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2018  이전 다음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  

제 12 강 영성학교 제 1 기 총정리   



이제 우리는 12주 동안에 기독교 영성의 대략의 역사와 실천 등에 대해 다루고 배워 왔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기억하시며 함께 생각하고 나누어 봅시다. 

  1. 지금은 어느 때보다 영성이 강조되고 활발하게 이야기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영성"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영성을 배우고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초기 교회의 성도들에 있어서 신앙적인 삶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통로는 성서, 예배, 공동체(교회)를 통해서였다. 이 때의 영성과 지금 자신의 신앙, 혹은 현대 교회에 있어서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1. 초기 교회의 영성은 순교의 영성-> 수덕적(금욕적) 영성-> 수도원적 영성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 발전에 있어서 중심이 되었던 정신은 무엇인가? 이 때의 신앙의 형태와 지금의 형태, 혹은 목적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1. 그레고리 닛사는 기독교란 "신성을 닮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육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세계로 나가는 것을 구원의 과정으로 보았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결국 육적인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이 알고 익숙해져 있는 삶으로부터 점점 더 무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이른바 "부정 신학"을 주장했다. "하나님과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편견을 다 제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면 하나님의 사랑이 더 깊은 세계, 보이지 않는 곳에 보이고, 생각하지 않아도 감지되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 당신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편견을 깨어 나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는가? 


  1. 초대 교회 교부 중의 하나인 마카리우스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삶은 고난 속에 주님의 낮아지심에 참여하여 그의 뒤를 쫓는 제자의 삶이며 그 삶 속에서 참 신자는 나그네와 이방인처럼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초탈함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가난과 고난을 겸손과 인내로 겪으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제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살고 있는가? 


  1. 중세의 타락한 교회의 역사 중에서 가장 영향을 끼친 프란시스코를 이끈 두 가지 말씀은 "가서 폐허가 된 내 집(교회)를 고쳐라!"는 말씀과 마 10:9-11의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는 말씀이었고 그 말씀을 토대로 이른바 "자원하는 가난"을 중심으로 한 가난의 영성을 주창했다. 그의 영성이 현대교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1. 전쟁과 흑사병으로 인구의 절반이상이 죽어간 중세의 후기에 노리치의 줄리안은 환시를 통해 "어머니 하나님"의 이미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한 "희망의 영성"을 제시했다. 우리가 가진 신앙에 있어서 가부장적인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혹시 무서운 아버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1. 마틴 루터,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의 영성과 가톨릭 영성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무엇인가? (구원의 방법과 성화) 개신교 영성에 있어서 가장 핵심의 주제는 무엇인가? 


  1. 요한 웨슬레는 지나치게 교리 중심이었던 개신교 영성의 흐름에 있어서 가톨릭의 "거룩한 삶"의 영성과 개신교의 "믿음(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전통을 하나로 묶는 시도를 하였다. 이것은 개신교의 본 정신을 살리며 삶의 변화를 이끌게 하는 개신교 영성의 중요한 모델을 제시한다. 그의 영성의 중심에 소그룹 운동이 있다. 소그룹이 영성의 발전에 끼치는 영향력은 무엇인가? 


  1. 가장 기억에 남는 기도의 방법, 실천은 무엇이었는가? 


11. 한국교회의 영성 

한국교회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큰 부흥과 성장을 이룬 나라이다. 선교사 파송에 있어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하고 있고, 성도 수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 세계에서 가장 큰 50대 교회 중 20개이상의 교회가 한국교회이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도수를 자랑하는 교회 역시 한국의 교회이다. 그럼 한국교회의 영성이라 말할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인가? 

  • 기도의 강조 : 새벽기도, 철야기도, 통성기도, 기도원 운동
  • 말씀의 강조 : 설교와 성경공부 
  • 선교의 강조 
  • 물량주의 
  • 세속주의와 결탁한 신비주의   
  • 신앙과 삶의 부조화 (주일중심, 건물중심, 성직자 중심)



Posted by 소리벼리

제 11 강 요한 웨슬레 (1703-91)  와 시편 139편 묵상 

  1. 웨슬레 영성의 배경  

  • 웨슬레는 역사적, 교리적으로 융화되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켰던 가톨릭의 "거룩한 삶"의 전통과 개신교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전통을 하나로 이으려는 시도를 하였다. 
  • 그의 영성은 종교 개혁 이래로 계속 되어져 온 개신교의 발전의 역사의 흐름 안에서 이해 될 수 있다. 

a. 경건주의: 은혜에의 참여, 은혜의 결과. 경건주의자들은 하나님과의 연합 및 구원의 믿음의 결과와 증거로서의 선한 행위를 모두 강조했다

b. 성공회 전통은 또한 웨슬레에게 거룩한 삶과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예배의식 (기도, 성경에 대한 탐구, 성찬식 등)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하였다. 

c. 영국 청교도들은 은혜와 성화의 교리에 있어서 "회심" 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에서 웨슬레는 종교개혁자들의 은혜의 중요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기독교인의 완전을 향한 영적인 여정을 강조"했다. 

  • 웨슬레의 위대성은 분리되어 있던 두 가지 영성의 축 (은혜의 구원과 성도의 거룩한 삶)을 하나로 이끈 그의 탁월성에 있었다. 그는 내적 믿음과 외적 선행, 개인적 경건과 공동체적 사귐,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응답, 영적인 경험과 사회 참여, 금욕적 동기를 삶에 대한 적극성을 하나로 통합했다. 
  • 다시 말해 웨슬레는 개신교의 "믿음의 교리"와 가톨릭의 "거룩의 강조"를 하나로 만들었으며 외적으로 상반되는 듯한 칭의와 성화 및 기독자의 완전의 신학적인 정의를 명확하게 했다. 웨슬레에게 이러한 교리는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내적인 영적 과정의 단계였다. 칭의 및 성화, 기독자의 완전은 은혜의 절대성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응답으로서 인간 영혼의 참여를 전제하는 것이었다. 


  1. 웨슬레 영성의 발전 

  • 출생과 성장: 웨슬리의 조부와 외조부는 성공회를 반대하여 강단에서 추방될 정도로 고난을 당한 청교도 전통의 성직자들이었다. 그러나 웨슬리의 아버지 사무엘과 어머니 수잔나는 이런 비국교도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회에 속하게 되었다. 한편에 웨슬레의 부모는 근면, 검소, 정직 등의 덕목을 지키는 매우 국교도이면서 동시에 청교도적인 신자들이었다. 피할 수 없이 웨슬리는 성공회와 청교도의 영향을 두루 받으면서 자란 것이다. 웨슬리는 나중에 성공회와 결별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스스로는 성공회원으로서 여길 정도였다. 그가 나중에 갖게 된 내적 확증과 같은 것은 성공회에서는 극히 위험스럽게 여겼지만, 그러나 애국적 태도라거나, 성찬의 영성이라거나 하는 것은 결코 성공회와 다르지 않은 영성을 그가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내준다.
  • 옥스포드에서 (1725-28):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쳐치 대학을 졸업하고 1725년에 서리사제(deacon)로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는 옥스퍼드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1725-1728), 이 때에 웨슬레는 성공회의 저술가인 제레미 테일러(거룩한 삶과 죽음의 규범과 실천)와 토마스 아켐피스(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고 윌리엄 로(기독자의 완전)과 같은 책들에 심취하게 된다. 
  • 홀리 클럽 (1729-35): 1729년에 링컨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하여 옥스퍼드로 돌아왔는데, 동생 찰스등이 함께 하는 신성 클럽의 지도적 인물이 되었으며, 이 모임을 통해 멤버들은 옥스퍼드 감옥을 방문하고 그들의 빚을 갚아주고 자녀들을 가르치는 등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노력을 하였다. 웨슬레는 홀리클럽을 통하여 사회적, 예전적 상황에서 그의 영성을 발전시켰다. 그에게 있어서 영성은 독립된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귐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공동체를 강조하면서도 내적 거룩의 열매로서 사회적 참여와 외적 선행 또한 강조했다. 또한 그는 홀리 클럽의 멤버들에게 교회의 예배 및 예식을 은혜의 수단으로서 신실하게 참여할 것을 강조했다. 영국 교회의 은혜의 수단의 개념들은 웨슬레에게 예전적인 틀을 제공했다. 
  • 조지아 (1735-37): 조지아에서 웨슬레는 여러 번의 영적인 경험과 신학적인 작업을 이루었고 이는 후에 감리교 조직의 기틀을 갖추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그는 독일어를 공부하여 많은 수의 독일어 찬양을 번역했다. 웨슬리는 1735년에 신대륙 거주자를 위한 선교사역을 떠났는데, 배를 타고 오고 가며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풍랑에 배가 요동할 때 자신은 두려워하는데, 모라비안 교도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찬송을 하는 것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조지아주에 머물면서도 모라비안들과 교류하였다. 
  • 모라비안 교도와 올더스게이트의 회심 경험 (1738-39): 폭풍우치는 배 위에서 만난 모라비안 교도와의 만남은 그의 신앙에 도전을 주었고, 이로 말미암아 그는 "믿음에 의한 칭의와 믿음에 의한 삶이 실재적인 삶으로 인도되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1738년 올더스 게이트 채플에서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 낭독을 듣고 극적인 변화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움을 느꼈다. 나는 그리스도를,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내 모든 죄악들을 제거하셨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 모라비안 교도와의 결별 (after 1739): 그러나 웨슬리는 항상 모라비안에게 배우면서도 그들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무엇보다 모라비안 교도들의 지나친 ‘오직 믿음’의 태도와 정적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은혜의 수단 및 선행의 중요성에 대한 재고를 통해 그는 모라비안 교도와 결별하게 된다. 


  1. 웨슬레 영성의 특징 

  • 은혜 구원과 거룩한 삶과의 정교한 조화: 웨슬레는 믿음과 거룩, 칭의와 성화의 조화를 추구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과 성화에 있어서 모두 필수적이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과 달리 은혜는 인간의 협력을 통해 성취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재적 은총이 있다. 구원은 분명,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은혜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동의를 요구한다. 게다가 성화된 삶, 거룩한 삶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영적 훈련, 순종을 통해서 자라나고 유지된다. 

  • 다른 신자들과의 교제: 웨슬레에게 영성은 개인의 경건에 극한 된 것이 아니고 다른 신자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표현되어지는 것이다. 
  • 삶의 전 영역에서의 영성: 웨슬레는 개인이건 공동체이건 교회 안에서의 영적인 삶에만 성도의 삶을 제한 하지 않고, 삶의 전 영역에서의 영성을 주장했다. 삶의 전 영역이란 세속적인 일이나 더 넓은 사회도 포함한 것이다. 
  • 내적 거룩과 외적인 열매: 영성은 내적이며 동시에 외적이다. 내적 영성은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어 가는 것이고, 외적인 영성은 다른 성도들과의 사랑을 키워가는 것이다. 내적 거룩과 외적인 열매는 항상 같이 간다. 


4. 웨슬레의 영적 훈련: 소그룹 안에서 영적인 성장 추구 

  • 소그룹 활동: 웨슬레가 이룩한 영성에서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는 바로 소그룹 활동이다. 소그룹 활동은 영적인 성장을 위한 중심지였다. 
  • 은혜의 수단: 거룩한 삶을 위해서는 다양한 은혜의 수단들이 필수적이다. 소그룹을 통해 영적인 여정을 수행해가면서 개인은 예정된 시간에 은혜의 수단에 참여하고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 
  • 사회적 의무: 웨슬레는 소그룹을 통해서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적 의무와 영적인 성장 사이에서의 조화를 추구했다.  
  • 개인의 영적인 성장의 목표: 개인의 영적인 성장의 목표는 공동체의 이상, 즉 교회의 목적과 이상을 깨닫는 것이다. 



II.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기도 (시편 139편 묵상)

  1. 하나님이 어떻게 부르시든지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갈망을 달라고 요청하면서 영적 자유함을 구하는 기도를 다시 드린다. 어떤 것이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사용해서 주의를 집중한다. 예를 들면, 깊은 호흡을 반복하거나, 한 두개의 단어를 반복하다가 침묵 속으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몇 분 가량 침묵 속에 머문다. 
  2. 조용히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라. 그 분이 말씀하시고 나는 그 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영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1-3절)

  • 당신은 하나님께서 속속들이 아신 바 되었습니다. 완전히 아신다는 사실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안도감, 두려움, 흥분됨…?
  •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에게로 더 가까이 가기 원합니까? 아니면 숨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고 싶습니까? 
  • 당신을 아는 분이 누구인지가 당신에게는 얼마나 중요합니까? 


주께서 나의 앞 위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였나이다. (5절)

  • 둘러 싼다는 것은 울타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 울타리는 안전감을 제공해 줍니까, 아니면 꼼짝 못하게 묶어버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역설적이게도 둘 다입니까?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6절) 

  • 이 신비 안에서 잠시 머뭅시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도서 저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께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7-12절) 

  • 당신은 이 친밀함에서 도망하기를 원합니까?...아니면 그 안에서 쉬기를 원합니까? 사랑이 많고 자비로운 하나님께 완전히 알려짐으로써 오는 자유함이 점점 당신의 존재 속에 스며들게 하십시오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고, 가장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아닌 어떤 것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음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3-16절) 

  •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보다 훨씬 더 무한정하게 큽니다…?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깊은 관계에 대해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운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 시편 기자의 감탄이 당신 안에서도 자라나게 하십시오. 그러나 우리 안에는 폭력적인 어두운, 죄악된 부분들도 있습니다. 이것들 역시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19-22절) 

  • 당신 안에 있는 이런 부분들까지도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습니까?...당신은 하나님이 이미 알고 계시는 것을 당신 것으로 받아들이십니까?...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에서 일하시도록 허락할 수 있습니까?...당신은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정의를 행하시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 (아멘, 그대로 이루어지이다


Posted by 소리벼리

제 10 강 인문주의와 칼빈의 영성  

  1. 칼빈의 영성의 배경 – 인문주의 (Renaissance Humanism) 

  • 인문주의:

-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중세시대는 신중심, 교회 중심의 보편적이고 변치 않는 진리와 신학을 강조한데 반해 인문주의는 인간개인과 사회 속에서의 인간의 역할이 주된 관심이었다. 

  • 인문주의자들의 영성: 하나님은 인간과 영원히 근본적으로 다르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분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초월자이시다. 따라서 인간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활동인 계시를 통해서 경험한다. 따라서 인간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향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초월적인 하나님은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시는 아버지로 느껴지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신앙인의 목적이 된다. 

  1. 칼빈의 삶 

  • 존 칼빈(1509년~ 1564년) 은 장로교를 창시한 프랑스의 개신교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이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파리대학에서 인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변호사로 양성되었지만 그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적용하여 종교개혁에 접목시켰다. 그는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집대성하여 종교개혁 및 장로교의 근간을 형성했다. 
  • 또한 영국 청교도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는데, 청교도들은 성공회의 온건한 종교개혁에 반대한 칼뱅주의 개신교도들로서, 그리스도의 율법아래 복종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성서의 권위를 강조하였다. 칼뱅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오직 성서(Sola Scriptura)를 주장하여 신앙의 진정한 권위는 성서에 있지, 교회에 있지 않음을 선언한 종교개혁자이기도 하다. 
  

    칼빈의 신학

  • 그는 인문학자로서 성경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성경의 읽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그는 중세시대의 수도원의 사회적 배타적인 성격을 이유로 서구카톨릭의 금욕적인 영성 전통에 반대했다. 그의 신학은 반대로 사회참여적이고 포용적이다. 
  • 칼빈에게 있어서 영적인 지식은 지식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이다. 그는 "진정한 믿음은 머리보다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며 이해보다는 하나님의 영향력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단순한 지적 지식은 무용한 것이다. 또한 믿음은 현실세계에서 필요하고 적용가능한 실용적인 것이다"고 말한다.  
  • 자신의 교만함을 야기시키는 선행과 덕은 믿음과 상반된 것이다. 
  • 그의 신학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초월성과 인간의 절대적인 의존상황을 강조한다. 
  • 그는 심판하시고 무서운 하나님보다는 온화하고 친절하며 인간에게 공감하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강조했고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에 비유했다. 그 사랑 때문에 칼빈의 예정론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 아닌 안전하고 위안을 주는 교리였다. 
  • 인간의 절대적인 부패성에 대한 교리는 인간에게 선한 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아에 있어서 스스로 구원을 취할 수 있는 죄의 영향력을 벗어난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 죄는 단순히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데서 발생된 신앙적인 것이다. 그는 영적인 자기 점검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의 자신의 죄의 추악성을 발견할 수 있고 이 발견과 자각이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도한다고 주장했다. 
  •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를 부정함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이라는 두 가지 통로에 의해서 성도에게 이뤄진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모든 의지를 그 분의 뜻 앞에 복종할 때 하나님은 진정한 나의 왕이 되신다. 
  • 그는 가톨릭의 타락에 몹시 울분을 느꼈으며 이미 교황청은 고위 성직자들의 욕망과 권력 때문에 은혜의 구원의 복음으로부터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말씀의 권위 회복을 통해서 흩어져 있는 믿음의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데 열정을 기울였다. 
  • "행동과 실천"은 그의 영성의 궁극적인 표시였다. 인간은 일하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그는 사회를 위해 쓸모 있게 일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하며 가톨릭의 수도원을 비판했다. 
  • 그는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라고 인식했으며 교회를 이상적인 사회공동체로 생각했다. 그는 성찬식을 교회의 공동체성과 하나됨, 일치의 중요한 상징과 통로로 보았다. 
  • 영성적인 생활은 이 세상에서 인간 존재의 목적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관계를 강조했다. 
  • 그는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구성된 교회직제의 기초를 세웠다. 칼뱅은 "하나님이 구원과 멸망을 이미 예정해 놓았다. 그걸 바꿀 수는 없다. 사람은 단지 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는 예정설을 주창했다. 그의 예정설을 놓고 개신교 내부에서도 격한 논쟁이 일었다.
  • 칼빈은 죽음의 순간 직전까지 목회적 사역에 전념하였다.  칼빈은 '완전히 탈진한 채' 설교했고, 모세 오경의 마지막 네 권에 관한 주석을 마쳤고, 여호수아서 주석을 재고했고, 신약성서 번역과 각주들을 검토했으며, 그가 죽기 8일 전까지 자신의 편지들과 저술들을 받아쓰게 했다. 목소리와 숨이 결국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그는 운명했다.
  • 지성과 영적인 것의 통합: 경건과 교육의 결합을 통해서 신학은 경건의 교리가 되었다. 

  1. 칼빈의 영성 

  1. 그리스도와의 연합칼빈의 영성의 가장 중심적인 개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이는 그의 신앙과 신학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그의 중심사상이요 신앙의 핵심이 된다.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통하여 우리가 그와 하나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 연합으로 이루어진 긴밀한 관계를 통해, 그가 이루신 모든 것을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선물을 전달받는 것이며 그의 유익을 받는 것이다.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실 때까지 우리는 이 비할 데 없는 선을 가질 수 없다"고 고백한다 
  2. 성화의 영성 

  • 루터가 칭의를 강조한데 반해 칼빈은 칭의 이후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시작되는 성화를 강조했다. 칼빈의 ‘성화’의  영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중세 이래 뿌리 깊게 내려온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의 사상이다. 이 사상은 머리에만 머무는 공허한 관념이 아니라 고대 기독교 이래 수도자들과 중세 수도원 전통을 통하여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그리스도를 본받는 영성’ 전통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 칭의는 외적 변화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인간의 상태에 관한 사법적 행위이다. 성화는 인격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게 한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내적인 중생을 일으킨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화와 칭의는 비록 구별이 되었지만 서로 떨어질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칭의는 실제로 의로움의 선포인 반면 성화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인간 쪽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을 위해서 하는 계속적 투쟁과 변화과정이다.
  • 성화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영적 삶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성장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전을 향한 성장은 기독교인의 변함없는 목적이며 목표이다. 그러나 칼빈에게 있어서 성화의 사역은 철저히 하나님의 것이다. 성화에 있어 인간이 행하여야 할 노력과 훈련의 차원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은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면에서 성화는 인간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다. 칼빈의 자기 부정과 금욕 주장 등은 이 빛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1. 말씀의 영성 

  • 칼빈의 경건은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에 뿌리를 두고 성경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말씀중심의 영성이다. ‘오직 성경으로’라는 개혁자들의 구호는 중세 교회의 타락한 권위를 부정하고 내세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새로운 권위이다. 그러나 성경중심의 경건과 신학을 실제적으로 완성한 사람은 칼빈이라고 할 수 있다. 
  • 칼빈은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강조하였다. 칼빈은 기록된 말씀(성경)의 저자가 하나님 혹은 성령이라고 하며,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친히 말씀하신다고 믿는다. 그는 성경은 인간이 이성이나 교회의 권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진리를 가르쳤다. 
  • 무엇보다도 칼빈은 설교자로서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을 살았고, 수많은 설교문과 성경주석을 집필하며 말씀의 영성을 친히 실천하였다. 칼빈은 목사로서 감당해야 할 무거운 의무들을 안고 있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그리고 자주 설교를 했다. 그는 자신의 생애동안 4,000번 이상의 설교를 했는데, 이것은 매년 170번 이상의 설교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 기도의 영성

  • 영성의 핵심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칼빈은 기도가 그리스도인의 삶이 중심에 있다고 보았다.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에서도 기도에 대한 부분이 가장 길며, 또한 그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었다. 
  • 칼빈을 기도와 전혀 상관없는 주지주의적 사람이며 책상 위의 학자요 강단 위의 무미건조한 설교자로 이해하는 것은 무지와 몰이해에 해당된다. 칼빈은 기도를 통해 기도의 신비를 이해하였으며 이를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적 신비적 체험에 몰두할 정도로까지 밀고 나가기까지 하였다. 그가 기도를, 그리고 자신의 기도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보여 주는 본문이 있다. 

 "열렬한 감정은 우리가 우리의 정신 속에서 떠오른 것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게 하며,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거의 목을 메이게 한다. 마음의 감정은 너무나 타올라서 그것이 혀와 신체의 사지를 빠르게 하며, 그리고 신자들은 날마다 그와 비슷한 것을 경험하며, 그들이 기도할 때마다 생각하지도 못하는 소리를 지르거나 하소연을 하게 된다."

  • 칼빈의 신학에서 기도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매우 크다.  칼빈은 1559년 수정 증보된 기독교 강요 제3권 제20장 전체를 기도에 할애하고 있다. 그는 기도란 "성령의 역사에 의한 믿음의 열매로서, 성도들이 일생 동안 유지하고 지켜야 할 신앙의 연습이자 확증’"이라고 강조하였다.

  1. 지성과 감성의 균형 

  • 칼빈은 지성 중심으로 치우친 사람이 아니었다. 칼빈의 영성은 감정을 배제한 지성적 영성도 아니며 지성이 결여된 공허한 영성도 아니었다.  칼빈에게 있어 지식은 넓은 의미에서 경건의 개념 속에 포함된다. 예레미야(10:25) 주석에서 칼빈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경건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가져다 준 열매요, 경건의 증거이다. 칼빈은 또한 경건과 사랑을 관련시킨다. 에스겔을 주석하면서 그는 경건이 사랑의 뿌리라고 말한다.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을 의미한다. 
  • 칼빈의 글 속에 심장(coeur)이라는 용어가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크다. 칼빈은 이러한 표현을 그의 신학 속에서 ‘심장의 신앙’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신앙은 우리의 영혼 중의 영혼이다." 신앙은 머리 속에서만 왔다갔다하는 단순한 합의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단지 혀끝에서만 가지고 있는 사변적 신념이 아니다. "신앙의 합의는 차라리 뇌의 것이 아니고 심장의 것이며, 지성의 것이 아니고 감성의 것이다."

  1. 참여의 영성 

  • 칼빈은 오로지 세상을 포기하고 물러나 수도원 생활을 하는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상을 공격했다. 중세식의 수도원 전통인 ‘그리스도를 본받아’ 식의 영성전통에 따르면, 교회는 교회를 ‘세상의 빛’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달아나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찾는 기도와 묵상 전념하는 것을 그 본질적인 임무로 하는 영적인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칼빈에게 있어 영성은 유리된 종교적 현존 가운데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구원의 나라로써 실제화된다. 이 영성은 매일 매일의 생활 자체가 ‘신성한 예배’이며 ‘세상’은 하나님과 만나는 현장, 곧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라는 가정으로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칼빈과 개혁주의 영성은 세상 속에서의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Posted by 소리벼리

 

제 9 강 종교개혁과 마틴루터의 영성 과 중재의 기도 


  1. 종교개혁의 시대적 배경   

1) 종교개혁의 토양 - 중세후기 서부 유럽의 시대상황

● 교회의 타락 - 교황과 성직자들이 권력과 사리사욕을 추구하며, 도덕적으로 부패

● 근원으로의 회기에 대한 갈망 - 헬라철학과 고대 사본 대량 유입으로 이른바 르네상스(고전, 본래로 돌아가자!)는 요구

● 대중들의 불만 가중 - 지주들의 착취로 인한 경제상황 악화와 고위 성직자들의 사치

● 봉건제도의 몰락 - 민족주의(Nationalism)의 등장으로 라틴어에서 각국어 사용

● 과학의 발전과 세계관 변화 -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새로운 가치관, 종교관의 요구, 기존에 강요되던 권위에 반하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요구됨. 

● 인쇄술의 발달 - 새로운 생각들과 출판물의 급속한 보급

2) 종교개혁의 촉발

중세에 들어와서 서구의 교회는 부패와 타락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수도원들의 활기와 생명력은 사라져가고, 교회들은 대형 성전 건축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며, 면죄부 판매와 성직매매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했고, 젊은 신부 루터는 비텐베르크 캐슬교회의 문에 95개 항목의 반박문을 내걸고 정면으로 맞섰다. 그 날이 먼 훗날 종교개혁 기념일이 되리라는 것을 루터는 알지 못하였다.


2. 루터의 논쟁과 종교개혁

  • 1517년 10월 31일(35세) 루터는 교황 레오10세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는 내용을 포함한 ‘95개 논제’를 라틴어로 기록하여 캐슬교회의 문에 붙였고, 만성절(All Saints Day) 축제를 맞아 비텐베르크를 찾은 방문객들의 공감을 얻으며 삽시간에 유럽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퍼져나갔다.
  • 1518년 교황은 루터가 속한 어거스틴 수도회에 치리를 부탁하였고, 결국 루터는 자신의 동료 수도사들 앞에서 ‘십자가 신학’을 설명하는 하이델베르크 논제를 발표한다. 그 결과 교황의 기대와는 달리, 수많은 수도사들이 그의 가르침에 지지하고 동조함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 1520년 교황은 엑스수르게 도미네(Exsurge Domine) 칙령을 통해 "산돼지가 주님의 포도원을 짓밟았다"고 선언하며 루터를 파문하고 그의 저서들을 불태우도록 명령한다. 그러나 이미 루터에게 동조하는 세력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신학적으로 그에게 동조하는 종교인은 물론, 수많은 인문주의자들과 독일 민족주의자들이 루터의 대열에 합세하였다. 
  • 루터는 종교개혁의 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유명한 종교개혁 3대 논문;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고함>, <교회의 바빌론 포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같은 해인 1520년 8월과 10월, 11월에 각각 발표하였고, 그 해 12월10일 교황의 출교교서를 공개적으로 불태움으로서 교황청과 결별을 선언한다.
  • 교황 레오10세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여 1521년 보름스(Worms) 제국회의에 루터를 소환하였고, 황제 및 독일 제국의 대 영주들 앞에서 주장의 철회를 강요받지만 끝내 거부한다. 
  • 1521년 보름스 제국회의에 소환되어 황제의 ‘주장철회 압력’을 받았을 때 루터가 황제 앞에서 했던 답변 속에 당시의 긴박성과 루터의 진실성이 담겨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로잡힌바 되었습니다. 나는 철회할 수도 없으며, 철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양심에 불복하는 것은 옳은 것도 안전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 그 후 그는 삭소니 지방의 선제후 프레드릭의 도움으로 1521년-1522년 기사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바르트부르크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다. 루터는 1522년 신약성경을 출판하였고 1534년 구약성경도 출판 하였다. (개혁의 중점에 그가 몰두한 것은 혁명이 아니라 말씀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 1525(43세) 수녀 출신의 캐더린 본 보라와 결혼을 하여 여섯 자녀를 둔다. 루터의 가정생활은 행복하였으나 그는 항상 육신의 병에 시달렸고 종교개혁가로서의 힘든 투쟁의 삶을 살았다. 루터는 아픈 몸을 이끌고 바쁜 삶을 살면서도 이주에 하나씩 책이나 소책자를 써냈다. 

3. 루터의 영성 

  1. 이신득의 (오직 믿음으로) 
  • “어떻게 하면 의로우시고 준엄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설 수 있겠는가?" 이것이 수도사로서 갖는 루터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cf) 법학도였던 그가 수도원에 들어가게 한 동기 - 낙뢰사건 
  •  루터는 이 고민을 풀기 위해서 수도원 안에서 수도원의 모든 규율을 철저히 지켰다. 그는 완벽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얻고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루터는 후에 수도원 때의 삶을 회상하며 "나는 육욕을 많이 느끼지도 않았고 외적으로 나는 선했고 경건하게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선행과 고행이야말로 루터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판결을 받기에 충분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항상 자기 자신안에 있는 죄악성과 이로 인한 공포감을 심하게 느꼈다. 그는 "나의 영적 시련은 내가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한데서 일어났다"고 고백한다. 아무리 경건에 힘쓰고 작은 일에도 회개해도 그는 늘 부족하고 불안했다. 거룩하게 되기 위하여 노력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더 불안했다. 경건생활에 대한 그의 투쟁은 결국 그를 거의 자포자기 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였다. 
  •  그의 대 발견은 아마도 로마서를 강해하기 시작하였던 1515년의 사건으로 추정된다. 로마서 1:17을 곰곰이 묵상하던 중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는 말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의는 신자들에 대한 처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오히려 의인들의 공의, 혹은 의가 인간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였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들이 의롭거나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시켜서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기에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이며, 믿음과 칭의 모두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나는 의로우신 하나님, 죄인을 징벌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을 증오하기까지 했다. 나는 신성 모독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았으나 조용한 중에서도 (내심으로는) 굉장히 투덜대면서 하나님께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그렇지만 나는 바울의 의도를 알아내려고 불타는 열망으로 바울이 말한 그 구절을 끈질기게 두드렸다....밤낮을 쉬지 않고 이 구절을 두고 씨름한 결과 마침내 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힘입어 이 구절의 의미를 깨달았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 속에서 그 구절의 답이 있었다. 하나님의 의는 그 분을 믿는 자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는 그 분의 사랑이다. " 

ex) 그리스도인의 자유

  - "믿음은 영혼에게 참 많은 것을 부여해서, 영혼이 신성한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같아지도록 합니다. …… 그러나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믿음은 또한 영혼을 신부로서 그녀의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만듭니다. 이 결혼 후에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와 영혼이 한 몸이 됩니다”(엡5:30)" (I. 12)  -> 믿음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우리의 영혼이 하나되도록 만드는 결혼반지이다! 

  - "이렇게 [영혼과 그리스도가 한 몸을 이루게 되면] 좋든지 싫든지 간에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속한 것은 믿는 영혼 그 자신의 것이 되고, 그 영혼에게 속한 것은 그리스도 그분의 소유가 됩니다. 그리스도께는 모든 소유들과 복들이 속해 있는데, 이제 그것들은 그 영혼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영혼에게 지워져 있던 모든 악들과 죄가 이제 바로 그리스도의 것이 됩니다. 이 시점에서 신나는 맞바꿈과 분투가 시작됩니다." (I. 12.) 

  -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 …… 아버지는 풍성하게 흘러넘치는 자신의 소유들을 나에게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아주 기뻐하실 일들을 자유롭게, 기쁘게, 그리고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웃들과 관련하여서는 내가 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되셨던 바로 그 방식으로, 곧 내가 볼 때 내 이웃들에게 필요하고, 유용하며, 복된 것이라 여겨지는 것만을 행하겠다. 왜냐하면 난 믿음을 통해서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충분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Ⅲ. 27.)

  1. 오직 말씀으로 
  •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의 출발점인 동시에 최종적 권위로 정립시켰다. 가톨릭측에서는 정경의 결정이 교회에서 이루어진 만큼 교회가 성경보다 우선적인 권위를 가진다고 하였지만, 루터는 성경과 교회 모두를 존재하게 한 것은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성경이 교회나 교황, 그리고 전통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다고 하였다.
  •  기본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이처럼 창조적이고 능력 있는 말씀이 예수님으로 성육신하셨으니 그야말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계시인 동시에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행동이시다. 예수님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계시되셨다. 또한 예수님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로잡고 있던 악의 세력을 극복하셨다. 하나님의 계시는 곧 하나님의 승리였다. 
  •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그 가운데서 예수님 즉 성육하신 말씀을 만나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만난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루터는 성경의 최종적 권위를 주장하면서도 그 일부분에 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하였다. 예를 들어 야고보서에는 일련의 행동규범만 있고 복음을 발견할 수 없기에 ‘지푸라기’라 하였고, 요한계시록 역시 문제거리였다.
  1. 십자가 신학 
  • 루터는 순전히 합리적, 혹은 자연적 방법을 통해서도 하나님에 관한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통적 신학에 동의하였으나, 이것들은 모두 진정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천국으로 기어오르고자 하는 모든 인간들의 노력은 헛된 것이며, 이러한 노력들을 가리켜 "영광의 신학"이라 불렀다. 
  • 하나님의 가장 고상하고 위대하신 자기 계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에서 발생하였다. 따라서 루터는 영광의 신학 대신 "십자가 신학"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신학은 우리가 마음대로 선택하는 장소, 혹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있기를 원하시는 곳이 아니라 십자가의 신적 계시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 십자가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약하고, 고난을 받으시며, 걸림돌이 되신다. 이는 곧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행동하심을 의미하며,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들의 모든 선입견을 버려야만 한다. 이는 다시 말해 이성, 혹은 양심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이미 깨달았다고 생각하였던 모든 관념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1. 만인 제사장4122540.
  • 모든 신자, 성도는 제사장이고 곧 성직자이다. 루터의 만인 제사장 교리는 교회의 공동체적 의미를 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킨다. 신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더 이상 계급주의적 제사장 제도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믿는 이들의 공동체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반드시 필요하며, 그 속에서 상호 협력하여 서로에게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신자들의 덕을 세운다.
  1. 루터의 개인 경건 
  • 루터가 하루에 할 일이 많으므로 아침에 세 시간씩 기도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적어도 일 년에 성경을 두 번씩 읽었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성경을 일 년에 두 번씩 읽는다. 성경이 큰 나무이고 성경의 말씀 하나 하나가 나무의 가지라면, 나는 성경의 말씀 하나 하나를 알고 또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나무의 가지 하나하나를 다 흔들어 보았다."
  • 루터는 마귀를 영적인 차원에서만 아니라 물질세계에서 감각하고 투쟁하였다. 루터가 성경을 공부하고 있을 때 마귀가 방해를 해서 잉크병을 마귀에게 던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루터는 가톨릭교회를 향하여 불같은 비판을 뿜어냈지만 그는 가톨릭교회를 분리하는 것이 하니라 개혁하고자 하였다. 1522년 루터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루터의 이름을 따서 종교개혁 운동과 교회를 칭하고자 하였으나 루터는 여기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 모든 당파 이름을 지우고 우리를 다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크리스천이라고만 부릅시다. 나는 우리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주적 교회를 섬기기를 원합니다."


II. 중재(중보) 의 기도 

하나, 말씀으로의 초대 

  1. 마가복음 2:1-12절을 읽으십시오. 특별히 1-5절의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2. 이 말씀의 이야기와 중재의 기도를 연결시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둘, 더 깊은 말씀 속으로의 기도 

  1.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합시다. 많은 사람이 그 분의 임재 안에서 쉼과 치유를 경험하고 있고 그 분이 계신 문 앞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서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난 이제 멀리서부터 그 분이 계신 곳까지 나아가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향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2. 당신의 도움, 혹은 예수님의 도우심이 가장 필요한 한 사람을 당신의 중심에 생각해 봅시다. 그는 당신이 도움이 없으면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네 사람이 각기 네 모퉁이를 붙들고 그를 붙잡습니다. 당신은 그 네 모퉁이의 한 부분을 붙잡고 있습니다. 자, 가운데 힘없이 누워있는 한 사람을 바라봅시다. 지금 이순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가도록 당신이 도와주어야 할, 당신이 잡고 힘을 다해 매고 지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3. 당신의 친구를 예수님께로 이끄는 당신 자신을 상상해 봅시다. 무엇이 당신의 친구가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 막고 있습니까? 무엇이 당신이 그를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하는 노력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까? 누가, 혹은 무엇이 그와 당신이 노력을 가로 막고 있습니까? 
  4. 그 모든 방해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신의 친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당신의 선한 의지와 의도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당신과 당신의 친구를 분리시키는 지붕의 한 막을 뜯어 내십시오. 거기에 또 다른 지붕의 막들이 있습니까? 그러한 막들은 무엇입니까? 
  5. 당신의 친구를 예수님께로 내리십시오. 어떻게 예수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시는지 주목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나요? 당신의 친구가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의 빛 안에서 온전함을 얻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6. 이제 당신의 친구를 그 분께 온전히 넘기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상상하십시오. 당신의 몸과 마음에 들어오는 느낌을 나누십시오. 
  7. 조용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혹은 다른 세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말들을 나누십시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