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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글 모음 /Journey to the self'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6.06.30 6. 알레데이아
  2. 2016.06.24 5. 내가 너의 관객이 되고 천사들이 너의 그룹이 되어 줄께..
  3. 2016.06.16 4. 네 목회의 비전이 무어냐?
  4. 2016.06.15 3. 첫사랑……실패

6.    한 사람이라도 날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야-인하대 성경모임 알레데이아

 

첫 시작은 창대했다. "숨지말고 나와 하나가 되자!"라는 슬로건 아래, 30여명 넘는 한 과의 인원이 한 자리에 모여 영문과 안의 새로운 신앙모임을 시작했다. 예배를 드리고 세미나를 개최하고 정기적인 신문도 제작했다. 대학원생에서부터 2학년 학우들까지, 동기 선배 할 것 없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다. 우리 과에 그렇게 기독교 친구들이 있는지 잘 알지 못했었다. 많은 친구들이 감격했고 모임을 더 자주하자는 제의도 들어왔다. 그렇게 1주일에 두 번씩 모여 성경을 나누었고 또한 포스트 모더니즘이던지 C.S. Lewis의 책을 원어로 읽으며 신앙을 나누었다. 방학 때는 엠티를 가고 또 기도회를 했다. 대학 4학년 여름에 난 몇몇의 학우들과 영문과 기도 동아리 알레데이아를 만들고 이끌었다. 신학을 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내가 몸 담은 처소부터 하나님께 순종하자는 감동으로 세운 동아리였다. 신문을 만들어 학과 사무실 앞에 가판대를 설치해 가져가도록 하기도 하고 영문과 강의실은 온통 알레데이아 신문이나 모임을 위한 광고지로 넘쳤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신대에 입학했다. 입학을 하고 출판사에 근무하고, 또 과외를 하면서도 난 알레데이아 모임만큼은 빠지질 않고 나갔다. 아니 빠질 수가 없었다. 인도해야 하므로..

한두 명씩 사람들이 줄기 시작했다. 졸업을 하면서 절반이 빠져 나가고 학기가 지나면 또 절반이 빠져나갔다. 신문 만드는 것은 일찌감치 중지되고 모임도 어느덧 한 번 이상 모이기 어려웠다. 리더를 세우지 않고 신대원을 다니면서 내가 가서 인도까지 했으니 아무리 내가 열성적으로 인도를 해도 더 이상 그들과의 끈끈한 끈이 유지 될 수 없었나 보다. 

  

이제 가면 어쩔 땐 서너 명, 어쩔 땐 두세 명, 그들도 내가 일찌감치 가서 전화하고 찾아 다니면서 모아야 했던 사람들이다. 차츰 회의가 들기도 하고 그렇게 정겹게 느껴지던 인하대의 모습들이 조금씩 낯설어가기 시작했다. 한 명도 나오지 않은 날, 난 하나님께 고백했다.

큰 꿈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여기까지인가 봐요이젠 아무도 날 반기지 않고 그리고 이 장소가 너무 낯설게 느껴져요이 곳에 알레데이아를 세우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지금은 알 수가 없지만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해요하나님의 뜻을 알 순 없지만 이 모임을 통해 하나님 영광 받으셨기를 바래요…”

 

그렇게 마음 먹고 모임 날인 월요일 날 이제 마지막 모임이다는 심정으로 학교에 갔다. 가는 길에 전화를 걸어보니 역시나 아무도 받지 않는다. 아무도 날 반기지 않는다. 귀찮게 생각하는지도, 이젠 낯설어 버린 얼굴일수도 있겠다 하니 씁쓸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하리라는 마음을 다지고 모임장소인 빈강의실로 향했다. 마지막 기도일 것이라 생각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문을 열었다.

한 명이 앉아있었다. 조금 낯선듯한, 가만히 보니 조금씩 낯익은 듯한

같이 모임을 하다가 군대갔던 후배 하나가 까까머리가 되어서 휴가 나온 것이다.

혹시나 하고 기다렸는데 역시 형 오네요너무 보고 싶었어요…”

녀석은 멀리 군대에서부터 이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라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밝게 웃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네가 올 줄 알고 왔지하하

 

늦게 나마 두 명의 후배들이 와서 네 명이서 모임을 하고 뒷풀이를 했다.

밥 먹으러 가는 길에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한 영혼이라도 널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너에게 보낸 양이다. 한 영혼이라도 널 기다리고 있다면 그건 바로 나의 뜻이다…..”

그 후 2년 간을 우리는 계속해서 모였다. 어쩔 땐 다섯 명, 어쩔 땐 두 명,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는 그 날, 나는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그 문을 나올 수 있었다.

 

Posted by 소리벼리

5.  내가 너의 관객이 되고 천사들이 너의 그룹이 되어 줄께..

 

중고등학교 시절 난 음악에 미쳐있었다. 중창단과 성악을 하면서 무대를 꿈 꾸었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면서 또 성격이 좀 다른 열광적인 무대를 누렸다. 서울의 크고 작은 무대를 다니며 노래를 했고 고 2 때는 수학 선생의 교회에서 솔리스트로 오라는 청이 들어오기로 했다. 당시 고등학생에게는 기대 할 수 없었던 사례금도 약속받았다. 그러나 개척교회의 멤버로서 난 우리 교회를 떠날 수 없었다. 대학에 와서도 난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는 것이 꿈이었고 학교 앞 카페에서파트타임 노래를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우정의 무대에 나가 마지막 결선에 까지 나가 스포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군대의 군인 교회에서부터 난 성가대 지휘자로서 사역을 시작했다. 군인교회 지휘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부대에서 일반대생으로는 처음으로 군종병으로서의 사역을 하기도 했다. 제대 후에는 다니고 있던 교회에서 지휘를 시작했다. 아직 신학을 결정하기도 전에 난 먼저 성가대 지휘자로서 교회의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교회가 작았기 때문에 열명 남짓 한 성가대 인원과 찬양을 하고 또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것이 어떨 때는 한없이 기쁘다가도 어쩔 땐 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엔 교회에서 자는 날이 꽤 많았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심난할 때 교회에서 찬양을 하다가 기도를 하다가 그대로 의자에 누어서 잠이 들었고 그렇게 새벽예배를 드리고 집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기도 중에 내 속상함을 하나님께 고했다.

하나님, 내 안의 열정을 알잖아요. 좀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찬양하고 싶고 또 좀 더 많은 사람을 위해서 찬양하고 싶어요내가 이젠 세상 음악 안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 좀 많이 붙여주시고 악기 하는 사람도 보내주시고 같이 찬양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내주세요…”

 

그런 내용의 기도를 몇 번 드렸던 것 같다. 그렇지만 성가대 인원은 늘지 않았고 그리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도 좀처럼 오지 않았다. 신디를 구입하고 드럼을 세팅해 놓고 그리고 마이크를 여러 개 사 놓아도 할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승구야, 사람들을 찾지 말고 오직 날 향해 찬양해야지네가 찬양 할 때 언제나 그 무대 앞 중앙에는 내가 너의 관객이 되어서 너의 찬양을 들으마내가 너의 관중이 되어 주고 천사들이 너의 찬양그룹이 되어 줄꺼야…”

그 분의 마음을 느끼며 난 다시 큰 무대를 꿈꾸지 않았다. 아니 내가 찬양을 인도하고 성가대와 함께 성가를 부를 때마다 그 무대가 가장 큰 무대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보이는 사람들을 적었어도 그 가운데는 항상 하나님이 날 바라보며 흡족히 나의 음악을 들으셨고 그리고 천사들이 나와 함께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는…. 난 하늘의 궁중 지휘자 였으니까……..

 

마음이 그렇게 바뀌면서 중등부 여학생들을 모아서 드럼을 가리키고 그들을 성가대원으로 세웠다. 처음엔 목소리가 너무 어려서 잘 융화하지 못했지만 자꾸 함께 하며 불러보니 나름대로 특색있는 화음이 나왔다. 1-2년 지나 그 아이들이 드럼을 치고 같이 찬양하며 찬양을 드렸고 난 그렇게 찬양을 하는 그 아이들도, 또한 그 아이들에게 악기며 찬양을 가르쳤던 나 자신의 모습을 대견스레 생각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많지 않은 성가대 인원을 데리고 성가대를 지휘하고 있고 잘 따라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찬양을 인도하지만 그래도 난 그 가운데 항상 내 무대를 바라보며 웃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담임목회를 시작하면서 때로는 성가대를 지휘하고 금요 예배 찬양을 인도하는 것이 벅차기도 하고, 좀 더 솔직히는 좀 지겨워질 때가 있었다. 설교를 하는 데 있어서 찬양에 집중하는 것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었다.

"언제까지 제가 성가대를 인도하고 찬양인도를 해야 하나요? 이젠 설교에 집중하고 싶어요, 주님!" 하면서 기도를 할 때에 예전 내 찬양의 무대 한 가운데서 '내가 너의 관객이 되어 줄께!"하시던 주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난 네가 사람들을 향해 설교하는 것도 귀하게 보지만 네가 날 위해 찬양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단다." 하시는 듯한 주님이 마음이 느껴졌다.

이 사역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 여전히 모른다.

나이가 들며 때로는 내가 찬양을 인도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덕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찬양의 주인, 내게 음악주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때까지 그 분 앞에 계속적으로 찬양하는 사역을 힘다해 할 것이다. 그 분이 내 관객이니까...

 

 

 

Posted by 소리벼리

4.   네 목회의 비전이 무어냐?

 

서울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어느 수업인가 첫 시간에 들어갔더니 교수님께서 너희도 이제는 목사가 되기 위한 길로 들어섰으니 확실한 비전을 두고 살아가야 한다. 목회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전이 무엇인지 기도하고 생각해보고 제출하도록!” 하셨다.

 

기독교 상담을 공부하기 위해 신학대학원에 들어오긴 했지만 한 번도 내가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하는 것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어떤 목사가 될까…… 어떤 교회의 목사가 될까…”

 

제출날짜가 가까워 오자 사람들은 숙제를 준비할 겸, 자신의 비전도 세울 겸, 나름대로 교회를 탐방하기도 하면서 비전을 세워가고 있었다. 학교 화장실에는 ‘5만 명의 교회를 품을 수 있는 목사가 되게 하소서라는 낙서가 붙기도 하였다.

난 저녁에 교회예배당에 앉아 나에게 비전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난 큰 교회를 가고 싶지도 않고 몇 명을 감당할 능력도 없어요.. 단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사로서의 내 인생이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얼마를 기도했을까, 마음 속에 예수님의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승구야, 난 내 공생애 기간 동안 12명의 제자를 얻고 그들을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단다. 많은사람들이 내게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였지만 내 관심은 오직 12명의 제자, 그들이었단다. 승구야, 너도 불확실한 많은 사람들을 쳐다보기보다는 네게 감당할 만한 12명의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맘껏 사랑하고, 그들과 삶을 나누며,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믿음을 그들에게 심어주지 않겠니?”  

 

그 분의 사랑스런 한 말씀 한 말씀이 내 가슴에 닿았다. 그리고 처음엔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열 두 명이라면, 평생에 열두 명이라면 그들에게 내 삶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열 두 명을 목회하면서 힘들어했던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이 가슴에 닿았다.

 

승구야, 열 두 명을 목회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네 삶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그들 중의 한 명도 너를 이해하지 않을 지도 몰라. 끝까지 어리석은 말과 행동만을 하겠지…… 네가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네가 가장 힘들 때엔 아무도 옆에 없을 수도 있어. 그리고 그 중의 몇은 자기 목적을 위해, 아니면 아주 사소한 일을 위해 너를 팔겠지.”

 

갑자기 열 두 명이라는 숫자가 세상의 가장 큰 숫자가 된 것 마냥 커져버렸다.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열 두 명의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만나고 그들을 어떻게 세우고, 그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주고 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주지?

 

가만히 기도 할 때에 세밀한 그분의 생각이 들어왔다. “한 명씩 한 명씩 내가 네 인생을 통해 만나게 해 줄께….. 내가 그들을 너에게 인도할 때, 승구야, 그들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을 지나치지 말고 안아주고 사랑하고 그리고 너의 삶의 모범을 보여줘라나처럼…”

 

그때로부터 10년이 훨씬 넘었다. 12명 중에 몇 명을 만났는지 난 확신할 수 없다. 몇은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내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지그렇지만 난 12명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지금도 준비하고 기다리고 그리고 더 깊은 사랑을 주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있다.

 

 

Posted by 소리벼리

   첫사랑……실패

 

내 청춘의 이상은 첫사랑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내가 평생 가장 가까이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한 번 이길 소원했다 

그것이 순수라고 믿었고 순결이라 생각했다.

이런 개방적인 시대에 난 나의 이상을 스스로 기특하고 대견하게 생각했다. 하나님도 이 생각을 얼마나 기뻐하실까!

대학 생활 중에 난 여러 번의 연애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괜찮은 친구들도 막상 평생을 같이할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27, 대학교 졸업할 나이에 난 내가 생각하기에 평생을 같이 해도 좋을 바로 그녀를 만났다. 나의 눈에 비친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그러면서도 여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남을 이끌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그런 여인이었다. 난 내 이상을 고백했고 그리고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난 내 이상을 이루신 하나님께 감사 드렸고 근본주의적인 그녀의 집안과 교회의 반대가 있었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아니 더 자세히 말하면 나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다. 그녀를 설득하고, 그 부모를 설득하고, 그 교회를 설득하면서 난 추호도 의심 없이 내 이상을 믿었다. 3년간의 연예 끝에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 날짜를 잡고, 그리고 우리가 살 집을 구하면서 그녀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혼식 날짜가 가까워오면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결혼식 한 달을 남긴 날, 우리는 헤어졌다.

 

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지? 왜 하나님께서 이런 길로 날 인도하시지?

시간이 지나면서 난 내 마음 속에 있었던 교만함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했다.

내 이상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좋은 이상이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주권보다 더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난 내 뜻이 하나님께서 무조건 허락하실 그런 완전한 것으로 믿었다.

 

그런 교만함이 들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날 돌아가게 하셨고 내 뜻보다 위에 있는 그 분의 뜻으로 인도하셨다. 때로는 그 인도하심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뜻의 완전함을 믿는다. 완전하지 못한 것은 내 성숙되지 못한 인격이고 신앙일 테니까……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