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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2.12 전도서 3장 1-15절 (모든 일의 때)

 

전도서 3장 1-15절 (모든 일의 때) 


우리 모두가 때를 기다리며 삽니다. 

때를 기다린 다는 것은 소망을 품고 산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런 기대하는 때가 없는 삶이라면, 어떠한 기대하는 바가 없다면 그 삶은 그야말로 비참할 따름입니다. 


임신한 부부는 출산의 때를 기다리고 출산이 되면 말하고 걸을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걷게 되면 이젠 학교갈 날을 기다리게 되고 그러다가 고 3이 되면 대학 입학의 때를 기다리게 되고, 

졸업을 앞둔 자는 취직의 때를 기다리게 되고, 처녀 총각들은 결혼의 때를 기다리게 되고

결혼한 자들은 다시 새로운 생명을 기대합니다. 

일하는 자는 매달 월급날을 기다리게 되고, 휴가를 기다리게 되고, 그러다가 이젠 퇴직 후에 누를 노후의 삶을 기대하며 저축하고 보험을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노후에 점점 이 땅의 삶에 기대하는 것이 없어질 때....인생의 기대는 하나로 모아집니다. 

바로 인생의 죽음 뒤에 오는 하늘나라, 영원한 삶에 대한 기대입니다. 


이런 인생이 싸이클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싸이클입니다. 예상할 수 있는 삶의 코스입니다.

시간이 되고 노력을 하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때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정해져 있지 않은 때, 예상할 수 없는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쨍하고 해 뜰날"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복권을 사기도 하고 도박을 하기도 하는 지 모릅니다. 

정치가들은 국회위원 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장관이 되고 싶어하고, 대통령이 되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꿈꾸며 삽니다. 

그런데 그 성공의 열매는 좀처럼 예상할 수 없습니다. 

시간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운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비가 가져다 준 박넝쿨을 열어 흥부의 삶이 뒤바꾸었듯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박나세요"하며 이 운을 기원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때를 알기 위해 점집을 찾는 사람도 생각 외로 많습니다.  

미심을 믿어서 점집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그 때를 알고 싶어하지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때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자,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때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자로 묘사합니다 .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말 중 하나가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 였을 때에 자기의 때를 알지 못하여서 나서다가 광야로 가서 40년 동안을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때, 십자가의 때, 하나님의 아들로서 등장 하는 때를 정확히 알고 행동하셨습니다 .

그런데 그 예수님마져도 마지막 때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께서만이 아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아는 때가 있고 알지 못하는 때가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허락된 때만 아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여러가지 때로 채워져 있지만 그 때는 우리에게 속해져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주권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1절 b) 


그리고 인생의 때를 주신 목적, 그 이유는 애쓰며 수고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인생이란 것 자체가 '때를 위한 수고'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지혜는 그 때를 위한 수고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때가 오기까지 오는 모든 수고를 고통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때가 늦게 오면 그만큼 고달프고, 고통스럽고 짜증을 냅니다. 

모든 것이 수고 뒤의 '때'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수고는 때를 위한 인내와 고통의 연속입니다. 

오직 대학가기 위해서만 공부하면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만 일하면 성공의 때가 늦어질 수록 하루하루가 견디기 싫어집니다. 

만약 열매맺지 못하면 모든 고통과 수고는 헛수고가 됩니다. 


그런데 지혜자는 수고의 때와 열매의 때를 나누지 않습니다. 

모든 때가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정확한 때, 우리 모두가 가장 확실하게 가질 수 있는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재라는 순간의 때"입니다.


언젠가 성도님 한 분이 앞에 나와 감사릴레이 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준 선물, 바로 현재입니다. 현재라는 말은 곧 선물이라는 말입니다라고 했듯이 솔로몬도 말하는 것이 고통스럽게 일해서 불확실한 때를 막연히 기다리지 말고 

"사는 동안, 일하는 동안, 수고하는 동안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깨달었다"(12절 고 말하는 것입니다.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수고 자체에서 낙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왜 수많은 청소년들이 방황하고 가장 많이 일해야 할 40대 가장들이 고통스러워 합니까? 

가장 많이 공부하고 가장 많이 일하는데 때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매가 보이지 않고, 수고만 보이니까 삶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때에만 집착하면 현재가 고통스럽습니다. 

수고를 고통으로 이해하면 절망스럽지만 수고를 즐거움으로 생각하면 수고 자체가 낙입니다. 

수고를 영어 성경으로는 toil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 toil이라는 단어에서 toilet(화장실)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왜 수고하는가? 바로 우리 삶의 찌거기들을 배설하기 위해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의 직장터에서 일과 중에 도착해서, 퇴근 전에 무조건 30분씩 매장 주위를 뛰게 하고, 무거운 짐을 나르게 한다면 직장터가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아마 직장 그만 두는 사람들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건강을 위해서 비싼 돈 주어가면서 fitness club가서 런닝머신 돌로 역기 들고 하는 것은 불평이 없고 기뻐하지 않습니까? 

수고하는 것을 자기 몸과 마음의 찌거기를 배설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면 수고도 곧 즐거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변이 안나오는 것이 고통이지 잘 나오면 즐거움 아닙니까?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고 수고를 통해 먹고 마시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읽어주었던 시 구절 

"Carpe Diem"- 영어로 "Seize the Day"

현재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때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때를 더하거나 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어도 계절을 바꿀 수 없습니다. 

밤과 낮을 바꿀 수가 없듯이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4절) 


결국 우리가 그 때를 모르게 하고, 하나님이 그 때를 정하게 하신 것은 피조물로서 창조주,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현재라는 선물, 현재의 수고를 즐거워하는 사람이 누구냐? 그가 바로 시편 1편에서 말하는 복있는 사람입니다. 

복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때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열매를 지닌 사람입니다. 

복되게 사는 사람이 바로 때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열매가 꼭 열려야 복된 사람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복되게 사는 것,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요, 복된 자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잠언과 전도서를 통해 내린 결론 -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윗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곧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현재를 즐거워하게 합니다. 

폭풍 같은 현재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평안을 줍니다. 

현재를 선물로서 살아가게 할 수 있는 것, 그것의 해답이 말씀의 삶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가 바로 현재를 즐거워 할 수 있는 자요, 현재를 살아가면서 영생을 맛보는 자입니다. 

말씀은 현재를 영생되게 합니다. 

현재라는 순간과 영원을 이어 줄 수 있는 것, 시간과 공간의 제한 된 삶과 제한이 없는 영원한 영생의 삶을 연결시켜 주는 것,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며, 곧 말씀을 묵상하는 삶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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