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022  이전 다음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  

'요한복음 16장 7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0.12.02 그가 떠나심으로 (요한복음 16장 7절)

그가 떠나심으로 (요한복음 16장 7절)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신앙생활 하면서 소망하게 되는 것 - 주와 동행하는 것, 주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것

반대로 가장 고통스러운 것 -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 기도해도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을 때.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구약의 사람들, 특히 모세와 같이 하나님을 직접 대면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할 때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를 실재로 만나 그분의 말씀을 직접듣고, 그 분의 기적을 눈으로 보고, 함께 식사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었던 예수님의 12제자들을 부러워하게 된다. 

그들의 믿음은 얼마나 확실할까? 

 

그 분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였던 요한은 예수님을 체험한 그의 경험, 그의 믿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우리라고 표현한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교제하고 (자세히 보고) 만진 그 분의 제자들이다. 

 

그런데 그 분과 함께 했던 제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가장 많은 책망을 들은 자들이다. 

"너희가 믿음이 없는 고로....믿음이 없는 자여...오히려 여인들과 이방인들을 가리켜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칭찬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던 도마에게는 

[요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라고까지 말씀하신다. 보지 않고 믿은 우리가 오히려 그들보다 복되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요한복음 16장 7절에는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는 것이 오히려 제자들에게 유익이라 말씀하신다. 왜? 떠나지 아니하면 보혜사 성령이 오시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주님의 말씀이면서도 우리에게 잘 와닿지 않는 말이다. 

내가 떠나는 것이 유익이다. 예수님이 떠나는 것이 유익일 수 있을까? 

우리는 육신적 예수를 만난 적 없이 보혜사 성령의 때를 살고 있다. 성령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가 예수님을 직접 경험한 그들보다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가? 

왜 주님은 우리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말씀을 하셨을까? 그 분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그럴 때에 우리는 그가 떠남으로 얻는 "유익"의 의미를 알고 그 유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1. 언제 이 말씀을 하시는가? 

요한복음 13장 - 최후의 만찬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또한 가룟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의 배반, 그리고 베드로의 부인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13장 마지막에는 그가 아버지께로 가게 됨을 비로소 말씀하신다. 

 

[요 13: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14장에 가서는 본격적으로 그가 가야될 곳을 제자들에게 알리신다. 

 

[요 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2. 그리고 예수가 아버지 집에 가면서 대신 보내 주시는 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이다. 

[요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보혜사 : advocate(변호사) -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치시는 분 
    •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가르치고 생각하게 하시는 분 - 제자들: 예수께서 직접 가르치셨으나 이해하지 못했다. 십자가를 이야기하는데 누가 더 높냐를 가지고 싸우고, 부활한다 하셨는데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왜? 진리의 말씀이지만 그것을 담을 마음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령은 내 안에서 끊임없이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또 이해시키신다. 내 외부의 선생이 예수님이었어도 깨달을 수 없었던 말씀을 성령께서 내 마음 안에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  
  • 예수님은 잠시 잠깐 함께 하지만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
  • 그리고 예수님은 나의 밖에 존재하시는 분이시지만 보혜사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 
  • 그리고 그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이듯, 아버지와 예수와 우리가 함께 거함을 알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3. 그러면서 그 유명한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를 말씀하신다. 

[요 15:1-5]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 졌다. (죄사함을 받았다, 구원받았다) 
  •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열매 맺을 수 없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 너희는 이미 깨끗하여 졌는데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열매 맺지 못한다.....이게 어떤 상태일까? 
    • 출애굽을 했다. 홍해를 건넜다. 바울은 홍해를 건넌 사건을 성도의 세례 사건으로 표현한다. 세례 받았다는 것은 곧 거듭났다는 것, 구원 받았다는 것의 상징이다. 
    •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고 광야에 거하는 자들은 그 삶에 열매가 없다. 오직 하늘로부터 내리는 것으로 먹고 산다. 이것도 역시 은혜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불평 불만한 삶을 살고, 그 삶에 그들의 합당한 열매가 없다는 것이다.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그들이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여전히 애굽이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비교 대상도 오직 애굽이다. 은혜에 합당한 열매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야 열린다. 가나안에 들어가야 애굽을 잊어 버린다. 그곳에서 새로운 여정을 출발하는 것이다. 
    • 우리는 여호수아를 함께 나누며 출애굽 할 때에 건너는 홍해는 일생에 한 번 건너는 유일한 사건이지만 성경에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은 여호수아를 통해,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그리고 나아만 장군을 통해, 세례 요한을 통해 거듭 나오게 되는 성령의 은혜, 성결의 은혜라는 것을 나누었다. 중생은 한 번 경험하는 유일한 경험이지만 성령의 충만함과 성결의 은혜는 때에 따라 거듭 경험할 수 있고 또 해야하는 경험이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시고, 이적을 보이시고, 기도하셨어도, 그들은 스스로 열매 맺지 못하였다. 단 한 시간만 깨어 기도하라 하였건만 "육신이 연약한 고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한 시간을 기도하지 못한다. 언제 비로서 기도하는가?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할 때에 그들은 지치지 않고, 그 이후에도 매일 같이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기도하는 존재가 된다. 주님이 옆에 계셔도 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무력한 존재로서 살아간다. 진리를 말해도 깨닫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더 어렵고 불가능하다. 
  • 이미 주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존재로 오셨다. 바로 주님의 성육신이다. 주님은 하늘로부터 우리와 함께 거하러 오셨는데 문제는 우리 자신이 주님과 거하려고 하지 않는다. 주님과 함께 거하면서도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주님 밖에 거한다. 마치 성전 마당 뜰만 밟고 되돌아 가는 성도와 같다. 이 안타까움을 주님은 계시록 3장의 말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요한에게 증언하신다.
    •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 우리 안의 중심에 주님을 모시는 것, 우리가 주님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 오직 성령 안에서 가능하고 또한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4. 우리가 맺어야 할 참 신앙의 열매는 무엇인가? 

주님은 13장부터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새 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시면서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성령이 오실 것을 예고하시면서도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포도나무와 가지를 말씀하시면서도 이 계명을 강조하신다.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이 계명이 성령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주님이 계실 때에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주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제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난다. 

또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때로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다른 스승의 제자들과 다툼을 일으키고 분쟁을 일으킨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할수록 그들은 서로 분쟁하고, 경쟁하고, 다투는 관계가 되어간다. 

 

그런데 주님이 가시고 성령이 오실 때에 그들은 비로서 연합하고 교회를 세우고, 또 그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더 나아가 이방 땅까지 가면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장벽을 무너뜨린다. 

빌립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바울을 통해, 또한 열 두 제자들을 통해 복음이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계로 전파된다. 

성령 안에서 이루시는 주님의 계획, 주님의 열매,- 바로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존재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막힌 담을 허물고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담을 쌓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이 교회에 대해 담을 쌓게 만드는가? 

주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담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요 16:2-3]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바울을 출교 시키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며,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착각 -왜? 아버지와 예수님을 알지 못하므로...

 

[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구약의 선지서 -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 제사와 예물과 제단이 아니다. 정의와 자비, 긍휼한 마음이다. ->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5. 결론 

물론 주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에 제자들을 떠나야 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또다시 제자들을 찾아와 그들과 함께 유하실 정도를 그들을 극진히 사랑하셨지만 아무리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함께 하기 때문에 이루지 못할 일들이 있었다. 

아무리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주님의 살아계심을 눈으로 증거하고, 그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어도, 그들 안에 예수가 없으면 그들의 믿음은 공허한 신념일 뿐이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님이 없이는 주님을 주님 되게 알 수 없다. 내 안에 역사하는 빛, 내 안에 나를 움직이시는 영, 그 분을 통해 우리는 비로서 예수의 안으로 들어가고, 우리 안에 예수가 주인되신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주님을 거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분의 말씀을,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를 가르치시고, 감동시키고, 인도하신다. 

그 분의 이끌림 없이는 때로 우리 열심이 주님을, 주님의 뜻을, 주님의 계명을 삼킬 수도 있다. 

 

그 분의 계명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의 존재가 되게 한다.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찾아 헤메는 자가 아닌, 우리의 존재로서 벽을 허무러뜨리고, 화해하고, 용서하며, 하나되는 성령의 공동체가 되게 하신다. 

보혜사 성령의 가장 최고의 사역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치시는 것을 넘어 사랑할 수 없었던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떠나가심으로 주님은 그 분의 사역을 완성시키신다. 때로는 없음을 통해 그 존재의 충만함을 경험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자의 존재의 소중함을 알고, 하나님의 침묵을 통해 응답하시는 그 분이 은혜를 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많은 삶의 영역에서 없음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함께 모여 식사하며 왁자지껄하게 함께 했던 시간들, 추수감사절을 지내며 성탄 트리를 장식하고, 여러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쇼핑을 다니며 연말 분위기를 내는 모습, 맛있는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가족과 함께 극장에서 연말의 영화를 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매 주 모여 예배 드리며 그 분의 있음의 충만함을 경험하는 것. 

그런데 그 없음을 통해 유익을 주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았으면 한다. 

이 없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유익은 무엇인가? 우리가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눈 밖의 경험으로 체험했던 모든 신앙의 모습들이 내 안에서 뜨겁게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분이 주신 새 계명, 사랑을 통해 내가 무너뜨려야 하는 장벽은 무엇인지, 내가 다가가야할 사람은 누구인지.... 

 

Posted by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