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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1장 1-2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04.09 디모데후서 1장 1-2절
 

디모데후서 1장 1-2절


[딤후 1:1-딤후 1:2]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디모데후서 

바울의 가장 최후의 서신

네로의 기독교 박해가 극에 달했을 때에, 로마에서 두 번째로 투옥되었을  때에 쓴 글. 

이 때의 역사적 정황은 바울이 두 번째로 투옥되면서 사형당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 해 겨울을 넘기고 봄에 순교하게 된다. 그러니까 사형을 두 세달 앞 두고 쓴 글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남기는 유서와도 같은 성경이 바로 디모데후서입니다.  

후세의 학자들도 디모데 후서를 바울이 디모데와 같은 영적 자녀들에게, 그리고 교회에 남긴 유서라고 인정을 합니다.  


1. 사도 바울 

우리는 바울을 부를 때에 흔히들 사도 바울이라고 부릅니다. 

사도라는 말은 초대 교회에서 열두 제자들에게만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헬라어로 "apospolos"라는 말로 파견된 자, 전달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자, 사신 등의 뜻이죠. 

그러다가 초대교회에서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맛디아를 뽑아 사도의 직함을 주었고 나중에 이 바울도 사도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바울이 사도로서 인정받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 곡절과 반대가 있었을까? 상상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가 직접 선택하여 함꼐 다녔던 자타가 공인하는 예수의 제자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의 생전에 만난 기록도 없습니다. 예수가 선택한 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다메섹 도성에 가는 중에 예수를 만났다고 하나 그것을 증언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났다고 주장해도 그것은 증인도, 증거도 없는 개인의 주장일 뿐입니다.

심지어 바울을 인도했던 권위자 바나바도, 당시 유명한 설교가였던 아볼로 같은 사람들까지도 감히 사도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거기다가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의 박해자였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소개 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으로...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된 바울은..."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더군다나 그는 13번째 사도였습니다.  이것은 12라는 숫자의 의미를 알면 더욱 놀라운 주장입니다. 

예수님이 왜 12명의 제자를 뽑았을까? 많은 사람들은 12제자는 바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고 12지파를 통한 모든 인류의 구원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12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가룟유다가 죽자, 사도들은 이 12의 숫자를 다시 채우기 위해서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하면서 기도하고 제비 뽑아 맛디라를 새 사도로 세우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도의 직분은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언하는 것이고 그 조건은 

열 두 제자를 세울 때와 마찬가지로 "항상 함께 다니는 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도 열두 제자들과 같이 다닌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바나바와 나중에는 실라, 디모데등과 같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서 전 세계를 떠돌아 다닙니다. 


제자들로서는 바울이 아무리 사도라고 주장하고 다녀도 그것을 인정해줄만한 어떤 이유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설교마다 글마다 자신을 사도라고 말합니다. 

그럼 다른 사도들이 바울은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벧후 3:15-벧후 3:16]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 베드로는 바울이 교회에게 쓴 편지들을 다 읽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가리켜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라고 지칭한다. 오히려 그의 글이 무식한 자들에게 좀 어려워서 해석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러서 이 글을 쓴다고 하면서 그의 글의 가치를 칭송한다. 뿐만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그의 편지 시작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하면서 시작합니다. 

요한의 글이 예수의 사도된 요한은..이라고 시작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마태가, 다른 제자들의 글도 자신을 소개하면서 구태여 사도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요? 그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니까 구태여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하필 이런 표현을 썼을까요? 

아까 베드로 후서 3장 15절 16절 말씀을 통해서도 알겠지만 그는 바울의 글쓰는 형식을 빌어 구원에 대한 사실을 보충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사도 중의 사도요, 가장 큰 사도로서 인정받는 자가 지금 사도 중에 끼기 힘든 바울을 사랑하는 는 나의 형제라고 하면서 그의 글을 모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사도 하면 가장 떠오르는 인물이 베드로 사도입니까? 사도 바울입니까? 

오히려 열 두 사도 누구도 사도 라는 이름 붙이기에는 좀 어설프고 낯선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꼭 꼭 이름 앞에다가 사도 바울하고 불릴 정도로 사도의 대명사가 되지 않았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바울 자신이 이 '사도'라는 이름을 너무 너무 사랑하고 귀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라는 이름의 뜻은 그냥 심부름꾼인데 그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는 이 이름을 너무 너무 사랑했던 것이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직분, 여러분의 사명을 이렇게 사랑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는 이제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글을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남기면서도 늘 그래왔듯이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사명, 자신의 사도직을 말씀함으로서 편지글을 시작합니다. 


그는 스스로 사도가 된 것도 아니요, 그가 받은 이 사도직은 하나님의 뜻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 즉 그 분의 피값으로 모든 과거의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죄에서부터 자신을 용서하시고 새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사도, 사신, 심부름꾼이 된 나 바울....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나의 정체성을 무엇입니까? 

목사로서의 삶. 

난 이 직분 안에서 기뻐하고 있는가? 감사한가? 자랑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성도라는 이름. 

그 이름 Saint. 성자, 성인...

우리에게 붙여준 이름. 

너무 거리가 멀어서 낯설어버린 이름은 아니십니까?  성도라는 이름 때문에 감격하고 감사한 적 있으십니까? 남들에게 성도라는 이름을 자랑하신 적 있으십니까?


사람은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된다고 합니다.   

시스터 액트 2: 가수가 너무나도 되고 싶은 소녀...

어느 날, 주인공 수녀가 그 여자에게 물어요. 

넌 무엇이 되고 싶니? 가수요, 그런데 될 수가 없어요. 저희 집은 너무나도 가난하고 어머니는 내가 노래하는 것을 싫어하시거든요...


그래서 포기할꺼니? 그럼 포기해....

그런데 넌 일어나자 마자 무슨 생각을 하니? 자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하니? 

노래하는 것이요...

그럼 넌 이미 가수야. 노래하는 것을 그만큼 사랑하면 어떤 것도 널 방해하지 못한다....

그 말을 듣고 그 소녀는 어떤 장벽도 두려워하지 않고 노래하는 곳으로 향합니다.


너무나도 예수님의 첫번째 제자가 되고 싶었던 베드로

너무나도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가 되고 싶었던 요한....

왕 이전에 찬양하는 자가 되고 싶었던 다윗....

그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바라는 모습대로 되었습니다. 


당신은 예수의 어떤 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되고 싶은 간절한 그런 모습이 있습니까?

당신의 유언장에 당신은 당신의 이름 앞에 어떤 글귀를 넣고 싶으십니까? 

바울은 누가 봐도 사도의 자격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로부터 위임받은 그 사도라는 직을 그 어떤 사도들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사랑했고, 그로인해 기뻐했습니다. 

그는 가장 위대한, 대표적인 사도가 되었습니다. 12라는 제도도, 관습도 무너뜨리고 당당히 이방인을 위한 열 세번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소명과, 사명을 찾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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