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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나 (출 3:1-5) 

 

[출 3:1-5]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 그 인생의 여정이 가장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 인물 -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물론 그 출생에 대한 비화를 소개하고, 미디안 광야에서의 삶을 아주 간략히 다루고 대부분을 마지막 40년에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 연약함에서 성숙함으로 신앙의 여정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인물
  • 그리고 그 인생이 40년을 축으로 애굽의 왕자로서, 미디안 광야의 무명인 존재로서,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서 잘 나뉘어져 있는 인물. 

 

  • DL 무디 (모세의 삶을 3등분하여 신앙의 여정으로 그렸다)  
  • I am Somrthing - 구원받은 자로서의 존귀한 존재 (애굽의 왕자로서의 존귀한 삶) 

I am Nothing - 애굽의 왕자의 자리보다 히브리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서 그들을 위하고자 했으나 두 집단 모두로부터 속하지 못하는 존재. 무력, 무능, 존귀한 자로서의 정체성을 다 잃어버리고 나를 부인하는 자리 (미디안 광야) 

I am your man. God's person -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 뜻을 알며, 그 뜻을 이루는 자 

-> 아브라함, 야곱, 요셉, 다윗...그 인생의 전반이 소개된 성경의 위인들을 보면 그 기간은 달라도 이러한 여정을 공통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아브라함 

- 75세때 부르심-> 축복

- 이삭이라는 열매를 얻기 위한 시행착오 - 모든 수단을 다 써보지만 실패 

- 이삭을 낳고 이삭을 바치며 비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2) 야곱 

- 장자의 축복권을 얻음 

- 라반의 집에서 21년동안. 

- 얍복강 가에서 이스라엘로...

 

요셉과 다윗도 마찬가지...그러한 단계를 겪었다. 

 

  • 대부분의 성도의 삶 -I am Something의 삶과 I am Nothing의 삶의 경계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쁨을 때로 누리다가 인생의 문제나 고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며, 또한 자신의 죄성과 연약함 안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것을 왔다 갔다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삶 

 

  • 신앙의 어느정도의 연륜이 있고 성숙함을 알아가는 성도라면 고민해야 할 것 

나는 나의 무능과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주님의 부활을 사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어떻게 I am Nothing에서 I am yours, I am God's person으로서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3장은 바로 그 전환-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애굽에서의 모든 교육과 그의 야망도 꿈도 다 포기하고 그저 한낮 양을 치는 목동으로 살아가던 모세를 불러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시는 전환이 일어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통해 어떻게 모세가 자기의 꿈을 포기한 무능의 존재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사는가를 볼 수 있는 눈과 그를 통해 나의 삶의 위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어떻게 해야 나의 인생과 나의 신앙이 I am Something에서 I am Nothing의 광야의 훈련을 넘어 I am God's person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의 삶의 전환점에서 먼저 보여주신 장면-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통해서 보이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출 3:2-3]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나무 - 여호와의 사자가 있기 때문에...
  • 지금 모세의 상황 - 애굽의 왕자라는 자리를 버리고 히브리인을 위해 몸을 불태우고자 했으나 버림받아 꺼져버린 나무와 같은 인생...
  • 하나님의 부르심 - 내가 너를 다시 불태울 것이다. 잃어버린 꿈을 다시 꾸게 하리라. 하나님은 비전을 주신다. vision이 dream과 다른 것은 dream은 나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고, vision은 하나님의 시선이 투영된 것이다. 하나님의 꿈이 내게 임한 것이다. dream은 그것을 위해 내 인생을 불태워야 하지만 vision은 내 안의 성령이 불타고 나는 더 온전해지고 쇠하지 않고, 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제 까지 네 힘으로 네 인생을 살았다면 이제 내가 인도하는데로 내가 널 이끌 것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마치 이삭을 낳기까지 아브라함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쓴 후에 이제 다 해보았냐? 그것이 되더냐? 네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느냐? 그럼 이제 내가 하겠다 하는 것과 같은 말씀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모세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5절) 

  • 여러번 나누었지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요구하고, 보아스가 룻을 얻기 위해 기업무를 자에게 요구했던 의미다. "네 권리를 나에게 양도하라" "너는 이제 내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지시하는 대로 사는 삶"으로 부르는 것이다. 

 

자, 전반기 40년의 애굽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미디안에 산지 40년만에 모세의 삶이 모든 꿈과 야망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함과 동시에 매일 똑같은 편안한 일상에 안주하고 있을 때에 그를 부르신다. 그런데 이 부르심에 모세가 한 번에 승낙하지 않는다. 

 

Nothing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으로 넘어가는 것 - 결코 쉽지 않다. 

목회하면서 고난 좀 경험한 인생을 사신 분들은 I am Nothing의 순간을 말씀드리면 십중 팔구는 내 인생이 지금 거기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내 인생의 바닥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바닥의 순간에도 내 자존심, 내 고집, 내 주장을 여전히 꺾이지 않은 상태일 때가 많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모세가 저항한다. 

부르려면 내 인생 팔팔할 때에 40때나 50대 때 부르셨더라면 내가 힘을 다해 일할 수 있는데...

지금 내 나이 80에 내가 무슨 소용있다고 날 부릅니까? 나 안갑니다. 

사람들이 나를 뭐라하겠습니까? 내 말을 믿기나 하겠습니까? 그들이 날 믿겠습니까? 

 

그가 여전히 생각하는 것은 애굽의 왕자였을 때

내 인생에 기운이 있고 힘이 있고 재력이 있고 내세울 것 있었을 때에.....

과거의 자기를 생각한다. 그것갖다가 일했으면 좀 더 잘 하고 좀 더 쉬었을텐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이 다 빠진 후에 비로소 일하신다. 

네것 다 썼냐? 이제 내 것으로 일해보자 하신다. 

 

이렇게 일곱 번 여덟번 거절하는 모세의 답변 속에는 젊었던 자기 인생에 대한 회환과 동시에 이제야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비아냥도, 거절도, 온갖 감정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자기 기대와 하나님의 기대가 달랐던 자기 인생에 대한 인정하기 싫은 모든 실패가 녹아있는 거절이다. 

 

"하나님, 무슨 일을 이렇게 하십니까? 내가 열정이 펄펄 넘치던 때에는 나를 돕지 않고 나를 도망가게 하셨습니까? 이제 쉴 날이 가까운 내 인생의 지금 나타나 그리로 가라니요? 무슨 일을 이렇게 하십니까?" 

 

그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하나로 요약된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 "내가 모든 가치와 때와 시기와 내용과 방법을 만든다. 내가 주관자다. 내 생각은 너의 생각과 다르며 네 생각이 내 계획을 움직일 수 없다. 내게로 오라. 네 경험, 네 이해, 네 만족으로 나의 계획을 판단하지 말라. 지금이 때다!" 

 

억지로, 죽을 지경에까지 가서, 모세는 떠밀리듯 바로에게 간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해서 그대로 하라는 했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는데 기근을 만난 것과 같다. 

순종한다고 일이 척척 풀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운영을 우리의 생각과 늘 다르다. 

 

바로

너희들이 미쳤구나

일이 편하니 이상한 생각 하는구나. 일을 더하라. 

 

바로는 말을 안듣고 백성들은 곤고함에 모세를 향해, 하나님을 향해 불평이 극에 달한다. 

 

  • 10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바로를 굴복시키고,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고, 무엇보다 하나님 하시는 일을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다. 인턴십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번에 바로를 무릎꿇리지 못하셨을까? 

왜 오랜기간, 오랜 방법을 통해 서서히 그들을 굴복시키실까? 왜 서서히 믿게 하실까? 

1학년, 2학년...10학년에 이르기까지...

한달이면 될 가나안의 여정을 40년이나 돌리시면서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방법은 

한단계 한단계이다. 

 

  • 우리가 원하는 방법은 늘 로또 방식이다. 

은혜받아 한 번에 무너뜨리고 한번에 변화시키시길 원하신다. 

그렇게 변화된 사람....눈물 흘리고 회개 했어도 그 삶을 알아가는 데엔 똑같이 긴 여정이 필요하다. 

다메섹에서 바울을 만난 주님은 바울을 아라비아 호렙산으로 인도해서 3년간, 다른 제자들과 똑같은 기간동안 그를 훈련시키신다. 

 

10가지 재앙이 끝나고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라 명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첫 유월절을 통해 급히 출애굽 할 때 

또 다른 시험이 그들에게 닥친다. 

 

뒤에선 후회한 바로와 군사들이 말을 타고 쫓아오고 앞엔 홍해라는 스스로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막고 있다. 

 

그 때 모세가 첫 번째...비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출발을 알리는 첫 고백과 선포를 한다. 첫번째 신앙고백이다. 

[출 14:13-14]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

  • 자기 인생의 모든 실패를 고백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처음으로 고백하는 장면이다. 그 안에는 그가 했던 모든 두려움이, 하나님을 믿지 못했던 불신앙이, 내가 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그 오만함이 다 사르러들면서 그가 비로서 경험했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다. 
  • 두려워말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 비로소 호렙산 떨기나무의 메시지를 통해 주셨던 그 메시지 - 너희는 불타지 않고 내가 불타게 할 것이다. 내가 불탈 것이다. 내가 죽을 것이다.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내가 너희를 위해 죽고 너희는 살 것이다는 그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I am Nothing에서 I am Yours를 알리는 첫 장면 

마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를 고백한 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을 알게 하시는 그 전환점이 되는 것, 3장에 그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비로서 시작하게 되는 전환점이다. 

10가지 재앙 - 바로를 잡기 위한 재앙이 아니라 모세를 변화시키기 위한 재앙이다. 

 

물론 이 후에도 몇번의 또 다른 전환점을 통해 모세의 신앙은 깊어간다. 

출 32장 - 황금송아지...그들이 만든 우상-하나님을 우상화한 것이다.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범죄는 하나님 아닌 우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상화한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아닌 자신들이 생각한 하나님을 만들어 그 하나님을 섬긴 것이다. 

예배하며 자기 마음 대로 사는 삶- 이사야 

주님을 따르며 십자가 반대로 가는 삶-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장사꾼 신앙.... 하나님은 이런 우상을 못견뎌 하신다. 

 

그들을 쓸어 버리겠다 하니까 모세가 처음으로 백성들의 편에 서서 중보한다. 

비로서 아비의 심령을, 종의 신분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는 것이다. 

 

[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 말을 신약에서 누가 받아 고백하는가? - 바울 

[롬 9:1-4]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는 것 - 그들을 버리지 말라.
  • 하나님의 심부름꾼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절절하게 느끼는 부모의 심령, 아버지의 심령,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 주신다. 내가 죽을지라도, 내가 설사 생명책에서 지워질 지라도 저들을 구원하소서. 
  • 바울의 마음 - 같은 유대인들을 위해 상한 마음을 그런데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로 보내신다. 하나님의 이해를 넘는 일하심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 자신의 모든 꿈과 욕망과 실현을 철저히 죽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심장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철저한 고난과 광야의 훈련을 통해 우리의 이기적이고 교만한 마음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라게 하신다. 그러한 존재를 창조해 나가신다. 

 

40년간의 미디안에서 철저히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것의 죽음을 경험했던 모세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신다. 

40년간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모세에게는 여전히 자기 고집, 자기 꿈에 대한 그리움이, 그리고 그 뜻대로 이루주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시는 것에 대해 거절하고, 분노하는 연약함이 남아 있었다. 

7번의 설득과 그리고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루어 가시는 한 단계, 한단계의 재앙이 모세에게는 한과목의 수업이 되어 그를 변화시켰다. 

내가 불타지 않고 내 안의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는 것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그가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40년간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장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 

 

예수님 - 철저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삶으로 나타내신 분. 

 

그 분은 철저히 자신의 힘을 버리고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분. 

 

때로 우리는 힘들다 라는 말을 한다. 언제 그 말을 하는가? 

내가 힘을 쓴 대로 열매가 없을 때, 내 맘대로, 내가 뜻한 바 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힘들다라고 표현한다. 왜 힘이 들까? 우리가 힘을 쥐고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돈을 움켜쥐고, 크고 작은 권력을 쥐고, 그것을 호령하고 싶어한다. 

자기 마음에 원하는대로 살고 싶어한다. 

하나님의 뜻 마저도 내 뜻과 안 맞으면 우리를 화를 내고 요나처럼 다른 길로, 아니면 푹 꺼져 잠을 자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십자가는 "힘 있음"이 아니라 "힘없음"이다.

십자가는 "힘 줌"이나 "힘 쥠"이 아니라 "힘 놓음"이다. 

인생이 왜 힘든가? 힘을 들고 살아 그렇다. 

힘들지 않으려면 힘을 놓고 살면 된다. 

힘을 들고 사는 삶이 아니라 힘을 놓고 사는 삶! 

그것이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여주시면서 내가 타지 않고 성령이 타는 삶

신을 벗어 주님께 내 모든 힘을 내려 놓는 삶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당신의 삶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I am something의 시기를 보내며 즐거워하는가? '

기쁜 것은 좋은 것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I am Nothing을 경험하며 한껏 기죽어 있는가? 걱정하지 마시라. 

내 죽음이 곧 그의 부활로 나타난다. 

힘들지 말고 힘을 내려놓고

신을 벗어놓고

주님이 내 안에서 불타오르게 살고 싶지 않은가?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싶지 않은가?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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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 (출애굽기 3장 1-5절) 


모세의 삶은 우리에게 신앙인의 삶의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하는지에 대한 신앙인의 삶의 모델을 보여 줍니다. 그는 120년간의 삶을 살았는데 그 삶은 40년씩 3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처음 40년간은 이스라엘민족으로 태어났으나 죽음을 피해 물가에 던지어져 바로의 공주의 아들, 즉 애굽의 왕자로서 애굽의 선진 학문과 동시에 유모가 된 친모로부터 이스라엘의 신앙교육을 받으면서 살았던 시기입니다.  무디 목사님은 이 시기를 가리켜 “I am Something”의 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때는 자시의 자존감이 강해지는 시기입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임을 깨닫는 기간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그 민족이 가장 어려운 중에서도 자신들을 압제하는 애굽의 왕자가 되어서 특별함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삶의 목표를 굳게 세우고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앙인이었습니다. 

히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포기한 것 

1) 바로 공주의 아들로 사는 것 - 권력과 명예 -> 이생의 자랑 

2) 죄악의 낙 - 육신의 정욕 

3) 애굽의 모든 보화 - 재물 -> 안목의 정욕 


신앙인의 모습 - 죄악의 근본이 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포기하고 사는 자... 

그리고 나서의 삶 - 광야 가운데서 자기 소유의 양은 한 마리도 없이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삶... 40년 동안 - 40년이란 기간은 육신의 한계점.... 육신으로 이룰 수 있는 한계의 기간 -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서 금식하며 보낸 기간, 예수께서 금식하신 기간,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


그는 자기가 포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연단의 땅 광야에서 살고 있었다. 

->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신앙행위...


그는 좋은 환경 속에서도 세상이 즐거움에 빠져 신앙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구원하리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가 배운 학문과 교양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사용하리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뜻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꿈도 주시고 신자에게 좋은 뜻도 주시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뜻, 내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 과정도 하나님의 길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 중의 하나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선한 뜻을 세웠는데 그것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발생하는 좌절감, 실망감, 상처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세히 보면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 자신을 의지하는 삶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의 자리보다도 이스라엘 백성의 리더로서 그들을 위하고자 하는 삶의 목적을 가졌지만 그 이루는 방법은 철저히 애굽적, 즉 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왕자인 자신이 이스랴엘 편을 들면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를 지지할 테고 또 애굽 병사들도 어느 정도 자기가 가진 힘과 권세로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을 테이지만 그 결과는 애굽 병사 한 사람을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애굽의 병사들은 두려워져서 미디안 광야로 피해 40년간을 양을 치는 목자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무디 목사님은 이 기간을 가리켜 "I am Nothing"의 기간이라 표현합니다. 즉 내가 이 정도 밖에 안되는구나하면서 자기의 한계를 극명하게 깨닫게 되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이 시기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이 시기에 모세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원망감, 반항감으로 가득찬 시기일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선한 뜻을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 자기의 뜻을 꺾으신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이거나 아니면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내면적으로 채워져 있는 불만과 불안의 시기입니다. 성경이 인간 중심적인 책이면 이 시기의 모세의 상태를 좀 더 자세히 다룰테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를 다루고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 일하시는 책이기에 이러한 시기에 대해 잘 다루지 않습니다. 요셉이 팔려가서 당했을 고난, 야곱이 라반에게 도주해서 일어났을 불안감의 시기.... 그저 한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룹니다. 


이 모세의 불만과 반항심이 표출된 사건- 

하나님의 끈질긴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을 향해 떠나고자 하는 모세에게 발생한 사건 


[출 4:24-출 4:26]

(출 4:24)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하시는지라

(출 4:25)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출 4: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난해한 구절 - 왜 부르시고 그를 죽이시려 하는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 

[창 17:7-10]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들이 출생 후 8일만에 할례를 행하면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이다. -> 모세: 신앙생활 중에도 온전히 말씀을 행하지 않았다. 다 포기했다고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십보라가 모세가 죽을 위기를 당하자 곧바로 할례를 행하는가? 

그들은 하나님 믿는 백성이라면 당연히 자식에게 할례를 베풀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는 미디안이니까... 아무도 안보니까... 이제 이렇게 살아가 그냥 죽을 것이니까... 

현실의 삶 속에서 마땅히 해야할 성도의 의무를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알면서 불순종하는 불신앙의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반항의 표시이자 모세의 쓴 뿌리다. 


그러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을 수도 있다. 내가 애굽의 그렇게 좋은 환경, 높은 학식을 배웠는데 그것을 다 잊어버리게 하다니.. 그러면서 자신이 꿈꾸었던 비전도 잃어버리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신앙생활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가 애굽으로 돌아가려 하자 마자 하나님은 그의 신앙적인 불순종을 꾸짖으시고 십보라는 단번에 그 불순종이 할례를 뜻하는지를 알았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을 수 있다. 았다.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을 수 있다. 


I am nothing의 기간동안 모세는 철저히 자기의 한계를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신앙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거짓을 드러나게 하신다. 요나에게 찾아와 니느웨로 가라 했을 적에 드러나는 요나의 거짓 의, 반항심, 고집.... 


  • 하나님이 그런 중에 이제 모세를 통해 원래 꿈꾸워왔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일을 행하시겠다고 부르는 것이 오늘의 본문 말씀이다. 애굽에서의 40년, 광야에서의 40년 끝무렵에 만난 호렙산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은 5절의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라는 하나님의 음성과 모세가 보았던 불붙은 떨기나무이다. 

이 사건은 무디 목사님의 표현을 빌자면 비로서 I am Nothing 에서 I am Real Christian, I am God's person이 되도록 하는 하나님의 부르시는 사건입니다. 


네 신을 벗으라! 

(출 3:5)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다. 신을 벗으라는 소리는 룻기서 말씀에 보면 바로 권리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다. 


[룻 4:7-8]

(룻 4:7)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룻 4:8)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


배경 설명 - 룻을 얻기 위해서 보아스가 기업무를 자에게 찾아가 룻의 권리를 양도받는 장면..


신을 벗으라 -> 당신에게 나의 모든 권리를 양도합니다. 나의 소유권을 포기합니다라고 표현하는 이스라엘의 전통 

하나님이 네 신을 벗으라-> 네 권리를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영적지도자들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장면

1) 모세-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신 말씀

2) 여호수아 - 여리고성 가까이 갔을 때에 군대장관이 말씀하신 장면


왜 하나님은 광야가운데서 40년 동안이나 연단 가운데 삶의 아무 의욕도 없고 희망도 잃어버린 모세를 찾아가 네 권리를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무엇을 더 포기하라는 것인가? 그 단서가 바로 불타는 떨기나무이다. 


1절에 보면 모세는 장인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아마도 양떼를 먹이기 위해서 좋은 목초지가 있는 땅으로 이동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호렙산에 이른 듯 하다. 호렙산은 그 뜻이 건조한 땅이라는 의미이다. 습기가 없어서 생명체가 잘 살지 못하는 땅, 한 번 불 붙으면 모든 것이 다 타버리는 땅.. (이것은 무슨 나무든지 불만 붙으면 활활 탈 수 밖에 없는 물리적의미의 건조한 땅이기도 하지만 목적도 없이 의욕도 없이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모세의 영적 상태를 가리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건조한 땅, I am Nothing의 땅 호렙산은 동시에 바로 하나님의 산 이었다. 희망 없는 곳에 생명력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땅이었다. 그곳에서 떨기나무가 타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떨기나무 가운데서부터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자가 모세에게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건조한 땅에서 불이 붙었다면 그 나무가 금새 타서 없어져야 하는데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왜 하필이면 모세에게 이런 기적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을까? 

40년전 애굽의 백성을 죽이고 의기양양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싸우는 틈에 끼어든 모세-> 

내가 너의 편이다. 내가 널 도와줄께.. 내가 이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줄께…내가 애굽의 왕자지만 난 이스라엘 편이다. ? 자기 뜻, 자기 방법, 자기 의를 통해서 일하던 모세-> 동족에게도 버림받고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광야로 도망쳐버리는 모세. 


이제 네 방법, 네 뜻, 네 열정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일할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메시지. 

내가 널 불타오르는 지도자로 만들 것이다. 그러나 네가 아무리 불타올라도 네 육신이 쇠하지 않고 네 영혼이 다치지 않고 오직 내 능력으로 널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 네 육신의 털끝도 상하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니 네 권리를 나에게 주어서 나로 널 통해 일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내 능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날 불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 능력이라고 하면 실수한다.

엘리야-> 400여명의 이방 선지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이사벨 여왕이 쫓아온 다는 말에 “주님 이제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하며 낙심하는 선지자. 왜 자기 능력대로 일했다고 생각하나. => 로뎀나무 아래로 인도해서 그를 안식시키고 물과 음식을 공급해 주시지만 그 사역이 거기서 끝난다. 내가 내 능력대로 일한다고 생각할 때 내 사역이 끝이 날 수도 있다. 


하나님 주신 능력으로 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불타오르게 주를 위해 일할지라도 내 육신은 털끝도 상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라. 

일하는 자는 주가 버리지 않는다. 건강도 주시고 믿음도 주시고 열매도 주실 것이다. 

사탄은 여전히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너 너무 무리했잖아. 이제 쉬어야지. 너 그렇게 기도하다가 이제 다친다. 못일어난다. 육신이니까 쉬어야지.  


여러분 일터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타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지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이제 네 능력, 네 방법, 네 열정으로 일하지 말고 그 모든 권리를, 그 모든 짐을 나에게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맡기십시오. 그 분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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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장 1-5절) 


기독교를 가리켜 흔히들 계시의 종교, 말씀의 종교라고 합니다. 

우리 사람에게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 드러내신 것, 설명하신 것, 나타내신 것, 이것이 계시이고 인간이 먼저 다가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인간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 죄에 처한 인간은 숨고 도망하고, 가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을 때에 아담이 먼저 용서를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아담에게 다가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먼저 물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먼저 나타나셔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길을 주십니다.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길은 궁국적으로 우리 성도들이 가야할 하나님 나라, 천국이기도 하지만 매일 매일의 전쟁터, 영적 싸움터에서 승리하기 위한 길을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 말씀은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되지만 그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의 사랑처럼 감정적이며, 순간적이며, 우유부단한 사랑이 아니라 진리이며, 변치 않으며, 영원합니다. 그 사랑의 표현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계명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우리가 성경에 있는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있겠습니까? 

계명은 레마, 즉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찬양을 하는 중에 나의 영혼에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삶의 모든 현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을 따르기로 선택하는 대신 그분의 진리 앞에서도 여전히 내 생각, 내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 새벽예배 시간에 사사기서를 마쳤는데 사사기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간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그 땅을 잃어버리고 은혜를 잃어버리는 자가 되는지를 생생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잃은 자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삶과 행동의 기준이 자기 소견입니다. 자기가 보기에 옳게 보이고, 좋아보이고, 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의 사건은 우리 소견이 얼마나 유혹에, 죄에 흔들리기 쉬운 어리석고 연약한 것임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던 선악과가 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쳐다보니, 자꾸만 쳐다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합니다. 먹으면 안된다는 하나님의 말씀, 계시가 내 소견으로 말미암아 처참하게 무시당하는 장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무엇입니까? 자기 소견을 따르다가 결국 사망의 길로 가는 자가 이젠 자기 소견 대신에 주님의 길,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막 8:3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신앙 생활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갈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날 위해 죽으신 주님의 십자가, 내 뜻, 내 소견, 내 감정에만 충실히 살아오다가 사망의 문턱에 다다랐던 우리를 위해 달리신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나의 소견 대신에 주님의 뜻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른다? 

신앙생활 어느 정도 한 사람이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씀이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따르기 힘든 말씀입니다. 세상사람들에게 말하면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말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 분을 정말 신뢰해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정작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정말 그분이, 그 분의 뜻이, 그분의 길이 내가 가진 뜻과, 길보다 바르고 빠르고 좋다는 것을 매사에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죽이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의도를 믿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히 11: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나 이거 믿는데요? 아니요. 믿으면 순종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면 상주신 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따르지 못한다면 이유는 둘 입니다. 

상받기 싫은, 구원받기 싫어서이던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 생각을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처럼 아들달라고 기도하면서 막상 아들을 주겠다고 가브리엘 천사가 얘기하니까 그것을 믿지 않다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실재로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그 믿음은 어디에서 부터 생겨납니까? 

(롬 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읽고 암기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 말씀하듯 복있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말씀없이 신앙생활 하려고 합니다. 지성이면 감천, 내 정성을 다하면 하늘이 알아주시겠지 합니다. 

내가 다 순종하지 못해도 내 중심, 내 마음을 알아주시겠지 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순종하지 못하는 자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결국 하나님의 말씀 대신 자기 소견을 택하는 중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또 얘기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어럽습니다. 

말씀을 읽거나 기도하면 어떤 감동을 주시는데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럽고 막상 순종하려 하면 이게 내가 일시적으로 드는 생각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닐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망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을 분별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슬며시 순종의 길에서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 합니다. 

"하나님이 구약 시대 때 처럼 분명히 말씀하시면 난 순종할 것이다. 신앙생활 분명하게 할 것이다. 망설일 필요가 없다. 지금 보다 훨씬 쉬울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분명히 말씀하시면 신앙생활 지금보다 훨씬 쉬울까? 여러분, 실패하지 않을 자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 우리가 오늘 살펴볼 모세입니다. 

(신 34:10)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


그 모세를 첫번째로 대면하신 장면이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3장의 내용입니다. 

그 분의 첫 말씀은 무엇입니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5절) 는 것입니다. 


신을 벗으라는 얘기는 우리가 여러번 다루었듯이 네 권리를 내게 양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룻 4:7)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룻 4:8)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이스라엘의 전통 에서 "신을 벗으라" -> 당신에게 나의 모든 권리를 양도합니다. 나의 소유권을 포기합니다.

하나님이 네 신을 벗으라-> 이제 네 소견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장면 전까지 자기 고집대로만 살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살았던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신앙을 위해 포기한 사람이었습니다. 


(히 11:24)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히 11: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 11: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가  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동안이나 양을 치며 사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까? 

바로의 왕자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을 위해 고난을 선택한 것입니다. 왕자로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상 주심을 바라보며 잠시 잠깐의 죄악을 누리는 것보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40년동안 광야생활을 하기 전 모세는 이미 자신의 광야에서 40년동안 지내면서 세상의 정욕, 탐욕, 욕심을 버리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네 신을 벗어라. 네 뜻대로 살지 말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포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연단의 땅 광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행 7:22)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했던 모세가 

(출 4:10)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가 될 때까지 그는 자기를 부인하며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또 다시 "네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 포기한 것 같은 모세에게 여전히 네 권리를 나에게 넘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더이상 무슨 권리를 넘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출 3:9)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출 3: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네 신을 벗어라라고 말씀하신 후 명하신 것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겠다는 말씀이입니다. 이것은 알고보면 모세가 애굽에 있을 때부터 늘 바라오던,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모두가 소망하던 그런 꿈입니다. 그리고 그 꿈에 대한 확실하고 부인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이 모세에게 들려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내가 너를 쓸테이니 이제 넌 내가 말씀하는 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할렐루야하며 기뻐 뛸 소리입니까? 내가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것을 이루어 줄테니 이제 넌 네 소견을 버리고 내 뜻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모세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출 3:11)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한마디로 줄이면 ‘못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 할테니까 하는데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관대 인도해 냅니까? 묻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이끌어 내리라 하는데 지금 모세는 어떻게 받아들이냐면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이끌어 냅니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쓰임받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이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하며 찬양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바라보면 됩니다. 그런데 모세는 늘 한결같이 자신이 주어가 됩니다. 내가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을 보면 되는데...


두 번째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3:12절)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리라 했는데 모세가 '자기는 못합니다'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의 말을 받아들이시고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하면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참고 양보하고 모세에게 다가가신 것입니다. 그렇니까 모세가 다시 뭐라고 말합니까? 


  •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3) 


두 번째도 못간다고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어떻게 답변해야 하느냐고 오히려 되묻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내가 하겠다고 하는데 모세는 끊임없이 그들이 나를 못믿을 것입니다하며 자기를 나타냅니다. 자기 소견으로 하나님의 뜻을 계속해서 막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모세를 질책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또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4) 


무슨 소리입니까? 그 사람들이 믿던 안믿던 나는 자존자다. 지존이다. 난 한다면 한다. 반드시 한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씀하시면서 장차 바로와 애굽에 나타날 일들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도 모세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 (출 4:1)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여전히 모세가 주장하는 것은 자기 뜻, 자기 소견입니다. 

 

가만히 모세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전부 반대로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16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모세는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출 4:1)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은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18절)” 라고 말씀하셨는데 모세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1절)”이라고 부인합니다. 하나님은 하겠다고 하시는데 모세의 뜻은 끊임없이 그거 못합니다. 표현은 자기는 못합니다지만 결국 하나님도 그거 안됩니다하면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소견의 정체이지요. 


세 번을 설득했는데도 모세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삼고초려라고 사람도 세 번은 어떻게 설득하고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꿈쩍하지 않으면 포기하던지 화를 내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가 구원받도록 포기하지 않고 다가오시고 설득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출 4:2-10까지 네 번째 모세에 대한 설득이 나옵니다.  

네 번째 모세를 설득하면서 하나님은 세가지 기적을 보이십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가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는 기적, 손이 문등병에서 나아지는 이적, 그리고 물이 피가 되었다가 다시 물이 되는 기적..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을 보이시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믿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모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 출 4: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주님이 아무리 그렇게 능력이 있어도 난 여전히 못합니다.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하나님이 왜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하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면 자신의 능력이나 주위환경을 바라보면서 계산하지 말고 말씀하시는 그분이 누구신지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따르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인데 모세는 비록 음성을 들었어도 따르는 것부터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지만 자신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섯번째로 말씀하십니다. 

  • (출 4:11-1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왜 도대체 나를 믿지 못하느냐? 내가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다. 만물의 주관자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 


그런데 모세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 (출 4:13)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이 통하질 않습니다. 할 말 없으니까 나 못합니다. 죽어도 못합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죽어도 못보내가 아니라 죽어도 순종하지 못하겠습니다. 죽어도 내 뜻 버리지 못하겠습니다.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이 정도까지 했는데 저렇게 반응하면 정말 모세를 죽이고 다른 사람을 택하지 않으셨을까요? 돌맹이 하나도 움직여서 뜻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그런데도 참고 또 모세에게 다가오십니다. 


(출 4:14-15)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구약의 하나님이 분노의 하나님,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아니 모세가 무엇이라고 이렇게까지 맞추어 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설득해 나갑니다. 


여섯 번째 하나님의 노한 음성을 듣고 두려웠는지, 가겠다거나 못가겠다거나 오히려 말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물러나서 장인 이드로에게 갑니다. 장인인 이드로에게 하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빼고 다만 애굽에 있는 형제들이 아직도 생존하고 있는지 보고 오겠다고 말합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이들로는 미디안의 제사장 아닙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러면 무조건 순종해야 하니까 여전히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 위한 여지를 남겨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했다고 하지 않고 언제인지도 모르게 단지 애굽에 갔다 오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애굽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뜻밖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 (출 4:24-26)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아마도 출애굽기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입니다. 아니 실컷 명령하시고 막상 가려는데 왜 죽이시려 하시는가? 

너무 말안들으니까 막상 간다고 해도 화가 나서 죽이시는걸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17장에 보면 할례를 명하시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들이 출생 후 8일만에 할례를 행하면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바로의 공주로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고 다 포기했다고 하지만 막상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지키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한 것이지요. 


왜 십보라가 모세가 죽을 위기가 처하자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할례를 행합니까? 

자기 자녀들이 할례 받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아내인 십보라 역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서 여전히 버티고 안하고 있던 것을 모세가 위기에 처하자 당장 그것부터 한 것입니다. 


일곱번에 걸친 모세와 하나님과의 대화...

일곱이라는 수는 하나님의 수 완전수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언제까지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번 정도 용서하면 됩니까? 

하니까 예수님이 뭐라 하십니까?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해라. 


용서를 여기에서 설득하고 권면하는 것이라고 바꾸면 하나님은 지금 모세에게 끊잉없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러? 

아니지요. 결국은 모세의 꿈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정신나간 사람 같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질기게 무시하고 외면하고 고집 부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끊질기게 거부하고 반항하고 줄다리기 하는 외고집장이가 또 있을까요? 그가 과연 이스라엘 민족의 리더가 될 자격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 (민 12:3)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온유함이라는 그 어원이 "길들여진 말":에서부터 나왔다고 합니다. 

야생마가 주인에게 길들여져서 주인의 말을 잘 듣는..... 그런 순종의 대명사가 모세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나눈 말씀을 통해 볼 때에 모세를 과연 온유한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들께는 하나님께서 몇번이나 찾아가셨습니까? 우리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려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그리로 가면 사망의 길이다. 언뜻 보기에는 바른 길 같지만 결국 사망의 길이라"고 끊임없이 다가오시지 않았습니까? 


사람은 참 안변한다고 하지요. 모세를 보면 그런것 같습니다.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순종잘했던 모세가 저 정도라면 평범한 우리야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겠습니까? 


목회를 하는 저에게 주신 감동도 그것입니다. 사람 안변하지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끊질기게 모세에게 다가가십니다. 참고 참고 또 다가가셔서 모세의 소망을 이루어 주십니다. 모세를 구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이렇게 다가가겠습니까? 그래서 베드로에게 양을 맡기면서 물으신 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성이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범죄합니다. 그래서 첫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실하게 우리의 모든 생각을 내어 놓고 기도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가장 가까운 방법은 주의 종의 입을 통해서 입니다. 주의 종도 사람이데 어떻게 주의 종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하는냐로 묻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까? 보이는 사람에게도 할 수 없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느냐? 주의 종은 보이도록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어려도, 실수가 많아도 강대상에서 말씀을 전할 때는 하나님 말씀으로 들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복됩니다. 


더 큰 죄는 무엇입니까? 음성이 있는데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여전히 "나는...내 사정이.... 내 생각엔... 내 남편이...."하면서 나 나 나 를 고집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합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것은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내 감정, 내 뜻을 버리고 굴복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십니다. 결국 나의 꿈, 나의 비전, 나의 소망을 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순종할 때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갈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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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희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9.30 20:28

    너무나 도움되는 말씀입니다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