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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오병이어, 그리고 나 


두 시간에 걸쳐서 니고데모(3장)와 사마리아여인 (4장)과의 만남. 

유대인 관원이었던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유대인 뿐만 아니라 전 이스라엘의 구원, 모든 민족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고 독생자를 주셨다. 그 독생자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요 3:16절)

사마리아 여인들에게는 너희가 신실함은 있는데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 예배의 대상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예배한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대상자는 바로 나다. 내가 그다." 하면서 역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려야 할 예배를 말씀하신다. 

 

 5장에는 중요한 사건 하나가 나오는데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는 사건. 

 예루살렘의 양문 곁 (예배 때 드릴 어린양을 바치는 곳) 

 베데스다 연못- 은혜의 집, 교회, 예배. 

 그런데 은혜의 집에 풍성한 은혜가 없다. 은혜를

사모해서 사람들이 찾아갔는데 풍성한 은혜가 없다. 가장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 갔는데 필요한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 

  • 가끔 천사가 나타나 은혜를 주고 있다. 누가 은혜를 입었는가? 

      은혜라고 하면 무능한 사람에게 임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사람이 은혜의 혜택을 받음. 

  • 구약의 은혜, 율법의 은혜- 선택된 백성에게 임한 은혜, 구별된 사람에게 임한 은혜
  • 신약의 은혜 - 누구나 은혜를 사모해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 예수님의 은혜는 특별히 가장 무력한 사람에게 임함. 

상황적 배경-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이 움직임을 기다리니 (요 5:3) 

  •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 - 은혜의 집 베데스다에서 자신들의 행위(내달려서...) 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들...    
  • 그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누군가 나보다 먼저 연못에 들어갔기 때문이다고 생각하기 때문... 나도 언젠가 그 연못에만 들어가면 세상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그러나 정작 자기 힘으로 그 연못에 들어간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이 세상의 죄인들이 바로 소경이요 절뚝발이고 중풍병자들이다. 
  • 가데스 바데아 - 여호수아가 열두 정탐꾼을 보낸 땅. 우리 힘으로 그 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고자 한 땅. 

                                 -> 베데스다 연못을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 곳에 들어가리라 하며 38년을 기다리고 있는 병자의 모습과 광야 가운데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우리 힘으로 절대로 그곳에 들어갈 수 없어하면서 유리구걸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 -> 네가 낫고자 원하느냐? 한마디를 가지고 다가가시는 주님. 

                                 

주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영생을 얻는다. 

그런데 니고데모나 베데스다 연못가의 사람들---내가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인정받겠지. 들어가겠지... 

은혜를 잃어버리고 오직 자기 방법만 남은 사람들... 


자, 이제 6장으로 넘어와서 우리가 몇번 나누었던 오병이어의 사건.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려고 하시나? 

먼저 요한복음에서 나오는 오병이어 기록의 특징 

다른 복음서는 장소가 빈들이다. 음식을 구할 수가 없는 장소.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만큼은 장소가 산이다. 

  • (요 6:3)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산하면 떠오르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산상수훈 마 5장에 함께 나누었던 산상수훈.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무리, 여러 목적을 가지고 다가오는 수많은 무리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중에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제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임을 안 자들이 주님과 함께 거하기 위해서 나아오는 곳. 제자들이 모인 곳 -> 산 

  • (요 6:4)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희생제사를 드리고 믿음의 식구들이 모여 유월절 음식을 나누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절기



제자들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큰 무리들. 무엇을 소망하면서 오는가? 구원, 영생, 치료, 영원한 것을 희망하여 오는 자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마치 자기가 무엇을 믿어야 되는지도 모르고 예배하는 사마리아여인의 몰골과도 같이 너무 불쌍한 것이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마가복음 6:34) 


구약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백성들이 빠진 범죄 - 우상숭배 

하나님과 바알을 하나님과 아세라를 겸하여 섬김. 

왜 겸하여 섬기는가? 자기들의 영적인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을, 자신들의 육적인 만족, 경제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세상의 신을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 너희들이 언제까지 둘 사이에서 방황하려느냐? 

바알이 비를 내리고 풍년을 내리는 줄 아는가? 

그거 다 내가 주는 것 아니냐? 영적인 것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모든 복과 저주도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 그 사건이 엘리야와 바알, 앗세라 선지자와의 갈멜산 전투. 


자, 참 제자, 그리스도인들

육신의 떡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지금 산으로 오른 자. 

말씀을 사모하기에 육신의 떡이 없는 것도 알지 못하고 주님과 머물러 있기 원하는 자.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지금 영적으로는 이들이 주님을 알기 시작했고, 주님을 따라 산으로 오르고 제자가 되었고, 또 제자들을 따라 산에 올랐다. 

그런데 육적으로 그들은 여전히 궁핍하다. 

니고데모와 사마리아여인, 영적인 체험이 없었다. 오직 육적인 믿음으로만 신앙생활 했다. 

거듭나야 된다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야 되나요? 하고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준다니까 빨리 줘서 다시는 물길으러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영적인 말씀을 육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오병이어 사건 이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각각 마을로 보내어 귀신을 쫓게 하고 병을 고치게 하고 복음을 선포하게 한다. 이른바 영적인 훈련을 시키시고 영적인 능력에 눈을 뜨게 한다. 

그리고 나서 몰려오는 무리들을 보시고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일까?" 하고 묻는다. 


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반대로 영적인 사람은 또한 육적인 것을 잊어버릴 수 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이다. 38년간의 신앙의 연단을 그쳐 마침내 약속의 땅, 은혜의 땅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범한 죄-> 우상숭배다. 

영적인 것은 하나님이 주셨지만 이제 육적인 것은 세상의 법에서 얻으려는 것이다. 


요한복음만의 특징 2.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합니다." (요 6:7) 


은혜 충만한 사람- 난 떡이 없어도 말씀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것은 없습니다. 난 없습니다. 주님만 있습니다. 주님이 다 해주세요.  

각 사람으로 받는 것- 계산을 0원. 

오직 하나님이 다 하실꺼야... 

이건 교회에서 하는 게 아니야... 


그런데 결과는 한 아이의 헌신. 

아이- 계산 없는, 순수한 헌신. 깨끗한 헌신. 

각 사람의 것을 조금씩 받아도 - 0원. 

그런데 각 사람이 아니라 한 아이의 깨끗한 헌신, 계산없는 헌신-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

장정만 5천명- '계산하는, 걱정많은, 믿음없는....' 을 먹임.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요한복음만의 특징 3. 

  •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 하나님의 은혜를 낭비하지 말아라. 흥청망청 하지 말아라. 헛된 것이 쓰지 말아라. 
  •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 열두 지파- 교회를 가득 채웠다. 뭐 후에? 모든 자들이 배불리 먹고 난 후에.. 


오병이어 교회 

- 먹을 것이 풍성한 교회... 배고픈 자들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먹일 수 있는 교회 

   그런데 누가 먹느냐? 말씀을 들으러 온 자들이 음식을 먹는다. 이들이 처음부터 양식을 바라고 온 것이 아니다. 

   말씀을 들으러, 그들의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서 산에까지 올라온 것이다. 

   교회에 오는 목적은 영혼구원이다. 그것이 첫번째요 유일한 목적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그들이 육적으로도 배고픈 것을 아셨다. 누가 먼저 나 배고파요 하지도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배 고픈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의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우리 육신의 구세주임을 알게 하기 원하신다. 

   

-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일까? 

이것이 제자들의 마음을 채울 수 있어야 한다. 아이 은혜 받게 했으면 되었지, 말씀만 들었으면 되었지...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말씀을 잘 들었나 체크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어떻게 먹일까를 생각하게 하셨다. 

그리고 다름아닌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을 먹일까 하고 물으신다. 

우리는 무리를 먹이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제자다. 

구약의 백성들은 모세를, 엘리야를, 선지자를, 다윗을 의지하기만 했다. 그들 스스로는 아무 것도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셔서 그들로 하여금 귀신을 쫓고, 병자들을 고치며, 그리고 이제 그들을 떡으로 먹이라고 까지 하신다. 너희들이 그 일을 하라고 하신다. 

ex) 유람선, 어선, 군함. 



- 그리고 한 사람, 한 어린아이의 계산없는, 의심없는, 순전한 헌신을 통해 모든 무리를 배부르게 하길 뿐만 아니라 남은 음식으로 열두 방주리, 모든 교회를 넉넉하게 하신다.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우리 스스로의 헌신 위에 축사하신다. 우리의 순종과 우리의 믿음과, 우리 각자의 결단을 요구하신다. 


마지막 요한복음 오병이어 사건의 특징 4. 

다른 복음서는 먹인 것으로 사건이 끝나지만 요한복음은 먹인 후의 예수님에게로 초점을 맞춘다. 

(요 6:15)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육적인 것을 채운후에 다가오는 유혹은 칭찬듣고 싶은 욕망이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교만해지고, 자만하게 되고, 그곳에 머물러 대접받고 싶고....

그런데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신다. 사람들의 시선을 떠나, 자기 교만의 유혹을 떠나, 유유히 하나님과 교제하러 가신다. 


ex) 은혜 가운데 채워진 재정. 물론 하나님의 은혜... 그러나 어린아이의 오병이어의 헌신처럼 많게 적게 헌금하신 성도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 

그런데 전 누가 아무리 헌금을 많이 했어도 절대 개인적으로나 공개적으로 칭찬하거나 치하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그것으로 인해 교만해지고, 혹시하고 그런 사람의 칭찬 받으려고.... 하나님이 주실 칭찬을 내가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감사하지만 내가 말한 감사 때문에 그 분의 신앙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완전한 것이다. 이것은 영육간의 구원이다. 물론 영적인 충만함이 먼저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충만한 자를 결코 주리게 하시지 않는다. 영적으로 채워진 자가 육적으로도 채우게 하시고 남들도 채우게 하신다. 

어릴적, 신앙생활 하면서 예수 믿으면 꼭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해? 

아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뉘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 이 사람들을 앉게 하라.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쉴 수 있는 곳. 

평안한 곳. 그 곳에 나를 앉게 하신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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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너희들이 주어라

본문 : 마가복음 6 30-44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

시간적 배경: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히 고하니…(30)

è  6 7절과 댓구를 이루는 말씀:

( 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전도하러 보냈더니 제자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함.

è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 일은 했지만 자기의 양식을 얻지 못하였다. 사역은 했지만 말씀으로 충전되지는 못했다. 순종의 사역은 있었지만 온전히 자기화 되지 못한 믿음이었다.

è  그렇기 때문에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는 말씀은 너희가 경험한 것을 기억하며 말씀으로 더불어 새롭게 하라는 것. 말씀으로 무장된 믿음을 가지라는 것.

또 다른 배경

[ 6:3-4]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è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산상수훈을 기억나게 하는 말씀. 무리에서 떼어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말씀.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l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희생제사를 드리고 믿음의 식구들이 모여 유월절 음식을 나누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절기

l  기억하다 (Remember) – 단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 사건의 멤버가 되는 것. 그 사건으로 돌아가는 것

-       첫 번째 유월절 때 예수님의 행적

[ 2:13-1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è  성전 척결 사건: 유월절 제사의 제물이 되는 동물들을 사고 팔기 위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몰아내시는 사건.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16)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19)

è  유월절 제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       마지막 유월절 때의 예수님의 행적

마지막 만찬:

( 22: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하라.

è  베드로와 요한에게 명하여 유월절을 지낼 장소를 얻게 하심- 마가의 다락방

è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22:19)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 22:20)

è  자기들의 양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어 주시는 것.

 

그 사이 예수님의 공생애에 있어서 두 번째 유월절을 앞두고 일어난 사건이 바로 오병이어의 사건.

(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è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분. 그들을 먹이시길 원하시는 분

두 양자의 예화

마음씨 좋고 존귀한 한 가정에서 두 명의 양자를 얻었다. 한 명은 아주 존귀한 가정의 양자로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이전의 삶을 버리지 못하고 고아원에 있을 때와 똑같이 싸우고, 말썽 피우고 험한 말들을 하며 부모의 속을 썩였다. 부모는 이 아들을 사랑했지만, 그래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고 뒷바라지도 해주곤 했지만 그 아이의 삶이 변할 때까지 더 큰 재산을 맡기거나 큰 일을 시킬 순 없었다. 그 자녀가 이전의 행실을 버리고 자신들의 아들로서의 존귀한 삶을 살아가길 기다렸다.

또 다른 아들은 앞서 아들로 인해 부모가 속상해 하는 것을 보고는 혹시라도 이 부모가 자기도 싫어하면 어떡할까, 자기를 버리면 어떡할까 늘 근심하며 그 부모 앞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늘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할 때에도 혹시라도 고아원에서 하던 습관들이 나오면 울음을 터뜨리거나,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했으며 늘 부모를 의식하며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았다. 부모는 늘 그에게 네가 어떻게 하던 늘 우리는 네 부모이고 널 버리지 않을 꺼라고 했지만 두 번째 자식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질 못했다. 늘 첫 번째 아들을 바라보며 그와 비교하면 내가 형보다는 잘하니까 날 버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첫 번째 아들은 무리의 신앙, 변하지 않은 신앙생활, 여전히 죄악 속에 살아가는, 영적인 기쁨을 전혀 알지 못하는 신앙생활.

두 번째 아들은 위선의 신앙, 강박관념의 신앙, 바리새인의 신앙. 자유가 없는 신앙.

제자들- 여전히 영적인 기쁨을 알지 못하고 죄악 속에서 살아가는 신자도 아니고, 거꾸로 늘 비교 하며 강박관념 속에서 자유 없이 살아가는 신자도 아닌 주님과 동행하고 그 분과 함께 일하고, 그 분의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 예수님을 목자로 삼은 자.

 

23: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라.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뉘이시고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è  그 분이 내 목자라는 신뢰가 있는 자. 그 분과 함께라면 언제나 안전하고, 보호받고, 평안하다는 확신이 있는 자.

무리의 신앙과 제자의 신앙은 다르다. 무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확신. 내가 그 분의 자녀라는 것.

제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리를 위한 사명감과 그들을 위한 사랑.

예수님의 무리를 향한 마음

불쌍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사니까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4)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 이 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 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옵소서.

è  예수님과 같이 그들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없다. 그들을 책임지려는 마음이 없다.

è  예수님의 반응: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6:5)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빌립에게 물음.

1)     빌립의 대답) 6:37-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è  예수님의 우리’: 예수님과 제자들

è  빌립의 우리: 예수님을 뺀 제자들. 능력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을 빼고 자기들의 할 일로 생각

2)     빈들의 축복

빈들- 광야: 하나님과 내가 단독으로 서는 곳.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곳. 런데도 이 곳에서 빌립은 정작 필요도 없는 돈의 액수만을 따지고 있습니다. 돈이 있어도 지금은 살 곳이 없는데 그런 곳에서도 계속해서 인간의 문명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40년간 광야 생활 중에서 그들은 항상 애굽의 문명, 애굽의 음식, 애굽의 풍요로움만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먹은 것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나와 매추라기와 물이었습니다. 그것도 배고픔이 없이 풍요롭게 말입니다.

3)     너희가 먹이라.

마지막으로 내리신 질문은먹게 하겠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2만 명이나 되는 이 배고픈 사람들은 우리가 책임지고 먹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물으심입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가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라고 제자 중 하나가 말합니다. 참 합리적입니다. 우리는 도저히 책임질 수 없습니다. 각자가 얼마나 먼지도 알 지 못하는 마을로 내려가 돈있으면 실컷 먹고 없으면 알아서 하라는 말입니다. 이 때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

주님 앞에 가면 이런 명령들을 받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나아가서 구원을 나누어 주어라. 병든자를 고쳐 주어라. 가난한 자를 네가 책임지어라. 외로운 자를 찾아가 위로해 주어라.” 물론 듣고 안 듣고는 각자가 대답해야 할 질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신실한 자에게 다가가서 똑같이너희가 가서 필요한 것을 채워 주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떤 곳인가?

(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l  떡을 떼었다-> 밥을 먹었다. 이 땅에 밥으로 오신 분, 생명의 떡으로 오신 분을 기억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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