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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폭스'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3.05.23 신앙은 논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입니다.
  2. 2013.04.25 내면의 빛의 소리
  3. 2012.11.30 내면의 빛의 소리
  4. 2012.10.13 조지 폭스의 일기 -5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전에 계시지 않습니다. 또한 모든 그들의 설교, 세례, 희생들도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진 못합니다. 여러분들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분만이 당신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분께 순종하십시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chapter 4. A Year in Derby Prison (1650-51)년의 글 중에서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때까지 유대인들의 신앙의 중심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은 그것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안심을 주는 티켓이었고, 그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의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보여 있는 극장이었으며, 그들의 신앙을 보일 있는 무대였습니다. 곳에서 장사하는 장사치들을 몰아내시면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한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일으키리라 하셨습니다.

 

조지 폭스의 조금은 과격하고 극단적인 표현들을 보면 자신의 신앙을 바라보게 합니다. 폭스가 그토록 경계하고 회개하기를 원했던 시대의 성직자들처럼 또한 어느덧 교회의 건물 안에 사람들을 몰아넣으려고 하는 지는 않는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로서 나의 말에 순종케 하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말하는 것에 따르는 자들은 거룩하게 것이라는 은근한 협박을 즐기고 있진 않은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일은, 더더욱 우리 목사들이 일은 조지 폭스가 말한 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분께 순종하도록, 그분을 바라보도록 인도하는" 것일 것입니다.  조지 폭스는 당시 교회를 부정하는 듯한 표현으로 인해 감옥살이를 시작합니다. 어쩌면 바른 신앙을 갖는 것은 세상의 감옥에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가 그러했듯, 폭스가 그러했듯,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자들은 감옥에서도 자유할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 원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당시 폭스는 침묵 관해 가르쳤으며 사람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빛에 대해 증거하고 가운데로 인도하였으며, 각자 마음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의 능력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도록 참고 기다리라고 사람들을 격려했다……그는 모든 사람을 각각의 신조와 예배에 억지로 순종을 하도록 강요받지 않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 사람들은 보편적인 원칙, 각자의 내면의 빛을 통해 영적인 연합에 이르게 되는데, 영적인 연합이란일한 원칙에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것이었다.


윌리엄 (William Penn 1644-1728), 《조지 폭스의 일기》의 서문에서 발췌.

 

퀘이커의 예배에 참여해보았다. 보기(See) 위해 참여(Participate) 것이다아무런 찬송도, 어떤 의식도 없이 그냥 그들은 앉아 있었다. 앉아서 마냥, 차분히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그들은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빛의 소리. 그렇게 침묵 속에서 내면에 들려오는 빛의 소리, 성령의 소리를 기다리다가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조용히 일어서서 자기가 들은, 혹은 경험한 것들을 모인 사람들에게 고백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나눔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진다. 그날은 그렇게 그냥 헤어졌다.

 

교회와 사회가 어지럽고, 구도자들이 성직자들과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어떤 영적인 위안과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지폭스의 신앙의 여정은 당시의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극단적인 모습의 퀘이커, 혹은 친우회 (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라고 불리는 신앙운동, 신앙공동체를 일어나게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침묵을 강조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영감이 일어날 전신이 떨렸다고 해서 퀘이커, 진동하는 자로 불리웠다.

 

목회를 하며, 또한 영성을 공부하는 한국 개신교 목사로서 그들의 모습은 내가 익숙하고 자라왔던 신앙의 환경의 가장 맞은 편에 있는 듯하다목사로서 성도들을 양육하며 훈련시킬 때에 그들을 독립적인 신앙인으로 서게 했는가? 아니면 점점 무엇엔가 의존하게 만들지는 않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느끼게 했는가? 아니면 두려움을 심어주어 자유로부터의 도피하게 만들었는가? 스스로 반성해 본다.


가톨릭의 타락이 심했을 때에 루터는 하나님과 우리를 중보하는 통로는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성경 뿐임을 외치며 믿는 모든 자가 제사장이라하며 프로테스탄트 운동을 일어나게 했지만, 다시 목사는 교황의 자리에, 교회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통로가 아닌 장벽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퀘이커는 어쩌면 잘못되어져 버린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이 만들어낸 급진적인 '이단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 그들의 예배, 그들의 기도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2012년을 지나가며 여러 가지 사회적인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참 많다. / 소리벼리

Posted by 소리벼리

"당시 폭스는 침묵에 관해 가르쳤으며 사람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빛에 대해 증거하고 가운데로 인도하셨으며, 각자 마음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의 능력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도록 참고 기다리라고 사람들을 격려했다...그는 모든 사람을 각각의 신조와 예배에 억지로 순종을 하도록 강요받지 않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 사람들은 보편적인 원칙, 각자의 내면의 빛을 통해 영적인 연합에 이르게 되는데, 영적인 연합이란 공일한 원칙에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것이다."

윌리엄 (William Penn 1644-1728), 조지 폭스의 일기의 서문에서 발췌.

                                                                                                    

 

퀘이커의 예배에 참여해보았다. 보기(See) 위해 참여(Participate) 것이다.

아무런 찬송도, 어떤 의식도 없이 그냥 그들은 앉아 있었다. 앉아서 마냥, 차분히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그들의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빛의 소리. 그렇게 침묵 속에서 내면에 들려오는 빛의 소리, 성령의 소리를 기다리다가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조용히 일어서서 자기가 들은, 혹은 경험한 것들을 모인 사람들에게 고백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나눔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진다. 그날은 그렇게 그냥 헤어졌다.

 

교회와 사회가 어지럽고, 성직자들과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어떤 영적인 위안과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지폭스의 신앙의 여정은 당시의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극단적인 모습의 퀘이커라고도 불리고 친우회 (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라고 하는 신앙운동, 신앙공동체를 일어나게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침묵을 강조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영감이 일어날 전신이 떨렸다고 해서 퀘이커, 진동하는 자로 불리웠다는 것이다.

 

목회를 하며, 또한 영성을 공부하는 한국 개신교 목사로서 그들의 모습은 내가 익숙하고 자라왔던 신앙의 환경의 가장 맞은 편에 있는 듯하다. 교회나 목사로서 성도들을 양육하며 훈련시킬 때에 그들을 독립적인 신앙인으로 서게 했는가? 아니면 점점 무엇엔가 의존하게 만들지는 않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느끼게 했는가? 아니면 두려움을 심어주어 자유로부터의 도피하게 만들었는가?

가톨릭의 타락이 심했을 때에 루터는 하나님과 우리를 중보하는 통로는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성경 뿐임을 외치며 믿는 모든 자가 제사장이라하며 개신교를 탄생시켰지만 다시 목사는 교황의 자리에, 교회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통로가 아닌 장벽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퀘이커는 어쩌면 잘못되어져 버린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이 만들어낸 급진적인 이단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 그들의 예배, 그들의 기도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2012년을 지나가며 여러 가지 사회적인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너무 많다. 

 

Posted by 소리벼리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서 읽기는 하였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나, 이제 계시를 통해 열쇠를 가지신 분이 그 문을 여셨으며 생명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로 나를 인도하셨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1647년의 글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영적인 유익을 얻지 못한 폭스는 어느 자신의 문을 여는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이 체험이 있은 후에 그는 성령을 통해 성경이 크게 열리는 체험을 주시고, 사물의 이치에 '문이 열렸다' 고백한다. 또한 체험들을 통해 그는 자신이 '빛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을 보게 되었고, 어둠과 죽음과 유혹과 불의와 불경건 등이 빛 가운데 분명히 드러남'을 보았다. 비로소 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위대함을 깨닫고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바로 성경에서 말한 '성령,' 폭스의 표현을 빌자면 '자신 안의 내면의 ' '경험' 것이다. 

 

성도님들과 함께 출애굽 당시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혹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가까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훈련을 받았는지를 읽으면서 부러워 하는 모습들을 발견하곤 한다. 우리도 모세처럼, 제자들처럼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한다면 훨씬 실수하지 않고 믿음을 가질 있을 같다는 하소연이다. 마치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지고 변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모르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분명한 뜻을 알기 위해 목사를 찾고 영성가를 찾고 신비가를 찾는다. 자신의 내면 안에 여전히 계신 ' ', ' ' 망각하곤 말이다.

목회를 하면서 계속 드는 절망은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 구약 시대 사람들처럼, 제자들처럼 여전히 실패하고 자기 멋대로 살고 변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우연찮게 나에게 숙제처럼 주어진 조지 폭스의 저널은 점점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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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