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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6:1-4'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8.03 므비보셋과 실바 (사무엘하 16:1-4)

 므비보셋과 실바 (사무엘하 16:1-4) 


사무엘하 - 사울의 시대는 가고 다윗의 시대가 도래. 

모든 이야기가 다윗을 중심으로 그의 사람됨과 축복, 그의 죄와 허물과 실패,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인생의 고난과 하나님의 은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기서 숨겨져 있는 숨어 있는 조연들 중 므비보셋과 실바의 이야기는 인생의 또 다른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므비보셋과 실바의 이야기는 사무엘하를 통해 크게 세 부분에서 소개 됩니다. 

 

 


1. 9장 전체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고 하나님의 법궤를 들여와 말씀 중심으로 나라를 통치하고 블레셋과 모압과 암몬 등 이방민족들을 몰아내면서 국경을 정비하며 또한 군대장관 뿐만 아니라 제사장과 서기관, 행정관들을 세워서 행정적인 정비를 다한 후에 이제 사울의 집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요나단이 자기가 힘들 때에 도와주며 네가 왕이 되면 나와 내 집을 좀 지켜다오하는 약속을 기억하고 사울의 집에 남은 자를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수소문해서 부른 것이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입니다.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 중 므비보셋이라는 자가 살아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는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죽자 유모가 아기였던 그를 피난시키려다가 떨어뜨려서 평생을 다리를 저는 불구자로 살아갑니다. 


즉 므비보셋은 태어날 때에는 왕가의 장손으로 왕의 혈통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그가 기억하는 모든 그의 기억은 사울과 아버지 요나단이 죽고 자기는 다리가 불구가 된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요. 누군가 너의 할아버지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해도 그는 사울이 어떤 자였는지, 자기가 왕의 가문이었다는 것을 누리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오히려 불구자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예수를 알지 못하는 죄인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그가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창조되었지만 그것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고 오직 세상에서 불구가 되어 하루 하루 연명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므비보셋과도 같은 삶이 아닐까요? 


더군다나 사울왕이 그토록 죽이고자 했던 다윗이 왕이 되었으니 자기는 패족한 왕족의 자녀로 현 왕의 원수와도 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오히려 사울의 손자라는 것마져 숨기고 세상에 나가서 떳떳하지 못하게 숨어사는 인생으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찾아 왔을 때에 므비보셋은 어쩌면 이제 다 틀렸다. 이제 죽을 때가 되었구나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므비보셋을 보자 마자 첫 마디가 무엇이었습니까?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므비보셋이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무엇이관대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다윗이 어떤 은혜를 줍니까?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 지니라..." (삼하 9:7) 


자기가 기억도 나지 않고, 기억 속에서는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상상할 수 없는 회복의 역사를 약속해 줄 뿐만 아니라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을 만나 하루 아침에 개같은 내인생에서 왕의 자녀로서의 꿈같은 은혜를 얻게 됩니다. 


이에 반해 시바는 또 전혀 다른 인생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는 원래 사울의 종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그는 아들이 열다섯이고 종이 스무 명이라고 소개합니다. 재산과 땅도 굉장히 많았던 듯이 보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사울의 종이었지만 사울이 죽고 그 집안이 다 패족하게 되자 수완을 발휘해서 그것을 차지 한 것입니다. 

자기 권리가 아닌 것인데 자기 것인양 맘껏 누리며 살았던 것이지요. 그가 만약 사울의 것을 잘 보관하고 관리하는 자기의 직에 충실했다면 므비보셋이 자신을 개같은 인생을 살아간다고 여기지 않도록 늘 보살피고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사울이 재산을 자기 것으로 삼은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날 다윗이라는 의로운 재판관, 왕이 나타나서 자기가 무시하고 있던 패족의 자손 불구자 므비보셋을 불러 오게 합니다. 그리고 뭐라 말합니까?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말합니다. 

사울이 없으니까 이제 다 자기 것인 줄 알고 맘껏 누리고 살았는데 하루 아침에 다시 종의 신분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의 인생은 청지기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 다 주인이 맡긴 것이라는 것입니다 .

내가 가진 것, 내 소유, 내 자녀, 나 자신의 모든 것 까지도 결국 하나님꼐서 맡긴 것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돌려 주어야 할 것입니다. 죽어서 가지고 갈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빼앗기기 않으려고 움켜 쥐기에 바쁩니다. 

하나님께서 훅 불면 날라갈 것들을 잡고 의지하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건희 회장도 금방 깨어날 것이라고 하는데 이젠 가망이 없다고들 합니다. 

스티븐 잡스도 하루 아침에 인생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세상에 남긴 것이 많아도 결국 내 것이 될 만한게 없습니다. 


다윗이 명령하자 시바는 한 마디 변명도 못합니다. 

"종에게 명령한데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항변도 못합니다. 거기엔 보험도 없어요. 


2. 16장 1-4절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배반을 하여 다윗이 급하게 예루살렘을 빠져 나와 피난길에 오르는데 시바가 다시 등장합니다. 므비보셋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시바의 입을 통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심정이 참담하여 피곤한 피난길을 오르는데 시바가 나귀 두 마리에 떡 이백개, 건포도 백송이, 과일 백개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다윗에게 바칩니다. 


다윗은 시바의 호의를 보며 "네가 무슨 의도로 가지고 왔느냐?" 묻습니다. 므비보셋이 보이질 않고 시바가 가지고 온 것이 의아한 것입니다. 사울의 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의도를 물은 것입니다. 

의도를 물었는데 시바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피곤한 자들이 마시게 하십시오." 

한 마디로 "그냥 묻지 말고 먹고 가지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재차 묻습니다. "아니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이 어디 있느냐고"

그러니까 시바가 "므비보셋이 다윗이 도망 가니까 이제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고 하며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 압살롬이 반역이 일어났는데 자기가 왕이 될 것이라 하며 예루살렘에 있다는 것이지요. 


이 말을 들은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이제 다 네것이다"하며 모든 재산을 다시 시바가 갖도록 명을 내립니다. 


3. 19장 

압살롬이 죽고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19장에서 다시 기가 막힌 반전이 일어납니다. 


다윗이 피난 갈 때 다윗을 저주했던 사울의 친족 시므이가 다윗이 복귀하자 가장 먼저 나와 다윗왕을 맞아 잘못을 빌 때에 17절에 갑자기 시바도 그의 아들과 종들과 함께 다윗을 맞습니다. 시므이와 시바가 함께 다윗을 맞는 것이 좀 색다르지 않습니까? 무언가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4절부터 므비보셋이 다윗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24절에 해설을 붙여 놓았는데 무엇이라하면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않았다"고 증거합니다. 

그가 만약 시바가 말한대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남았다면 이럴리가 없지요. 

그러니까 다윗이 어찌 나와 함께 피난가지 않고 여기 남았느냐하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므비보셋이 결국 시바가 나를 속여 모함하였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번에는 정말 이상한 판결을 내립니다. 시바의 악한 행위가 드러나고 므비보셋의 충정이 증명이 되었으면 의로운 재판관이라면 당연히 시바를 벌하고 므비보셋을 당연히 회복 시켜 주어야 하는데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하면서 둘이 반씩 재산을 나누라고 한 것입니다. 


시바는 벌받아 마땅한 자가 아닙니까? 두 번씩이나 주인의 재산을 자기 맘대로 처리하여 욕심을 부렸던 악한이고 기회 주의자입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므비보셋과 시바를 이젠 동등히 반반씩 은혜를 나누라고 하는 것일까?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문득 누가복음 16장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가 생각이 납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맡은 자이지만 마치 시바처럼 이것을 자기가 낭비를 합니다. 낭비를 한다는 것은 주인의 것을 자기를 위하여 썼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주인이 이것을 알고 이제 심판을 하겠다고 합니다. 직분을 빼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청지기가 어떻게 하냐면 자기가 맡은 것을 가지고 빚진 자들을 불러 일일이 빚을 탕감해 줍니다. 

자기가 그럴 권리가 없는데 이제 남에게 이로운 일을 해서 자기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지요. 


분명 시바가 다윗을 도운 것은 자기 것이 아닌 므비보셋의 것을 가지고 다윗을 돕습니다. 주인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다윗을 도운 것이지요. 그것도 선한 마음이 아니라 오직 자기의 것을 보장받기 위해서, 자기를 위해서 뜻하지 않은 선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가장 힘이 들때,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필요한 도움을 준 것이지요. 

시바는 기회주의자고, 악한 심성을 가진 자이고, 굉장히 정치적인 사기꾼이지만 다윗을 도운 것으로 말미암아 결국 주인 재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물론 우리가 가장 추구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닮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고 좋은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는 무리를 구원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다른 목적으로, 자기를 위해서, 믿는 자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어떤 의도에서건 선을 행하고, 돕고 베푸는 자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므비보셋도 은혜가 필요한 자이고 마찬가지로 시바도 은혜가 필요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 들어오는 곳입니다. 

설사 잘못된 동기가 있어도 내팽기치지 않습니다. 


(사 55:1)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3)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마치 거짓말장이 야곱처럼 시바는 불의했지만 다윗에게서 은혜를 구했습니다. 은혜를 위해 비록 자격이 없고 권리가 없지만 값을 치룹니다. 선을 행합니다. 


결국 그토록 원한 자유와 재산을 얻습니다. 온전치 못한 자가 반쪽이지만 은혜를 얻은 것입니다. 


그럼 므비보셋은 절반을 잃은 것입니까? 

므비보셋이 말합니다.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난 밭이 없어도, 종이 없어도 당신만 옆에 있으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절반이 아니라 전부를 잃어도 당신만 있으면 난 황송하고 감격한다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무엇인지, 무엇이 가장 귀한 지를 깨달은 자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정리합니다. 

므비보셋은 왕의 손자로, 왕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얼마나 귀하게 태어났는지 기억조차 못합니다. 

세상에서의 기억은 온통 상처 투성이입니다. 

자신의 육신마저도 절뚝 거리는 불구자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서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의 회복을 경험합니다. 

기억조차 못하는 신분을 그는 긍휼함을 통해 은혜를 통해 없는 자에서 가진 자로, 죽은 개 같은 인생에서 왕의 자녀로서 회복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시바는 종이었지만 자신의 꾀로 주인의 것을 가로채어 남부러울 것이 없이 삽니다. 

다 자신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달라 하면 줄 수 밖에 없는 신분입니다. 

한 순간에 종에서 주인으로, 그리고 또 다시 주인에서 종으로 신분이 바뀝니다. 

변명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세상살이 입니다. 우리 것이 없습니다. 그저 맡고 있을 뿐입니다. 


시바는 맡은 자로서의 지혜를 발합니다. 

비록 자신의 것이 아닐지라도 다윗을 위해, 배고픈 자를 위해씁니다. 

평생 자신만을 위해 살다가 비로서 남을 위해 선을 배푸는 자로 삽니다. 

동기야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든, 참으로 어려운 자, 남을 위한 것이든 베푸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외면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가장 귀한 선물과 은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꼭 부유하지 않아도, 혹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내것이 좀 없어져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다 가진 것입니다. 

주님을 가진 자가 곧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다 가져도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하면 다 잃은 것입니다. 

다 잃어도 주님과 함께 하면 영원한 복을 누립니다. 

주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십시오. 선을 행하십시오. 맡은 자에게 요구할 것은 충성인데 충성은 곧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복인 주님과 함께 하는 복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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