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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6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0.06.06 마태복음 5장 6절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태복음 5장 6절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1. 출애굽 백성들에게 임한 목마름과 은혜

출애굽기 15장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모세가 찬양하고 이어 미리암이 하나님의 권능과 구원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대략 이백만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소망과 희망은 홍해를 건넌지 3일만에 무너져 내립니다.

뜨거운 광야에서 짤리 갈 수도, 그렇다고 홀로 뒤쳐질 수도 없는 상태에서 고된 길을 걸어가는데 3일을 걸어도 도대체 마실 물을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애굽에서부터의 삶을 생각하며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고된 길을 계속 갔습니다.

다들 건들면 터질 상태였지만 그래도 꾹꾹 참고 길을 가고 있는데 한 사람이 소리칩니다.

"물이다"

사람들은 모두 참은 보람이 있다며 기뻐하며 물가로 달려갑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연약한 자들을 앞세워 물가로 가는데 처음 물을 먹은 사람이 이내 물을 토해냅니다.

 

그 물은 이미 마실 수가 없는 썪은 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상태가 어땠을까?

목마름이란 이런 것입니다. 배고픔보다 더 큰 고통이 목마름의 고통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출 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한 나무를 가리키고 그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이제 그 물이 달게 변합니다. 마실 물이 됩니다.

그 나무는 곧 무엇입니까? 바로 나무에 달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사마리아 여인에게 임한 목마름과 그 은혜

신약에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와의 만남입니다.

고된 인생 속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며 아무도 오지 않는 뙤억볕 내리쬐는 정오에 오직 살기 위한 갈급함을 해결하기 위해 우물가에 나온 여인에게 주님은

 

[요 4:1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명절 끝날 곧 초막절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몰려드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7:37-38]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 주림과 은헤

출애굽기 15장이 목마름에 대한 이야기라면 16장에는 떡에 대한 불평이 나옵니다.

[출 16: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그들의 이 부르짖음에 내리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만나입니다. 만나는 곧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 자신입니다.

 

출애굽기 16장의 배고픔의 이야기는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든 무리들의 배고픔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기적.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를 축사하사 떡을 떼어 모인 무리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시고 오히려 그 남은 것을 열 두 광주리에 담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

 

4. 온유함과 목마름의 관계

지난주 우리는 온유함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온유함은 성격이 유순한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길들여진 성품입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길들여지자 않으면 야생마와 같습니다.

우리의 기질대로, 성질나는대로,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행합니다.

주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시지만, 또한 우리를 만지사, 변화시켜 주십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길들인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엇을 닮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가지신 겸손과 온유를 닮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는 우리가 예수님께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두 축입니다.

 

겸손은 즉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알고 낮추는 것

높은 자가 억지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지신의 본질을 알기에 자신의 위치를 알기에 자신의 위치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근본 본체이셨지만 아들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고 순종하셨습니다.

 

온유는 우리가 나눈대로 내 모습을 알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길들여질 수 있도록 주신 것이 율법이고 계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야생말과도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말씀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자가 축복을 받으면 그 축복은 남을 죽이고 자신을 죽이는 멸망의 길이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차차 익숙해지며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기 시작합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겸손과 온유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교만해져서 남들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남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합니다.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높아지는 것, 자신아 남들과 구별되는 것

이것이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의입니다.

 

5.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그럼 우리가 읽은 팔복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의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구해야 할 의를 분명히 말씀해주십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먼저 (시간상의 시제가 아니라 최고의 가치를 말함) : 최우선. 첫째 것, 장자. : 대표하고 대신하는 것
  • 더하시리라: 배부름을 얻을 것이다. Add가 아니라 Complete (완성할 것이다. 온전케 할 것이다) 의 의미이다.

 

팔복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깊은 복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삶 중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동행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주인된 나라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구해야 할 것은 내가 인정받고 내가 높아지는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롬 3:20-23]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 내 연약함, 내 죄, 내 어리석음

-> 그 깨달은 자의 마음-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을 깨닫고 주님의 필요하심을 통렬히 깨달은 상태

 

하나님의 의 - 우리의 연약함을 채우실 한 중보자. 그리스도, 메시야

 

우리가 구해야 할 의는 바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채우실 예수 그리스도

 

그 의로 충만할 적에만 우리는 겸손과 온유함을 간직한 의로움, 바로 예수의 의로움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에 굶주린 사람들, 그들이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열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유명한 로마서 1:17에서 이같이 외쳤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고 하는 것은 복음을 믿고, 복음의 은혜에 감사하고 복음에 담긴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하심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 앞에 내가 내세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하심을 구할 뿐입니다.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던 사울이, 자기 의를 멈추고, 자기 자랑을 멈추고 자기 교만을 멈추는 바울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바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사울은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랑과 자기 의로는 털끝 만큼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기에, 자기 의를 멈춘 사람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대신 평생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리고 목말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복음이 있고 그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의는 먼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바로 세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의 허물이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이웃과 세상과도 바른 관계를 맺도록 요청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신앙을 바로 세우고, 동시에 이 땅에 도덕과 윤리를 바로 세우면서,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을 때 이웃도 세상도 바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인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목사건 성도님들이건 처음엔 하나님의 역사를 자랑하다가 결국은 자기 자랑, 자기 의를 나타내는 것으로 끝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 주셔서 내가 얼마나 많이 바쳤는데요, 내가 얼마나 헌금을 많이 했는데요, 내가 얼마나 충성했는데요…. 결국은 내가 무엇했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의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만 나타낼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것입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설교중 한 장로님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주신 약속 - 배부를 것이다.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다.

완성시킬 것이다. 그가 만들어줄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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