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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를 만나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12.19 메시야를 만나다 2 (눅 5장 1-11절)
  2. 2020.12.19 메시야를 만나다 1 (요 1:35-42)

메시야를 만나다 2 (눅 5장 1-11절) 

 

[눅 5:1-1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요한복음에서의 베드로와 예수님과의 만남 

->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해 예수를 따르고 예수와 함께 거하는 자들이 됨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의 만남 - 물고기 잡고 있는 때 다가오신 예수님 - 사람낚는 어부가 되리라. 

-> 실재 사건으로서는 마태, 마가, 누가의 증언이 더 유력함 

왜? 요한복음의 특별한 위치

마태, 마가, 누가 -> 공관복음 "같은 사건을 보고 각각의 관점으로 기록한 복음서"

요한-> 제 4 복음서: 요한복음만의 특별한 기술 

가나 혼인잔치, 니고데모와의 대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38년된 병자.... 요한만 기록한 특별한 사건들

요한의 특별한 신학적, 영적기술들... 

 

마태, 마가, 누가의 기술 중에서 가장 자세히 기록한 본문이 바로 누가복음 본문. 몇가지 살펴볼 내용들이 있다. 

 

  • 1-2절)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1. 무리가 몰려와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분명 예수가 말씀하시는데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라 표현한다. 우리가 누구에게로부터 듣던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2. 바닷가에 수많은 무리가 몰려와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또다른 자들 가운데 서 계신다. 

그곳엔 주님의 말씀을 듣는 무리가 있음과 동시에 그 자리에는 있지만 앉아있기는 한데 말씀과 상관없이 그물을 닦는 자들이 있다. 바로 어부들의 무리다. 

어부는 고기낚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직업은, 우선순위는, 관심은 오직 고기낚는 데에 있다. 

지금 예수님이 앞에 서서 말씀하시는 데도 그들은 그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오직 그들의 관심이 그물에, 고기에, 먹고 사는 일에, 오늘 잡히지 않는 고기에, 내일 걱정에 꽂혀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건 그것은 남들을 향한 말씀이지 나와는 상관이 없다. 우리들의 관심은 무엇인가? 지금 내게 말씀하시는 주님께 있는가? 아니면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다른데 있는가? 

 

  • 3절)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1. 시몬의 배에 올랐다. 

배에 올랐다는 것은 내 인생에 그가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예수가 내 인생에 들어오셨다. 내 인생에 개입하셨다. 언제나 주님이 먼저 오신다. 내가 찾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날 찾아오신다. 그 분이 내 인생에 들어오신다. 

 

2.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무리와 베드로 사이에 서 계시던 주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육지에서 멀어지셨다. 무리에서 멀어져 베드로에게 오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여전히 그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그 말씀은 여전히 무리들을 향한 말씀일 뿐이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허탕을 쳤다. 

오늘 걱정도 걱정이지만 또 내일 고기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심신이 피곤한데도 그물을 닦았다. 

허탕치고 그물을 씻는 기분이 어떨까? 좋을리 없다. 짜증은 짜증대로 깊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위해 또 그물을 씻는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무리들의 모습은 팔자좋은 사람들이나 하는 세월좋은 모습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가 내 배에 올라오신다. 

기분이 좋았을까? 아니다.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리고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라 명령하신다. 

그물 다 씻어놀고 내일 준비 다 해놓았는데, 계획도 다 세워놓고 이젠 쉴 일만 남았는데 또 배를 움직이라 하신다. 평소 베드로 성격이라면 벌컥 화를 낼 일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들릴리 없다. 주님은 날 보며 말씀하시는데 아얘 귀를 닫고 외면한다. 

그래서 주님은 더욱 베드로와 가까워 졌는데 말씀은 여전히 무리를 향한 말씀으로 표현된다. 

 

  • 4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1. 더 이상 무리를 향한 말씀은 끝이 났다. 이젠 직접적으로 말씀이 베드로를 향한다. 핑계될 구석이 없다. 마치 불순종하는 요나의 귀에 대고 하나님이 소리치는 것처럼 애써 성질 참아가며 억눌르며 피하고 있는 베드로를 향해 주님이 말씀하신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2. 이 말씀은 불순종할 만한 여러 이유들이 있다. 시간적으로 이제는 피곤해서 쉬어야 할 시간이었고, 작은 고기배로 가기엔 말두 안돼는 깊은 데로 가라 하시고, 그리고 그물도 다 씻어 정비해 놓았는데 다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신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든지 항변할 수 있었다. 순종할 이유보다 순종하지 않을 이유가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기적이 베드로의 입술에서 일어났다. 

계속적으로 말씀하시던 예수님을 애써 외면하고 그물을 낚던 그가 말두 안되는, 정말 상식밖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것도 불순종의 반응이 아닌 순종의 반응 

 

  • 5절) 선생님 (Master, 주여!)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 한 마디로 시몬의 인생은 한낱 물고기 잡는 어부에서 사람낚는 어부, 그것도 사람낚는 어부 중에서도 예수의 수제자, 반석이라 불리는 자가 된다. 

 

(마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반석 위에 지은 사람과 모래 위에 지은 사람의 공통점 - 둘 다 모두에게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딛친다. 

고난이 없다는 말이 없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온다. 반석같은 믿음이 있어도 고난이 오고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에게도 고난은 온다. 우리의 착각 - 이렇게 열심히 믿는데 왜 고난이 오나요? 

열심이 믿으면 고난 안받는다고 어디 나와 있나요? 

 

반석 위의 사람과 모래 위의 사람 - 둘 다 듣는다. 말씀을 외면하지 않는다. 

말씀을 외면하면 아얘 집이 지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말씀을 들었다고 은혜 받았다고, 깨달았다고, 반석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반석은 순종할 때 주어지는 은혜다. 아무리 화나고 불순종할 이유가 많음에도 그 분의 말에 귀기울이고 순종할 때 모래 아닌 반석의 신앙이 된다. 

 

설교 말씀 듣고 간증을 들으면 나도 믿음이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울리고 감동을 준다. 그런데 그렇게 내 감정이 움직인다고 내 믿음이 세워진 것은 결코 아니다. 말씀을 들음이 믿음의 시작이라면 그 완성은 듣고 행하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롬 10:17)

(약 1:22)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2: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에 의해서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나에게 이루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애쓰고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날 때에도 넘어짐이 없다.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없고 끝까지 자신에게서 모자란 것을 찾고 더욱 말씀을 붙잡는다. 세상의 여건과 환경이 나쁠 때 더 실력발휘를 하고 더 뜨거운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 깊은 데로 가라 

깊은 데로 가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 얕은 신앙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벗어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라는 것이다.  

신앙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인생의 얕은 물가에서 살고 있다. 깊은 곳에는 조금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왜? 얕은 물이 안전하니까.. 깊은 물의 파도를 두려워 하고 단지 쉽게 피할 수 있는 얕은 물 가에서 산다." 

   빠지지 않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고난 없기 위해, 남들처럼 살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말씀이지만 그건 내 상황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전 지금 너무 힘들다.
-> 그런 힘듦을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주님 힘들기에 날 따르라는 것이다. 

힘드니까 이젠 너 의지 하지 말고, 상황 의지하지 말고, 감정의지하지 말고, 나를 의지하라는 것이다. 너의 집을, 너의 배를, 교회의 주인을 사람아닌 주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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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를 만나다 1 (요 1:35-42) 

 

[요 1:35-42]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 스가랴 - 메시야를 기다리라는 Vision -> 성취 
  • 세례 요한 -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라, 준비하라. 길을 뚫어라. 대로를 만들라. 돌을 제거하라. 여리고를 무너뜨려라.  
    • 회개의 세례 
    • 청빈, 순결, 증언 - 돈, 섹스, 권력 
  • 오늘 말씀 - 드디어 메시야를 만난 자들, "만나다"는 것은 경험하고 깊게 사귀다.
    • 중생에서 성결로 이어지지 않으면 진정한 만남이 아니다. 자라가야 된다. 깊어져야 한다.  

 

첫 제자- 안드레와 그 동생 시몬 베드로 -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내용과 요한복음의 내용이 조금 다르다.  

  • 누구를 통하여 만나는가? 세례 요한 :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증언을 듣고 -> 증언, 증거, 선포를 듣고 그들은 준비되었다. 
    • 세례 요한의 증언 :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6절) 
    • 이는 앞서 증언한 29절의 내용을 반복한 증언이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어린양 (순결, 흠 없는)  Vs 세상 죄 (더러움, 죄로 가득찬) 

그의 성품과 그의 사역, 그의 운명을 종합한 증언이다. 그는 거룩하신 자로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제물로 바치어질 양이다. 

 

[요 1:37-39]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 그 증언을 듣고 그들은 예수를 따르고 예수가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묻는다. 
    • 왜 예수를 따르는가? 말씀을 듣고 나서이다. 어떤 이는 병을 고치기 위해, 어떤 이는 어떤 모임을 만들기 위해, 어떤 이는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런데 안드레와 시몬은 요한의 증언을 통해 예수를 따른다. 
    • 처음에 예수는 그들이 따르건 말건 그의 길을 간다. 쳐다보지 않는다. 어느 때 우리가 예수를 따라도 쳐다 보지 않으실 때가 있다. 난 내 목적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가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 기독교는 내가 다가가는 종교가 아니다. 그가 내게 다가오시는 종교이다. 이들의 만남을 다룬 다른 복음서를 읽으면 이 점이 명확해진다. 내가 다가가는 열심으로 그와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그가 나를 보셔야 한다. 
    • 돌이켜 그들에게 묻는다. 주가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물으신다. "무엇을 원하느냐?" (What do you want?) 

복음서에서, 특히 요한복음에서 주님이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끊임없이 묻는 질문이다. 무엇을 원하느냐? 날 왜 따르느냐? 왜 신앙생활 하느냐? 왜 교회 다니느냐? 

그냥 공동체가 필요한 것인가? 

따뜻한 사랑이 필요한 것인가? 

관심받고 인정받는 제자가 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주님과 함께 큰 일을 하고 싶은 것인가? 

 

눈 먼 바디메오에게, 우물 물을 뜨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한 밤 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그리고 나에게 주님은 물으신다. 

"무엇을 원하느냐?" 

우리가 예수님께, 교회에게, 혹 목사에게, 그리스도인에게, 정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친절, 사랑, 관심, 보호....

 

우리는 무엇을 구하는지 알고나 있는가? 아니면 그냥 너무나 익숙해져 버려서, 아니면 남들과 휩싸여서 그 목적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 안드레와 시몬이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 라고 대답한다. 묻는 것과 대답하는 것이 다른 것 같다. 
    • 영문으로 보면 좀 더 이해가 가까워진다. 
    • "what do you want?"  "Rabbai"..."where are you staying?" 
  • 그들은 선생을 원했다. 랍비는 학교 선생님과는 다르다. 삶의 모든 지혜와 목적과 방향을 함께 하는, 함께 동거동락하는 존재가 선생이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지도해줄 랍비를 원했다. 그리고 그가 어디에 머무는지 물었다. 왜? 
  • 와서 보라 (Come...and you will see) 

무엇을 원하느냐? 할 때 랍비요! 그런데 그 랍비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내 인생을 인도할 선생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도 간격을 두고 말씀하신다. 

"와라. 그럼 보게 될 것이다."

 

신앙은 주님이 내게 다가오시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 여정은 주님께서 머무는 곳을 향하게 된다. 

그 분의 삶의 모든 방식, 그 분의 말씀, 그 분의 행동, 그 분의 기도, 그 분의 사역을 바라보며 함께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그 분의 부르심과 나의 머뭄이 함께 할 때 비로서 주님과의 진정한 교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요 1:41-42]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주님의 오라는 명령에 순종해서 다가가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름이 바뀐다. 삶이 바뀐다. 아브람이 아브라함되고 야곱이 이스라엘 되듯 시몬이 게바가 된다. 

성질대로 살던 그가 요동치 않는 반석이 된다. 

 

신앙은 주님이 계신 곳에 다가가 내 이름을, 내 본질을,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메시야를 기다리는가? 

그와의 만남을 위해 준비하고 예비하고 있는가? 

그와 함께 자신이 바뀔 준비가 되었는가? 

당신이 주님을 통해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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