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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03 마음지키기 (빌립보서 4:6-8절)

 

마음지키기 


[빌 4:6-8]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기원전 12세기경 중국에서는 변방에서 성장한 주(周)나라가 은(殷)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웁니다. 새 왕조의 창립자인 무왕(武王)과 그 아들 성왕(成王)은 그 거대한 땅덩어리를 직접 통치하기 힘드니까 친족과 공신들에게 하나씩 떼어 나눠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기(杞)라는 나라는 현재 황하 중부 유역 하남성에 속한 아주 작은나라입니다. 더구나 이 나라는 주(周)왕조의 인척이나 건국공신이 세운 나라가 아니라, 까마득한 시절에 정복된 망국의 유민들이 모여 살던 나라였기 때문에 설움과 천대가 이만 저만 아니었습니다. 항상 주나라 임금이 자기들을 어떻게 할까봐 사람들은 불안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 중에도 좀 유난히 걱정이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걱정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버리면 몸을 의지할 데가 없어질텐데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걱정에 밥도 못 넘기고 잠도 못 잤습니다. 그걸 또 안타까이 여긴 사람이 있어 (그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겠노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에 싸인 사람이 말했습니다. 

“올려다 보면 장엄하게 돌고 있는 저 하늘, 그리고 우리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이 땅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꺼져버릴지도 모른다.” 이것이 기(杞)나라 사람의 걱정이었습니다. 기우(杞憂)는 그리하여 <쓸데없는 근심>, <괜한 걱정>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격언 으로는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까지 싸짊어지 듯하는 것을 주변에서 안쓰럽게 생각할 때 이르는 말입니다. 

고3 때 도서관에서 아이들끼리 모여 있으면서 했던 말들...

내가 대학 갈 수 있을까? 대학 가면 부모님이 학비는 내 주실 수 있을까? 

개척하신 교회는 잘 될까? 나라는 왜 이리 혼란 스러울까? 전쟁이 나진 않을까? 

공부할 때는 그렇게 가지 않던 시간이 아이들끼리 모여 이런 저런 걱정을 이야기 하다보면 두 세시시간씩 훌쩍 지나감. 

그렇게 이야기하다 헤어지면 걱정속에 휩싸여 또 공부가 되지 않아 혼자 또 끙끙 앓다 잠도 잘 오지 않음.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고 3 병"이라는 말이 공식적인 병의 질환으로 생겨났습니다. 대학을 가야 한다는 부담감, 비싼 등록금과 경제 불황으로 대학을 못 가면 사회에서 낙오된다는 불안감, 부모와 자기 자신의 기대에 대한 과중한 책임감...그런 것들이 어찌보면 아이들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부닺치게 되는 스트레스인데 이것이 몸과 마음의 질환으로 고정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나라-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 그 중에 가장 높은 자살률,,,, 10대... 40대의 자살률을 넘겨 버렸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마라"의 염려는 영어로는 "anxiety"로 번역했습니다.  "anxiety"의 뜻 중에는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을 염려하는 것', '미래의 짐을 대신 지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 빌립보 교인들의 상황은 염려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교회 외부적으로는 이제 로마로부터의 핍박이 거세지기 시작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복음을 증거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빌립보 교회의 영적인 리더인 바울도 지금 감옥 속에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내적으로는 교회가 분열되어 어지럽게 만듭니다. 

도대체 편할 날이 없는 때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 있는 울로 부터 편지가 날라왔는데 그 편지 속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낙천적이라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인가? 상황을 무시하라는 것인가? 어떻게 염려하지 말고 살라는 것일까요? 

어떻게 염려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까? 


이 구절은 유명한 구절입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이 구절을 알고 있고 또한 암송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염려로부터 자유하십니까? 


사도 바울이 자기가 보내는 편지마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어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 안에서, In Chrust, 라는 말입니다. 

"주 안에" 이것이 바울의 능력이었고, 확신이었고, 그리고 체험이었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라는 찬송가(370장) 가사처럼, 주 안에 있으면 근심이 없습니다. 문제가 없어서 근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 있기 때문에 딴 근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뒤집어도 진실입니다. 주 안에 있지 않으면 없으면, 즉 주 밖에 있으면 그때부터 나에게 딴 근심이 생겨납니다.

‘염려’는 우리가 주 안에 있지 않을 때에 생겨나는 증세입니다. 마치 감기에 걸리면 기침과 콧물이 나오듯이, 우리가 주 안에 온전히 있지 않을 때에 반드시 나타나는 증세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염려’와 ‘기쁨’은 ‘어둠’과 ‘빛’같아서, 한 공간에 같이 머물 수 없습니다. 염려가 들어오면 기쁨은 사라지고, 기쁨이 들어오면 염려가 사라집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염려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기쁨을 가지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염려를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언제나 염려하면서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염려를 기쁨으로 바꾸는 비결을 알고 계십니까? 바울은 그 비결을 단순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1.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라. 주 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빌4:6a) 

염려를 중단하라는 명령입니다. ‘염려하며 사는 것이 싫으냐? 그렇다면 염려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문제에 사로잡혀 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거나 초조해합니다. 조그마한 문제도 자꾸 묵상하고 생각하고 확대해석하면 어느새 문제가 눈덩이같이 커져서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니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십시오. 염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킵니다.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십시오. 그것이 염려를 기쁨으로 만드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2. 염려대신 기도하라. 

…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b)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문제와 염려의 자료를 기도제목으로 바꾸어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정말 ‘문제화’시키지 말고, 오히려 ‘기도 제목화’시켜서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고하라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놓고도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염려하거나’, 아니면 ‘기도하거나’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기도 대신 염려합니다. 문제를 염려로 바꿉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염려 대신 기도합니다. 염려를 기도 제목으로 바꿉니다. 내가 염려하는지, 아니면 기도하는지를 보면 내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물론 우리의 인생길에 염려해야 할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주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반드시 염려해야 할 상황이지만, 그 때에 기도함으로 믿음을 보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기도를 하더라도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즉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기도제목으로 만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큰 문제만 가지고 나오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일들도 주님께 가지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다만’이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다만’은 ‘오직’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염려를 기쁨으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입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염려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3.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보십시오. 바울은 기도하고 나면 문제가 즉시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장에 병이 고쳐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제야 행복과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행복과 기쁨을 보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문제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평강을 먼저 맛보게 하십니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정한 섭리에 따라서 언젠가 틀림없이 해결될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허락해 주실 겁니다. 그때가 언제가 되든지,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평강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더 이상 염려와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일부터 시작하십니다. 


‘지킨다’는 말은 본래 군대용어입니다. 마치 로마의 군대의 수비대가 성을 빽빽이 싸고 보초를 서며 지키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평강이 위로부터 내려와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싸며 확실하게 지켜주신다는 겁니다. 더 이상 염려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더 이상 불안과 두려움이 틈타지 못하도록, 그렇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평강은‘모든 지각에 뛰어난 것’이라고 바울은 표현합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거나 고안해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헤아림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이고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평강은 영원하며 본질적이요 완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염려가 생긴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내 마음에 염려가 생겨났다는 것은 내가 주 안에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염려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면 됩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면 됩니다. 기도하면 우리가 다시 ‘주 안에’ 복귀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납니다. 문제의 해결은 그 다음입니다. 아니 사실 주 안에 복귀하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문제들로 인해서 우리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하는 대신에 기도하기로 작정하십시오. 기도하되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또한 여러분의 기도와 간구에 감사를 동반하는 믿음을 보이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주 안에 살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돌보신다는 말은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가나안을 들어가기 전에 12명의 정탐꾼, 가나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하고 기쁨이 충만한 삶. 

각 지파 중에서 수령을 보냈다고 말씀합니다. 초짜배기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 신앙이 있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들을 보냈다는 것. 

그들 중 10명의 보고 

[민 13:32-33]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들의 보고: 그 땅, 그 곳의 백성-신장이 장대하고 거인들,,

                  그리고 자기 자신- 메뚜기...난 아무 것도 아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 

(민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그들을 보았지만 이들이 본 것은 여호와... 그들은 보호자가 없지만 우리는 여호와가 함께 있다. 하나님이 우리 보호자시다. 


하나님의 행하심. 

(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들이 취한 행동, 말한 내용대로 행하심.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통해서 스스로 메뚜기라고 한 자들은 그렇게 죽어갔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말대로 두려워하지 않고 가나안을 취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이고 신앙의 법칙. 

우리가 취한대로, 선택한 대로....하나님께서 또한 일하신다. 


그래서 염려가 생길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고 끝으로, 결론적으로 

(빌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워라. 옳은 생각, 신앙적인 생각, 깨끗한 생각, 유익한 생각, 남을 세우는 생각을 해라. 

(빌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 오늘 배운 바를 실천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평강을 줄 것이다. 잠 잘 것이다. 잘 먹을 것이다. 


자녀교육에 관한 단상 

가장 교육에 관한 열성이 뛰어난 부모들. 

그런데 대부분의 생각 - 나처럼 살지 말아라. 나와는 다르게 살아라. 넌 나 처럼 되면 안된다. 

-> 그러니까 그렇게 전심전력으로 교육을 받게 하고 도와주려고 해도.... 자녀들 속에 들어가는 생각도 부모에게 감사하고 효도하고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대들면서 "난 엄마처럼 안 살꺼야... 난 결혼 안 할꺼야..." 


성경적인 교육관. 바울의 신앙, 예수님의 삶 

- 모범이 되라. 나처럼 살아라. 나랑 똑같이 하면 된다. 

-> 이것을 행할 수 있는 곳, 실천하고 훈련할 수 있는 곳 - 교회.... 


배운 것, 들은 것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이루어진 다음에 이렇게 하니까 되더라. 그러니 너도 똑같이 해봐라....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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