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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04.15 십자가, 하나님의 마음 (고전 1장 18-24절) 

십자가, 하나님의 마음 (고전 1장 18-24절) 


지난 주에 우리는 사도바울을 살펴보면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왜 핍박하고 왜 믿지 아니하였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메시야는 곧 하나님이라 생각하지만 히브리 말로 메시야, 곧 헬라말로 그리스도라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로 구약성서에서, 즉 유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메시야, 기름부은 자라는 의미는 왕이나, 선지자, 제사장에게 적용되는 말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기다린 메시야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서 이스라엘을 이방인의 압제, 예수님의 시기때는 로마의 압제에서부터 이끌어 내어 이스라엘을 가장 위대한 국가로 만들어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게 하는 그런 왕, 혹은 그런 선지자를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이 이스라엘 전역에 알려지면서, 또한 그의 이적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예수께 대한 관심은 갈릴리 지방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이 속해 있는 유대 땅을 비롯해 전 이스라엘 지역에 예수님이 오실 그 메시야인가하는 기대감이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나와 있는 예수께 대한 질문들이나 반응들은 그런 유대인들의 메시야관을 잘 드러내어 보여줍니다. 

당신이 그 오실자이십니까? 

당신이 우리에게 보일 표적은 무엇입니까? (메시야임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기에 왕은 그들과 신분이 다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왜 전통을 따르지 않습니까? 

당신은 왜 율법을 어깁니까? 

이 사람의 모든 지혜가 어디서 났는가?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의 살을 주어 먹게  하겠는가? 

갈릴리에서 메시야가 나올 수 있겠는가? 

당신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행하는가? 

우리가 가이샤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가 메시야라면 더이상 가이샤에게 세금을 내지 않게 하실 것이다) 

당신은 유대인의 왕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당신은 어디서 왔는가? 당신은 진정 메시야인가? 

당신이 메시야라면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라! 당신이 메시야라면 왜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는가? 


이 모든 질문은 그가 메시야임을 기대하든지, 혹은 의심하든지 하기에 사람들이 예수께 던진 질문입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기대한 이스라엘을 독립시키고 부흥시킬 왕은 아니었지만 그 분은 파도와 폭풍우를 잠잠케 하며 모든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닌 모든 만물의 왕이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생각했던 제사장, 성전 안에서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하고 집례하는 제사장은 아니었지만 성전의 장사치를 몰아내고 죽은 성전을 깨뜨리고 자신이 참성전이 되실 것과 모든 믿는 자의 육체가 결국 하나님의 성전임을 알게 하는 진정한 제사장이셨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생각했던 선지자보다 훨씬 더 큰 자였으며 사람들이 참 선지자라고 여겼던 세례 요한 역시 그를 가리켜 나는 그의 신발끈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하며 선지자보다 큰 자임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여겼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요 10:22-33]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자, 그럼 질문이 생깁니다. 

정말 예수께서 구약의 성경에 기초한 유대인들이 보기에 근거가 없는 그런 주장을 했던 것이어서 그 때에도 지금도 예수를 믿지 못하는 것이라면 유대인들이 보기에 신성모독이요 사기꾼 같은 자에게 속고 있는 것인가요? 

그런데 구약의 말씀에도 예수에 대한 예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신구약 할 것 없이 증거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까지 하지 않습니까?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예수의 베들레헴 탄생) - 그의 근본은 태초에니라? 그는 태초부터 있던 자이다! 

(사 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갈릴리 지역에서 자라고 갈릴리 어부들이 사도가 되고..)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나귀타고 예루살렘 입성)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시 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 밖에도 구약에는 예수에 대한 예표로 가득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유대인들은 예수가 참 메시야임을 믿지 못합니까? 자기의 생각, 자기의 전통에, 자기의 습관에 지배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베드로의 고백을 필두로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가 곧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께서 친히 그들에게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가 십자가를 지는 현장에서 제자들은 뿔뿔히 도망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미리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 가시는 데에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나살려라 도망갑니다. 

왜 도망갑니까? 


메시야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보다 더 어려운, 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그 메시야가 왜 십자가를 지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십자가의 현장에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께 비웃듯이 이야기합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 그럼 내가 믿겠다. 네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니 이제 그가 널 구원하나 안하나 보자..." (마 27: 41-43)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진정으로 고백했던 베드로나 나머지 제자들도 이 십자가 앞에서 다 떠나갑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 본문에서 바울은 이 십자가, 그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지혜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의 결정체가 십자가라고 말씀합니다. 

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복음이야말로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걸림이 되는 이야기요, 왜? 자기들이 기다렸던 메시야, 아니 메시야보다 더 큰 분, 하나님의 아들을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박았으므로...

헬라인들이 보기에는 아니 신이 왜 인간 손에 죽냐? 십자가가 어떻게 구원의 길이냐? 힘으로 (로마의 황제처럼) 지혜로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구원을 이루는 것이지... 

그런데 부르심을 받는 우리들에게는 그 십자가야말로 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요, 제가 드리고 싶은 결론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완전한 결정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신학은 너무도 풍성하고 깊고 넓어서 이렇게 설교로서 설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주보에 실린 컬럼이 십자가의 한 면을 보여주는 묵상입니다. 


십자가는 팔레스틴 지역의 일종의 사형틀이었습니다. 

지배자들은 사형틀을 대중에게 공개하여 죄의 무서움을 경각시키고 두려움을 통해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 십자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함을 주는 죄와 죽음과 형벌과 고통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곳 십자가에 주님이 달리셨습니다. 가장 거룩하고 고귀한 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자 처음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에 의해, 성령에 의해 주님이 메시야로 고백되기 시작하자 이제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이요, 은혜의 상징이요, 믿음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가장 저주받고 더럽고, 고통스러운 곳에 주님이 임하니 그곳은 가장 거룩하고, 은혜롭고, 구원을 베푸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십자가는 누가 달려야 하는 곳입니까? 

죄인입니다. 

(롬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 죄인이 져야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러니까 십자가를 볼 때에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저 십자가는 바로 내가 달려 있을 사형틀"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가? 

그 십자가가 내가 달려야할 십자가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극악 무도한, 나보다 더 악한, 정말 나쁜 사람이 달려야 할 사형틀이지, 난 저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십자가의 의미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은혜도, 구원도, 소망도, 회개도, 믿음도 없습니다.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20-30년 감옥살고 나온 사람들....얼마나 억울할까? 얼마나 원망이 심할까?

그런데 희한하게 몇십년씩 억울하게 감옥을 살고 나온 사람들의 말... "그리 억울한지 모르겠다. 내 죄값이라 여겼다...."

군대에서 2주동안 하루 10장씩 반성문을 쓸 때...처음엔 어려웠지만 내 삶이 정말 반성할 것이 많구나...


십자가 상의 예수 양 옆에 있던 두 명의 강도 중에서 하나는 "네가 그리스도면 너와 날 구원하라!" 하면서 예수를 조롱하며 명령합니다. 

죽어가면서도 예수를 조롱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명령합니다. 

그런데 또 한 명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눅 23:39-41) 

 그 십자가가 다름 아닌 내가 달려야 할 십자가라는 것을 깨달을 때에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나의 구원이 됩니다. 

 내가 거기 달려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 때에 비로서 나의 영혼에 구원이 임합니다. 

 내가 성경에서 이야기한 대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누가 아니라 내가 바로 그 십자가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형틀에 하나님이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친히 달리사 우리가 겪어야 할 채찍의 고통, 가시 면류관의 고통, 손가락 마디와 발목의 못의 고통, 침뱉음의 모욕, 벌거벗음의 수치.... 모든 것을 나 대신 그 분이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저주받고, 고통스러운 십자가가 가장 거룩한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듯이, 세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목에, 귀에 거는 가장 귀한 보석이 되었듯이 

 저주받아 죽어 마땅한 나의 삶을 가장 아름다운 보석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죽음의 십자가의 인생을 아름다운 보석같은 십자가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여전히, 계속, 쭉~)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를 구원코자 어떤 일을 벌이시고 감당하셨는지, 하나님이시니 그 분이 이 땅에 내려와 그 숱한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미련하다는 소리와, 수치를 당하시면서 십자가에 달린 이유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다름 아닌 나를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작년 말부터 눈, 피부, 치아, 꼬리뼈...

계속 몸이 아프면서...

내가 몸이 계속 아픈 이유는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자꾸 내가 감당하려고 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힘드십니까? 어려우십니까? 

그 분은 나의 모든 고통의 근원을 다 갚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구원했으니 불평하지 말고 나머지는 다 참아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감당하신 그 분께서는 또한 우리의 일상을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어버려두지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께 맡기는 삶은 곧 예배의 삶이요, 기도의 삶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믿으면서도 기도하지 않으면 결국은 십자가 의지 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곧 기도하는 사람이요, 기도함으로 예수님의 그 십자가를 능력으로 얻고 사는 사람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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