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2019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미가의 신앙'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07.22 사사기 17장 미가의 신앙

사사기 17장 미가의 신앙


사사기서 1장부터 16장까지는 사사들을 중심으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부패했으며, 사사들을 택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는가의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면 17장부터 끝장 까지는 사사기서의 부록과도 같은 장으로서 몇가지 에피소드를 통하여 이 시대의 신앙과 도덕이 얼마나 타락하였는가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게 이 사사기서의 에피소드들은 지금 시대에서도 여전히 살펴 볼 수 있고 우리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는 사건들입니다. 


1. 미가 집의 우상 (17 : 1~6)

미가의 뜻 : 여호와와 같은 이가 어디있느냐? 

사사기에서의 에브라임: 전쟁이 시작되면 가만히 있다가 전쟁이 끝나면 튀어나와 화를 내며 자기의 이익을 탐하는 지파로서 반복되어 소개된다. 은혜의 지파가 탐욕의 지파가 된 것이다. 


그 에브라임 지파에 미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은 천백 세겔을 잃어버렸다. 10절에 한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삼아 해마다 은 열을 주기로 약정하는 것을 보면 은 천백은 한 제사장의 110년의 연봉과도 같은 금액이다. 그 이전의 삼손의 기사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들릴라에게 삼손을 넘겨주는 대가로 약속한 금액이다. 한 민족의 운명을 두고 거래한 금액이다. 그런데 그 돈을 취하여 간 범인이 누구였는가? 바로 여인의 아들 미가였다. 

그런데 어머니 몰래 그 돈을 훔쳐간 미가가 어머니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왜? 어머니의 저주 때문이다. 우상숭배가 만연하던 때에 당시 신에게 하는 저주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는 것으로 여겼다. 어머니가 돈을 잃어버린 다음, 얼마나 괴로와 했을까? 그런데 꿈적않던 미가가 어머니의 저주을 듣고나서 그 돈을 돌려준다. 당시의 탐욕스런 세태와 동시에 미신으로 가득했던 사회적 환경을 보여준다. 


돈을 가져온 아들을 보고 여인은 그 아들의 죄를 탓하지 않고 여호와께 복을 빌었다. 그런데 이 복을 빈 행위는 말씀에 근거한 신앙이 아니었다. 당시의 모든 저주는 그에 상응하는 축복으로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도 당시의 미신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그 어미는 아들의 저주를 풀어주기 위하여 신상을 만들어 여호와께 드린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위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며 부패해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 2 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을 섬기지도 말것을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가의 어머니는 미가에게 한 저주를 풀기 위하여 축복한 후에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께 거룩히 드린다고 말한다. 말도 안되는 제사다. 죄 질 것 다 지어놓고 회개대신 헌금 얼마 내면서 축복을 비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참 회개의 예배이지 물질을 구걸하지 않는다. 


    • 에봇과 드라빔: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의복이다. 기드온은 자신이 미디안 족속에게서 탈취한 은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집안에 두었다가 그것을 음란히 섬겼다고 증거한다. 제사장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거룩하게 사용되는 성물이라 할지라도 자격이 없는 자가 마음대로 사용하면 우상이 된다. 성경책도, 십자가도, 성가대 가운도, 그것을 음란히 섬길 수 있는 것이다. 

      드라빔은 무엇인가? 라헬이 야곱과 함께 라반에게서 독립되어 나올 때에 라헬이 말 안장 가운데 숨겨나온 것이 드라빔이다. 이것은 고대에서 가정 수호신으로 섬기던 우상이다. 그리고 자기의 아들 중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운다. 


      이들이 드리는 예배를 보라. 산당에서, 에봇과 드라빔을 거룩하다고 여기면서, 자신의 아들 중 하나가 제사장 역할을 하면서도 하나님 이름을 부르면서 드리는 예배.... 


      이러한 예배를 드리는 동기와 결과가 무엇인지 성경은 증거한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창 3:22-24]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자에게 금하신 것- 생명, 영생. 왜?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하기 때문에... 

      지금도 신앙생활 하면서 자기 멋대로 하는 자에게 생명을 금하신다. 왜?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공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 실질적인 것이다. 예수의 종이 되겠다는 것이고 순종하겠다는 선언이자 계약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으면 천국 가니까 무조건 믿는다고 고백하라고 강요한다. 예수 내 구주를 마치 주문처럼 외게 만든다. 

      주님, 주님 기도하면서도 절대로 순종하지 않는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쉽게 불순종 하고 죄를 지면서 "주님, 다 아시지요?"하고 오히려 주님을 겁박한다. 합리화와 변명으로 일관한다. 


      예수님이 오셔서 선포하신 것-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선악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변하고 불완전하다. 우유부단하다. 

      주님은 막혀있던 생명의 길을 여셨다. 잃어버렸던 선과 악의 기준을 다시 세워 주셨다. 


      7-13절)  레위인 제사장 

      유다에서 살다가 거류할 곳을 찾아 에브라임까지 방황하는 제사장. 왜? 있을 곳이 없으므로...


      당시의 레위인은 여섯 개의 도피성과 40여 개의 성읍을 각 지파에서 주도록 되어 있었다(민 35:6 ; 수 21:1). 그러나 영적으로 타락했던 사사 시대에; 이러한 율법이 잘 시행되지 않아 레위인이 처소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서 생계의 방도를 찾기에만 급급했던 레위인은 베들레헴을 떠나 에브라임 산지로 여행하던 중 우연히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되었다. 


      아들을 제사장에 앉히고 꺼림직했던 미가에게 이 레위인은 좀 더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는 자로서 여겨졌을 것이다. 

      미가는 그 레위인과 계약을 한다.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누구를 위하여 : 미가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그런데 그것을 물질을 가지고 계약한다. 

      그 결과 :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됨이라. 11절 (아버지가 아닌 아들이 되고)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하나님의 제사장이 아니라 미가의 제사장,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미가의 집) 

                    

      그러면서 하는 미가의 고백: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17장 2절: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 

      13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과연 복이 왔을까?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다.

      복은 내 중심에서 떠나 하나님이 가라 하신 곳에 가는 것이 바로 그 자체가 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 자체가 복이다. 


      마음대로 우상숭배하며 거짓에 찌든 예물을 드리고 말씀과 상관없는 예배를 드리며 복받기를 원하는 신앙. 

      그것이 왕을 잃어버린, 각자가 왕이 되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던 사사기 시대의 신앙이었다. 

      지금의 신앙과 다른가? 같지 아니한가? 




      '로고스 교회  > 사사기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사기 18장 단 지파와 미가의 제사장  (0) 2017.08.05
      사사기 17장 미가의 신앙  (0) 2017.07.22
      사사기 16장 삼손  (0) 2017.07.15
      사사기 9장 (요담의 비유)  (0) 2017.07.15
      사사기 8장    (0) 2017.07.15
      사사기 7:9-18절 (기드온 2)  (0) 2017.05.13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