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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염려를 은혜로 바꾸는 언어 (빌 4:4-7) 

 

지난 주 시편 109편 - 어떻게 깨끗한 그릇이 될까? 

다윗의 영성의 비밀 

그 안에도 우리와 똑같은 분노와 억울함, 저주와 입에 담지 못할 욕이 마음 속에 넘쳐났다. 

그런데 그 어둔 감정, 미운 감정, 저주의 감정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 그의 속마음을 온전히 드러냈다. 

우리는 반대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죄를 감추고, 그 안에서 해결받지 못하니 사람들에게 감추지 못한다. 

얼마간 참다가 퍼붓고, 분노하고, 저주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회개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언어도 받으시고, 우리가 내어드린 우리의 어둔 심령을 그의 은혜로 바꾸어 주신다. 

기도는 우리의 속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여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의 언어가 내 안에 들어와 내 안에 그 분의 생명을, 빛을 창조하시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의 속마음을 바꾸는 기도의 연장선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신약, 빌립보서의 본문을 가지고 이 기도에 대해서 좀 더 들여다 보고자 한다. 

 

빌립보서 4장 4절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6절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기뻐하는 것, 염려하는 것 - 감정의 문제다. 감정은 우리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이다. 외부의 환경이나 충격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감정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기쁘고, 문제가 생기면 염려하는 것, 당연한 인간의 반응이다. 

 

‘염려’와 ‘기쁨’은 ‘어둠’과 ‘빛’같아서, 한 공간에 같이 머물 수 없습니다. 염려가 들어오면 기쁨은 사라지고, 기쁨이 들어오면 염려가 사라집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염려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기쁨을 가지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염려를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언제나 염려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끊임없이 이 감정을 다스리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랑하라. 

우리의 인간이 지(knowledge), 정(emotion),  의(will)로 구성되어 있다면 사랑이라는 가치는 어떤 순서로 우리에게 경험되는가? 

감정(호감)이 먼저 오고 그러면 상대방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지식이 축적되게 되고, 나중에는 의지를 가지고 결혼을 하거나 결실을 맺게 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순서를 과감하게 바꾼다. 

사랑하라는 말씀 (지식)을 먼저 준다. 그리고 그 말씀에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순종한다. 그러면 가장 마지막으로 감정이 따라오게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항상 기뻐하라. 다 이런 순서대로 열매맺는 말씀들이다. 

 

결론적으로 말씀(지식)에 의지적으로 순종함에 의해서 감정을 다스리게 한다. 

왜 성경은, 하나님은 일관적으로 말씀을 통해 감정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실까? 

말씀 - 로고스: 원리, 근원, 논리적이다. 

감정 - 외부 작용에 대한 반응이라고는 하지만 무논리, 무원칙, 항상 변화한다. 

저 사람이랑 다신 안살어, 말도 안해야지 하면서 모든 관계를 끊어버릴 듯 하면서도 말 한마디에 풀린다. 

도무지 사람의 감정은 종잡을 수 없다. 

속담)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신앙생활에서도 은혜 받을 때 보면 세상을 다 이긴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금새 집에 가다가 말 한마디에 결심을 놓아버린다. 성령의 은혜를 닫아버린다. 

 

그 많은 감정 중에서 신앙생활을 가장 흔드는 감정 - 염려이다. 모든 스트레스의 근원이고 은혜를 마르게 하는 원동력이다. 

 

염려에 대한 중국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기원전 12세기경 중국의 주(周)나라가 은(殷)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운다. 새 왕조의 창립자인 무왕(武王)과 그 아들 성왕(成王)은 그 거대한 땅덩어리를 직접 통치하기 힘드니까 친족과 공신들에게 하나씩 떼어 나눠주었다. 그 가운데 기(杞)라는 아주 작은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는 주(周)왕조의 인척이나 건국공신이 세운 나라가 아니라, 까마득한 시절에 정복된 망국의 유민들이 모여 살던 나라였기 때문에 따로 왕을 파송하지 않고 계속 그 나라를 유지하도록 했지만 설움과 천대가 이만 저만 아니었다. 항상 주나라 임금이 자기들을 어떻게 할까봐 사람들은 불안 가운데 살았다. 그 중에도 유난히 걱정이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의 걱정은 “올려다 보면 장엄하게 돌고 있는 저 하늘, 그리고 우리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이 땅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꺼져버릴지도 모른다.” 이것이 기(杞)나라 사람의 걱정이었다. 기우(杞憂)는 기인지우의 준말로 그러한 기 나라 사람의 걱정을 나타내며, <쓸데없는 근심>, <괜한 걱정>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우리나라 격언 으로도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다.

걱정을 하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중 2 병, 고 3 병, 산후우울증, 이러한 염려가 질병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마라"의 염려는 영어로는 "anxiety"로 번역했다.  "anxiety"의 뜻 중에는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을 염려하는 것', '미래의 짐을 대신 지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 공포(fear)와 불안 (anxiety) : 특정한 대상이 있고 없고의 차이 

 

사실 빌립보 교인들의 상황은 염려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교회 외부적으로는 이제 로마로부터의 핍박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복음을 증거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게 되고, 영적인 리더인 바울도 지금 감옥 속에서 편지를 쓰고 있다. 내적으로는 교회가 분열되어 하나되지 못하고 어지러웠다.  

안팎으로 편할 날이 없는 때이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로부터 편지가 날라왔는데 그 편지 속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낙천적이라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인가? 상황을 무시하라는 것인가? 어떻게 염려하지 말고 살라는 것일까? 

어떻게 염려로부터 자유할 수 있을까?

 

바울의 권면

 

1.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라. 주 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빌4:6a) 

염려를 중단하라는 명령이다.  ‘염려하며 사는 것이 싫으냐? 그렇다면 염려하지 마라!’는 것이다.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문제에 사로잡혀 있지 말라’는 뜻이다. 사실 사람들은 처음에 언급한 기나라 사람처럼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거나 초조해한다. 조그마한 문제도 자꾸 묵상하고 생각하고 확대해석하면 어느새 문제가 눈덩이같이 커져서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여러분, 염려라는 감정이 일어날 때 거기에 휩싸이지 말고 중단하십시오. 아니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십시오. 염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킵니다.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십시오. 그것이 염려를 기쁨으로 만드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2. 염려대신 기도하라. (핵심) 

…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b)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문제와 염려의 자료를 기도제목으로 바꾸어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정말 ‘문제화’시키지 말고, 오히려 ‘기도 제목화’시켜서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고하라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놓고도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염려하거나’, 아니면 ‘기도하거나’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기도 대신 염려합니다. 문제를 염려로 바꿉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염려 대신 기도합니다. 염려를 기도 제목으로 바꿉니다. 내가 염려하는지, 아니면 기도하는지를 보면 내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물론 우리의 인생길에 염려해야 할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주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반드시 염려해야 할 상황이지만, 그 때에 기도함으로 믿음을 보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를 안고 사는 그리스도인들 - 기도하라 하면 당연히 기도하지요 하면서 불쾌해 한다. 그들의 기도는 단지 한숨이다. 염려 가운데, "주여~~~' 후렴구 처럼 내뱉는 한숨

그러나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기도는 염려의 대상이나 상황, 내 감정이나 문제를 소상히 아뢰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내 염려의 실체가 드러나면 그 염려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구체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기도 하고, 그리고 더욱 하나님께 집중하게도 한다. 

 

바울은 기도를 하더라도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말한다, 즉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기도제목으로 만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다. 죽고 사는 큰 문제만 가지고 나오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일들도 주님께 가지고 나오라는 것이다. 

‘다만’이라는 말에 주목해보자,  ‘다만’은 ‘오직’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그렇다. 염려를 기쁨으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라는 것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우선 기도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염려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3.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보라. 바울은 기도하고 나면 문제가 즉시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당장에 병이 고쳐질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단지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한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제야 행복과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행복과 기쁨을 보류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다르다. 하나님은 문제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평강을 먼저 맛보게 하신다. 해결을 먼저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약속을 먼저 주신다. 그리고 우리의 맏음을 통해, 그 약속을 성취하신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정한 섭리에 따라서 하나님의 때에 틀림없이 해결될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허락해 주신다.  그때가 언제가 되든지,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평강으로 응답해 주신다. 해로운 상황도 결국 나의 유익으로 변하게 하신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더 이상 염려와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 않도록 하나님은 그 일부터 시작하신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보내는 편지마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어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 안에서, In Chrust, 라는 말입니다. 

"주 안에" 이것이 바울의 능력이었고, 확신이었고, 그리고 체험이었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라는 찬송가(370장) 가사처럼, 주 안에 있으면 근심이 없습니다. 문제가 없어서 근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 있기 때문에 딴 근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뒤집어도 진실입니다. 주 안에 있지 않으면 없으면, 즉 주 밖에 있으면 그때부터 나에게 딴 근심이 생겨납니다.

 

가나안을 들어가기 전에 12명의 정탐꾼, 가나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하고 기쁨이 충만한 삶. 

각 지파 중에서 수령을 보냈다고 말씀합니다. 초짜배기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 신앙이 있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들을 보냈다는 것. 

그들 중 10명의 보고 

[민 13:32-33]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들의 보고: 그 땅, 그 곳의 백성-신장이 장대하고 거인들,,

                  그리고 자기 자신- 메뚜기...난 아무 것도 아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 

(민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그들을 보았지만 이들이 본 것은 여호와... 그들은 보호자가 없지만 우리는 여호와가 함께 있다. 하나님이 우리 보호자시다. 

 

하나님의 행하심. 

(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들이 취한 행동, 말한 내용대로 행하심.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통해서 스스로 메뚜기라고 한 자들은 그렇게 죽어갔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말대로 두려워하지 않고 가나안을 취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이고 신앙의 법칙. 

우리가 취한대로, 선택한 대로....하나님께서 또한 일하신다. 

 

그래서 염려가 생길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고 끝으로, 결론적으로 

(빌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워라. 옳은 생각, 신앙적인 생각, 깨끗한 생각, 유익한 생각, 남을 세우는 생각을 해라. 

(빌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 오늘 배운 바를 실천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평강을 줄 것이다. 잠 잘 것이다. 잘 먹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제일 큰 피해 - 성도들의 기도가 준다. 

목회자인 나에게도 기도가 절실하다. 

아침 묵상과 더불어 기도의 훈련을 하자. 

기도는 우리 그릇을 꺠끗하게 만들어준다. 

기도는 염려를 기쁨으로 바꾸어 준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지만 기도라는 언어를 통해 우리와 교제하시고 만나시고, 역사하신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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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를 이기는 신앙 (빌립보서 4:4-7)

 

기우: 기인지우(杞人之憂)라고도 하며 쓸데없는 걱정

 

“올려다 보면 장엄하게 돌고 있는 저 하늘, 그리고 우리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이 땅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꺼져버릴지도 모른다.” 이것이 기(杞)나라 사람의 걱정이었습니다. 기우(杞憂)는 그리하여 <쓸데없는 근심>, <괜한 걱정>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격언 으로는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까지 싸짊어지 듯하는 것을 주변에서 안쓰럽게 생각할 때 이르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사랑해라!

기뻐해라!

  • 우리의 상식으로 사랑이라든가 기쁨이라든가는 감정의 문제이다. 감정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지성으로, 의지적으로 잘 콘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은 자꾸만 우리안에서 자연스러웁게 나오는 감정의 문제를 흘러내려가는대로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훈련하라 하신다.

왜? 모든 죄악이, 신앙의 슬럼프가, 관계의 어긋남이, 바로 감정의 조절 실패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ex) 아담과 하와를 유혹->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먹지 말라 하더냐? 그 말을 들으며 사냐? 왜 그렇게 사냐? 비아냥거리는 소리...

죄악의 결과: 두려워하는 마음, 죄책감-> 하나님의 낯을 피함.

가인: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라" (창 4:7)

모세가 실수한 것도 백성들 앞에서 분을 낸 것.

다윗이 실수한 것도 밧세바를 보고 혹하여 사리 판단 못하고 불길같은 정욕에 휩싸인 것-> 우리아를 죽이기까지...

  • 감정이라는 것- 외부작용에 대한 반응이다. 자극하는 것이 있으면 좋건 나쁘건 반응한다. 그 때 그 때 반응한다.

안좋은 일 있다가도 웃기는 프로그램 보다가 깔깔거리며 웃는 것. 웃다가도 갑자기 우는 것. 그것이 인간이다. 감정은 외부 작용에 대한 온도계이다.

  •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각도에서 보면 얼마나 비상식적인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아니 사람이 어떻게 언제나 오래참을 수 있나?

 

이찬수 목사님) 보호하심: 온도계와 같은 신앙생활 하지 말고 온도조절계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라.

온도조절계) 바깥 온도에 따라서 실내온도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바깥 온도가 너무 뜨거우면 실내온도를 내려서 맞추고 너무 추우면 올려서 맞추고...

무슨 소리인가? 외부작용이 강하게 나를 힘들게 하면 속사람을 더욱 뜨겁게 하여 평안을 유지하고 외부작용이 너무 나를 들뜨고 교만하게 하면 속사람을 가라앉혀서 겸손을 유지하고...

 

빌립보서 4장의 가장 기초석

주 안에- 신앙안에 요동하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길- 주 안에...

 

주 안에 있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힘쓰고 애써야 한다. 내 몸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다. 왜?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환경에 짖눌리고, 파도에 휩쓸리고, 감정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빌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러분이 선하고 친절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도록 행동하십시오. 주님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갑자기 이 말씀이 왜 들어와있을까?

 

힘들면 기도한다. 염려가 있으면 기도한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교회를 나서면, 다시 집에오고, 다시 직장에 오면 그 은혜가 유지가 안된다. 그래서 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그 갈등을 누구에게 표출하는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표출한다.

자식에게 화풀이 하고, 아내에게 남편에게 기도할 때, 예배 드릴 때 참고 있었던 화풀이를 한다. 그 순간 은혜가 달아나고 다시 염려에 사로 잡히게 된다.

 

  • 기뻐하라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일단 기도했으면, 평강이 왔으면 그대로 믿고 응답받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선하게, 친절하게, 회복된 모습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그게 참 믿음이라는 것이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마라"의 염려는 영어로는 "anxiety"로 번역했습니다. "anxiety"의 뜻 중에는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을 염려하는 것', '미래의 짐을 대신 지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 빌립보 교인들의 상황은 염려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교회 외부적으로는 이제 로마로부터의 핍박이 거세지기 시작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복음을 증거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빌립보 교회의 영적인 리더인 바울도 지금 감옥 속에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내적으로는 교회가 분열되어 어지럽게 만듭니다.

도대체 편할 날이 없는 때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로 부터 편지가 날라왔는데 그 편지 속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낙천적이라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인가? 상황을 무시하라는 것인가? 어떻게 염려하지 말고 살라는 것일까요?

어떻게 염려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까?

 

1.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라. 주 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빌4:6a)

염려를 중단하라는 명령입니다. ‘염려하며 사는 것이 싫으냐? 그렇다면 염려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문제에 사로잡혀 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거나 초조해합니다. 조그마한 문제도 자꾸 묵상하고 생각하고 확대해석하면 어느새 문제가 눈덩이같이 커져서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니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십시오. 염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킵니다.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십시오. 그것이 염려를 기쁨으로 만드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2. 염려대신 기도하라.

…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b)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문제와 염려의 자료를 기도제목으로 바꾸어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정말 ‘문제화’시키지 말고, 오히려 ‘기도 제목화’시켜서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고하라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놓고도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염려하거나’, 아니면 ‘기도하거나’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기도 대신 염려합니다. 문제를 염려로 바꿉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염려 대신 기도합니다. 염려를 기도 제목으로 바꿉니다. 내가 염려하는지, 아니면 기도하는지를 보면 내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물론 우리의 인생길에 염려해야 할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주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반드시 염려해야 할 상황이지만, 그 때에 기도함으로 믿음을 보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기도를 하더라도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즉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기도제목으로 만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큰 문제만 가지고 나오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일들도 주님께 가지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다만’이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다만’은 ‘오직’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염려를 기쁨으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입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염려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3.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보십시오. 바울은 기도하고 나면 문제가 즉시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장에 병이 고쳐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제야 행복과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행복과 기쁨을 보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문제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평강을 먼저 맛보게 하십니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정한 섭리에 따라서 언젠가 틀림없이 해결될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허락해 주실 겁니다. 그때가 언제가 되든지,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평강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더 이상 염려와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일부터 시작하십니다.

 

염려하는데 시간 쓰지 말고 그 시간에 기도하라.

 

삼상 1:12-18절 함께 읽기

[삼상 1:17-18]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염려를 이기는 신앙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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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07.29 22:33

    샬롬^^
    은혜많이 받고 갑니다.
    감사드려요.

무엇을 바꾸시렵니까? (빌립보서 4장 4-7절) 


빌립보서 4장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는 바울의 결론적인 메시지 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세 가지 당부를 합니다. 

주 안에 서라.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세 당부의 공통적인 전제는 "주 안에" 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뿐만 아니라 그의 여러 서신서에서 끊임없이 "주 안에"있을 것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 자체가 바로 주 안에 있을 때의 삶과 주 밖에 있을 때의 삶으로 나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 밖에 있을 때에는 육체를 자랑하던 자였습니다. 

자기의 태생과 자기의 학문과 자기의 열심을 자랑하던 자였습니다. 

그러한 예수 밖의 삶은 "예수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의 삶으로 귀착됩니다. 예수의 길과 반대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안에 있는 자의 모습을 "십자가와 부활"을 소망하는 삶으로 정의합니다. 

예수 밖의 있는 자를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는 다고 하면서 여전히 예수 밖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예수 밖의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 여호수아 1장의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는 이스라엘 12지파가 다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서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을 얻은 것이 아니라 일찍 부터 요단강 동편의 땅을 받기를 소원했습니다. 

민수기 32장에 보니까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않고 그 건너편 땅을 선택한 이유는 그들에게 가축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농사지어 먹고 사는 땅인데 그들에게는 가축이 많으니 유목하기에 좋은 광야 땅에 살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불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 생할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여정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광야요, 십자가요, 고난의 길입니다.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강을 건너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고난을 넘는 것이고, 영적으로는 나를 부인하고 주님이 주신 길을 걷는 세례를 말합니다. 


그런데 세 지파는 이 땅의 것들이 너무 많아 요단을 건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지시하신 땅보다 자기들이 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점점 멀어져 그들의 예배를 따로 만들고 결국 우상숭배의 길로 빠져 듭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 밖의 사람들이 되어 버립니다. 


바울은 주 밖의 사람들을 "그들의 신은 배요,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19절) 


주 안에 서라는 것은 길을 정하라는 것입니다. 

그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부활을 소망하는 길입니다. 

부활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걷는 길입니다. 

진실하게 예수 믿기 위해서 고난의 길을 걸으십니까? 

아니면 자기의 배를 채우는 길이라면 어떤 길이든 걸어가시겠습니까? 


주 안에 같은 마음을 품으라.

우리는 결코 한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형제끼리도, 부부 끼리도 살다보면 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물며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태생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입니까? 

우리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각각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말임을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믿는 공동체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까? 주를 본받는 것에 하나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주가 원하시는 일,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까? 


신앙생활은 결국 주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내 선택과 사고의 기준은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어떤 것이 주님보시기에 기쁜 일일까?" 

이것이 기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빌립보서 전체의 주제는 바로 이 기쁨 입니다. 이 기쁨은 어떤 기쁨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가져야 기뻐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쁨은 항상 조건적입니다. 그런데 그런 조건적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금방 시들합니다. 

그것 가지면 좋을지 알았는데 금방 실증이 납니다. 

아이들의 장난감, 이런 것들이 커져서 여자들은 핸드백..남자들은 시계 자동차, 심지어 결혼 대상자까지.....

바꾸면, 가지면 기쁠 것 같은데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조건적, 일시적인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롬 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란 중에도 즐거워한다는 소리는 환란을 즐거워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고난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그런데 환란 속에서도 기쁨을 일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란은 성도들에게 인내라는 열매를, 인내를 통해, 연단을 이라고 번역했지만, 원뜻을 보면 인내를 통해 단련된 인격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인내로 단련된 인격은 어떻습니까? 

바뀌는 환경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묵묵히 참을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 분이 주시는 것은 결국 나에게 선이요,  좋은 것이요, 기쁨임을 알고 참고 기다립니다. 이런 기다림이 굳어져 성품이 되고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기다림에 실패합니다. 

말로는 너무 잘 아는데 그것이 자기 삶에 적용될 적에 늘 조급함 때문에 넘어집니다. 

자기들의 기도가 삶의 인품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파도 위를 걸었던 베드로의 믿음과도 같습니다. 

사방은 파도가 치고 태풍이 불어도 주님께 시선이 고정되면 걸을 수 있습니다. 

시선이 떼여서 주위를 보면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누리는 것. ....이것이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염려입니다. 염려가 생기면 어느덧 이 기쁨이 사라집니다.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살 수가 있습니까? 염려 없이 사시는 분 있으십니까? 

염려로부터 자유하십니까? 


우리가 읽은 본문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마라"의 염려는 영어로는 "anxiety"로 번역했습니다.  "anxiety"의 뜻 중에는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을 염려하는 것', '미래의 짐을 대신 지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왜 염려가 오면 우리 안에 기쁨이 사라집니까? 

염려가 오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자리는 없어지고 내가 짊어져야 할 짐들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현실을 바라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떻게 현실의 문제를 무시하고 살 수 있습니까? 

그런데 문제를 바라보면서 내가 짊어 질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가정하면서 걱정하지 말고, 그 걱정 되는 모든 것들을 낱낱이, 소상히 기도의 제목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거나 초조해합니다. 조그마한 문제도 자꾸 묵상하고 생각하고 확대해석하면 어느새 문제가 눈덩이같이 커져서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 …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b)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문제와 염려의 자료를 기도제목으로 바꾸어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정말 ‘문제화’시키지 말고, 오히려 ‘기도 제목화’시켜서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고하라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놓고도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염려하거나’, 아니면 ‘기도하거나’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기도 대신 염려합니다. 문제를 염려로 바꿉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염려 대신 기도합니다. 염려를 기도 제목으로 바꿉니다. 내가 염려하는지, 아니면 기도하는지를 보면 내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염려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실컷 염려하면서 한숨쉬듯 '주여......'하면 그게 기도인줄 압니다. 


아뢰라는 것은 상세히 고하라는 것입니다. 막연히 힘들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하나님 다 아시지요가 아니라 자기의 힘든 것, 자기의 걱정꺼리등을 낱낱히 고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보십시오. 바울은 기도하고 나면 문제가 즉시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ex) 김홍신 - 인생사용 설명서 

세상이 너무 어지럽고 복잡해서 늘 마음이 불안하고 머리가 아픕니다. -> 세상이 복잡해서 머리가 아픈가? 자네 마음이 복잡해서 머리가 아픈가? 


우리를 정작 힘들게 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내 생각이 복잡해지고 내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함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것과 주님이 하실 일들을 분별하고 내가 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 하되 주님이 하실 것은 그 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것은 결국 나에게 유익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신다. 

내가 해야 하는 오직 하나는 내 시선을 주님 앞에 고정하고 파도 속에서 요동하지 않는 것. 주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것. 그리고 주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는 것. 


‘지킨다’는 말은 본래 군대용어입니다. 마치 로마의 군대의 수비대가 성을 빽빽이 싸고 보초를 서며 지키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평강이 위로부터 내려와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싸며 확실하게 지켜주신다는 겁니다. 더 이상 염려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더 이상 불안과 두려움이 틈타지 못하도록, 그렇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평강은‘모든 지각에 뛰어난 것’이라고 바울은 표현합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거나 고안해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헤아림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이고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평강은 영원하며 본질적이요 완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염려가 생긴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내 마음에 염려가 생겨났다는 것은 내가 주 안에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염려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면 됩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면 됩니다. 기도하면 우리가 다시 ‘주 안에’ 복귀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납니다. 문제의 해결은 그 다음입니다. 아니 사실 주 안에 복귀하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문제들로 인해서 우리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하는 대신에 기도하기로 작정하십시오. 기도하되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또한 여러분의 기도와 간구에 감사를 동반하는 믿음을 보이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주 안에 살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돌보신다는 말은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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