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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히 11:17-19) 


히브리서 -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주는 말씀. 

당시의 상황- 그들이 당한 처지- 로마의 극심한 핍박과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의 조롱과 핍박, 회유로 인해 모이기를 폐하는 무리가 생겨나는 등 기독교 공동체에 심각한 위기가 생겨난 때에. 

히브리 기자의 요지- 지금 공동체 위기의 원인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문제이다. 상황 때문에 신앙의 어려움이 생긴 것이 아니라 결국 믿음이 없어서다. 


그리고 그 믿음의 정체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믿음장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서 11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벨의 믿음에서 부터 시작해서 에녹의 믿음, 노아의 믿음을 거쳐 아브라함에게로 이어집니다. 


금요일날 살펴 보았듯이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제사, 삶의 제사를 드립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그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증거합니다. 에녹의 믿음을 나누면서 우리는 므두셀라의 이름의 의미가 "그가 죽는 날에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나누고 에녹은 그 이름의 게시를 통해 그 이전의 삶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은 정확히 므두셀라가 죽은 그 해에 세상을 심판하셨음을 창세기의 족보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 때에는 아직 이스라엘 공동체가 세워지기 이 전의 시대입니다. 세상은 타락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찾아보기 힘들 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에 순종했고, 그 열매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히 11:6)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 하면 아벨이나 에녹이나 노아가 아닌 아브라함을 떠올리며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 부릅니다.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유대인들조차도 그들 이스라엘 공동체의 조상으로 노아도 아니고 실질적인 민족의 조상 야곱도 아니고 아브라함을 그 민족의 시조로 삼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에녹보다, 노아보다 훌륭하기때문에 그러한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브라함으로 부터 시작해서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 쪽의 확신이나 신념, 우리가 가진 어떤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때론 연약한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온전한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는가 하는 믿음의 대 전환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약 믿음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굳센 마음, 확신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의가 됩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은 도저히 믿지 못했던 자가,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 분을 믿지 않을 수 없도록 그를 만들어가실 때에 믿음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것이지요.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까 믿음은 어떤 자가 믿음을 가져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택하시고 지으셔서 그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 아브라함의 형제,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 어디서 거주하던 자인가- 갈데아 땅의 우르지방- 바벨론 땅.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우르 지방에 있을 때에 주신 말씀- 그래서 데라와 조카 롯과 사래와 아브라함이 같이 출발. 

그런데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가지 하란에 머물다가 데라가 죽자 그제서야 비로서 가나안 땅으로 출발. 


오히려 아브라함을 택하사 그가 가나안에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믿음과 인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기 까지 모든 상황을 정리하신 분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데라를 먼저 데려가심으로 아비집을 떠나게 하셨고, 롯의 종과 다툼을 일으켜 그와 헤어지게 하셨다. 


  • (히 11: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약속의 땅에 갔지만 그들의 신분은 외국인, 나그네, 땅을 소유할 수 없다. 그저 빌려서 살 뿐이다. 

아브라함이 소유한 땅은 오직 막벨라 굴- 굉장히 비싼 값을 치루고 그 무덤을 소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그런데 그가, 이삭이, 야곱이 믿음을 갖고 그 땅을 떠나지 않고 거했는가? 

무슨 사정만 생기면 그들은 언제든지 떠나려고 했다. 도착하자 마자 기근이 생기자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은 아식과 형 에서를 피해 라반이 거하고 있는 땅으로.... 


그런데 그것을 돌이켜 다시금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이- 하나님- 출애굽을 통해 그것을 완성하신 하나님 . 

누구의 믿음인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믿음이 아니라 그곳에 거하도록 참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믿음, 하나님의 인내와 경륜. 

어떻게 아브라함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는가? 그들이 의지하는 애굽보다, 세상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 (히 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믿음으로 사래는 이삭을 낳았는가? 


[창 17:15-19]

(창 17: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창 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 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창 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 18:10-15]

(창 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창 18: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창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창 18: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창 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아브라함이 온전히 믿었는? 사라가 온전히 믿었는가? 

그들은 웃엇다. 그런데 그 비웃음을 참 웃음으로 바꾸신 이는 하나님 이시다. 

이것을 통해서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능치 못한 것이 없으신 분- 전능하신 하나님, 내 이성으로, 과학으로, 상식으로, 도저히 안 될 것을 이루신 분. 


[창 21:1-7]

(창 2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 그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 

(창 21: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창 21: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창 21: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비로서 순종하는 아브라함) - 아브라함의 순종을 의로 여길 수 있을까?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시는 하나님. 

(창 21: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창 21: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창 21: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누가 믿곗냐만은 그것이 내게 일어났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을 알았다. 경험했다. 하나님은 애굽보다 크고 강하고,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그 분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러면 끝인가? 


이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신다. 

왜 시험하실까? 시험은 왜 치나? (그냥 공부하면 좋지 시험은 왜 치나? 공부한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약 1:2-4]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가 없어서 생긴 결과 - 이스마엘, 사울- 불순종의 예배)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완성시킨다. 끝마치신다. 

무엇을 통해서? 시험을 통해서 


시험이 없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또 기근이 오고, 또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방법대로 이루려 하고....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으니 하나님을 원망하고.... 매 번복되는 실패... 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기에... 


  • [히 11:17-19]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히 11: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히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 말씀을 읽다보면 아브라함은 아삭이 안 죽을 줄 알고 드렸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았다? 

이 시험의 중심은 두가지

 - 외아들을 드리는 것 (가장 귀한 것, 보물 같은...) -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브라함이 우상을 섬기는 자였고, 이스라엘의 힌놈의 골짜기에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치루어졌던 제사를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는 시험) 

 -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갈등, 충돌.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창 22장 1-2절 : 하나님의 말씀이 임함, 지금까지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그 분의 음성을 들음.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3일길을 가고 

5절 - 종들에게 이르되 여기서 기다리라. 


3절에서 먼저 이삭을 누구에게서 분리 - 사라에게서, 이것을 상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솔로몬의 재판 - 너의 믿음을 위해 네 아들을 죽일 수 있는가? 

                      - 엄마는 못한다. 절대 못 가게 하지... 

                      

 그리고 종들에게서 이삭을 분리 - 왜 데리고 가는가? 제사 할 때 필요한 나무 및 제사 기구들을 위해서 

 그런데 이삭을 바칠 때 그들과 분리 - 갈등을 미연에 방지 

-> 외아들을 바치는 시험 


두 번째 -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 사이의 갈등 - 이삭이 죽기까지 풀 수 없는 문제 

(창 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절)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절)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왜? 이삭을 통하여 자손을, 민족을 이룬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이건 죽이는 척 한 것일까, 정말 죽이려 한 것일까? 


이 납득이 안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99세 때 나타나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막혔을 때에 그 분의 전능하심으로 이삭을 주셨던 하나님. 

그 분의 방법을 믿지 못하고 조롱헀던 나를 이삭을 통해 믿게 하시고 진짜 웃음을 주셨던 하나님.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내 모든 이성과 생각과 방법을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비로서, 마침내 믿은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십자가의 신앙을 넘어 부활의 신앙을 본 것이다. 


지금까지 우상숭배하며, 늘 머뭇거리고, 비겁하고, 하나님을 비웃으며, 인간적이 방법을 앞세웠던 아브라함이 온전히, 부족함 없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그 결과가 여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창 22:12) ...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곳이 모리아산 - 다윗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곳- 그리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곳 


모든 우상의 제사가 사람으로서, 자식을 바침으로서 드려졌던 그 시대에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믿음은 이제 하나님을 믿는 어떤 예배에서도 사람의 제사가 아닌 반대로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우리의 구원이 일어나게 되는 

오직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 이성과 믿음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믿음 - 임마누엘 칸트, 

스피노자 - 성경 안에서의 모든 이적과 신비를 제거

내 한계에서 못 벗어나는 것 

그런데 신앙은 끊임없이 나를 벗어나는 것 


  • 맹신과 신앙 

맹신은 말씀이 기초가 아니고, 자기의 신념에 근거한 맹목적 믿음- 시작이 나에서 시작하고 말씀이 아닌 다른 권위에의 복종 

신앙은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시작 - 영적 분별이 반드시 필요. 


그는 왜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인내와 믿음과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분량에까지 자란 우리 모두의 신앙의 여정의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Posted by 소리벼리

기      도

 

당신과 만나기 위해 난 꼬불꼬불 꼬여 있는

내 마음의 복잡한 길들을 헤매어야 합니다.

 

가시덤불을 치우고

돌멩이를 거두면서

가장 은밀한 곳, 당신이 앉아 있는 그 방문의 큰 돌 문을

치워야 합니다.

 

내 안의 깊은 돌을 제하지 않으면 난 당신께 한마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한 마디 말도 당신이 들을 수조차 없습니다.

 

내가 보기 싫어서 내팽개쳤던 그 쓰레기장 같은 찌꺼기들을

난 하나하나 주워 담아야 하고

벌거벗은 내 모습 그대로를

당신께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토록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더러웠던

내 마음 가장 깊은 내 모습을

당신은 비로소

어루만져 주십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냥 사랑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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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TAG 기도
 

여로보암의 길 (왕상 11:28-38절) 


지난 주 나눈 솔로몬 - 인류 역사상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인물- 지혜와 더불어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 

그런데 왜? 그가 여호와를 사랑헀다. 일천번제를 드린 이유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듣는 마음, 곧 지혜를 구한 이유도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 


(왕상 3: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을 그의 아버지 다윗이 말한 것을 따라 삶으로 보여 주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혹은 훈련에 의해서 말씀을 따라 살 수는 있다. 바리새인들처럼... 

달리 말하면 율법대로,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해서 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는 없다. 댜른  목적을 위해서..인정받고, 복받고,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데 거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사랑하는 경우는 없다. 

성경은 꼭 찝어서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고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다"라고 말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사랑받기 위해서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그 말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심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지금도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 넘치도록 채워 주신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했고 도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았던 솔로몬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왜? 이방여인들과 결혼하면서 그들을 사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왕상 11: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 

하나님의 계명 - 너희는 그들과 통혼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그러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2절)  


그 결과 -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3절) 


9절) 솔로몬이 마음을 둘려- 완전히 뒤 돌아섰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1절)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그런데 12절에 보면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바로 그 신하가 여로보암 -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다윗과 솔로몬이 속한 유다지파와 또 다른 한 지파 베냐민 지파만 제외하고 통째로 주었던 그 신하. 


이 후로 이스라엘은 남왕국 유다(유다와 베냐민) 북왕국 이스라엘 (10지파) 

북왕국 이스라엘 - 19왕

남왕국 유다 =- 20왕 

남왕국 유다- 대개가 악햇지만 간간히 선한 왕들, 아사왕, 여호사밧왕, 히스기야, 요시야,

그런데 북왕국 이스라엘은 19명의 왕중 선한 왕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악한 왕들이 나올 때마다 후렴구처럼 따라오는 말이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가 처음부터 악한 것을 위해 선택된 악한 왕이었을까? 그는 왜 악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우리는 그를 통해 어떤 자가 실패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살펴 볼 수 있어야 한다. 

왜? 성경은 역사의 객관적 기록이기 보다는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이기 떄문이다.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으로 아버지 느밧을 이어 솔로몬의 신하였다. 


(왕상 11:28) 이 사람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 솔로몬이 이 청년의 부지런함을 보고 세워 요셉 족속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더니


그는 용감했을 분만 아니라 성실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실로의 선지자 아히야로부터 하나님이 그에게 열지파를 주게 될 것을 듣게 된다. 

그것을 예언하는 것도 마치 그를 위한 이벤트를 여는 것과 같이 특이하게 예언을 합니다. 

선지자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고 그와 단 둘이 들에 있을 때에 자기가 입은 새 옷을 잡아 열 두 조각으로 찢어 여로보암에게 "너는 열 두 조각을 가지라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겠다"고 말합니다. 


"찢어 주겠다"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갈라서게 되리라는 표현도 되지만 그것을 찢을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지요. 마치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먹이시며 내 살과 피를 떼어 주시는 모습처럼 하나님을 떠난 솔로몬을 향한 안타까운 모습과 그것을 용감하고 부지런한 종 여로보암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묻어나는 표현입니다. 


32절) 내 종 다윗과 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 

그 한 지파?> 베냐민 

에브라임과 베냐민 - 사사기 마지막 부분 

에브라임 출신의 레위인의 아내가 바람이 나서 예루살렘으로 와있는 것을 데리고 가다가 베냐민 땅에서 아내는 그 지역 사람들로부터 강간을 당하여 죽고 이에 그 레위인이 시체를 토막내어 열두 지파에게 보냄으로 베냐민 지파가 거의 멸종되다시피...


그러니까 에브라임 사람 여로보암의 입장에서는 큰 혹을 떼어 주는 것과 같은 

 

 솔로몬에게는? 그 베냐민 지파에서 누가 나오는가? 바로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 

 그럼 다윗왕이 속한 유다 지파와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는 사이가 좋을까? 

 솔로몬에게는 혹을 붙여준 격. 

 

 그렇게 하면서 그렇게 하는 이유를 33절 

(왕상 11:33)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


왜? 나를 버리고 우상숭배 했기 때문에....


그러면서 여로보암에게는 무엇이라 말하는가? 

[왕상 11:37-왕상 11:38]

(왕상 11:37)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왕상 11:38)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마음대로 다스려라. 그런데 내 말을 지켜 행하면 다윗에게 한 것 같이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얼마나 큰 은혜인가? 왜 그 영광이 솔로몬에게서 떠나 자신에게 주어졌는지를 가르쳐주고 네 마음대로 다스려라 . 그런데 내 말에 순종하면 네 집- 대대로 왕조를 이루게 하리라. 


그 후 솔로몬이 죽고 이 말씀대로 여로보암이 열지파를 소유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이스라엘 나라의 이름을 그가 취하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베냐민 지파와 유다지파만을 다스리는 그야말로 처참한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그럼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처신하겠습니까? 하나님께 경배하고 솔로몬이 한 것처럼 예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로보암이 왕이 되자 가장 걱정 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왕이라는 자리를 배앗길 염려부터 합니다. 


[왕상 12:25-33]

(왕상 12: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왕상 12: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이 나라가 다시 다윗에게 가면 어떡하지?) 

(왕상 12: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왕상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애굽에서 인도한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 신들이라-> 하나님이 아닌 완전한 우상으로... (출애굽기의 황금 송아지... 자기들이 경험한 하나님, 여로보암의 황금 송아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그저 자기들을 이롭게 하는 신) 


(왕상 12: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왕상 12: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왕상 12: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왕상 12: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왕상 12: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그들의 예배 - 하나님 아닌 황금 송아지 - 그들의 신들 .. 

                  - 레위인 아닌 자격없는 제사장 

                  - 그들이 마음대로 정한 절기.

                  - 성전이 아닌 산당 예배 


그래서 이 행위로 말미암아 전국에 흩어졌던 모든 레위인들이 이스라엘을 떠나 유다에 집결하게 되는 결과 

전국에 흩어졌던 참 예배자들이 이스라엘을 떠나 유다로 향하게 되는 결과. 


두 번의 경고 


1.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 

[왕상 13:1-왕상 13:2]

(왕상 13:1)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왕상 13:2)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유다 말기의 요시아왕에 대한 예언을 이미 여러보암 때에....


2. 아히야를 통해 (왕상 14:1-20) 

자기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서 자기 아내를 변장시켜 실로의 제사장 아히야 (자기가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헀던 선지자에게) 

그는 이미 노쇄하여 눈이 보이지 않는 노인 


이 아이가 어떻게 될 것인가? 


[왕상 14:7-왕상 14:10]

(왕상 14:7) 가서 여로보암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왕상 14:8)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왕상 14:9) 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왕상 14:10)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 그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체를 버리심 

(왕상 14:16)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 솔로몬과 여로보암 

여로보암 - 솔로몬 못지 않은 축복을 받은 사람. 과부의 아들이었던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이 솔로몬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나라 전체의 왕이 됨. 

왕이 되기 전의 그의 모습 - 큰 용사, 부지런한 자 

왕이 되고 나서 그의 모습 - 왕에서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자 

그의 두려움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복


자기의 죄가 드러나자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두 왕 - 사울과 다윗 

사울: 자기가 왕에서 물러나게 될 까봐,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까봐 

다윗: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 그의 두려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솔로몬의 실패 원인: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김... 그러다가 하나님보다 여인들을 더 사랑하게 됨 

여로보암의 실패 원인 : 하나님을 두려워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두려워하고 세상을 잃어버릴까 더 두려워함. 

 

 만약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었다면 이스라엘의 역사, 세상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Posted by 소리벼리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 (열왕기상 3장 2-13절) 


오늘은 솔로몬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성경에 있는 인물 중 솔로몬처럼 논란이 되는 인물도 많지 않습니다. 그를 선한 자로 볼 것인가? 악한 자로 볼 것인가? 

그를 본받을 자로 볼 것인가? 닮아서는 안 될 자로 볼 것인가?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자였을까? 


그는 출생에서부터 어쩌면 그릇된 자였습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게 태어난 아들. 

성경은 밧세바를 칭할 때마다 다윗의 아내라고 하지 않고 우리아의 아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의 족보를 전할 때에도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씁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다윗의 자녀들 사이에서 늘 따돌림 당하는 자녀였습니다. 같이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의 가장 큰 실수는 정략결혼을 통해 수많은 이방여인과 혼인하고 그 댓가로 그 여인들과 함께 수많은 우상 숭배가 행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이후로 이스라엘은 그 댓가를 혹독하게 치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구약에서 모세 다음으로 많은 성경을 남겼습니다. 

그가 남긴 성경은 잠언, 전도서, 아가서인데 초대교회 영성가들에게 솔로몬의 성경은 인간의 영혼육을 위한 말씀으로 각각 읽혀지고 해석되어져 왔습니다. 

그가 남긴 성경들은 그가 과연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에 빠뜨리게 한 장본인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교훈과 지혜의 말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삶에서 가장 유명한 이른바 일천번제를 통해서 그가 하나님께 이른바 지혜를 얻게 되는 장면입니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솔로몬이 왕 위에 오르자 다윗의 유언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먼저 정리합니다. 다윗이 죽고나서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는 것은 순탄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아들들이 많았고 그 중 솔로몬의 세력은 미약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정리하며 자가세력을 견고히 합니다. 


그것이 열왕기상 2장까지의 내용입니다. 

2장 마지막절 46절의 끝을 보면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급한 불을 끄자 그가 행한 것은 이른바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이른바 일천번제를 드린 것이지요. 

일천번제를 그린 날 밤에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이른바 금도끼 은도끼를 연상하는 일을 벌이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지혜를 주십시오. 

네가 너를 위해 장수도, 부귀도, 원수를 멸할 힘도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하니 장하다. 내개 지혜도 주고, 덤으로 부도 주고 명예도 주겠다. 

동화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또한 실제 일어난 일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의 서양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가장 지혜로운 자로, 가장 부유한 자로 여겨지는 실존인물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사건을 모델로 하나님 앞에 복받기 위해서 일천번제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천일 기도를 드리듯이 천번의 헌금을 작정해서 드리기도 하고 아이들이 나면 지혜 구하면 다른 것 다 주시니까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지혜를 원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구하면 다른 것 다 주시니까 구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복신앙의 대표 유발자가 일천번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일천번제 드리면 정말 감동하실까? 

아니면 그 물질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시는 것인가? 


인류 역사상 하나님께서 이토록 한꺼번에 큰 축복을 무더기로 부어 준 역사가 솔로몬 이전에도 없었고 또한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이토록 큰 축복을 부어주신 것일까?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일까? 


너무 흔하고 진부해서 흘려 지나갈 수 있는 구절이지만 성경은 솔로몬이 축복받은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상 3: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정확한 표현은 "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이 말한 모든 법도와 함께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라는 표현입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했다."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뭐 솔로몬 하나뿐이었나? 


성경을 샅샅이 뒤져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그 백성을 사랑하는 표현은 많지만 "누가 하나님을 사랑헀다" 라고 객관적으로 진술한 구절은 이 곳이 유일합니다. 

다윗의 시편을 다 뒤져 보아도 오직 한 번 

(시 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의 고백으로 한 번 표현될 뿐입니다. 객관적인 서술로서 표현 된 것은 솔로몬의 이 서술 한 번 뿐입니다. 


그가 일천번제를 드린 것- 물론 그것은 천일을 드린 것이 아니라 단 번에 드린 제사지요. 

왕이니까 소 천마리 잡는 것이 얼마나 클까? 

왕이지만 금액으로 환산해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예배를 드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왜?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거룩하게 준비한 예물로서 번제를 드리고, 그 마음에 흡족하지 못하면 심판을 당하고, 두려움에 떠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은 특정한 몇몇 인물들 뿐이었습니다. 


신명기서에서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이런 구절이 수십차례 반복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실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언제나 순종하면 복, 불순종하면 저주....하는 인관관계의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 숭배의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솔로몬은 하나님을 그토록 사랑하게 되었을까? 사무엘하 12장 24-25절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삼하 12: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삼하 12: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서두에서도 말씀한 바와 같이 솔로몬에게는 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아들이라는 불륜과 죄악의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녓습니다. 

그 이유로 첫 아들도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탄생에서부터 죄악 가운데서 두려움 가운데 태어난 자녀였습니다. 또 죽어도 아무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났을 때,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했다. 용서헀다. 아끼셨다. 그래서 특별히 여디디야라고 애칭까지 붙여 주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왕이되기까지 솔로몬 앞에는 쟁쟁한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암논을 설명할 때도, 압살롬을 설명할 때도 그렇게 준수하고 멋있게 그들을 표현합니다. 

솔로몬은 서열상으로 보나도 왕이 될 수 없었던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윗의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이스라엘의 왕 위에 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를 사랑하셨고 솔로몬은 그 사랑에 감격해서 역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 표현이 일천번제라는 예배로 나타난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경 중에 아가서는 왕과 술람미 여연의 사랑을 다룬 시 입니다. 

슬람미 여인은 아가서에 보면 왕의 사랑을 지극히 받지만 피부가 검어서 다른 여인들로부터는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는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아가서를 해석하면서 왕은 누구고 술람미 여인은 누구일까 궁금해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이나 성서 학자들은 다윗이 말년에 얻은 마지막 부인인 아비삭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수넴여인으로서 아비삭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되며 밧세바가 다윗을 찾아가 솔로몬이 왕이 되도록 하는 장면에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즉 다윗과 솔로몬의 왕위 계승의 현장을 가장 가까이 목격한 여인으로 열왕기상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동시에 술람미 여인은 아무런 자격이 없음에도 왕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위까지 오른 솔로몬 자신을 나타낸다라고 주장되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거의 흠없는 삶을 살았던 다윗에게 어쩌면 솔로몬 이라는 자식은 자신의 죄악을 떠올리게 하는 아킬레스 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끝까지 지극히 사랑했고,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아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는 아름다운 영예를 얻게 됩니다. 마치 예루살렘에 거하는 많은 여인들 중에서 끼이지 못하고 햇빛에 그을린 피부를 가지며 포도원을 돌보는 술람미 여인의 모습은 왕실 내에서 다른 형제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죄악의 그림자 아래에서 열등의식을 가지며 자라왔던 솔로몬의 자화상이기도 한 듯 합니다. 


아가서는 그 노골적인 표현으로 오랫동안 교회 내에서 금서가 되기도 헀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영성가들에게는 영훈련서나 메뉴얼로서까지 여겨졌던 영적인 설서였습니다. 

솔로몬은 이 아가서를 스스로 이름 붙이기를 "Song of songs", 노래 중의 최고의 노래라고 잠언보다, 전도서보다, 어떤 시편보다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정말 사랑했고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한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아낌없이 모든 것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을 사랑헀던 솔로몬을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 (왕상 3: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 구절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과 동시에 그의 치명적인 약점을 또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솔로몬은 여호와를 사랑했는데 단 이것만 빼고, "EXCEPT"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만 빼고"라고 구태여 써 놓습니다. 

이 때는 어차피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라서 구태여 쓸 필요가 없는 표현인데도 EXCEPT라는 말을 쓰면서까지 그의 산당예배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왕상 11장을 다같이 펴봅시다. 

[왕상 11:1-8]

(왕상 11: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왕상 11: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상 11: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왕상 11: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왕상 11: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왕상 11: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왕상 11: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왕상 11: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각각 다 그와 같이 산당을 짓고 몰록 제사(아이를 바치는 제사) - 몇명에게? 천명에게...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김으로 그 축복이 다 사라져버림... 

죄는 하나님을 잊는 것이 아니라 겸하여 섬기는 것이다!!!!


  • 또 지혜를 주면 이것 저것 겸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은 왜 지혜를 구했는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지금의 언어로 표현하면 주의 영광과 내게 맡기신 양들, 형제들을 위해서... 

초점은 자기를 위해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영혼을 위한 구함이었다는 것. 

하나님을 감동시킨 또 다른 이유... 


  • 신약 시대에 이렇게 주를 사랑한 사람하면 또 오르는 세 인물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린 여인- 마리아 

벳세다- 가난한 동네, 그렇지만 주님이 오시면 늘 찾아갔던 그 집에서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가지고 나와서 주님 발 앞에 붓고 머리고 그 발을 씻김. 왜? 너무나 사랑해서... 

값으로 설명이 안되는 사건 -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그걸 팔아서 다른 일에 쓰거나 아니며 발에 붓지 말고 선물해서 조금씩 쓰게 하지...

'

(마 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주님도 너무 감동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 사랑을 알리게 하셨다. 


  • 베드로와 요한 

"네가 날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에게 주신 말씀 " 내 양을 치라, 먹이라" 마치 솔로몬이 주의 백성들을 먹이고 치리하는 것처럼 너도 그들을 쳐라. 먹이라. 

그에게 주신 약속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너에게 줄 터이니...

[마 28:19-20]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의해서 구원받았고 은혜 받으며 그래서 예배합니다. 

그런데 우린 얼마나 그 분을 사랑하는가요?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했더니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부어주셨습니다. 


지금은 안 그럴지도 모릅니다. 왜? 너무 부어 주니까 오히려 망하는구나...

그렇지만 솔로몬에게 부어 주셧던 그 마음은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정말 아낌없이 모든 것을 부어주시는 그 마음은 한결같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맡긴 것이 영혼입니다. 주의 백성에게 그 사랑을 알리게 하십니다. 


솔로몬만 그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린 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의 백만분의 일 만큼이라도 내가 주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 분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주를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