 양을 먹이라"하시는 장면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장면입니다. 

특별히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자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낙심 될 때 마다 되돌아 보게 되는 구절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맡기신 일, 

주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자에게 특별히 부탁하신 일, 

다름 아닌 내게 맡기신 하나님의 양들을 잘 돌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지상명령,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도 간단히 말하면 내 양을 먹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신 말씀이 오늘 나눌 말씀입니다. 

무엇이라 말씀하시냐면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주목되는 말씀은 19절의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에서 의문을 자아내게 합니다. 


하나는 이 말씀은 주님이 하늘나라로 올라가시면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나를 따르라 하면 따르겠는데 이제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시려고 하는데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늘로 따라 올라가라는 말인지, 아니면 내가 가서도 나의 삶을 본받으라고 하시는 말씀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또 하나는 베드로에게 하늘나라로 따라 오라는 소리가 아닌 이상 이 땅에서 주님의 길을 따르라는 말씀으로 이해한다면 이전에 따르던 모습과 어떻게 다르게 따르라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이 말씀은 주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제자 삼으실 때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 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 장면은 누가복음 5장 1-11절에 더욱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게네사렛이라는 호숫가에서 말씀을 전할 때 많은 무리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만히 보니 한편에 밤새껏 고기잡으러 갔다가 한마리도 잡지 못하고 그물을 씻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십니다. 

그들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을 외면하며 단지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먹고 사는 인생에 있어서 예수님이 말씀은 어쩌면 사치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일부러 그런 베드로의 배에 올라 다시금 말씀을 전하십니다. 

자기의 배에 올라 말씀을 전하니 그 말씀을 안들을 수가 없습니다. 

밤새껏 일하고 온 사람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어쩌면 곤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말씀보다 빨리 집에 가서 쉬는 것이 내일을 위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머리 속에는 말씀의 내용보다도 오히려 오늘 고기를 못 잡았으니 어떻게 하지, 내일은 어떻게 사나하는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말씀을 전하시고 예수님이 갑자기 베드로에게 명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피곤한 베드로이기에 이 말씀은 정말 화딱지 나는 소리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베드로가 주님의 말을 듣고 억지로지만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어쩌면 이 순종이 베드로의 나머지 삶을 이끈 가장 중요한 순간이고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지워진 십자가를 통해 주님을 만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순종하였더니 그물이 찢어 지도록 고기가 잡혔습니다. 

자기가 말씀을 들으면서 짜증내면서 이 말씀이 도대체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나, 내일을 위해선 빨리 쉬어야 하는데 하던 베드로에게 이 사건은 주님이 말씀을 외면하고 업신여기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해서 베드로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하면서 비로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이 사건을 통해서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랐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5:11) 


그렇게 3년동안 예수님을 죽으나 사나 따라 다녔는데 하늘나라로 승천하시면서 또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럼 그 동안 따른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21장 18장 19절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우리가 보아야 할 구절은 요한복음 13장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요 13:36-38)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주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마치시면서 이제 잠시 너희와 함께 있을 테지만 조금 지나면 너희를 떠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떠난다는 소리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지금은 네가 따라올 수 없지만 나중에는 따라 올 것이다." 


그러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네가 나를 따라온다고 하지만 아직은 온전히 따라 오는 것이 아니다. 

네가 날 위해 죽는다고 하지만 결국 자기 목숨을 위해서 날 배반할 것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요 21: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삶을 크게 젊을 때의 삶과 늙어서의 삶으로 표현 합니다. 

젊어서의 삶의 특징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닌다는 것이고 

늙어서의 특징은 팔을 벌리고 남이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띠 띠운다는 말은 영어성경의 표현을 보니까 옷을 입는 것입니다. 

즉 젊어서는 스스로 옷을 입고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옷을 입는 것은 성경에서 무엇을 가리킵니까? 

자기 열심, 자기 행위로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늙어서는 어떻습니까? 

남이 옷 입히고 남이 인도하는 데로 간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가리키는 남은 누구입니까? 


물론 나 중심적인 삶에서 이제 신앙이 성숙되면 타인 중심적인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용서하는 삶을 살게 되고, 베푸는 삶을 살게 되고, 보살피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  

그러나 결국은 주님이 승천하시면 오실 성령님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내 열심, 내 행위대로 주님을 따랐지만 이제 성령이 오시면 성령으로 옷입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데로 이끌려 간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도 성령이 오시기 전, 제자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데로 해석하고 싶은데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몇번씩이나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시는데도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니까 전혀 생각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헤롯왕까지도 삼일 후 부활하신 다는 말을 기억하는데 제자들은 생각조차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원하는 데로 신앙생활 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너 성령이 오시면 비로소 주님이 말씀하신 바의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기억하며 그 말씀에 인도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비로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이 이 성령의 인도하심, 성령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누가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이야기하면 어디서 또 신비주의, 이단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가장 성령의 인도함가운데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인도함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단지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생각합니다. 


왜 신천지 같은 이단에 빠집니까? 

자기가 성령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 내가 보혜사 성령이다, 나의 말을 따르라는 말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정통기독교는 아무리 훌륭한 목사고 지도자고 사람이 성령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권면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선택을 강요하고 절대적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댜. 

그것은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성가대하고 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과 보호사심을 확신하지 못합니다. 

밤낮 하는 소리가 내뜻인지 성령의 음성인지 모르겠다는 말만 합니다. 

그리고선 능력있는 주의 종을 찾아가 점 보듯이 신앙생활 하려고 합니다. 


퀘이커 예배

17세기 가장 타락한 영국의 교회

성직자들이 성직을 매매

헌금을 강조하고

가톨릭에서부터 영국 국교회, 청교도, 침례교도인 등 온갖 교파들이 난립. 

조지 폭스라는 사람 - 신앙의 열심이 있어서 목사들과 구도자들을 따라다니면서 자신의 죄의식의 문제, 신앙의 문제를 상담. 

그런데 어느 누구 하나 뚜렷한 답을 주는 사람이 없다. 

어느 성직자는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 약간의 술과 담배를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가 기도가운데 깨닫게 되는 것. 

네 안에 있는 성령을 의지하라. 내가 친히 너를 가르치겠다. 

그래서 세워진 것이 퀘이커 교도 

거기엔 예식이 없다. 설교도 없고, 음악도 없다. 

오직 예배가 시작되면 아무소리도 없이 침묵하면서 성령의 음성을 귀기울인다. 

왜 그러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을까? 

교회와 성직자 들이 타락하니까 이제 사람을 의지 하지 말고 성령을 직접 의지 하도록.... 


주님은 제자들에게 인류의 구원을 맡기셨는데 그러면서 그들이 승리하도록 허락한 두가지는 단 두가지 입니다. 

1. 서로사랑해야. 한 마음으로 화합하라. 

2. 그리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그 외에 내가 위대한 지도자를 보내주겠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교회 안에 머물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령이 임하자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자기 재산을 헌납하여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유물 상통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사람들이 일어나면 교회에 모이고 거기서 밥먹고 예배하고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모이는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흩으사 믿는 자들이 하나 둘 씩 흩어져 전 세계에 퍼지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흩어지는 곳마다 또 다시 교회가 세워지고 또 다른 제자들이 생겨나고 믿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모이는 부흥이 아니라 흩어지는 부흥으로 펼쳐졌습니다. 


자기 의, 자기 행위, 자기 열심으로 신앙생활 하는 자는 결국 자기 한계 안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무한 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결국은 자기가 제한한 세계 안에서만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난 여기까지만 믿어야지. 자기가 기도의 시간, 예배의 참여 다 제한하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의지하는 자는 자신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가운데 자기 인생을 내어놓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시면서 하시는 것 

이름을 바꾼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사울을 바울로

베드로를 시몬으로 바꾸신다. 

무슨 소리인가? 

이젠 네 이름으로 살지 말고 내가 인도하는 삶으로 살아라. 

내가 준 사명 안에서 살아라. 


기도는 무엇인가? 

내 욕망의 표출로서 요구하고 청구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그 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내 마음을 여는 것이다. 

두 팔을 벌려 성령이 내게 옷입히고 그 분이 지시하는 곳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 기도다. 


실컸 부르짖고 울었다고 기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주님께 부르짖듯이 그 분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 분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 말씀을 보고 성경을 쓰고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이 들렸으면 흔들리지 않고 그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다.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다. 


단, 내가 깨달은 말씀이 정말로 성령께서 주신 말씀인지 성경과 교회의 전통 안에서 그것을 점검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이 필요하고 교회가 필요하고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성령은 질서 안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성경이 성경을 거스릴 수 없다. 떄가 기한은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단들은 끊임없이 때와 기한을 이야가힌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처소가 많다고 말씀하셨고 믿는 자 누구에게도 하나님이 나라가 열려 있다고 하는데도 십사만 사천명 운운하면서 특정한 어떤 그룹의 우뤌성을 이야기한다. 


나에게 주신 말씀은 곧 믿음의 공동체에게 두루 주신 말씀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부터 이 말씀이 어떻게 해석되어여 왔는지 살펴 보면서 내가 받은 말씀의 근거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목사에게 주어진 책무이다. 


어쩌면 우리는 17세기 영국교회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타락한 세상을 살고 있다. 

믿을 수 있는 교회, 믿을 수 있는 목사를 찾기가 너무 힘들다는 소리를 한다. 

CBS에서 신천지를 고발한 피디가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 말이 있다. 

신천지는 한국교회의 한 돌연변이고 종양이다. 

그런데 이것이 제거된다고 해서 한국교회가 정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암덩이가 교회 안에 있다.  이것을 치료하지 못하면 한국 교회는 제 2, 제 3의 신천지 같은 종양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러한 세대에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근본적인 신앙을 돌아보아야 한다. 

난 예수를 사랑하는가? 

난 예수의 사랑을 받았는가? 

난 예수의 십자가를 믿는가?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로, 주로 진실하게 고백했다면 그 다음 할 일은 성령을 의지하는 것이다. 

나에게 주시는 거룩한 소원, 거룩한 생각, 

내 내면의 빛에 귀를 기울이고 제한하지 말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과 땅의 권세, 하나님의 자녀된 삶의 역사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Posted by 소리벼리

제 목 : 예수님의 사역

본 문 : 4: 12 - 25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 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우리가 함께 감당해야 할, 그리고 우리에게 맡기신 사역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예수 닮는 길을 아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첫 번째 사역 회개하라.

예수님은 공생애의 처음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시고 누가복음에서만도 12번이나 회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또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목적이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는 회개와 죄사함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는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과 중간, 마지막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오는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못한 죄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방해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을 방해하며, 우리 삶에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방법과 단계

1) 생각의 변화 (성령의 지적에 동의하여 죄를 시인하는 단계)

2) 마음의 변화: 하나님이 나의 죄를 보시는 대로 보고 느끼시는 대로 느끼는 단계

우리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수준까지만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대로 죄를 보면 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 시각에서 죄를 바라보기 때문에 계속 타협하고, 변명하며, 다시 죄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3) 삶의 변화: 회개란 전에 사랑하던 죄를 미워하게 되는 것. 결국은 죄를 사랑한 것이 죄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죄를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8:13)”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죄의 유혹을 받는 대신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2. 두 번째 사역 나를 따르라.

* 나를 따르라: 나를 보고, 나의 말을 듣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행하라.

*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2)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곧 말씀과 기도 가운데 그와 함께 동행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 하나님이 나에게 하라고 하신 작은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사역- 가서 전하라.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가서 전하기 앞서 전제되는 것: 복음대로 살고 있는가? 투명하게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1:1-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 예수: 항상 먼저 행하시고 가르치신 분

우리의 삶의 방식이 아닌 것을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유창하게 전달하더라도 삶이 전제 되지 않으면 거기엔 능력이 없고 기름부으심이 없습니다. 진리대로 살지 않는다면 아무런 권세가 없습니다.

위선: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는 인상을 주는 것입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곧 진리대로 산다는 것. 진리대로 살아야만 우리의 가르침에 권세를 주십니다.

우리가 진리대로 살고 있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응답되는 기도가 곧 우리의 권세이며 말씀의 능력인 것입니다. 응답되는 기도는 우리가 그의 말씀을 순종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보장입니다.

 

*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0:26)

* [23:27-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 삶이 뒤따르지 않는 가르침이 곧 위선이며, 화 있는 자의 결말입니다.

 

나에게 하는 질문)

나는 예수를 닮으려 하고 있는가?

난 예수를 닮기 위해 예수의 사역을 이해하고 있는가?

날마다 회개하며 하나님과 나 사이의 장벽을 치우고 있는가?

닮기 위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예수와 동행하고 있는가?

이해한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