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12021  이전 다음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  

'이사야 강해 (66장 7-19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0.12.09 이사야 63:7-19절 종의 찬양과 간구

이사야 63:7-19절 종의 찬양과 간구 

 

[사 63:7-19]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1. 종의 기도 

[사 63:7]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 "나"는 누구인가? 문자적으로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유다 백성에게 선포한 이사야라고 해야 하지만 63장은 제 3 이사야, 혹은 후기 이사야 본문으로 여겨지는 바벨론에서부터 귀환한 때에 기록된 글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 당시 이사야의 역할을 했던 선지자, 혹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활동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름없는 한 선지자, 혹은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라 하자. 
  • 그는 지금 이스라엘의 특정한 어느 역사적 순간에 하나님의 큰 은혜와 자비를 찬양한다. 19절까지 이어진 이 종의 기도는 찬양으로 시작해서 간구로, 탄원으로 끝이 난다. 7-19절까지는 "나"로 표현된 한 종의 기도문이다. 

 

2.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사 63:8-9]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 하나님이 이루신 자비와 은혜의 역사는 무엇인가? 그들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된 것이다. 
  •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Surely they are my people, children who will be true to me)-> 그들을 백성 삼으신 하나님은 그들은 나에게 진실할 것이라 (미래형)으로 선포한다. 그들을 택하실 때부터 그들에게 행하실 구원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 방법: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신다. 그리고 동참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자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신다. 그리고 어미가 아이를 돌보듯 그들을 안아주시고 일으키신다. 

 

3. 백성들의 반역과 원망 

[사 63:10-14]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로 그들을 구원하셨으나 그들은 주를 반역했다. 그런데 이 때 쓰인 표현 하나가 눈에 띈다.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다" 그들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그들을 거룩하고 진실하게 인도하시는데 그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영을 근심하게, 상하게 하였다. 
    • [막 3:28-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왜 이 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가? 그들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번 구원을 얻은 자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지만 성령을 거역하는 자,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가로 막는 자들에게는 그 구원의 역사가 펼쳐지지 못한다. 왜? 구원은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역사하기 때문이다. 
  •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 자체가 심판이다. 그리고 그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치시기도 하다) 
  • 백성의 원망과 탄원: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현실을 경험하고야 하나님을 찾는다. 부르짖는다. 그런데 이 부르짖음은 회개가 아니다. 모세에게 구원을 베풀어 출애굽 시켜 주셨던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을 편히 쉬게 하셨던 하나님, 지금 어디 있느냐고 현재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그저 부르짖는 것이다. 

 

4. 종의 중보와 간구 

[사 63:15-19]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며 종이 중보하고 간구한다. 굽어 살피소서. 우리를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 지금까지 그들에게 쉬지 않으시고 잠잠하지 않으셨던 그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사 63:17절]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은 어찌보면 그들의 잘못의 탓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처럼 들리지만, 회개가 없는 회복을 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앞서 드렸던 백성들의 부르짖음과는 다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올려 드리면서 그가 오직 의지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기도한다. 

[사 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 구약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표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 종은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른다. 그러면서 히브리인들이 자기 민족의 자긍심처럼 삼았던 아브라함도, 이스라엘로 변한 야곱의 이름도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고 오직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간구한다.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왜? 그들의 불신과 배반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후손이라 일컫을 수가 없습니다. 
  • 마치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에게 난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하는 것처럼 내가 아브라함의 자식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후손이 않게 된다 할지라도 내가 포기할 수 없는 한 분- 하나님, 당신이 내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니 날 책임지세요. 나에게 사랑을 거두지 마세요....

 

거기엔 조건이 있을 수 없다. 내가 뭐 했으니 들어달라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어리석은 기도일까? 왜? 우리가 한 것이 그 분이 행하신 것에 비할 바가 못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기도를 할 때가 많다. 내가 이 만큼 했으니 이 기도 들어주세요. 그 분은 날 위해 죽었다. 그런 분 위해 무엇을 했다 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냥 아버지잖아요. 아버진데 왜 날 내버려 두세요....하는 기도는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의 의를 통해서도 아니고, 무미건조한 하나님의 성품을 나열하는 데서도 아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그 분이 날 택했고, 낳았고, 기르신 그 관계가 기도의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예수의 주기도문도 그 시작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의 출발, 기도의 근거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이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