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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12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06.11 디모데후서 3장 1-12절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 (2)

 디모데후서 3장 1-12절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 


디모데후서 3장은 말세의 현상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라는 말은 마지막 때에 이런 것들로 끔직한 시기가 올 것이다는 것입니다. 


2절은 여러가지 일들이 열거되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두가지는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구절은 그 결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현상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결과 스스로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않으며, 거룩하지 아니하다. 


영어로 보면 그 의미가 더 명확해 집니다. 

"People will be a lovers of themselves, lovers of money" 

자기의 연인이 되고 돈의 연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연인이 된다는 것은 그것을 정말 사랑해서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결국 닮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따라가는 것이고 그것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태초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닮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은 결국 사랑하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연인을 주어 서로 사랑하도록, 타인을 사랑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게 함으로 자연 만물을 사랑하도록 하였습니다. 

결국 나를 넘어 사랑하도록 창조된 것이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뱀이 하와를 유혹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만물을 다스렸던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지고, 서로를 탓하는 자가 되었으며 만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섬기는 자로 변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자신만을 향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닫힌 자신은 교만하고, 아담과 하와가 그러하듯 서로를 탓하며 비방하는 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듯, 부모를 거역하고, 무엇을 주어도 감사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멀어짐으로 거룩하지 못한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사랑이 흘러 그 사랑이 나를 적시고 내 주위를 적시는데 반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채로 자신을 사랑하다 보니까 비뚤어진 나, 왜곡된 나를 사랑함으로인해 온갖 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


돈도 마찬가지 입니다. 돈을 누구를 위해 만든 것입니까? 물물 교환을 통해 생활 하던 원시 사회에서 규모가 넓어지고, 품목이 다양해지면서 가치를 매기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화폐, 돈입니다. 인간을 위한 편의도구인 것이죠. 그런데 이젠 돈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위해서 사랑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돈을 사랑하니 돈의 특성을 닮게 됩니다. 


돈은 스스로를 자랑합니다. 자랑은 곧 교만입니다. 돈에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무정하고, 복수하기를 좋아하고, 돈이 많으면 절제하지 못하게 하고, 돈은 수없이 배신하고, 조급하며 자만하고 쾌락을 추구합니다. 다 돈의 특성입니다. 


돈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의지하고 스스로 세우려고 합니다. 인류의 바벨탑이 다름아닌 물질문명으로 대변되는 돈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 (딤전 6:10) 

-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마 6:24) 

- 씨뿌리는 자의 비유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마 13:22) 

- 클레멘트: 탐욕이 심해지면 하늘 나라에 관한 생각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재물도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요, 난 다만 청지기이다"는 의식을 가지라. 


사도바울 : 

[빌 4:11-빌 4:12]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것이 믿는 자의 표상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국 아무리 경건한 모양을 갖추었다 하여도 그 능력은 잃어버렸다고 단언합니다. 

왜내하면 경건은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수없이 기도하고, 수없이 예배해도, 늘 채우지 못해 목말라 하고 하나님을 자신이 부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17장에는 에브라임의 미가라는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기 집에 우상의 산당을 만들어 놓고 레위 사람 제사장을 고용해 놓고 

(삿 17:13)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의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복받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은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이들은 배워도 배워도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배움은 수단이 아니라 사랑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주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얀네와 앰브레는 모세가 바로 앞에 섰을 때에 모세가 이적을 행하면 그 이적을 따라했던 애굽의 마술사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를 흉내낼 순 있지만 그 기원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탄의 자녀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진리의 대적자입니다. 

마지막 때에 표적을 보며 우왕좌왕 하는 자들은 결국 이들의 꾀임에 빠질 것이란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결국 드러날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최후는 심판입니다. 


10절부터는 이러한 세상에 대한 바울의 고백이요, 유언이며 당부입니다. 

무엇입니까?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글을 남기면서 마지막 세대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가 살아온 삶을 증거합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나의 교훈과....

넌 나의 가르침을 알고 있느냐? 기억하느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녀들과 믿음의 후배들에게 남길 수 있는 최고의 것...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영성을 공부하면서...가장 아쉬었던 것. 

초대교회 때부터 영성의 인물들을 공부하면 누구하면 가난의 영성, 누구 하면 순교의 영성, 누구 하면 섬김의 영성이 떠오르는데 한국의 목사님들을 보면 누구 하면 어떤 교회 목사....교회가 떠오르지 그 가르침에 관해서는 그 목사님이 다 그 목사님 같다. 그나마 떠오르는 분이 제자사역에 헌신 하신 옥한음 목사님 정도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나를 기억할 때에 가장 먼저 나의 가르침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가장 남기고 싶은 정승구 목사의 가르침 - 비록 사도 요한의 말씀을 따른 것이지만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곧 주님의 유언이요, 

예수 닮는 삶. 그 안에 십자가와 섬김의 삶이 모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 안에 저의 신학과 영성이 다 드러나 있습니다. 


바울은 단지 외적인 가르침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가르침의 완성은 그 행함입니다. 삶이 따르지 않는 가르침은 잔소리이고 헛된 교훈입니다. 

바울은 가르친 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십자가를 외치며 십자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삶 속에 숨겨져 있는 숨의 의향, 그의 동기, 목적까지도 네가 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삶 속에서 이 십자가와 부활을 이루기 위해 그가 핍박받으며 오래 참고 끝까지 주님의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그 것을 통해 이 세대와 다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구별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이 말씀은 사도바울의 삶의 결론이었습니다. 바울 뿐만 아니라 예수의 삶의 결과였고, 그 분의 제자들의 삶의 결과 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 땅에서의 영광을 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핍박받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 자신보다 주님을, 물질보다 영적인 것을 사랑함으로 거룩하고 고통 중에서도 감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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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1.05 06:3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