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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5장 1-7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03.04 전도서 5장 1-7절: 꿈, 말, 경외

 전도서 5장 1-7절: 꿈, 말, 경외


전도서 5장에 들어서 솔로몬은 비로서 하나님께로 눈을 돌립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갈망했던 자, 예배를 통해 지혜를 얻은 자가 하나님께로 얻은 지혜로 세상을 것을 취하고, 탐하고, 누리다가, 그 안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고 허무와 고통을 느끼다가 이제 다시 하나님께로 눈을 돌립니다.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7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도 솔로몬의 전도서를 통해 왜 그가 그토록 참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합니다. 


앞 장 4장의 끝 부분에서 솔로몬은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낫다 (13절)"

고 하면서 훈계를 들을 줄 아는 가난한 지혜자와 몸과 마음 모두가 둔하여 져서 더 이상 어떤 경고와 훈계도 들을 수 없게 된 왕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가 들을 경고는 무엇입니까? 

허무한 세상을 붙잡지 말고 결국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 분을 좀 두려워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 전도서는 타인에게 설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그 말씀의 대상은 솔로몬 자신입니다. 자신의 참회록이요 고백록입니다. 

그는 이방여인들과 혼인을 하며 그들에게 산당을 지어주고 여러 우상들을 들여오는 와중에서도 안식일이 돌아오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삶은 여인들과 우상들과, 세상의 풍요 가운데서 즐거움을 찾기에 취해있었지만 그래도 주일이 오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풍요로운 번제와 예물을 드리면서 자신에게 축복을 허락한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을까요?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 지어다" (1A) 

예배하러 올 때에, 기도하러 올 때에 네 발을 삼가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데나 들락달락 하지 말고 좀 깨끗하게 하고 오라. 정결하게 준비하고 좀 오라. 

냄새 풍기고, 이런 저런 세상의 흔적을 지니고 오지 말고 정말 나를 좀 만나러 오라는 것입니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 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느니라"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결국 솔로몬 자신에게 하는 말이요,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입니다. 


찬송가 278

"여러해 동안 주 떠나 세상 연락을 즐기고 저 흉악한 죄에 빠져서 주 은혜를 잊었네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함께 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초신자 때는 그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아무리 탕자 처럼 살아도 돌아오면, 예배당에 앉으면 반기십니다. 

그런데 3년되고 5년되고 십년되었는데도 휙 하니 예배 드리고 가서 여전히 세상에 빠져서 뒹굴다가 

은혜 없이 감격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시간되면 예배당 오고 또 돌아가고...

점점 구원의 기쁨은 사라지고 위선자가 됩니다. 

예배 드리는 악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예배드린다고 하면서 의인 행세하는 정말 악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까이 오라는 것은 우리에겐 곧 휘장을 지나 하나님이 임재하신 지성소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뜰 앞만 왔다갔다 서성이다 가는 예배가 아니라 앝은 물 가에서 물장구 치다 가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은밀히, 친밀히, 깊은 물의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니라 

다정한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기 위해 만났습니다. 옷도 잘 꾸미고 기분좋으라고 향수도 뿌립니다. 

멋있는 식당도 예약해놓고 맛난 음식도 시킵니다. 

겉보기에는 정말 다정한 연인같고 행복해 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니까 한쪽만 말합니다. 그것도 조근 조근 소근소근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화난 듯이 급하게 막 말하고 말 끝나니 상대방은 밥도 다 안먹었는데 일어나 나가 버립니다. 어느 누가 이런 데이트를 하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세상에 취해서 예배드리러 온자들이 하는 기도가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내가 말하고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신앙인들의 기도는 내 뜻을 전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듣는 데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이야기 할 줄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라 하십니까? 우리의 뜻을 구하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확신할 것은 확신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내가 바쁩니까? 하나님이 더 바쁘십니까? 그런데 기도하러 와서 순식간에 할 말 다 해보리고 그러면서 끝에는 꼭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하고 성급히 일어나 나갑니다. 나가지 말고 좀 들으라 합니다. 좀 더 앉아 있으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라...이것은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 만물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에서 높은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고 그 방법도 다르니 네 문제 다 이야기 했으면 이제 내 생각을 들으라 하는 것입니다. 

제일 속 터지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 할 말 다 해 놓고 내 얘기 듣지 않는 사람 아닙니까? 자기 말은 다 진리고 남의 얘기는 쓰잘데기 없이 취급합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이렇습니다. 

난 창조주다. 난 전능자다. 네 얘기 다 했으면 이제 내 얘기도 들어주렴.... 그런데 듣지 않고 나갑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기도해도 내 기도 안 들어주신다. 하나님 없나보다...하고 다닙니다. 


지혜자의 기도는 무엇입니까? 

말을 적게 하고 깊게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중언부언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올 해 대표기도를 꼭 써서 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중언 부언 하지 않고 꼭 할 말만 적게 하기 위함입니다. 

때로 기도를 들어보면 이것이 설교인지 기도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인지 성도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기도는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3절) 

꿈과 말! 어찌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요, 은혜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말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하나님의 말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삶 자체가 말이였습니다. 임의로 말하고 임의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고 순종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들에게 꿈은 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세상은 꿈을 단지 무의식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희망이나 욕망이 상징으로 표현된 것이 꿈입니다. 

그런데 꿈에는 개인적인 욕망의 표현 너머의 세계가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태몽은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꿈의 영역입니다. 

성경은 계시의 통로로서의 꿈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찬양 가사로도 유명한 요엘서 2장 28절부터 말씀은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이 때 뿐만 아니지요. 천사 가브라엘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꿈으로 나타나서 예수님의 나심을 예언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려 할 때에 환상이 임하여 그를 마게도냐 지방으로 가도록 강권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받은 환상으로 계시록을 남기지요. 

어찌보면 성경은 아브라함에게, 요셉에게 주신 꿈으로 시작해서 사도 요한에게 주신 꿈으로 끝나는 꿈으로 가득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의 저자 솔로몬도 꿈을 통해 지혜를 선물로 받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말도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난다고 경고합니다. 

꿈이 참 꿈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꿈은 내 걱정의 산물입니다. 욕망의 산물입니다. 

말이 참 말되게 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빠진 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내 말은 곧 우매한 자의 걱정이요, 우매한 자의 소리일 뿐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이 어둡고 우리의 귀가 닫혀 있을 때에 꿈을 통해 계시하실 때도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주시는 간접적인 통로입니다. 가장 직접적인 계시는 바로 말씀이요,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서원한 것을 갚으라. (4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구체적인 행동을, 순종을 요구하실 때도 있습니다. 

자, 한나가 성전에 와서 아이가 없음을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을 통해 응답의 소리를 듣습니다. 제가 보기엔 확실한 응답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삼상 1:17) 

허락하셨다도 아니고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 다음 구절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여종이 덩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빛이 없더라." (삼상 1:18) 


서원이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한나도 애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나이다.서원하고 갚지만 그 전의 더 깊은 서원의 완수는 하나님의 응답이 떨어졌을 때에 다시는 근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여러 문제를 가지고 나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금식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런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면 이것을 응답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한나가 한 것처럼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고 평강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질 못합니다. 

말씀을 받았어도 여전히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하나님은 현실을 바꾸기 전에 말씀을 주십니다. 약속을 먼저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입니다. 

씨앗은 믿음으로 열매 맺습니다. 

말씀을 주시고 더불어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씨앗을 받고서 왜 꽃이 안보이지 합니다. 

씨앗 받고서 여전히 두리번거리면서 열매를 찾아 헤매면서 불평하고 근심합니다.


서원한 것을 갚으라는 것은 "난 분명히 약속을 지킬 터니이 너도 내 앞에서 네 순종함과 약속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전도서 5장은 예배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삶은 예배하는 삶입니다. 

예배하러 나올 때는 준비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삶으로, 태도로, 말로 준비해야 합니다. 

내 길을 삼가고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들으라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중심은 말하는 것이 아닌 듣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이고 기도입니다. 

내 문제, 내 할 말을 했다면 그 분이 말씀하시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듣고 가야 합니다. 

꿈도 말도,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에 완전해 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빠진 꿈과 말은 헛된 욕망입니다. 어리석은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그것을 받았다면 믿고 확신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데에 계속 염려하면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주신다 하면 주십니다. 약속을 않 지키는 것은 나지 그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십니다. 

내가 넘어지고 못 믿기 때문에 기한 전에 열매맺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분을 믿고 순종하는 것 이것이 서원하고 갚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기로 서원하여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약속하고 나온 자들입니다.  

준비되어 예배드리고, 그 분을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대로 순종하고 믿고 삽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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