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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19-26'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6.14 빌립보서 1:19-26

빌립보서 1:19-30

(빌 1: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 이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이, 내가 감옥에 들어오게 된 일이... 
  •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그가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그가 신앙 안에서 이룬 결론. 성령께서 주신 생각... 
  • 너희의 간구와: 사도바울의 외로움이 들리는가? 

     - 유대인중의 유대인으로서 가장 높은 학식과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학문과 가문이 뛰어난 자가 반역자라는 이름을 무릎쓰고 유대교로부터 나와서 그리스도를 쫓음. Why? 예수를 만났으니까... 주님의 은혜로 강권적으로... 

     -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의심한다. 그는 죽일 때까지 그의 사도권, 그가 참 그리스도인임을 변호하며 다녔어야 했다. 그 자신도 과거의 일 때문에 괴로워했다. 안식처가 없다. 사람들은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나 그의 불행을 기뻐한다. 

     - 다른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상처받은 이야기, 배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오직 가룟 유다 이외에는...왜? 그들도 떳떳치 못하니까... 그들 자신도 다 배신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바울은 누구는 세상을 사랑해서 떠나갔으며... 그리스도를 떠났으며..그런 구절이 많다. 서운함도 느낀다. 어디 하나 의지할 때가 없다. 결혼을 안 했으므로 가족도 없다. 그래서 서운함도 느낀다. 외롭다. 성도들의 기도는 그가 세상에서 위안을 받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랑과 능력이 있음을 안다. 

     -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들은 믿음이 좋으니까 사람들의 반응이나 행동에 상처를 안 입었을까? 아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순간 그는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자기의 것을 다 내려놓았다. 배설물로 여겼다. 자기 자신 안에 기댈 수 있는 것들을 버렸다. 그래서 그에겐 성도가, 믿음의 동료가 귀했다. 때로 의지했다. 그들의 헌금에도 의지하고 그들의 기도에 의지했다. 

     

  •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내가 풀려나게 될 줄을 내가 안다. 

     - 로마의 감옥에서 잠시 풀려 났다가 다시 감금되고 지하 감옥에서 사형당함. 

     - 곧 풀려 나지만 또다시 감금... 

     - 그러나 영원한 구원에 확신을 가짐.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 그의 인생의 기준점, 목적: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되려 함. 그것이 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 이 말씀을 보는데 너무 부끄럽다. 내 소망과 기대... 말로는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인데...가만히 들여다 보면 내가 잘 되고 싶어하는 생각... 내가 성공하고 싶어하는 생각... 사도바울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않게 살고자 했는데...난, 나 자신을 살펴보면 너무 부끄러운 것이다. 그리스도가 주인이 아니라 아직도 내어 드리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다. 내가 서고자 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살고자 하는 생각이 너무 많다. 나 스스로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치 않으려 하다 보니까... 주님 앞에 설 때엔 언제나 부끄럽다. 


  •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 이런 감정이, 열정이 한 순간이 아니다. 한 순간 이런 생각을 품을 수 있다. 내 자신을 다 드린다고 고백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한결 같이, 예나 지금이나, 온전히.... 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려 하는 것이었다. 

  • 목적이 있는 삶: 릭 워렌 "목적이 이끄는 삶" 목적이 있는 삶의 넷가지 유익

      1) 삶의 의미를 준다.  목적이 없는 삶: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 사치와 향락 속에서 삶의 허무함을 고백

      2) 목적이 있으면 삶이 단순해 진다. :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일이 내 삶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일인가?” 하고 묻게 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 보면, 우리에게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시간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에게는 더도 말고 덜도 말

         고 꼭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힘과 시간만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지금 우리의 삶은 너무나 복잡합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 일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자인 체하나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체

         하여도, 부자인 사람이 있다.” 이 말씀이 유진 피터슨 (Eugene Peterson)이 번역한 Message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A pretentious, showy life is an empty life; a plain and simple life is a full life (남에게 과장되게 보이려고 하는 삶은 텅 빈 삶이고, 단순한 삶이야말로 가득 찬 삶

         이다).” (잠언 13:7) 

       3) 셋째로, 삶에 목적이 주어진 사람은 삶에 포커스를 맞추게 된다 

       4) 삶의 목적이 주어지면 삶에 동기가 부여된다 (Knowing your purpose motivates your life)고 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하는 동기가 있어야 성과가 있습니다.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죽는 것도 내게는 유익합니다”라고 했습니다. NKJV에 이 말씀이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죽는 것은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Good News Translation에는 “For what is life? To me, it is Christ. Death, then, will bring more (삶이란 무엇입니까? 나에게 있어서 삶이란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더 많은 것을 가져 올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 난 내 인생에 하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다. 예수로 채워지지 않는 공간들이 여전히 있다. 일부분만 헌신하고 나머지는 아무런 간섭받지 않고 쉬고 싶고 즐기고 싶고 때론 망가지고 싶다. 그런데 삶의 경험을 통해서 얻는 것은 일부분만 헌신하고 나머지를 뜻대로 쓰다보면 결국은 그 시간이 일부분의 헌신 마저 집어 삼킨 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 하신 이유는 그 분이 욕심장이라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조금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군열, 구멍에서부터 큰 댐이 무너지듯이 우리 마음은 조그마한 틈에서부터 무너진다.


[빌 1:22-24]

(빌 1: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빌 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 1: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 1: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빌 1: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 사도바울의 생사관- 진실하게 그의 삶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 천국을 본 자이기 때문. 그리스도께 받을 칭찬과 영화를 누린 자. 

  • 이 땅에서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 사망, 죽음... 천국의 소망이 없는 자. 사망을 가장 두려워한다. 맨날 죽는다 죽는다 하지만 막상 죽음이 다가오면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한다. 사탄의 다른 이름 사망권세 가진 자. 
  • 그런데 바울은 이미 그 권세에서 자유롭다.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다린다. 
  • 그런데 참 의미를 위해서, 참 열매를 위해서 사는 것이 더 좋은 지, 죽는 것이 더 유익인지 잘 모르겠다. (22절) 
  • 자신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좋다. ->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있을까? 미련 없이 천국을 향해 갈 수 있을까? 
  • 그런데 이 땅에 남는 이유? 너희를 위하여- 너희(아직 믿음 안에 온전히 서지 못한 자. 바울 같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한 자) 
  • 삶의 이유: 나의 유익이 아니라 나에게 남겨진 양 때의 유익을 위하여... 
  • 너희 유익이 무엇인가? 너희 믿음의 진보와 신앙 안에서의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이것이 성도, 믿음의 동료들에게서 보고자 하는 사도 바울의 삶의 의미. 
  • 자기에게 맡겨진 성도를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에 자신의 삶을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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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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