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82019  이전 다음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십자가'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2.08.28 죄인을 위하여 죽는 자(8월 26일) (2)

제목: 죄인을 위해 죽는 자

본문: 5:6-8; 15:13

[ 5:6- 5: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목회를 하면서 목사님들로부터, 그리고 영혼 구원을 위해 애쓰는 성도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소리- 사람은 정말 안 변한다. -> 그렇게 기대를 하고, 관심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여도 참 변하기 어려운 존재가 인간. 그래서 실망하면서 기도를 중단하고, 인간 관계를 끊고, 그저 혼자 성경보고, 기도하는 신앙 생활에 만족. 안 변하는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이 목회고, 신앙생활이고, 기독교인의 삶이다. 그래서 목회도, 신앙생활에도 갈등이 많고, 슬럼프도 많고, 시험도 많다.

·         저의 은사 중에 이정효 교수- 기독교 교육

목회자로 부름 받고 나서, 설교자로 부름 받고 나서, 꾸었던 가장 무서운 꿈. 

-> 내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을 때, 나는 열심히 전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떠들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 하고 있을 때….

->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드는 더 무서운 생각… 안 변할 줄 알고 기대 없이 말씀을 준비하고, 아무 기대 없이 말씀을 전할 때… 앞의 경우는 그래도 말씀을 전하고, 준비하는 본인이라도 신앙의 순수는 있는데, 뒤의 경우에는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똑같이 하나님과 멀어져 있을 때…

·         그래서 그런 열정 없는 목사가 되지 않기 위해, 여기 있는 성도님들 중 한 분이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 주일 예배 준비할 때는 정말 각별히 신경 쓰고 정성을 들여서 준비한다. 미국 학교에서 기말에 쓰는 페이퍼는 레터지로 20-30장… 페이퍼 하나 쓰기 위해서 최소 10권에서 20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지적 받지 않기 위해 엄청 긴장하고 쓴다. 그런데 설교는 내 자존심이 아니라 영혼에 관련된 준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더 긴장하고 더 예민하게 준비한다. -> 대부분의 목사가 주일 설교만큼은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다. 어떻게 이 말씀이 성도들의 심령을 움직일지그런데 반응이 없고, 변화가 없고, 말씀을 잘못 반응하는 것을 보면 설교자는 점점 무력감에 빠져든다. 절망감이 엄습한다. 어떤 목사라도 겪게 되는 경험이다. 

·         -> 그럴 때 꼭 기억하라고 이정효 교수님이 주신 말씀. 5:6-8

 

짐 엘리엇 선교사

우리가 본 영상은

1956년 미국 전역을 큰 충격으로 몰아 넣었던 짐 엘리엇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창 끝"의 내용을 짧게 편집한 내용이다.

짐 엘리엇-JIM ELLIOT(1927-1956) 1927년 여기서 멀지 않은 오리건 포틀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학창시절에 글을 잘 썼고, 연설로도 유명했고 또한 레슬링 선수로 우승까지 차지했고 공부도 수석으로 졸업한 한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많은 친구들이나 주변의 사람들은 그가 탁월한 리더십과 영적인 능력으로 미국 교회의 유망한 일꾼이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엘리엇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께 그의 미래를 위해 기도했다. 그런 간절한 기도 중 그는 에콰도르에서 사역을 했던 선교사로부터

 

 "왜 어떤 사람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두 번씩 들어야 합니까?"

라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뜨거워지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한 번도 전해지지 않았던 남아메리카의 식인부족 아우카 부족에 대해 듣고 그의 갈 길을 정했습니다.

아우카 부족- 어떤 인디언도 어울리지 않는 독립되고 분리되어 있는 부족. 외부인은 무조건 죽이고 자기 부족인들도 많은 수가 서로 죽이고 있던 부족.

 

똑같이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아내 엘리자베스와 엘리엇은 우선 에콰도르에서 인디언 사역을 하며 미래에 사역을 할 아우카족의 말과 문화를 배워 나갑니다.

 

드디어 1955년 가을 비행선교사 네이트 세인트와 다른 세 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엘리엇은 아우카족의 사람들과 친구가 될 목적으로 몇 달 간 비행기에서 선물을 떨어뜨리면서 그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마침내 짐 엘리엇을 비롯한 5명의 젊은이들이 간단한 짐만을 챙긴 채 잔인하고 독하기로 이름난 아우카 족속들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조그만 소비행기를 타고 해변에 내린 이들이 해변가에 텐트를 치고 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어간 지 닷새 째 될 즈음, 선교 본부에서는 이들에게서 소식이 없자 혹시 하는 생각에 비행기를 보내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 해변에서 다섯 명의 청년들이 무참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1956 1 8일 다섯 명 모두 아우카족 전사들에게 창과 도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해변가에 그들의 시체가 피를 흘리며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머니에는 권총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신변보호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을 뽑지 않고 그대로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그를 죽이는 데 가담되어 있던 한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짐 엘리엇의 죽음에서의 마지막 말은 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아빠가 아우카족에게 간다고 하니까 헤어지면서 아들이 아빠에게 하는 말을 기억하고 한 말이었습니다.

만약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약속해 주세요.. 와다니 말을 알려주며..

그 뜻은 " 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당신의 진실한 친구"

 

라이프 지와 타임 지는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얼마나 분노했는지 모릅니다.  당시 라이프 지에서는 이 사건을 10페이지에 달하는 기사로 다루면서 오랫동안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했던 선교사들의 삶을 이야기하며 결국은 죽음을 당한 그들의 삶을 가리켜 " 이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What a unnecessary waste!)라고 애석해하면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결국은 세상적으로 개죽음을 당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한탄한 것이지요.

 

한 기자는 급기야 짐 엘리엇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에게 찾아가 인터뷰를 하면서 또 다시 이런 말을 했습니다.

 

"What a Waste!" 그러자 그 당시 20대 초반밖에 안 되었던 그의 아내가 그 기자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항의했습니다.

"낭비라니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의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내 남편은 이제야 그 꿈을 이룬 것 뿐입니다. 이후로 다시는 내 남편의 죽음을 낭비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엘리엇이 시카고에 있는 휘튼대학교 기숙사에 있을 시절부터 적었던 글이 공개 되었는데 그 글 중에는 이런 내용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가 19살 때 썼던 글인데

"하나님, 제가 감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부족한 나의 나무토막 같은 인생에 주여! 불을 붙여 주소서. 제가 주를 위해 탈 수 있도록. 나의 삶을 주께서 소멸시키십시오. 이 몸은 주의 것입니다. 나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완전하고 풍성한 삶을 원합니다. 바로 주님과 같이...."

 

그는 일기장의 한 쪽 구석에 영상에서 소개된 이런 글도 적어놓았습니다.

 "제게 다시는 영원히 썩어지지 않을 것에 바치는 나의 희생을 어리석다고 말하지 말아요"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젊은이들의 아내 다섯 명은 한 두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아이들을 부둥켜 안고 남편이 순교한 그 나라를 찾아갑니다.

'우리 남편들이 못다한 일들을 우리들이 마저 해야 한다’ 그들은 복음을 들고 그 잔인하기 짝이 없는 아우카족을 다시 찾아 나선 것입니다.

 짐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일년간 간호사 훈련을 받고 아우카족에게로 갔는데  아우카족은 다행히 여자를 해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하여 부인을 해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인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목숨을 걸고 그곳에 갔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우카족을 위해 여러 해 동안 헌신하였습니다.

 

부인이 어느 날 고국으로 돌아갈 일이 있어 가려고 하자 아우카족의 추장이 부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이고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써서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5년 전에 당신들이 죽인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부인의 말을 들은 아우카족은 감동을 받고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우카족의 추장이었던 사람이 빌리 그레함이 주도하는 한 예배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그분들에게서 복음을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젊은이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들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오래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처럼 그분들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5명의 선교사 살해에 가담한 사람들 중의 세 사람은 현재 그 부족 교회의 담임목사와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짐 엘리엇과 동료들이 살해당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그들이 죽은 마을에서 수백 개의 교회가 생겨났으며,

엘리엇이 죽고 나서 태어난 아들이 그 교회 중 마을 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남미의 열대 우림 속에서 죽은 지 40년 후인 1995, 엘리엇이 졸업한 휘튼대학에서는 강력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         이런 분들의 삶 앞에서 우리의 삶의 고민이나 염려, 시험들이 어떻게 보여 집니까? 아니면 뭐 나랑 상관없는 그런 이야기로 들려집니까?

 

제가 영성을 공부하게 된 계기

·         신학교 다니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며 굉장히 영적으로 힘들었을 때, 수업시간의 일환으로 봉쇄 수도원 방문.

-> 23년간 한 번도 밖에 출입하지 않고, 그 곳에서 매일 같이 똑같은 일상, 하루 세번의 기도와 예배, 노동과 독서… 죽을 때까지…

-> 그 분께서 하신 말: 난 등대의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일반 교회가 일반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배라면, 그 배가 풍랑을 만나 길을 잃어버렸을 때에 등대를 보고 다시 길을 찾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살다가 힘들었을 때에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고민을 좀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신앙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 인생도 의미가 있을 꺼다."

그 앞에서 한 순간에 내가 가졌던 모든 고민, 우울함, 방황이 끝나버렸다. 정말 쪽팔리고 나 자신이 초라하고 너무 작아 보였다.

 

우리가 생명을 던지면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람은 변하기 힘들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변화될 수 있다. 내가 죽어 사랑하는 것이다. 불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 사랑 앞에 내 자존심?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무시당하는 것?

예수님이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했던 그 고난, 더러운 죄인들이 그 앞에 침 뱉었다. 돌을 던졌다. 하나님이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런 모욕을 참았으면 내가 당하는 모욕과 무너지는 자존심이 뭐 그리 대단한가?

내가 이뻐서, 잘해서 구원받았는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식물인간처럼 아무런 삶의 의욕이 없는 영적으로 죽어있던 내가..

경건하지 않는 나- 부도덕하고, 배은망덕하고, 정말 더러운 나를 위해, 죄인인 나를 위해 그가 죽었다.

나를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 고귀한 삶을 삶게 하기 위해서…

 

이 사랑을 한 마디로 하면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를 짊어진 삶의 특징.

자존심을 버리고 낮아 지는 것

 

우리가 하는 고민, 기도 제목의 대부분은 뭔가?

오직 내 가족, 내 자녀 잘 되는 것, 가난하지 않게 하는 것, 복 받는 것… 오직 그런 욕심으로만 가득 차 있고 매일 매일의 삶에 허덕이며 살고 있지 않은가?

누굴 위해 죽겠다는 기도를 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한 몸 바치리라는 결단을 해 본적이 언제였는가? 그런 기도를 내가 얼마나 기억하고 지키려고 애써 보았는가?

 

 

 

특송 훈련: 자존심 땜에 안 했던 나. -> 시키는 대로….

 

낮아지는데에 고상하게 낮아질 수 있나?

아름답게 낮아질 수 있나? 낮아지는 것은 그야말로 비참함을 견디는 것이다.

어머니의 예….()

 

 

남을 세워주기 위해서 내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을 참아보자.

 

 

교회를 세우자. 정말 멋있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정말 상처입은 자들이 와서 치료받고 회복되어 다시 세상에 나가 전파할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렇기 위해선 내가 죽어야 한다. 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어도 죽고, 또 죽고, 이 성전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넘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받치는 것.

누가 친구인가? 첫 번은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날 친구로 부르셨으므로.

믿는 자?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으므로 동일한 형제와 친구

연약한 자, 경건치 못한 자, 죄인-> 나 또한 그런 자였으므로…

 

한 번 뿐인 인생 정말 값어치 있고 고귀하게 살아보자.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