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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편 97-105'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5.02 4월 28일 주일예배 시편 119:97-105절 "어떻게 말씀을 사랑하나?"

주일예배 설교

본문: 119:97-105

제목: 어떻게 말씀을 사랑하나?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시지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해도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그 대상이 막막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이 막막합니다. 더군다나 아담 이후 우리의 본성은 여전히 죄악에 물들어 있어서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자기만을 위하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해요. 하나님 교제해요.’하고 기도하고 찬양해도 어느덧 자기의 생각에 갇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지, 어떤 것이 내 생각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다가 하나님과 교제했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교제를 위해, 사랑의 관계를 위해 열어두신 통로가 똑같이 믿는 이웃, 형제와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사랑을 확증하라 하셨고 또한 말씀을 지킴으로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요일 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2:4-5]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해 놓고 말씀을 읽지도 않고, 또한 읽은 말씀을 지키지도 않는 사람은 성경에서 뭐라 합니까?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라고 말씀합니다결국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은 하지만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만 위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코자 하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말씀을 읽고 지킴을 통해서 그 사랑의 표현하는 것이지요.

, 부부가, 친한 친구가 지금 난 너를 정말 사랑해 라고 말은 하는데 무슨 부탁을 하거나 약속을 해도 한 번도 안지킨다면 한 두번이야 그래 사정이 있었겠지..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번번히 말을 듣지도 않고 지키지도 않는다면 사랑한다는 고백을 누가 곶이 듣겠습니까? 그러니까 번번히 예배하러 와서 난 주님을 사랑합니다. 찬양하는 사람이 있었도 그것으로 사랑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을 지켜 행하는 자라야 날 사랑하는 것이다.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성경을 읽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접하지 구태여 책을 통해서 수고하며 글을 읽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요. 긴 소설도 두 세시간 짜리 영화 한 편 보면 그 내용을 다 알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짜그마한 글씨로 뺵뺵히 씌여 있습니다. 하루 종일 읽어도 몇장 넘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읽어도 1년에 걸쳐 한 번 읽기도 쉽지가 않지요.

저도 유치원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대학 졸업할 때까지 수십 번 성경을 통독하려고 하다가 실패했는지 모릅니다. 창세기랑 출애굽기는 너무 많이 읽었지만 그 다음을 넘기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부터 시작해서 복음서 읽다가 그만 둔 적도 많지요. 하두 끝을 못내서 차라리 뒷 부분부터 읽자 해서 말라기서와 계시록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끝을 못맺습니다. 신학교 가서야 비로소 이젠 신학생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1년에 한 독은 하자 하면서 읽었는데 그것도 잘 지키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힘들 때 마다 도전을 준 말씀이 요한 일서 2 4-5절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같이 읽어 볼까요?

[요일 2:4-5]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러니까 성경 읽기 힘들고 고될 때마다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아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그의 말씀을 읽지도 지키지도 않으면 내가 어찌 그리스도인인가 생각했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들고 고되지만 말씀을 읽었습니다. 물론 어느정도 말씀을 읽는 것이 습관화되고 꾸준히 읽게 되니까 이젠 말씀 읽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하고 불안해 지지요. 말씀을 읽는 것도 더 이상 고되거나 지루해지지 않고 읽을 때마다 은혜도 주시고 새롭게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기본 전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은 것이지요.

그런데 지난주에 성경 공부를 준비하다가 우리가 읽은 본문을 읽었습니다.

(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그러다가 시편 기자가 쓴 주의 법을 내가 어찌 그리 사랑하는가?하는 표현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내가 말씀을 사랑하는가? 우리가 읽은 본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 97-주의 법, 98-주의 계명, 99-주의 증거, 100-주의 법도(104), 101-주의 말씀(103), 102-주의 규례등으로 그 용도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었지만,, 말씀을 읽은 것은 하나의 의무이고, 숙제이고, 책임이었지 내게 정말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면서 난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었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고, 때로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지만 그 말씀을 정말 사랑했는가 생각하니 그렇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뭐가 다른가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하나님 앞에서나 성도들 앞에서 바른 목사가 되고 싶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말씀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만큼은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대할 때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대하는가 하면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뭐 빠뜨리는 것은 없을까? 이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하고 항상 말씀을 연구의 대상, 숨긴 것을 펼쳐놓아야 할 비밀로서만 보았지 그 말씀 자체를 내 사랑의 대상으로 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러면서 기도를 하니까 말씀이 곧 나다. 말씀이 내가 한 어떤 것이 아니라 말씀이 곧 나다.”하면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지요.

그러면서 말씀이 곧 하나님이고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 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동행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읊조리다.

- 오늘 본문에서 97절과 99. 두 절에서 반복되는읊조리다라는 단어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읊조리다는 말의 뜻은 국어사전에서는뜻을 음미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시를 읊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 97절에서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영어성경에서는읊조리다라는 말을 ‘meditate’라고 합니다. 이것은묵상하다, 깊이 생각하다. 뜻을 되새기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읊조리다는 말은하나님의 말씀을 늘 깊이 생각하고 묵상한다는 말입니다.

- 그런데 그읊조림은 언제 해야 하는지도 본문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 97절에서종일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우리가 어떻게 종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습니까? 시간적으로 그건 불가능하지요. 그럼 이 표현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술을 통해서 깊이 새기고 귀에 들리게 소리 냄으로서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라. 교제하라는 의미이겠지요. 종일 묵상하는도다는 곧 항상 동행하고 교제한다는 의미입니다.

           • 주야로 말씀을 묵상할 때의 결과 -> ~보다 지혜롭게 됩니다.

           1. 누구보다 지혜롭게 됩니다.(98-100) 오늘 본문 98-100까지 보면 그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합니다.

           1) 원수(98)보다 지혜롭습니다. (wiser: 현명함 -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행이 높다)

사울이 다윗을 괴롭힐 때.

           2) 모든 스승(99)보다 지혜롭고 명철합니다. (insight: 통찰력-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

부활 후 예수님의 제자들

           3) 노인(100)보다 지혜롭습니다. (understanding ; 이해력, 납득, 분별, 해석이 뛰어남)

요셉

          

           2. 신앙이 성숙하게 됩니다.

           1) 악한 길로 가지 않습니다

( 119: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2)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됩니다.

( 119:104)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된다는 의미는 죄인의 길에서 떠나 의인의 길로 들어선다는 의미입니다.

           - 시편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의인들의 길에 선다고 말씀합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관계가 바른 것이 의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한 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니까 곧 의이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가 곧 의인인 것입니다.

 

(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 이 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여기기까지 시인이 얼마나 연단을 받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라는 말씀은 입에 넣기에 부드럽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백의 배후에 담겨 있는, 이 시인이 주님의 말씀에 향미를 느끼기까지 겪었을 연단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 하나님 말씀을 우유처럼 부드러워 마시기 좋은 때도 있으나 고기처럼 질기기도 하며. 어떤 때는 방망이처럼. 어떨 때는 날카로운 칼처럼. 어떨 때는 불처럼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말씀으로 연단되지 않은 자에게 있어서 말씀은 단 것이 아니라 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말씀으로 연단된 자에게는 모든 말씀이 꿀처럼 달게 여겨지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인생길을 변함없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삶은 일종의 길입니다. 길에 대하여 시편 저자는 빛이 없으면 걷기 어려운 험준하거나 어두운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인생의 길이 어둡다는 암시입니다. 말씀이 비취지 않는 인생길은 보이지 않는 미로와 같습니다. 마음먹은 길로 나오질 않습니다. 항상 뜻밖의 상황 때문에 놀라고 불안해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동행하는 자는 어둡지 않습니다. 어두운 가운데서도 밝은 빛을 비춰주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갈 길을 밝히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로고스 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시나요?

그럼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은 항상, 꾸준히 말씀을 읽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항상 울리도록 읊조린 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악한 길에서 떠나 내 발걸음을 선한 곳으로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우리의 모든 부족함이 채워집니다. 악인이 두렵지 않고, 좋은 스승이 부럽지 않고, 솔로몬보다 지혜롭게 됩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받아 본인이 간직하며 사용하다가 악한 길에도 빠졌지만 말씀과 동행하면 악한 길에 들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연애해 보시길 바랍니다. 시인이 되어 내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소리가 울리도록 읊조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길을 밝히실 것입니다. 외롭지 않게 보호하실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