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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5장'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08.19 아름다운 여인 아비가일 (삼상 25장)

 

아름다운 여인 아비가일 (삼상 25장) 


견고한 댐이 무너지는 것은 강한 파도가 아니라 작은 구멍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은 엄청난 고난이나 핍박이 아니라 삶의 작은 구멍, 유혹이나 분노의 감정에서 시작됩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아둘람 굴과 엔게디 광야의 굴속에서의 다윗을 나누면서 무방비 상태의 사울을 죽이고자 하는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 앞에서 더욱 깊은 믿음과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다윗을 나누었습니다. 굴이라는 것은 내면의 은밀한 공간과도 같은 것입니다. 남이 보지 못하고, 홀로 숨을 수 있는 공간이 굴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이 굴이 자신의 가장 숨겨진 치부를 드러내는 장소가 될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이 굴이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향한 비밀이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사울에게 굴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숨길 수 없는 공간이요, 다윗에게 굴은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고 하나님과 함께 그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훈련소가 되었습니다. 


그랬던 다윗이 오늘 25장에서는 분노의 칼을 움켜쥐고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달려가는 장면을 묵도하게 됩니다. 사울에게서조차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의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던 다윗이 지금은 분에 못이겨 400명의 동지를 이끌고 복수의 길을 갑니다. 이 때의 다윗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간 곳이 없고 오직 자신의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유다지방의 마온이라는 곳에 살고 있던 나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양이 3000마리, 염소가 1000마리나 가지고 있는 큰 부자였습니다. 사울을 피해 광야로 도피하던 중에서도 다윗과 그 무리들은 결코 악을 행하지도 않고 오히려 강도들이나 광야의 동물로부터 그 지역에서 목축을 하던 목동들과 그 동물들을 지켜주었던 것입니다. 


도망자라는 신분은 궁핍합니다. 기회가 되고 먹을 것이 있으면 먹어야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그 도망 중에서도 다윗은 남의 것을 탐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선한 일을 베풀면서 광야에서 목축을 하던 목동들이나 동물들을 지켜주었던 것입니다. 


  • 다윗의 증언: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헤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7절)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21절) 
  • 목동들의 증언: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15-16절)


그런데 양털을 깎는 시기가 왔습니다.  목축업을 하는 이들에게 양털을 깎는 시기는 일종의 추수감사절과도 같은 수확의 시기입니다. 한 해 동안 공들인 양모를 거둬들여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이 때는 술과 음식이 가득한 음식상이 차려 집니다. 그들의 목축에 크게 도움을 주었던 다윗은 열명의 동지들을 나발에게 보내어 술과 음식을 좀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격식을 갖추어 공손하게 음식을 구하였습니다. 


[삼상 25:6-7] 이같이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네게 양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상치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8절) 내 소년들이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자기와 자기와 함께 있는 자들을 한껏 낮추어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라고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그네를 대접하고 가난한 자들을 대접하는 것을 율법의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지키는 민족입니다. 창세기에도 금요일날 나누는 사사기에도 자기 집에 도움을 청하는 낯선자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녀를 희생하는 것은 그만큼 타인을 접대하는 것을 율법의 중한 계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지금은 잔칫날입니다. 잔칫날에는 지나가는 자는 모두 들려서 음식을 나눕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까 다윗도 우리가 좋은 날 왔으니 음식을 좀 나누어 달라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목축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다윗을 청하여 대접하는 것이 마땅한 상황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나발이 뭐라 하냐면 

10절부터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들이 많도다." 무슨 말입니까? 그가 어디 종살이 하다가 도망나온 자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 

11절)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다윗을 알지 못하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사울에게 도망나온 다윗을 엎신여기고 하는 소리입니다. 

 이러니까 다윗이 열이 받은 것입니다. 자기는 대접받아 마땅한데도 예를 갖추고 대했거늘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모욕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자기와 함께 한 동료들 400명을 이끌고 지금 나발을 혼내주러 가는 것입니다. 

(삼상 25:22)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중 한 남자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사울 앞에서도 침착했던 다윗은 지금 자신을 모욕한 나발 앞에서 이성을 잃었습니다. 광야에서 배운 아름다운 거룩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윗은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힌 또 다른 사울이 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하인에게서 들은 나발의 처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마리 등등 음식을 가지 가지 싸들고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고 다윗에게로 달려옵니다. 

 

그러면서 다윗에게 엎드려서 하는 말이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 말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나발의 이름의 뜻은 "어리석은 자"인데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는 당신이 누군지를 알지도 못합니다. (25절) 

사람에게 직접 보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막으신 일이니 당신이 나발에게 보복하면 당신도 나발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6절) 

내가 용서를 대신 빌고 음식을 다 가져왔으니 화 풀고 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을 축복하시어 당신의 집을 세우시리니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지르지 마옵소서 

 

(삼상 25: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아비가일은 지금 다윗이 나발이 치는 사건만을 막는 것이 아니라 사울에게 쫓기고 있는 다윗의 처지 까지도 신앙안에서 바라보며 누가 당신을 쫓든지 당신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생명싸개 속에 싸듯이 보호하실 것이며 당신의 원수들은 하나님께서 물매로 던지듯 던지실 것입니다 하며 다윗이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크신지를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의 말은 무엇입니까? 

"다윗이여, 원수 갚는 일은 당신이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당신이 여기 광야에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당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나발은 어리석은 자요 불량한 자인데 그 자 때문에 당신도 똑같은 사람이 되시렵니까?" 


흔히 우리의 감정이 격해질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판 사판이다. 나 못참는다." 그렇다가 일을 치루고 나서 뒷감당을 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격한 감정은 우리를 파괴한다. 자녀를 혼내다가 폭력을 행사하고, 후회하고 부부싸움을 하다가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던져 버려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받으며, 자기 밑에 사람을 훈계하다가 자기 감정에 못이겨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무너뜨려 버립니다. 남 얘기가 아니라 제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모든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회개를 해도 그런 일들의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비가일의 말은 다윗의 행동을 멈추게 합니다. 다윗 앞에 무릎꿇은 아비가일의 말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엄한 임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자들 끼리의 싸움에서 아비가일은 한낮 여자요, 아무런 무기도 가지지 않은 약자입니다. 그런데 아비가일의 아름다움은 굳은 마음과 격한 감정으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빛을 회복시키고 모든 죄의 위험에서 다윗을 구해냅니다. 


아비가일의 아름다움은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눈에 비추었던 다윗의 아름다움을 생각나게 합니다. 가장 추한 사울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했던 자신을 기억나게 만들었습니다. 


나발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세상에는 빛을 찾아 보기 힘든 정말 어리석은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힘든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화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고, 칼을 휘두르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렇게 그들을 미워하다가 결국 우리 또한 똑같은 악에 빠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시편 14편은 나발과 같은 어리석은 자들을 겪으면서 지은 시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 14:1)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14:3)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시 14:5)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시 14: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시 14: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어리석은 자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의 아내였지만 그와 함께 거하면서도 나발의 어리석은 일에 관여하지 않고 선을 행했습니다. 악과 부딪치면서 살아가면서 악에 영향을 받지 않고 선을 행하는 방법을 터득했던 아비가일은 나발로 인해 악에 빠질 위기에 처한 다윗을 구해줍니다. 분노의 감정에 잡힌 다윗을 하나님의 빛으로 인도합니다. 난파당할 뻔한 다윗을 폭풍에서 부터 건져 냅니다. 


굳건한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은 폭풍우가 아닙니다. 우리 안의 작은 감정의 소용돌이, 작은 구멍이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립니다. 우리 주위에 난파당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악한 자들을 대하다가 똑같이 악해져서 결국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빛을 잃어버립니다. 

믿음은 핑계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 누구 때문에 상처입었다. 누구 때문에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는 순간, 우리가 잃어버리고 놓쳐 버린 것은 우리를 넘어뜨기게 했던 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주위에서 발견되는 사소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하나님의 빛으로 인도할 때가 있습니다.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서 안아주는 엄마의 모습에서, 두 손을 꼭 쥐고 걸어가는 연인들의 모습에서, 험한 들판에 홀로 피어 있는 작은 꽃잎을 보며, 빗줄기 사이에 보이는 무지개를 바라보며, 무더운 햇살 속에서 슬며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속에서....세상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줄 아름다운 것들로 넘칩니다. 


내가 사는 세상 속에서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줄 아비가일은 비단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이 나의 아비가일이 될 수 있습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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