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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만난 사람 4. 바디메오 (막 10:46-52)

 

동방정교회에서 시작되어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기도

Jesus Prayer - 예수 기도

Jesus, Son of God, Have Mercy on Me!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어떤 순례자가 성경을 읽다가 "쉬지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의 말씀을 읽고 어떻게 하면 계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하면서 스승을 찾아 헤메었다.

누구를 만나도 기도에 대한 뚜렷한 답을 얻지 못하고 헤메이던 그에게 어떤 수도사에게서 길을 걸을 때나 어느 때던지 호흡과 같이 이 기도를 계속적으로 반복하거라. 그리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할 수 있다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 말을 신뢰하지 않고 길을 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 스도자가 말한 대로 호흡과 더불어 "Jesus, Son of God, Have Mercy on Me!"를 계속적으로 되뇌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하다 말다, 아무런 느낌도 없고, 머리속으로는 이게 도대체 뭐야....

그렇지만 길을 걷는 순례자로서 걸음걸이에 맞추어 호흡에 만주처 계속 "Jesus, Son of God, Have Mercy on ME" 를 되뇌이다.

그 짧은 기도의 한 마디 한 마디의 의미가 머리 속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예수, 하나님의 아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토록 멀리 있게만 느껴지던, 아니 아무리 느끼려고 해도 느껴지지 않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강하게 임하게 되고

그 분께 내 영혼을 의탁하고 은혜를 구하는 간절함이 가슴에서부터, 아니 영혼에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예수 기도의 모태가 된 것이 바로 바디메오의 기도이다.

이 사건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지난 시간에 나누었던 나다나엘 - 바돌로메 - 돌로메의 아들

바디에모 - 디메오의 아들 -, 디메오, 혼돈, 불결,

그리고 실제 그의 처지 - 거지이고 동시에 맹인..

 

그가 길 가에 앉아 있다.

길 가에 앉아 있다. 길 가에 뿌려진 씨앗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마 13:4)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마 13: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말씀이 뿌려져도 악한 생각, 악한 습관, 악한 행동이 그러한 말씀을 빼앗아 가 버리니 존경받아야 할 자가 거지가 되었고 명예로와야 할 자가 장님이 되었다.

 

하나님의 생명이 단절된 자가 된 것이다.

 

그렇게 길 가에 앉은 신앙인이 어느 날 나사렛 예수가 지나신 다는 소리를 듣는다.

같은 사건을 다룬 누가복음 18장 36절에 보니까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이 무슨 일인가 묻는데 그들이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얘기를 하니까

소리를 질러 예수를 부르기 시작한다.

 

특별히 마가복음의 본문에서 이 바디메오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마가복음은 전체가 16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간인 8장에 베드로의 고백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아니이다. 라는 고백이 나온다.

 

이 고백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로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질 것과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8장과 10장을 걸쳐서 세 번을 말씀하시는데

1. 첫번째 십자가와 부활 예고 (막 8:31-32)

  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2. 두 번째 십자가와 부활 예고 (막 9:31-32)

  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 왜 묻지 않는가? 관심이 없기 때문에...그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한 그 일은 내가 싫어하므로....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는 복음은 이미 우상숭배이다. 샤머니즘이다.

 

3. 세 번째 십자가와 부활 예고 (막 10:33-34)

-> 반응이 없음. 무시

세 번째는 제자들이 아무 반응이 없다. 그냥 으례 하는 이야기로 취급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 반응이 없는 것

아픔이 있어도 반응하지 못하는 병,

불에 디어도, 살이 썩어도 반응하지 않는 병- 문등병. 죄악의 병, 저주의 병

 

주님은 점점 더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데 죽음을 향해 가는데, 제자들은 처음엔 항변하다가, 묻기를 두려워하다가, 급기야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육적 반응은 어떠한가?

처음 베드로는 변화산상에서 주님을 위해 또한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짓고 그 밑에서 함께 동거하며 살고자 했다.

두 번째 제자들은 누가 크냐를 두고 다투었다.

오늘 세번째 제자들은 은밀히 주를 찾아와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주기를 간청한다. 마가복음에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라고 나와있고 마태복음에는 그들의 어머니가 은밀히 와서 청탁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죽으러 가는데 이들은 계속해서 살고자 하고 계속해서 높아지고만 하고 그것도 점점 더 은밀해져가며 부정한 방법으로 거래를 하려고 한다. (세상의 방법으로 높아지려 하는 것)

 

46-52: 이해 못하고 자꾸 어리석은 길로 가는 제자들과 달리 그 마침은 항상 뜻밖의 이방인의 구원의 이야기라 마무리 합니다.

맹인거지 - 바디메요... 길 가에 떨어져 예수의 말씀과 떨어져서 결국 혼돈과 불결한 삶으로 전락하여 거지가 되고 맹인이 된 자-> 제자들의 현제의 모습이 아닌가?

 

눈은 보이지 않지만 "다윗의 자손 예수여" 하면서 예수가 곧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라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한다.

 

큰 자 되게 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우편에 좌편에 세워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메시야를 아는 사람들의 고백,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소리 지르는 바디메오에게 제자들은 꾸짖고 잠잠하게 하신다.

이미 어린아이들이 달려드는 것을 꾸짖은 적이 있던 제자들이다.

예수님을 향해 이처럼 달려드는 자들을 왜 꾸짖을까?

자신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예수와 함께 있으면서도 더 높은 자리, 더 가까운 자리를 요구하는데 그저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해 소리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르짖는 소리에 예수가 멈춘다. "머물러 서서"

예수를 멈추게 하는 소리는 무엇인가? 바디메오의 부르짖는 기도였다. 더욱 소리지르는 그의 간절함이었다.

예수를 멈출 수 있는 기도를 해 본 경험이 있는가?

한나처럼 간절히 기도해 보았는가? 그 메어지는 가슴과 구원을 향한 열망을 드러내 보았는가?

 

"그가 너를 부르신다"는 소리에 바디메오의 행동은 어떠한가?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자신을 숨기고 있던 감추고 있던 모든 겉옷을 벗어던지고, 죄악을 회개하고, 드러내고, 예수께 나아온다.

죽은 나사로를 막고 있던 돌을 굴려 옮겨 놓듯, 칭칭감긴 붕대를 풀어재끼듯, 자신을 감추어 놓았던 겉옷을 벗어내놓고 예수께 뛰어 일어난다.

 

그의 간절한 소원은 무엇인가? 보기를 원한 것이다.

 

진리를 알기 원한 것이다.

 

눈을 떠도 장님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제자들의 모습이 장님처럼 여겨지지 않는가?

누구보다 예수 가까이에 있으며 그가 하신 말씀을 듣지만 애써 외면하고 자신이 듣고자 하는 것만 듣고, 보고자 하는 것만 본 제자들....

 

지난 시간에 나눈 나다나엘 - 네 속에 간사함이 없다. 누구를 빗대어 하는 말인가?

헤롯 성전에서 로마의 힘과 권력에 기대어 사는 종교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 안에 흡수되어 버린 바리새인들이 나다나엘과 반대편에 있던 간사한 자들의 무리라면

지금 바디메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은 바로 그 나다나엘을 비롯한 예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다니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그 분과 동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길로 간다.

또 다른 간사한 자들의 무리가 되어 버린다. 왜?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들의 눈을 멀게 헀는가?

높아지려고 하는 탐심이 누가 높냐를 두고 그들을 싸우게 만들고

은밀한 거래를 통해 취하는 세상의 방법을 취하게 했다.

 

그런데 바디메오는 바로수 주님의 소리를 듣고 소리지른다.

높아지게 해 달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저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나를 기억해 달라고,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남들이 모라하건 소리 지른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옆에 두고도 장님된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비로서 자기의 이름을 되찾는다.

그리고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죄악의 옷, 탐심의 옷, 은밀한 죄악의 옷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제자가 된다.

 

예수를 만난 바디메오

 

 

Posted by 소리벼리


제 5 강 어거스틴 (Augustine)과 위 디오니시우스 (Pseudo-Dionysius)   



  • 고대 영성 – 순교 영성 (박해시대)-> 수도원 영성(기독교 공인 이후-내적 순교, 매일매일의 순교)-> 개인의 경건과 하나님과의 일치 경험을 우선 순위로 둠 

  • 중세 영성 

  • 로마가 쇠락하며 이방민족들의 혼합으로 말미암아 그리스와 로마 중심의 문화 (the Classical Culture)가 

쇠락하며 전쟁이나 기근, 전염병 등으로 유럽의 인구가 절반 이상 감소되며 새로운 형태의 사회가 등장.  

  • 600여년 경부터 문예부흥, 인문주의, 종교개혁이 시작되는 1500여년까지의 약 1100년 동안의 기간을 중세시대라고 일컫는다. 
  • 교회가 학문 및 문화를 독점했으며 봉건주의사회로서 폐쇄적 사회였다. 
  • 개인의 가치보다는 사회, 공동체의 가치가 우선되는 사회였다. 
  • 구원의 수단으로 세례나 성찬식 같은 성례전이 가장 우선시되었다. 
  • 철학적, 학문적으로는 암흑기라 여겨졌으나 카톨릭과 개신교의 신학과 영성의 근간이 닦여진 기간이다.
  • 가장 기독교가 발전한 시기이면서 동시에 기독교가 가장 타락한 시기였다. 이 시기를 살펴봄으로써 현 시대에 있어서 기독교 타락의 원인 및 처방을 동시에 유추해 볼 수 있다. 
  • 특별히 중세시대의 이론적 틀을 제시했던 초기 중세의 두 인물 서방교회의 어거스틴과 동방교회의 위 디오니시우스에 대해서 살펴보자. 


  1. 어거스틴 (Augustine; 354-430)

  • 대표저서 – 고백록 

  • 생애- 십 세 때에 이미 천재로서 알려질 정도로 탁월한 지적인 능력을 인정받았다. 항상 비물질 적인 영적 세계에 대한 갈망이 있었지만 그가 자란 기독교는 이런 갈증을 채워주지 못했다. 처음 그가 새로운 대안으로 찾은 것은 마니교였으나 마니교의 대 스승이라 하는 파우스투스와의 대화를 통해 실망을 하고 이 후 신플라톤주의 철학에 심취하게 된다. 이것을 통해 그는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 한 분이신 신으로부터 모든 것이 비롯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플라톤 철학을 바탕으로 그는 바울 신학에 접근하게 되고 신앙에 몰입하며 33세 때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 그는 이러한 영적인 방황 가운데 자신의 내적 상태, 즉 영혼에 대해서 영적 여행을 하게 된다. 그는 영혼 안에는 진리, 사랑, 영원성의 세가지 요소가 있다고 보았다. 즉 영혼에는 진리를 사모하는 열정이 있고, 사랑하려는 의지가 있고 영원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것은 동시에 삼위일체의 모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영혼의 기능을 기억과 이해와 의지로 요약하며 설명하는데 이 영혼의 세 기능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혼 안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 했다. 즉 기억 안에는 영원성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성을 반향한 것이며 이해 속에는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진리(logos)를 반향한 것이다. 의지는 성령의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성부와 성자를 연결하는 것이고 성도들을 연결하는 끈이며 이것은 곧 사랑이다. 인간이 이러한 진리, 사랑, 영원성을 회복하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이런 결론 끝에 그는 고백록 제 10권에서 "너무 늦게 내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라고 고백했고 제 5권에서는 "주여 내가 당신을 찾기 위해서 내 밖을 찾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당신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내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미 당신은 거기에 있었고, 당신은 이미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나는 어둠 속과 살얼음 위를 돌아다니며 나 밖에서 당신을 찾았으나 내 마음 안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였사오니 바다의 심연 속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 그는 이 생각을 정리하며 자기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하나님을 향한 여행은 자기 내면을 향하는 여행이다. 다시 말해 나의 영혼 깊은 곳으로의 내림이 곧 하나님으로의 상승이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영성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혹은 어떻게 훌륭한 영성 훈련을 할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십시오."라고 대답한다. 

  • 그는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발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쉼을 찾을 때까지 우리의 영혼은 불안하다. 영혼 깊은 곳으로의 내려감이 곧 하나님 그분께로 올라가는 거이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길이다!



2. 디오니시우스 (Pseudo-Dionysius)-사도바울의 제자로 알려짐.  (행 17:34) 

  • 신플라톤주의 영향 – 모든 피조물은 일자(하나)에서부터 나왔으며 계속 거기서부터 멀리 떨어져서 아주 단순한 것으로부터 다양한 것으로 퍼졌다고 본다. 따라서 다양하게 퍼진 것일수록 하나님성을 소멸한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에서의 죄는 따라서 하나님의 완전성의 결핍이고 이것이 로마 카톨릭의 선의 결핍이 곧 죄라고 본 데에 영향을 끼쳤다.  

  • 부정의 신학과 긍정의 신학: 죄에 빠진 인간이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긍정의 신학 (affirmative Theology-kataphatic way): 모든 피조물은 위로부터 내려왔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타락한 인간도 하나님과의 유사성이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이 가진 좋은 성품을 나열해보면 생명, 사랑, 자비, 용서, 인내, 온유, 절제 등을 들 수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성품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 적은 부분의 유사성을 인정하고 이것을 우리 안에서 묵상과 경건훈련을 통하여 성숙시킴으로 성화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 가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저서는 토머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등의 저서가 이러한 토대 안에서 씌여진 책이다. 
2) 부정의 신학 (Negative Theology-aphophatic way) – 이 방법은 인간이 아무리 선을 행해도 닮아 갈 수 없는 하나님과의 비유사성을 강조한다. 이 방법에서는 인간이 가진 모든 부족한 성품을 다 거부하며 부정해 가면 마지막에는 어둠을 만나게 되는데 이 어두움을 찬란한 어두움 (bright darkness) 혹은 무지의 구름 (cloud of unknowing)이라고 한다. 이 경지에 이르면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과의 재연합이 이루어진다. 이 어두움의 순간은 세상적인 감각으로서는 의식할 수 없는 영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감각적 세계와는 다른 무지의 세계이다. 

  • 위 디오니시우스는 또한 영적인 성장의 단계를 정화 (purification), 조명 (illumination), 일치 (unification) 의 3 단계로 제시하고 있다. 정화의 단계에서는 죄의 정화를 끊임없이 행하는 단계이고, 이 단계를 거침으로 신적인 진리의 빛을 조명 받으며, 신의 지식의 맛을 조금 맛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 (thirsty for God)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하나님과의 일치의 맛을 살짝 보았기 때문에 생명을 바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서라도 하나님과의 일치를 원하게 된다. 


Practice 2. 예수 기도 (Jesus Prayer) II

예수 기도는 부정적인 영성의 대표적인 기도로서 오랫동안 수행되어져 왔다. 이 기도가 추구하는 것은 고요함, 평안함, 잔잔함이다. 이 기도는 기도하는 자의 마음과 감정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집중하는 데에 있다. 

    1) 역사적 기원 

한 이름없는 순례자가 성령에 있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을 읽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인간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까?' 이 수도자는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간이 그렇게 할 수 있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단지 우리가 그 방법을 모를 뿐이지!'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을 채득하기 위하여 순례 여행을 시작했다. 러시아 방방 곡곡을 순례 하면서 많은 사부들을 만나 보는 중에 어디에선가 예수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 첫날에는 예수 기도를 3000번 하고 다음에는 6000번, 12000번까지 하면서 마침내 기도 중에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비한 체험을 하기 시작했다.    


                        2) 방법

  • 호흡의 리듬을 느리게 조정하라. 

  • 내적인 눈은 마음의 자리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자세에서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은다.

  • 그리고 마침내 가장 평온한 상태에서 숨을 들이 쉬고 내쉬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한다.

  • 기도 중에 예수 이름에 깊은 헌신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라. 

  •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한 날카로운 참회의식을 가지라. 

  • 거듭되게 반복하라. 

  • 내적인 침묵을 통하여 집중적이고 내면적인 평온의 상태로 들어가라. 


Posted by 소리벼리

제 4 강 마카리우스 (Macarius the Great: 300-390경), 예수 기도 (Jesus Prayer) 

지난 주 복습: 

  1. 자기 채움과 자기 비움의 두 영적 여정에서 자신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길은 어디인가? 
  2. 자기가 알고 경험한 하나님이 자신의 신앙생활에 오히려 방해가 된 기억이 있는가?  
  3. 침묵기도가 자신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이고 어려움은 무엇인가? 


  1. 마카리우스의 영성 (Macarius the  Great: 300-390년 경) 

  • 사막의 교부들 중 한 사람으로 동방 그리스 정교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 저자가 속한 교회는 시리아 정교회인데 그 중심은 초대교회의 안디옥 교회이다. –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불리어졌던 곳. 초대교회의 선교의 거점. 최근 이 지역의 신앙적 전통을 복원하려는 연구들이 일어나고 있다. (서로마: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 -사변적, 학문적 (사도바울) <-> 동로마: 유대적, 초대교회적: 체험적, 비유적, 신비적 (사도요한)
  • 4 세기 후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도자들로부터 탁월한 영적 지도자로 존경을 받았던 인물.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수련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징과 비유들을 사용하면서 값진 조언과 통찰들을 전해 주었다. 
  • 무념(apatheia): 이기심을 초월한 위대한 극기와 평정
  • [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fifty spiritual homilities): 동방교회의 역사 속에서 금자탑을 이루는 영성의 고전,  후일 루터교 경건주의와 감리교운동에 중요한 영향

“신자는 아무도 판단해서는 안된다. 창녀나 죄인들이나 방탕한 자들을 판단하지 말고 모든 사람을 영혼의 단순함과 순전한 눈으로 보아야 한다. 마음의 순결은 실로 죄많고 연약한 인간들을 보고 그들에게 동정심과 자비를 베푸는 데 있다”

  • 웨슬리는 다음같이 마카리우스의 설교를 다음같이 평가하였다.  "그가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 속에서 계속 육성하려고 수고한 바는 마음과 영혼 안에서의 하나님의 참된 생명, 즉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화와 기쁨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는 그의 청중을 언제나 고취, 감동시키며, 그들 속에 우리가 조성된 바의 저 신적 형상을 회복하려는 꾸준한 열심, 진지한 소원 및 불타는 열망을 불붙이려고 노력한다."
  • 그는 외적 훈련이나 제도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지만  유혹, 지속적인 기도, 마음의 순결 등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마카리우스와 겨눌 자는 없다.


  • 마카리우스는 상 이집트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때에 집안의 강요로 결혼을 했지만 일찍 아내와 부모들이 죽었다. 30세 때에 이집트 사막 스케티스에 들어가 은수사 생활을 시작했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의 수도생활은 극히 엄격하여 식사는 한 주일에 한번만 했고 갈증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물을 마시지 않았다.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을 간단한 몇 마디로 가르치고 거의 항상 침묵 속에 지냈다.
  • 낯선 지방에 와서 그렇게 지내는 중에 뜻하지 않은 시험이 생겼다. 그 마을에 품행이 썩 좋지 못한 처녀가 어떤 남자와 사귀는 중 어린애를 배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이 처녀에게 추궁하여 아이를 배게 한 상대가 누구냐고 협박하니 처녀는 마카리우스를 가리키며 "저 은수사가 자기와 동침했다"고 대답했다. 마을 사람들은 격분하여 몰려와서 마카리우스를 잡아끌고 그의 목에 솥을 묶어 매달고 마을 골목 골목으로 다니며 큰 소리로 "여러분, 이놈의 수도자가 우리 마을의 깨끗한 처녀를 더럽혔습니다. 이 놈을 마을에서 추방합시다."하며 그를 때려 거의 죽을 지경으로 만들었다. 그때 마침 그 길로 지나가던 잘 아는 원로 한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 마을 사람들을 향하여 "당신네들은 이 이방인 수도자를 언제까지 이렇게 때릴 작정인가?"고 말리다가 그마저 수모를 당했다. 처녀의 친척들도, "우리 딸을 책임지고 먹여 살리겠다고 약속하시오. 그러기 전에는 이 놈을 놓아 줄 수 없소"라고 소리질렀다. 마카리우스는 자기 방에 돌아와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바구니를 전부 마을 사람에 내어 주며 필아 아내를 부양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도 "마카리우스야, 네게 뜻하지 않은 아내가 그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이제부터는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타일렀다. 그 후부터 마카리우스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노동해서 바구니 판 돈을 꼬박 꼬박 그 처녀의 집에 전해 주었다. 그 처녀는 해산할 때가 되었는데 며칠이나 진통하면서도 난산이어서 아이를 낳지 못했다. 곁에서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녀는 "이렇게 오래도록 진통이 계속되는 까닭을 저는 잘 압니다."하며 "제가 죄 없는 그 은수자님을 중상 모략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거짓으로 중상한 것입니다. 이 아기의 아버지는 우리 마을 아무개 청년입니다"라고 자백했다. 처녀는 사실을 고백하고 나서 어린애를 무사히 분만했다. 이 처녀의 고백을 들은 원로는 기뻐 마카리우스에게 달려와 이 이야기를 알려주며 "마을 사람들이 당신께 용서를 빌기 위해 지금 여기로 오고 있습니다"했다. 그 보고를 듣자 마카리우스는 즉시 일어나서 그 마을을 벗어나 사막으로 피신했다.
  • 어느 날 악마가 마카리우스를 넘어뜨려 보려고 달려들었다. 마카리우스가 어느날 밭에서 빨마잎을 따 들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악마는 도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마카리우스가 앞으로 지나는 순간 달려들어 낫으로 후려쳤으나 마카리우스는 아무 불평없이 다시 일어나 길을 걸었다. 악마는 분통이 터져 그보고 이렇게 말했다. “마카리우스야, 너 때문에 나는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르겠다. 네 놈을 도저히 넘어뜨릴 수 없으니 말이다. 네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나도 해낸다. 네가 금식하면 나도 결코 먹지 않고, 네가 잠 자지 않으면 나도 자지 않는단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점에 있어서만 네가 나를 앞지르고 있지. 마카리우스는 악마에게 "그게 뭐야?"고 물었다. 악마는 "내가 너를 때려 부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바로 너의 겸손이란 말이다"라고 대답했다. 
  • 니트리아에서 수도하는 원로들이 스케테에서 수도 생활하는 마카리우스 교부를 청하여 많은 수사들에게 좋은 교훈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마카리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형제들이여, 웁시다. 우리의 눈물이 지옥불에 가기 전에 눈에서 눈물을 죄다 짜냅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는 모든 수사는 울기 시작하며 땅에 이마를 대고 엎드려 "사부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했다.
  • 스케테에서 마카리우스 교부는 수사들의 집회를 끝맺으며 "피하라, 형제들아!"했다. 수사 중 한 사람이 "사부님, 우리는 세상을 버리고 이 사막에까지 왔는데 여기보다 더 멀리 어디로 피해 갈 곳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교부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는 "이걸 피하라니까?"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독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홀로 머물었다.


2) 대표저서: 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

  •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실제적인 체험을 중심으로 영적인 담화, 충고와 가까운 수도사들에게 주는 교훈을 담은 글이다. 
  • 쉬운 이야기와 신비로운 것을 일상적인 언어와 이해하기 쉬운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 따라서 이 글은 동방교회의 체험적인 마음의 영성을 가장 소박하고도 풍부하게 보여준다.  
  • 웨슬리나 종교개혁시대나 그 이후의 독일 경건주의와 같은 개신교인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 내용

  • 영성 생활에서의 "마음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
  • 마음은 지성과 감성과 욕망과 의지 등의 모든 내적 활동의 중심이며, 우리 신체 기관들을 총괄하는 제어탑(control tower)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은 우리 전 인격의 중심이다. 동시에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다. 이곳을 통하여 성령이 오시고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신다. 하지만, 사탄과 악마들 또한 이곳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어와 우리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기도 한다. 

"마음 그 자체는 작은 그릇이다. 하지만 그 속에 용들이 있고, 사자들도 그곳에 있다. 그 속에 독을 가진 짐승들이 살고 있으며, 모든 악마의 비장품들이 들어 있다. 또한 그곳에는 가파른 절벽과 거친 길들도 있다. 하지만 그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천사들이 있고 그분의 나라도 있다. 그곳엔 생명이 있고 빛이 있다. 또한 그곳에 사도들이 있고 천상의 도성들이 있고 은혜의 보화들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그곳에 있다." 

《신령한 설교》, 43:7.

  • 마카리우스는 이러한 우리의 마음의 모든 영역을 성령으로 온전히 채워가는 일을 수련의 중요한 과제로 강조한다.  그러므로 영적 수련의 길은 성령과의 협력을 통한 오랜 동안의 정화의 과정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중심적 것에 대한 집착(마카리우스는, 이를 세상적인 것들이라고 칭한다)과 천상적인 것(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충만한 것)을 잘 살펴 분별하고, 세상적인 것을 떠나고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우리 속에 채우려는 지향을 가지고 언제나 살아야 한다. 이런 삶의 정점은 ‘아파테이아(apatheia)’의 상태, 즉 세상적 욕망과 감정은 모두 벗어버리고 성령과 천상의 성격으로만 순전히 채워진 상태이다. 여기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임재를 참되게 경험하며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작된다.
  • 마카리우스는 이렇게 성령과 협력하는 영적 수련에 있어서 겸손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자기 비움의 겸손, 자기 판단의 교만을 벗어날수록 우리 마음 속(이는 영적 전쟁의 전쟁터이다)에서 성령의 영토는 점점 넓어져가며, 이와 함께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감정 나아가 몸의 태도와 습관까지, 한마디로 우리 전 인격체로서의 몸이 점진적으로 성화되어 간다. 이러한 변화의 궁극에서 우리는 부활하시어 영화로워지신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분의 영광(빛)에 동참하게 된다. 
  • 마카리우스는 이러한 부활과 영생의 삶이 종말에만 있는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마카리우스는, 주님의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영화로워지신 빛나는 그리스도의 몸을 보았던 것을 거듭 거듭 상기시키면서, 부활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몸을 알아보는 일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비전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주님의 영화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Practice 2. 예수 기도 (Jesus Prayer) 

  •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많이 기도되어 지는 대표적인 기도의 방법 . 주의 기도 이외에 Vocal Prayer로는 가장 오랫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던 기도였다. 
  • 이 기도는 기도하는 자의 마음과 감정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집중하는 데에 있다. 
  • 성경적 기원: 

  • 눅 18:13: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막 10:47: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 Jesus Christi, Son of God, Have Mercy on me!? 

  • 역사적 기원  

  • 예수의 이름이 모든 능력과 은혜의 원천이며 이 이름의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내적평강의 상태로 인도되어 진다. 
  • 어떤 순례자가 성경 속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읽고 그것을 위해 여러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을 찾아다녔으나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 중에 어떤 노수도사가 길을 걸을 때나, 어디에서나 "Jesus, son of God, have mercy on me!"를 쉬지 말고 기도할 것을 권고했다. 3주후에 처음 그 순례자가 수도자를 찾아와 '처음엔 이 기도가 나에게 큰 실망과 죄책감마저 가져다 주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이 어구를 말할 때에 말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이 몰려왔다'고 고백하며 즐거워했다. 

  • 목적: 예수 이름의 기도를 통해 그 능력을 경험한다. 초대 교회 사람들-성경 속에 있는 단어, 특히 그 중에서도 예수의 이름에 있는 능력을 굳게 믿었다. 


  • 실천 

  1. 처음엔 15분정도 한 번 반복할 때마다 간격을 두고 천천히 기도하는 것이 좋다. 
  2. 마음 속으로, 혹은 입술로 규칙적으로, 때로는 불규칙 적으로 반복하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3.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 마음의 불안감,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들, 단어하나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산란함들을 하나씩 느껴가며 마음을 깨끗이 한다. 
  4. 계속적으로 반복하며 점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단어 하나 하나가 내 온 인격 속에 스며들도록 집중하여 기도하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5. 마음 속에 느껴지는 그 분의 임재와 시선이 느껴지도록 마음의 눈을 열고 기도하라. 
  6. 느껴졌던 모든 것에 감사함으로 기도를 마쳐라.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