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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5-11'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7.10 빌립보서 2:5-11절 빌립보서 강해
 

빌 2:5-11]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5-11- 바울의 기독론

                       -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 기독교: 예수가 누구인가?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 

요한의 기독론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베드로의 기독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주님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눈을 형형 색색이어서 파란 마음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파랗게 보이고 빨간 마음을 가진 사람 눈에는 빨갛게 보여서 주님의 존재와 주님을 아는 인식에 큰 차이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두고 병든 사람은 의사로, 나라를 잃은 사람들은 정치적 메시아로, 억눌린 사람들은 혁명가로, 가난한 사람들은 기적의 사람으로 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피부 색깔도 자기들의 피부 색깔과 같이 봅니다. 예수님은 원래 피부가 우리와 같은 황색입니다. 그러나 백인들은 예수님을 완전히 백인으로, 흑인들은 예수님을 아에 흑인으로, 우리 나라 김기욱 화백은 예수님을 큰 갓을 쓴 양반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정확히 보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들의 편견, 사람들의 편견, 신학자들의 편견으로 예수님의 원래 모습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삶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6절) 

-> 뱀이 하와를 유혹할 적에 :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 같이 되리라. (피조물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는가? NO)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하나님과 같이 되지 않고자 하는 마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아담의 범죄함으로 온 인류에 죄와 사망이 들어옴. -> 아담의 범죄: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나님의 말을 불순종.,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사람같이 되심. 


그리스도의 삶, 인격-> 자기를 죽여 인류를 살리는 삶. 영성

-> 그 방법은 겸손과 섬김과 희생 

  • 탄생, 생애, 죽음: 하늘보좌를 버리고 말구유에 나심. 의지할 처소 없이 제자들과 가난한 자, 병든자, 귀신 들린 자,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다니시면 사심.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심. 
  • 이 삶에 일관성있게 흐르는 삶의 태도: 자기 부인-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는 것. 자기를 아무 것도 아니라 만드는 것.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 자기를 비울 수 있을까? 자기 존재의 가벼움을 견딜 수 있을까? 

     불교: 무아, 자기 비움, 해탈.... 깨달음을 통해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 

     사람이라는 단어: 동양에서는 "사이" -> 관계성을 중시 

     라틴어(유럽) :Humus, 흙, 먼지-> 덧없음. 허무 

     히브리어 : ish- 불덩이, 욕망-> 인간은 곧 욕망적인 존재이다. 

     

     무엇을 끊임없이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바라보고 사는 존재이다. 

     나를 비우라는 것, 자기를 부정하라는 것: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욕심을 비우고, 욕망을 비우고... 우리 존재 자체가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소극적으로, 수동적으로 자기를 비우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를 바라보는 것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 영어로 보면 너희의 삶의 태도가 예수의 삶의 태도와 같게 하라는 것이다. 

     그가 자기를 비워 겸손하게, 섬기며, 희생하였듯이 너희도 적극적으로 그의 삶을 닮을 소망을 품고 주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남과 싸워 이기려고 한다. 왕, 장군, 정치가, 권력자들은 끊임없이 남을 정복하고 다스리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러나 그런 사회는 항상 패배자가 있고, 갈등이 있고 전쟁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나와 싸우는 자다. 이 싸움은 남을 이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그러한 자가 있는 곳은 평화롭고, 유익하며, 만족이 있고 기쁨이 있다. 

예수님은 빌라도와도 로마 군사들과도 싸우지 않았다.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지 그들과 싸우지 않았다. 단지 예수의 싸움은 십자가 상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는 삶이셨다. 


  •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8절) 

    - 무엇에 복종하셨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 복종의 정확한 목적이 있었다. 히브리적 사람의 정의가 욕망하는 것- 다른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욕망하는 것이라면 다른 말로 이것은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에 복종한다는 것. 

       - 무엇에 복종하는가가 사람의 삶을 좌우 : 뱀이 유혹하여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선악과를 바라보니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인다. -> 모든 종류의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것. 

        -> 그런데 그 욕망의 타겟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떼어 놓는 것. 하나님께 대한 복종을 금지 시키는 것. 

        ->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면 자유하게 될 줄 알았는데 결국 그 떼어놓음이 모든 인류의 죄와 사망을 가져오는 것. 

   - 예수 그리스도: 오직 복종의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 그 안에 참 자유가 있기 때문에.... 사탄은 이것이 어떻게 말이 되냐며 끊임없이 우리를 혼란 시킨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억압이고 부자유고 그리스도인은 억압과 부자유 속에서 산다고 유혹한다. 

   - "죽기까지" 복종하였다. : 자기 스스로의 욕망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았다. 오직 복종의 대상인 말씀만이 그 삶을 움직였다. 시간적으로, 질적으로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은 온전한 것이다. 

 - 어느 정도까지 순종하고 복종할 수 있어도,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은 자기를 온전히 내어놓는 것이다. -> 그 결과가 십자가이다. 그니까 십자가라는 것은 내가 그냥 고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순종함의 결과로서 오는 것이다. 아무것이나 십자가가 아니다. 

   - 사울왕의 불순종

[삼상 15:2-3]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그러나 사울왕은 아말렉을 물리친 다음에 볼품없는 것은 다 진멸했지만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어린양과 기름진 것은 남겨놓고 그것을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 변명이다. 

[삼상 15:22-23]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이요, 이스라엘은 야곱의 후손입니다. 에서는 단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은 육신의 정욕의 사람이요, 그 후손이 아말렉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려고 하는 야곱의 후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싸움은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과 육적인 사람들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사울왕에게 "네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아말렉을 치라"고 말씀하신 것은 눈으로 보이는 아말렉의 적도 있지만 속에 있는 육신의 정욕,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는 인간의 정욕을 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거기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버림을 당합니다. 


  •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무엇이 높아지는 것인가? 

고지론과 미답지론에 대한 한국교회 신학적인 갈등

* 고지대론: 효과적인 복음전파와 크리스찬의 영향력을 위해서 높은 자리를 점령하라. 세상에서 성공하여 복음을 위해 사용하라. 요셉, 다니엘, 다윗, 솔로몬... 느혜미아, 에스더... 

* 미답지론: 크리스찬은 남이 하지 않는 것,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다. 바울, 예수, 열두제자.... 아브라함. 

-> 성경은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 어쩌면 신학적인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 정답은 자기가 그 길을 정하지 말고 말씀을 좇으라!

 요셉도 다윗도 다니엘도 느혜미아도 세상적인 영향력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 보니까 하나님이 그 자리에 앉게 하신 것이다. 

 바울도, 열 두 제자들도, 아브라함도 일부로 힘들 길,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미련한 짓이다. 오직 말씀을 따라 가다 보니까 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행복이 목표냐? 살다보면 오는 것이다. 

 참 그리스도인이 목표인가? 날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면 어느 순간엔가 그런 사람,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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