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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이땅에 임한 천국 (마 5:1-10절)     


신명기 28장 1-14절 - 구약에서 제시한 대표적인 하나님의 복에 대한 약속 

  • 요약하면: 땅의 복, 자녀의 복, 물질의 복, 번영의 복
  • 그 복의 시작은 아브라함을 부름에서 시작/ 아브라함: 우상을 섬기던 자, 하나님을 모르던 자.

   -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리라. 복이 되게 하리라.  

   -  떠나서, 나의 땅으로 가라. 너를 하나님이 예비한 새로운 땅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을 얻게 하고 그 복의 기원으로 삼겠다. 

  • 구약의 역사: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의 우상에서부터 떠나서 모든 복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알게 하는 것. 우상을 왜 믿느냐? 땅의 복을 달라고… 그런데 그 땅의 복도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알게 하는 것.  그래서 끊임없이 복의 근원, 복의 통로가 누구냐? 애굽이냐, 가나안이냐? 바알이냐 하나님이냐의 싸움. 


문제제기) 그런데 이러한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 신약의 시대, 신약 성경에서 복받은 인물은 누구인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에는 구약에서 명시한 복이 하나도 나와있지 않다. 이 곳 말씀에서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어느 인물도 그러한 복, 땅을 얻고, 자식을 많이 낳고, 물질 축복을 많이 받았다는 사람을 잘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예수님도, 제자들도, 바울도, 디모데도 이런 구약의 복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불행하게 산 사람들이고, 복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제시한 이른바 팔복, 여덟가지의 가장 최고의 복에 대한 기사이다. 

부자 되려고 하지 말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천국은 가난한 자의 것이라서, 가난한 자가 복되다고 하신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 오래 살 생각 말고, 주를 위해 언제든지 생명 바칠 각오 하라! 왜 그럴까?

세상에서 환난, 핍박당해도 그것이 복이니까 기뻐하라.... 어떻게 된 영문인지, 구약의 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다를까? 

구약과 신약이 제시하는 복이 왜 이렇게 달라졌는가? 그 기준, 근거가 무엇인가? 


복을 보는 기준이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한 마디로 답하면 → 하나님의 나라 때문이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팔레스틴에 지상천국을 이루고 온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세상적 왕국은 꿈꾸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개념이 없었다.

다시 말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었다. 그런데 에녹의 기사라든가 엘리야의 기사를 보면 분명 "하늘나라"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나라를 자기들과 연관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가르치신 것은 회개하라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가까이 왔느니라! 였다. 그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복음서에 ‘하나님의 나라’가 110회 이상 반복되어 나온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가 얻은 것 - 영생, 천국

'영원'이라는 시간을 누릴 천국이 주어진 우리에게 이땅에서 잠시 장수하고, 배부르게 살고, 땅의 소산이 많고, 그러한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마태복음 5-7장의 산상 수훈은 무엇인가? 천국의 복음.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예수의 가르침.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씀인 팔복-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8가지 통로, 복. 하늘 나라의 통로


우리가 하나님 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있을 때에 얻는 복: 땅의 복과 하늘의 복

  • 여호수아, 갈렙의 딸 악사가 웃니엘과 혼인하며 윗샘과 아랫샘을 얻은 것의 의미
  • 에덴 동산: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생육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 땅의 주인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그런데 그 권능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복. 

그런데 사탄의 꾀임에 너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벗어나면,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떠나가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 그 결과 땅의 모든 복을 잃어버리고 땅도 저주를 받고 엉겅퀴와 가시나무를 내고 힘껏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게 되었다. 만물을 다스리는 정복자에서 만물의 지배를 받고 만물의 도움을 받아야 만 사는 자로 전락해 버림. 그 다음부터 우리의 관심사는 오직 땅의 복. 그런데 하나님께서 회복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

신명기 28장의 말씀-> 네가 내 말을 잘 지켜 행하면-> 다시 선악과 안의 관계 안으로 들어오면….주시는 축복. 다시 회복시키리라. 1-14절이 축복의 말씀이면 20-68절까지는 지키지 않았을 때에 나타나는 저주의 말씀. 

그런데 사람들은 14절까지의 말씀은 잘 기억하여 기도하지만 그 뒤의 말씀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읽는 것 조차 싫어한다.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 있는 자라면 오히려 그 분이 무엇을 싫어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 뒤에 말씀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교회가 그렇게 해 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관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땅의 복이 팽팽히….

탕자의 비유: 아버지 나에게 유산 주세요. 내가 나가서 살래요. 난 아버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재산이 필요해요. ->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가 "자기 몫"이라고 말한 모든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의 품을 떠나자마자 생겨난 결과- 허랑방탕, 곧 가난, 궁핍, 비굴, 초라....

"아버지의 것"을 다 잃고 갈데도 없고 먹을 데도 없어서 그냥 종살이라도 하려고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어떤가? 맨발로 달려나와서 아들을 반기고 잔치를 배품-> 다 잃어도 관계가 회복되어서 좋은 거다. 


그러면 구약에는 하늘의 복에 대한 개념이 없는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

모세의 청원기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가나안 땅도 필요없다. 

구약의 구원의 한 사이클..

출애굽- 광야- 가나안... 

그러면 가나안에 들어가면 적어도 "행복"이라는 것을 맛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 곳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잃어벌였을 때에 일어나는 비극의 내용이 바로 사사기서이다. 

사사기: 땅의 복을 가졌어도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때에 나타난 결과 


신명기 28장: 네가 지키면, 지키지 않으면~  그 조건이 "내"가 지키면과 지키지 않으면이다. "내"가 기준이다.

하나님의 의도" 내 관계 안으로 들어와라" 

사람의 생각: 내가 지키면 복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지키는 자가 역설적으로 얻게 되는 죄- 교만, 탐심, 판단, 정죄, 비교...

지키면 지킬 수록 하나님의 정말 싫어하시는 죄들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이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겪게 되는 경험- 그 분이 날 살리시기 위해 죽으셨다. 그리고 내가 달려야 할 십자가에 그 분이 달리셨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깨달음은 내가 그 분을 찔렀다. 

그가 찔림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십자가 앞에 나오면 나올수록 교만한 근거를 잃어버렸다.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 분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할 존재가 된다. 

그것이 팔복이다. 


어떤 자에게 주시는 말씀인가? 

  • 산으로 나아온 자: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세상의 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나와 단 둘이 교제하도록 나를 비우는 것이다. 

세상의 것을 잔뜩 가지고서는 산으로 올라갈 수 없다. 빈 손, 빈 마음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임재와 대면하는 것이다. 

은혜를 위해서 세상의 일을 잠시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은혜 받는다. 

세상 것 다 하고, 세상것을 위해서 신앙 생활 하는 사람들은 세상 것으로 인해 반드시 넘어진다. 그러나 은혜 받기 위해 세상 것 잠시 내려 놓는 사람은 은혜도 받고 세상도 얻는다. 

성경은 5장 1절에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라고 증거하고 있다. 

  • 산으로 올라온 자들을 가리켜 예수님이 제자라고 불러 주신 것이다. 산으로 올라온 자들은 그 자체가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세상의 만사를 제쳐두고 지금 예수님께로 올라온 자이다.
  • 예수님께 간절히 나온 자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압니다. 자신의 죄인됨과 연약함과, 내 힘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내 안의 사악한 죄성,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내 악한 감정, 내 행동, 내 생각, 말들… 그것이 주님과의 관계에 담을 쌓는다는 것을 알고, 그것 때문에 내가 말씀을 듣지 못함을 알고, 그것 때문에 내가 은혜 받지 못함을 압니다. 어떤 경우라도 내가 은혜 받지 못하고,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만물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한 것은 나의 죄, 나의 연약함, 나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께 나온 자들은 자신의 죄성,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애통하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남의 아픔이나 상처 때문에 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고 우는 사람입니다. 나의 허물과 욕망, 나의 더러움과 추함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애통하는자 입니다. 그래서 이 애통은 회개의 애통이고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위로를 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애통함으로 자신을 비운 자들은 말씀으로 자신을 채워야 합니다. 온유는 말씀으로 자신을 길들이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기 욕망, 자기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신앙인으로서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 말씀으로 길들여진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곧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의 약속이 말씀으로 길들여지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 말씀으로 훈련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자기 의를 나타내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남들보다 말씀을 더 많이 알고, 남들보다 특출나게 신앙생활 했고, 남들보다 더 말씀을 지켰다고 말씀의 순종을 자꾸만 남과 비교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의만 드러내다가 하나님께 내침을 당합니다. 신앙생활은 남과 비교하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로 보고 말씀을 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정의가 자신의 삶에 드러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 안에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이 자신의 육신을 통해서 나오기를 갈망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의를 갈망한 자는 배부를 것이라 말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말씀으로 채우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이 충만케 하겠다는 것입니다. 말씀 충만은 곧 성령 충만입니다. 
  • 성령 충만한 사람은 결코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죄인의 상태에서, 부족함에서, 연약함에서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왔는지 알기에 올바로 서지 못한 자들을 긍휼히 여깁니다. 긍휼은 받은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오히려 따스한 손을 내미는 것이 긍휼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베푸는 것이 긍휼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시고... 긍휼은 용서가 넘치는 사회를 만듭니다. 
  •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은 팔복 중 일곱 번째의 복, 그리스도인의 온전함을 담고 있는 복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이루고 얻을 수 있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는 일은 평화를 만드는 자, 평화의 사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온전한 자녀, 온전한 천국의 왕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화평케 하는 것은 나 자신을 희생함으로, 포기함으로, 오직 순교의 정신으로 살아갈 때에 이룰 수가 있습니다. 분열은 왜 생기는가? 다툼이 왜 일어나는가? 내가 온전히 죽지 못해서 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결코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가정의 평화, 교회의 평화는 나를 희생함으로 얻는 유익이고 복입니다. 
  • 결국 결론으로 마지막 복으로 주신 말씀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하나님 뜻대로 사는데 왜 박해를 받나요? 하나님 뜻대로 살다가 박해를 받는데 그게 왜 복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본문에서도 신약 성경 곳곳에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면 너희들이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왜 박해를 받습니까? 1)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입니다. 뒤의 것을 돌아보지 않고 앞의 것을 사모하기 위해서입니다. (롯의 아내) 

어제 본 제자 옥한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난 너무 세상에서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서기 부끄럽다. 그 젊고 어렵게 목회하는 목사에게 진심으로 "네가 부럽다..." 

천국에서 높은 자가 되려느냐? 그러면 이 땅에서 더욱 낮아져라. 섬김을 받고 싶으냐? 그러면 이 땅에서 더욱 섬겨라.... (천국의 역설적인 표현) 

2)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나누어 주기 위해서 받는 고난입니다. (노아)

믿음을 위해 박해 받는 자가 얻는 소망 - 바로 부활의 소망... 


제자들이 순교할 수 있었던 이유... 박해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 

부활의 소망. 

예수의 부활- 천국이 이땅을 이겼다. 이 땅에 천국의 자리가 열렸다. 

죽은 자가 가는 곳- 하늘나라, 그런데 그 하늘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이 부활이고 우리 성도에게 약속으로 주신 것이 부활이다.



그리스도인들이나 아닌 분들도 죽은 자들과 만날 “꿈”들을 꾼다. 죽을 때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더 건강해지고, 더 젊어진 모습으로, 알지못할 공간에서 재회를 꿈꾸는 것은 죽음을 기억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갖는 소망일 것이다. 

부활”은 그 꿈이 현실을 정복했음을 알리는 시발점이다. 우리가 꿈꾸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이미 이 땅에 임했음을, 그 때에는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세계가 꿈같은 세계가 되고, 부활의 세계가 현실이 되는 그것이 부활의 소망이다. 

그 때가 오면 우리가 살던 지금의 삶을 꿈처럼 여길 때가 있을 것이다. 

다 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거짓과 죄가 없고, 슬픔이 없고, 어둠이 없는 세상에서 잠시 잠깐 살았던 불확실하고 혼탁한 세계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살았던 지금을 잘 이겼다고, 잘 살았다고, 결국 믿음이 이겼다고 추억하는 그 때

부활은 꿈 같은 하늘나라가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정복하고 꿈의 세계가 현실로, 현실의 세계를 꿈같은 세계로 전복시키는

천국이 이 땅을 정복한, 그런 믿음의 세계의 시작이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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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인의 복

본문: 마태복음 5 1-10

 

한 주 뒤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 그 분의 오신 의미를 되새기는 날. 사실 그 분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고 성경이나 어느 역사책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313년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정해진 이후 그들의 가장 큰 축제날인 12 25일날을 예수님의 생일로 바꾸어 지키기 시작한 것이 크리스마스의 유래이다. 그래서 엄격한 보수주의자들은 성탄절을 지키는 것을 꺼리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분의 나심을 통해 그리스도의 나심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심은 세계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역사라는 말이 다름 아닌 예수의 이야기 his story를 기반으로 펼쳐지게 되었고 예수를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모두 똑같이 예수의 나심을 기준으로 달력을 만들고 날짜를 계산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만 여겨졌던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를 통해서 온 인류를 하나님으로 믿어지게 되었고 징벌의 하나님, 무서운 하나님이라고만 여겨지던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성품을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의 하나님임을 명확히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또 하나 주어진 가장 탁월하고 특별한 차이는 오늘 우리가 나누게 될 이 무엇인가?에 대한 예수님의 정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복

[ 28:1-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è  땅의 복, 자녀의 복, 물질의 복, 번영의 복

그 복의 시작은 아브라함을 부름에서 시작/ 아브라함: 우상을 섬기던 자, 하나님을 모르던 자.

è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리라.

è  떠나서, 나의 땅으로 가라. 너를 하나님이 예비한 새로운 땅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을 얻게 하고 그 복의 기원으로 삼겠다.

l  구약의 역사: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의 우상에서부터 떠나서 모든 복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알게 하는 것. 우상을 왜 믿느냐? 땅의 복을 달라고그런데 그 땅의 복도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알게 하는 것.  그래서 끊임없이 복의 근원, 복의 통로가 누구냐? 애굽이냐, 가나안이냐? 바알이냐 하나님이냐의 싸움.

l  구약의 복은 하나님 나라의 모형- 땅의 것은 하늘의 모형.

그런데 우리가 읽은 신약의 복,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에는 구약에서 명시한 복이 하나도 나와있지 않다. 이 곳 말씀에서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어느 인물도 그러한 복, 땅을 얻고, 자식을 많이 낳고, 물질 축복을 많이 받았다는 사람을 잘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예수님도, 제자들도, 바울도, 디모데도 이런 구약의 복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불행하게 산 사람들이고, 복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대신에, 부자 되려고 하지 말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천국은 가난한 자의 것이라서, 가난한 자가 복되다고 하신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 오래 살 생각 말고, 주를 위해 언제든지 생명 바칠 각오 하라! 왜 그럴까?

세상에서 환난, 핍박당해도 그것이 복이니까 기뻐하라.... 어떻게 된 영문인지, 구약의 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다를까?

 

개신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위대한 신학자 칼빈. 칼빈은 세계를 바꾼 십대 인물에 속할 정도로 탁월한 인물이었다.

더욱이 가톨릭의 탄압에 목숨을 걸고 헌신했던 인물이라면 하나님의 입장이라면 복을 듬뿍 부어주셔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의 전기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31세에 결혼했는데, 조건으로 오직믿음 좋은 여자만 찾다보니 자식을 7명이나 둔 과부와 결혼했다. (결혼 복도 없었다)

그녀와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몇 년 못 살고 죽었다.(자식 복도) 부인도 결혼 후 9년 만에 자식 7을 남긴 채, 먼저 소천했다. 그 후 그는 15년 동안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두통, 천식, 소화불량, 열병, 담석증 등 여러 질병에 시달렸다. 약 십 년 동안 그는 위가 안 좋아서 하루 한 끼만 먹고 살았다. (건강 복도 못 받았다)

그러다가 54세로 소천했는데, 생전에 그는 온 전력을 다하여 수 백 명 사람들이 수 백 년 동안 못 했던 일을 혼자서 해냈다. 수백권의 저서, 기독교 강요는 성경의 백과사전.

죽는 순간까지 그는 참 신앙인의 유언을 남겼다. “내 무덤에는 묘비를 세우지 말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으니까!”

è  그가 복이 없는 사람인가?

복을 보는 기준이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한 마디로 답하면하나님의 나라 때문이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팔레스틴에 지상천국을 이루고 온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세상적 왕국은 꿈꾸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개념이 없었다. 다시 말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가르치신 것은 회개하라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가까이 왔느니라! 였다. 그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복음서에하나님의 나라 110회 이상 반복되어 나온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가 얻은 것 - 영생, 천국

천국이 주어진 우리에게 장수하고, 배부르게 살고, 땅의 소산이 많고, 그러한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마태복음 5-7장의 산상 수훈은 무엇인가? 천국의 복음.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예수의 가르침.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씀인 팔복-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8가지 통로, . 하늘 나라의 통로

 

5병이어의 기적: 배고픈 자들을 먹이심- 똑같이 땅의 복을 내려주심, 병든 자, 약한 자, 부정한 자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치료하심- 그 결과:

6:14)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구약의 하나님의 복을 가져다 주는 자 

è  예수님의 반응: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è  6:26-2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우리가 하나님 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있을 때에 얻는 복: 땅의 복과 하늘의 복

에덴 동산: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생육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 땅의 주인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그런데 그 권능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복.

그런데 사탄의 꾀임에 너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벗어나면,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떠나가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 그 결과 땅의 모든 복을 잃어버리고 땅도 저주를 받고 엉겅퀴와 가시나무를 내고 힘껏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게 되었다. 만물을 다스리는 정복자에서 만물의 지배를 받고 만물의 도움을 받아야 만 사는 자로 전락해 버림. 그 다음부터 우리의 관심사는 오직 땅의 복. 그런데 하님께서 회복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

신명기 28장의 말씀-> 네가 내 말을 잘 지켜 행하면-> 다시 선악과 안의 관계 안으로 들어오면….주시는 축복. 다시 회복시키리라. 1-14절이 축복의 말씀이면 20-68절까지는 지키지 않았을 때에 나타나는 저주의 말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관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땅의 복이 팽팽히….

탕자의 비유: 아버지 나에게 유산 주세요. 내가 나가서 살래요. 난 아버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재산이 필요해요. ->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가 모든 재산을 다 잃고 갈데도 없고 먹을 데도 없어서 그냥 종살이라도 하려고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어떤가? 맨발로 달려나와서 아들을 반기고 잔치를 배품-> 다 잃어도 관계가 회복되어서 좋은 거다.

( 4: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갈리리: 가나안 북단입니다. 데가볼리: 요단강 동편에 있는 헬라의 도시 (거라사, 힙포, 가다라, 빌라델비아, 다메섹…)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중심 중에 중심 유대: 가나안 남단에 있습니다. 요단 강 건너편은 가나안을 넘어오기 전 이방 지역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사방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들 중에 예수님을 순순하게 믿고 따르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저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보러 온 사람들도 있었고, 자기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었고, 예수님을 해꼬지 하고 예수님께 흠집을 내기 위해 기회를 엿본 사람들도 상당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리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5 1절 그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5:1)

 아까 오병이어의 사건에서도 백성들이 예수님이 떡을 주니까 왕으로 삼으려 하자 올라갔던 곳. .

: 노아가 사람들의 온갖 조롱을 받으며 온 평생 힘을 모아 방주를 만든 곳. 모세가 자기 자신이 완전히 낮아져서 자신의 모든 욕심, ,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교제 했던 호렙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시내산.

그곳으로 무리들을 이끌고 가신다. 그 곳은 어떤 곳? 땅의 복이 없고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만 있는 곳.

내가 가벼워야만 올라갈 수 있는 곳. 짐을 가지고선 올라갈 수 없는 곳. 그리고 고된 훈련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곳. 그곳에 올라온 사람을 그래서 무엇이라 부르는가? -> 제자. 그곳에서 하신 말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여덟 가지 통로. 팔복의 말씀.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 그렇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팔복의 말씀.

 

우리의 삶: 여전히 땅의 복만을 바라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망하는 내가 팽팽히 부딪치는 곳.

거기에 주시는 첫 번째 말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마음이 비워진 자 < - > 마음이 가득 찬 자

마음이 가득 찬 자: 우리 자신의 모습. 따지고 보면 우리 사이에 많은 다툼과 시기와 질투는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일어나는 것들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사랑해서 결혼을 했으면서도 부부싸움을 하는 까닭도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상대방을 이해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신앙 생활,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은혜가 안되고 변화가 없는 것. 내 마음이 너무 가득차서…. 내가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내가 아는 것, 내가 가진 것이 은혜를 가로막고 있는 것.

 

성도들에게 많이 듣는 소리: 내가 은혜 받았을 때처럼 해 주세요. 그 때 불렀던 찬양 해 주고, 그 때 했던 기도대로 해주고그 때 갔던 기도원처럼 해주고그런데 그 때 부흥했던 교회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멈춰 버리고, 욕먹고, 비난받는 교회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물론 과거의 교회를 다 부정해서도 안되고 우리의 좋은 전통, 기도의 전통, 말씀의 전통, 우리 나라 만의 새벽기도, 술 담배 안 하는 전통, 좋은 전통으로 지키고 계승해야 하지만 2012년도, 13년도에 그 교회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 교회들을 뛰어 넘는 신앙관, 믿음과, 성경관이 있어야 한다. 부르짖었더니 축복하셨더라에서 넘어가서 내가 얼마나 제자가 되었는가? 내 인격과 삶과 말과 행동이 얼마나 예수님을 닮고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아가는지 삶의 신앙, 영적인 신앙으로 올라가야 한다. 땅의 신앙에서 영의 신앙으로 옮겨가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의 신앙.

 

그렇다면 대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누구인가? 내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여기는 사람.

è  예수 만난 이후에 자기의 이전 자랑: 가문, 시민권, 교육-> 다 배설물로 여긴다.

 

왜 그렇겠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들만이, 주님을 따라 산으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텅 비어버린 심령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이, 생기가 사라져 버린 심령에 성령의 새 바람을 불어넣으시는 분이 오직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은혜는 항상 나를 비우고 새 은혜를 갈망할 때에 찾아오는 것이다.  

누가 복음 18장에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바리새인이 기도를 했습니다. 누가복음 18:11-12의 기록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기도만 놓고 본다면, 바리새인은 남의 것을 빼앗는 토색도 하지 않고, 불의와 간음도 행하지 않고, 일주일에 이틀이나 온전히 금식을 하고 소득의 십일조도 헌금으로 드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신앙과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내 세울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바리새인은 심령이 가난하지가 못했습니다.

한편 세리는 이렇게 기도했다.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는 하나님 앞에 내 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눈을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가슴만 치면서, 하나님,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의 그의 기도의 전부였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세리는 정말 심령이 가난한 자였던 것입니다.

이같은 두 사람의 기도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토색도 하지 않고 불의도 행치 않고 금식하고 십일조 하는 바리새인이 의로운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세리가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리가 심령이 가난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기에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 하나님의 자비만을 의지하는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어서, 하나님의 자비만을 의지하는 자, 그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너무도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서 눈을 들지도 못하고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자, 그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험한 이 세상에서 피할 곳이 하나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어서 그저 가슴만 치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의지하고 싶어도 의지할 데라고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 그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초대 교회는 심령이 부자였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가난하고 무식했던 갈릴리의 어부들, 인간 사회에서 거절 당하던 세리와 창기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던 제자들을 통해, 초대 교회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주님의 교회가 그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복이 있는 사람들이었겠습니까? 심령은 비록 가난했지만, 그들은 천국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땅의 복만을 바라보면서 쫓는 탕자같은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영의 복, 생명의 복,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아들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구약의 복을 넘어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자녀의 삶으로 인도하는 팔복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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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oonflowe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12.24 04:24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날.....전 오늘 교회에서 즐겁고 행복한 성탄축하 예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가슴 한켠이 무거웠던건...오늘 나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많은 선물로 그야말로 복을 받은 행복한 날이었는데.....이번 크리스마스가 말할수 없이 슬플 코네티컷 20명의 아이들 가족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그들을 위해 이제 그만 슬퍼하고 , 그만 안타까워하고....기도 해야겠습니다.
    잠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내가 해야할일은 원망도,미움도 아닌.....그들을 위한 기도라는걸.........어리석게도 이제야 깨닫습니다.

  2. ghd plancha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04.07 03:18

    사람들은 죽을걸 알면서도 살잖아 .사랑은 원래 유치한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