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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주일예배설교

한 밤에 양을 치는 자 (눅 2:8-14)

by 소리벼리 2022. 12. 18.

한 밤에 양을 치는 자 (눅 2:8-14) 

 

복음 - Good News -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 복음서: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그런데 예수님의 전체 생애 안에서 거의 복음서의 절반 가량을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이른바 예루살렘 입성으로부터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복음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심, 이른바 성탄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사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고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사가 생략되어 있다. 

 

왜? 예수님의 죽음은 그 시기와 과정이 제자들에 의해, 또 역사적인 증인들에 의해 명백히 제시되어 있지만 예수님의 나심에 대한 기사는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고 

초대교회에 있어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우리가 죽인 그 예수가 바로 메시야였고 그 분은 부활하셨다는 것이 복음 전파와 전도의 중요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내용을 다룬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도 그 내용이 서로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에서는 천사가 나타나 예수 탄생의 소식을 알려준 것이 예수님의 육신적 부친이었던 요셉에게 현몽하여 소식을 알렸고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에게 그 소식을 알린다. 

또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 마태복음에서는 동방박사에 의해 예루살렘에 그 소식이 전해지게 되고 

누가복음에서는 오늘 다루게 될 목자들, 목동들에 의해 그 소식이 전해지게 된다. 

 

성경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복음서에서 다른 내용을 전하게 되는 것을 두고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비판하며 성경을 믿을 수 없는 책으로 낙인찍어 버리려고 시도하기도 하지만 교회는 각각의 정경으로 인정된 성경에 관해서 그것을 수정하거나 보완하지 않고 전해진 내용 그대로를 담았다는 것이 오히려 성경이 왜곡되거나 누군가가 외적으로 변형시키지 않은 증거라고 말을 한다. 

만약 독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면 4권의 복음서를 만들 필요가 없이 연구가들이 모여 4복음서를 종합하여 하나의 책으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각 공동체에게 전해내려온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정경에 담았다는 것이다. 

 

복음서는 한 개인이 남긴 기록이라기 보다는 (누가복음은 제외하더라도) -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록으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입술로 전하는 사역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는 사도바울의 서신처럼 한 개인이 어떤 공동체나 교회에게 남긴 서신이 아니라 그 개인이 중심이 된 교회공동체가 오랜 동안 나누었던 예수님의 이야기가 쌓여져 기록된 결과물이기에 그 공동체의 신앙과 신학이 담긴 결과물이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은 -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 중심에 놓고 있기 때문에 유대의 율법 전통에 근거해서 남성인 요셉을 통해 하늘의 소식이 전해지고, 그런메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나실 때 유대 땅 누구도 예수님의 나심을 알지 못하고 외면하였기에 이방인인 동방박사를 통해 그 소식이 세상에 퍼졌다는 것을 담고 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이 땅에 예수의 나심을 전파하는 무리가 동방박사가 아닌 한 밤에 양을 치는 목동으로 소개한다. 

동방박사에 비해 덜 다루어지고 외면되었던 무리들 - 목자들. 

 

1.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전해진 가장 귀한 소식 

목동, 목자 - 어감이 좋고 성경에서는 목자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만 목동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양치기 소년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이소포스 (흔히들 이솝이라 알려진)가 지은 우화에 표현되었듯이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마을에 온갖 풍문을 일으키는 신뢰할 수 없는 무리들 이었다.이솝 우화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전해진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예수님의 부활소식 - 여인들에 의해서....증인의 자격이 없는, 신뢰할 수 없는...

 

복음의 신비 - 하늘의 기쁜 소식, 우리를 구원하는 가장 귀한 이야기들을 목동처럼, 여인들처럼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믿냐하는 사람들에게 맡기셨다는 것이다. 

                  - 복음전파, 전도 -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선교 - 전문 사역자보다 평신도들을 통해

                  카톨릭의 전파 - 1600년도 - 서학이라는 서양의 학문으로 상류층에 전파 -> 결과적으로 실패 

                  개신교 - 선교사들에 의해 평민들, 민중들에게 전파 -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운동이 되었다. 

                  

2. 한 범에 양을 치는 목자 

묵상 중에 이 본문을 택하게 된 이유 

양을 치는 것 - 대개 아침 일찍, 우리에서 끌고 나와 하루 종일 들판에서 양들을 데리고 풀과 물을 먹이고 활동시킨 후 해가지기 전 다시 우리로 데리고 들어와 키우는 것 

그런데 왜 한 밤에 밖에서 양들을 돌보고 있을까? 

 

영성을 전공한 목사로서 신앙에서 "한 밤의 의미" 

그 공동체나 개인의 영적 상태 

 

로마의 식민지- 암울한 생태 

이스라엘은 왕을 잃어버리고 400여년동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주던 선지자가 끊어진 시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영광만 추구하던 시대 

 

그런데 그러한 시대, 다 각자 각자 도생하며 자기 살 길 만을 추구하던 시대에 누군가 그 한 밤 중에 양들을 돌보는 사람들 

사람들이 알아주건 말던, 사회적 위치가 아무리 낮고 천하다 하더라도 그 한 밤에 밖에 나와 양들을 돌보는 자 

이것이 목사의 사명이기도 할 것이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요, 사명처럼 다가왔다. 

 

개인에게 적용한다 하더라도 내 마음과 형편이 한 밤을 보내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내가 맡은 사명, 본분을 놓치지 않고 충직히 그것을 지키는 자에게 맡기신 기쁜 소식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그야말로 평화와 기쁨의 소식! 

 

그런데 이 묵상의 시작->더 깊은 내용으로 이 본문을 들여다보게 했다. 

 

3.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8절) 

  • 그 지역 - 바로 베들레헴 -예루살렘 바로 밑의 작은 도시 
  • 베들레헴- 예루살렘을 통과하는 문 - 분문 (똥문) 

   양문과 함께 동물들이 드나드는 문, 

   떄 - 로마로부터 호적조사, 인구 조사 하라는 명이 떨어져서 전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인구가 살았던 예루살렘으로, 또한 다윗이 태어났던 베들레헴으로 몰려드는 인파 

   - 머물 곳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갑작스레 많은 인파로 인해 나오는 쓰레기도 너무나도 많았다. -> 너무 분주하고, 복잡하고, 소란스런 상황에서 양들이 머무는 곳도 마땅치 않아 우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그 양 떼를 돌보고 있는 목자들. 

-> 고단하고, 피곤한 중에도 불평하지 않고 양들을 지키는 일에 충실할 때에 

"주의 사자가 곁에 섰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치매" (9절) 

예수님은 평화로 오셨지만 평화스런 때에 오지 않으셨다. 

그리고 평화로운 자들에게 오신 것도 아니다. 

어지러운 세상 중에 그 혼잡한 중에서도 정신 차리고 자신의 일에 충실한 한 무리에게 나타나셔서 그 분의 영광을 비추신다. 그들과 함께 하신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0절)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 - 모두에게 돌아갈 좋은 소식 -> 한 밤에 피곤하고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자기에게 맡긴 일을 묵묵히 행하고 있는 어떤 이에게 -> 그 선물을, 그 소식을, 그 약속을 주신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를 보게 될 것과 

13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장면을 보게 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중에 평화로다!" 

 

누구도 보지 못한 이 영광과 찬란한 기쁨을 어떻게 그들에게 보게 하셨을까? 

목자들의 또 다른 비밀 - 성서학자들에 의해 발견되고 주장되는... 

 

베들레헴- 예루살렘으로 연결된 문 - 분문

  • - 성벽재건을 할 때 느혜미야를 통해 레갑 족속에게 할당된 문 

"분문(똥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느 3:14)."

-> 벧학게렘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를 관할하는 지역의 이름

-> 위 본문은 벧학게렘에 거주하던 레갑 족속이 포로에서 돌아온 느헤미야를 도와 성전을 재건하는 장면이다.

레갑 족속은 누구인가? 

  • 그 유명한 아합 왕 때에 예후가 왕위에 올라 종교개혁을 일으키는데 이 때 예후와 함께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무리가 바로 레갑 족속이다. 왕하 10:23~29에서 보자.
    왕하 10:23~29에 보면 레갑 족속 요나답이 이스라엘 예후 왕과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그러나 예후가 변절자가 되어 우상을 섬겨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다. 그리고 우상의 포도주 술잔을 나누며 여호와의 신앙과 혼합 종교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요나답이 레갑 족속에게 내린 조치가 집을 짓지 말며 파종하지 말고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한 것이다. 레갑 족속들은 선조 요나답의 지시에 따라 우상의 포도주 잔을 거부하는 신앙으로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던 것이다.

 

  • 레갑 자손의 말씀 순종과 관련하여 예레미야 35:1~9를 보자.

    "1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때에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너는 레갑 족속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우라 3이에 내가 하바시냐의 손자요 예레미야의 아들인 야아사냐와 그 형제와 그 모든 아들과 레갑 온 족속을 데리고 4여호와의 집에 이르러 익다랴의 아들 하나님의 사람 하난의 아들들의 방에 들였는데 그 방은 방백들의 방 곁이요 문을 지키는 살룸의 아들 마아세야의 방 위더라 5내가 레갑 족속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6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7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8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9거처할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두지 아니하고 10장막에 거처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한대로 다 준행하였노라(렘 35:1~9)."

    이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주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불순종하므로 그들 앞에서 레갑 족속의 말씀 순종에 대한 시험을 하게 한 것 (본보기 - 모델) 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조상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이다. 레갑 족속은 선조 요나답의 명령대로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집도 밭도 없이 비천한 목동 생활을 했음을 보여 준다.

    왕하 24:14에 보면 "유다 왕 여호야긴 때 바벨론이 모두 포로로 잡아갈 때 '빈천한 자' 곧 목동인 레갑 자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고 하여 말씀을 순종한 자들 레갑 자손만 남게 됨을 본다. 거처 없이 유목하고 있는 레갑 족속 - 비천한 자

    바로 그 레갑 자손들이 예수님 탄생 때 지금의 라헬라못(벧학게렘)에 목동으로 살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이고 조상 적부터 말씀을 붙잡고 그 험한 생활을 했기에 그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제일 먼저 알렸다는 것이다.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어떤 사람들일까? 

한 밤 중에 양을 돌보는 사람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 문을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흘러가는 시대에 맡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지키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