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2021  이전 다음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  

사가랴와 엘리사벳 (누가복음 1:5-25) : 믿음에 관하여 

 

[눅 1:5-2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르되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 하나님의 기억하는 자 

어머니 엘리사벳 -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사가랴는 아비야 계열 (사무엘의 둘째 아들...) 의 제사장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 - 레위 지파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6절) 

 

대대로 주의 종의 가문으로서 그에 걸맞게 삶았던 사람... 노아와 같이 당대의 의인 

 

그런데 그들에게 있는 한 가지 부족함 - 잉태하지 못한 자 

열심히 살아가는 데 열매가 없다. 일은 하는데 채워짐이 없다. 항상 공허함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 아이를 갖지 못한 다는 것. -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부족함이 늘 있었다. 

얼마나 그것을 위해 기도했을까? 

오랜 기간 동안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이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했을 것이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눅 1:13절)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인해, 또한 이젠 애를 낳을 수 있는 나이도 지나감에 따라 어느덧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제사장의 수가 많아 제사장 집안의 반열대로, 또한 그 반열에서는 제비를 뽑아 일년이나 이년에 한 차례 직접 성전에 들어가 분향을 하였다. 

자기의 차례가 오면 담당한 제사장은 몇 주 전 부터 이일을 위해서 금식하며 삶을 정결케하고 하나님 앞에 흠이 없도록 준비해야 했다. 자기의 죄를 해결하지 못하고 성전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임재가 그에게 직접 임해 죽거나 심판을 당하기 때문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온 삶을 다해 그 분향을 참가하였다. 

어찌보면 정상적으로 예배를 마치게 되면 제사장으로서의 그의 거룩한 삶을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게 되는 그런 보증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사무엘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끊긴 시대.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던 시기. 

어찌보면 많은 제사장들이 그러한 임재를 두려워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예배드린 시기...

그러나 사가랴는 두렵고 떨림으로 분향에 참가했을 것이다. 

 

그런데 분향 할 때에 분향단 우편에 서 있는 하나님의 사자. 

얼마나 깜짝 놀랐을까?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를 본 자들도 그의 거룩하심 앞에서 죽는다고 생각. 

 

[눅 1:13-14]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기다리던 아이를 준다는 소식, 거기다가 그 아이가  보통아이가 아니라 주 앞에서 큰 자가 되며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하여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주 앞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소식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천사도 흥분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할 것이라고..." 

 

그런데.....

 

정작 사가랴의 반응은 너무 뜻밖이었다. 

[눅 1: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안다"는 것은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경험한다"

내가 이런 것을 어찌 경험하리요... 

 

그토록 기다리고 또한 기도하던 것을 천사가 직접 나타나서 말씀하는데 못 믿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못 믿는 이유를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못 믿는 이유가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고선 자신의 힘을, 능력을 믿어왔던 것이다. 거기다가 하나님이 조금만 허락하시면....

그런 믿음. 

 

열명의 정탐꾼...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다.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들이 붙잡은 것은 그 땅 앞에 서있는 자기 자신... 

이런 믿음이 얼마나 많은가? 

 

착각 - 하나님을 믿으면 나를 강하게 하신다. 나의 통장을 가득 채워주고... 아픈 곳을 다 낫게 하시며, 남 앞에서 날 드러나게 하신다. 

물론 그럴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나를 드러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신다. 

 

우리는 그대로 연약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해도 그 분은 강한 것이다. 

 

말 못하게 하는 것. 

왜? 말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을 하는 자는 그 말 때문에 하나님의 뜻도 지체 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부정적인 말 때문에 40일간의 불평이 광야 생활 40년의 불행을 나은 것이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전에 침묵으로 입을 막으신 하나님! 믿음의 말은 능력이지만 믿음없는 말은 하나님의 역사를 막는다! 

 

말을 잃은 사가랴.

그렇게 성전 밖으로 나온 사가랴... 

의인이었던 그가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른다. 

그러나 그 침묵의 시간은 사가랴에게 고통의 시간이었지 모르지만 성숙의 시간이었고 온전케 되는 신앙. 

외적인 신앙에서 내적인 성숙을 이루는 시간... 

 

  •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가문적으로나 그들의 행실에 있어서도 항상 인정을 받아왔던 사가랴의 연약함을 드러내게 하신다. 그리고 믿음 있는 줄로만 알았던 그의 영적 생활을 비난의 광야, 인내의 광야,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향하는 참 믿음이 무엇인가하는 여정으로 그를 이끄신다. 

 

네 믿음이 널 구원하였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그 전능함을 내 삶 가운데 역사케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세상을 승리하게 하는 힘도 역시 믿음이다. 

그가 늘 기도해왔던 삶도 하나님의 믿음 앞에서 믿지 못하는 사가랴! 

그는 불의한 자가 아니라 의인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는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열매맺지 못하는 의로움이었다. 

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 어찌 이일이 내게 이루어지리요? 

그의 이 말은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했던 마리아의 고백 앞에서 한 없이 초라해진다.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어떠한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도 신뢰하는가? 

하나님은 전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지만 그 구원을 우리 삶 속에서 경험케 할 때- 그 구원을 누리려 할 때.

우리에게는 오직 한 가지 은혜- 믿음이 필요하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마리아, 평안의 의미를 새롭게 하다. (눅 1:26-38)

 

[눅 1:26-38]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어제- 요셉을 통해 의로움의 의미를 일깨웠다면 

오늘 - 그 아내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 주시는 꿈과 평안의 의미를 살펴보자. 

 

 우리가 바라는 평안 - 문제가 없고, 갈등이 없고, 호수같이 평화로운 평안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죄의 근본을 몰아내고, 원인을 몰아내는 평안

                                 - 폭풍 가운데서도 주와 함께 함으로 얻을 수 있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 

                                 

[눅 1:27-28]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1. 하나님 주시는 평안 - 한 번도 가지 아니한 길을 주님과 함께 가는 길  

정혼했다. 

흔히들 말하는 동정녀 신학 - 예수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인간의 씨를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 잉태 

처녀를 통해서 태어나야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

그러면 정혼하지 아니한 정말 결혼을 모르는 처녀이지 왜 정혼한 여인을 택했나. 

그러면 마리아가 갈등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지... 

 

정혼했다는 것은 정해진 길이 있는 상태. 약속된 삶이 있는 상태.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때에 임한다. 

 

"본터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 미리 주어진 삶을 떠나는 데서부터, 머물던 곳을 벗어나는 데서 부터, 말씀 따라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모세-> 이제 미디안에서 아내를 만나 잘 정착하고 살고 있는데, 그렇게 삶을 정리하고 있는데 애굽으로 가라 하신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다녀와서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다시 방문했던 도시들을 방문하려 짐을 꾸리고 사람을 모아 출발하려고 하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 - 마게도냐로 가라 한다. 

 

내가 익숙한 삶의 테두리 안에서 살 것인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아니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으로 걸어갈 것인가? 

주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신다. 말씀은 곧 꿈, 비전으로 온다.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님의 꿈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에게 온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온 이 하나님의 꿈을 외면하고 삽니다. 그 꿈을 살피지 않고 영접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만물에게 종살이 하듯 삽니다. 

그런데 이 말씀, 하나님의 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비로서 그 꿈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과 똑같은 꿈을 꾸며,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님의 꿈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에게 온 것입니다. 

 

2. 하나님 주시는 평안 - 우리의 죄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평안, 적극적 평안 

 

요나 - 비둘기, 평화라는 의미

존경받던 당대의 국민적인 선지자, 예언자. 국가 부흥의 원동력 

그런데 그에게 원치않는 말씀을 주셔서 그의 근본을 보게 하신다. 불손종하는 똥고집

자기 마음에 안드니까 완전히 거꾸로 향하는 못된 근성 

 

모세를 부르실 때에 일곱번이나 애굽으로 가라 

못갑니다. 안갑니다.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난 말을 못합니다....(믿음 좋고 지혜롭던 그의 민낯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의 죄를 끄집어 내서 드러내서 고치게 하시는 평안

우리의 죄를 수술하시는 평안 . 

베드로의 성급함을 끄집어 내시고, 바울의 잘못된 열심을 거꾸러 뜨리고, 솔로몬의 잘못된 지혜의 망상을 무너뜨리고...

 

우리는 잘못을 감추고, 외면하고, 방치하지만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의 연약함 중심으로 들어오셔서 끄집어 내신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돌을 굴러내라" 하시면서 그 무덤 깊은 곳으로 와서 죽은 나를 살리신다. 

 

  • 마리아의 고백 

[눅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 앞서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가브리엘의 말에 웃다가 벙어리가...

모세- 거역하다, 길 가에서 죽을 뻔한...

아브라함과 사라 - 이삭을 낳는다는 말에 웃음...

마리아의 고백- 전적인 믿음의 고백 -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엘리사벳이 45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물론 하루 하루 살아가면 자꾸 비전을 놓쳐 버립니다. 꿈을 잃어버립니다. 

현실의 장벽에 막혀 버립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교회이고 신앙의 공동체 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 앞서 그 꿈을 받은 자입니다. 비록 남편 사가랴는 불신으로 인해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아이를 잉태한 엘리사벳은 말씀의 능력을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마리아의 믿음의 선배요, 먼저 경험한 자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마리아는 고백했지만 하나님은 마리아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엘리사벳에게 보냅니다. 

 

둘 다 애를 낳을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둘 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견뎌야 할 환경과 남들의 시선이 말도 못합니다. 

엘리사벳은 남편이 예배하러 들어가서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애를 가져도 자랑하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청첩산중입니다. 요셉의 집안에게는 어떻게 말할 것이며, 자신의 앞날은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둘을 만나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게 하십니다. 서로 축복하게 하십니다.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의 꿈을 쫓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격려하고 위로하고 축복하는 곳입니다. 말씀과 사랑 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곳입니다. 네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라고 보장해 주는 곳입니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은혜의 길이요, 축복의 길임을 확신합니다. 

 

말씀을 받았으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병든 믿음, 죽은 믿음은 항상 두 마음을 가집니다.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망설이는 사람은 결국 넘어집니다. 무너집니다. 

열매맺지 못합니다.

애굽으로 갈까 망설이는 사람은 결국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지다. 

신앙은 불신앙이 망치는 것이 아니라 두 마음을 품은 신앙이 망치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신앙이 날 어렵게 합니다.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통해 믿음을 굳건히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하여 고백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컫으리로다." (47-48) 

 

남들이 날 어떻게 보든 마리아는 흔들리지 않고 다시 집으로 향합니다. 집을 나올 때의 발걸음은 두려움이었는데 돌아가는 발걸음은 견고함이었고 평안함이었습니다. 

교회를 나갈 때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흔들린 마음, 두려웠던 마음, 염려했던 마음이 정리되고, 안정되고 평안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신앙은 꿈 꾸는 것입니다. 

허무 맹랑한 꿈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주시는 꿈

그 꿈이 이루기 까지는 세상을 견뎌야 합니다. 씨앗이 자라야 합니다. 열매맺을 때까지 물을 주어야 합니다. 

말씀은 씨를 뿌리는 것이요, 말씀 가운데 나에게 주시는 믿음은 곧 잉태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예배, 교회는 이 말씀이, 꿈이 태어날 수 있도록 물을 주고 가꾸고 보호하는 곳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 입니다. 

꿈을 꿉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받읍시다.

아브라함은 아무 열매 없이 75세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삭을 낳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80평생 의미없이 광야에 도피해 살다가 하나님의 꿈을 받고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목동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꿈이 있으면 죽음도 의미가 없습니다. 영원 가운데 세상에서도 천국 가운데 살고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을 삽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꿈으로 미국의 정신을 일깨웠습니다. 

예배는 꿈꾸는 자들이 모인 처소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때 주님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꿈을 회복하는, 새로운 꿈을 소망하는 꿈꾸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요셉, 예수의 아버지...(마 1:18-25) 

 

[마 1:18-25]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 축소된, 혹은 외면당한 역할, 요셉 

성경 및 초대교회에 있어서 마리아의 중요성은 많이 강조되어 온 반면 요셉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언급되어 오고 있지 않습니다. 동정녀 탄생을 강조하기 위해서 초대교회는 의도적으로 예수의 삶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지우고 마리아를 강조. 

 

"예수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8절  19절) 

  • 요셉은 당시 마리아와 정혼한 상태로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 결혼 문화는 한국의 전통혼례와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남녀 간의 결혼은 주로 그들의 부모나 가족을 통하여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신랑측의 가족이 증인을 데리고 신부측 가족을 방문해서 결혼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신부측 부모님들이 허락하면 약혼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결혼할 당사자인 남녀는 결혼 전까지 한 번도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약혼을 한 후 결혼까지 남녀는 서로 결혼을 준비하며 상대방을 그리게 됩니다. 
  • 아마도 그 준비기간 동안에 요셉은 약혼녀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아이라는 것을 요셉은 알고 있었겠지요. 그럴 경우 이스라엘 율법은 파혼은 물론이고 이 일을 동네방네 알려서 파혼의 책임이 있는 여인을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마땅히, 혹은 당연히 유대인 남자로서 해야 하고 또는 해 오던 일이었지요. "당연한 생각" 
  • 요셉도 아마도 그 당연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유대인 남성으로서 당연히 율법대로 그녀의 죄를 드러내고 죄를 도말하게끔 세상에 알려서 자신은 의를 지키고 마리아는 죄를 받도록 하는 생각을 당연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신의 약혼녀 마리아를 보호하고 지켜 주고 싶다고 결심하고 행합니다. 율법을 넘어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성경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율법을 따르지 않고 사람을 살리려고 마음 먹고 행동한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부합되고 당연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넘어서는 생각, 사람을 살리려는 생각을 한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20절) 

  • 아마도 요셉은 며칠 밤을 세며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생각이 참 많았겠지요. 유대인의 법을 따를까, 잘 모르지만, 혹은 부정하지만 저 여인이 욕먹지 않도록 조용히 일을 처리할까? 생각이 복잡한 요셉은 아마도 그런 생각들로 지쳐서 잠시 잠이 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생각에 지쳐있는 요셉을 하나님께서 잠들게 하신 것 같습니다.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듯 하나님은 요셉을 잠들게 하십니다. 왜 잠들게 하십니까? 꿈을 꾸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1) 

  • 복음을 이렇게 꿈으로서, 마치 동화처럼, 신화처럼 우리에게 왔습니다. 철학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학적인 이야기도 아닙니다. 
  • 내가 무언가 근심이 되어 잠도 못이루고 뒤척이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나를 잠들게 하시며 천사를 통해 말씀하여 근심을 바꾸어 기쁨되게 하시는 사건. 복음은 이렇게 어둠 속에 빛으로서 우리에게 오신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 왜 복음입니까? 바로 꿈 같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현실 속에서 논리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꿈 같은 일이 일어났기에 바로 복음입니다. 사람은 꿈을 꿉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현실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있었던 신비한 하나님과의 교제, 그 영혼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꿈을 꾸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우리가 영혼이신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영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워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신화와 동화, 예술과 종교는 이렇게 꿈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통로입니다. 그리고 그런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꿈의 사람 요셉?

  • 우리는 꿈의 사람 하면 구약의 요셉만을 생각합니다. 그도 하나님께서 꿈을 주셔서, 비록 그 꿈 때문에 많은 고초를 당했지만 그 꿈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복음을 경험하게 되고 그 복음의 하나의 예표가 되지요. 그리고 신약에 와서도 그 꿈의 시작은, 그 꿈의 경험은 또 다른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로 건너오게 됩니다. 신비하게도 두 요셉의 아버지도 똑같이 야곱이네요.  그리고 신약에 와서 그 꿈은 온 인류를 구원하게 되는 복음의 완성이 됩니다. 좀 초라하게, 주목 받지 못한 신약의 요셉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의롭게 산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좇아 살아가게 만드십니다. 

 

성탄절은 원래 예수님의 태어나신 날이 아니다

성경은 언제 예수님이 죽었는가는 나오지만 언제 태어났는가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왜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의 가장 큰 절기가 되었는가? 

 

로마의 식민지를 살았던 이스라엘.... 

예수가 죽고선 모진 핍박과 순교를 당해야만 했던 수 많은 사람들... 

현실은 전혀 변할 것 같지 않던 그 때 313년 로마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 

 

식민지를 삼은 나라의 소수가 믿는 종교를 로마 제국이 국교로 인정한 것이다. 

 

그 당시 로마사람들이 가장 큰 축제로 여겼던 태양신 숭배의 날. 

처음엔 그 절기를 없애려고 노력하다가 축제 문화가 사라지지 않자 태양신을 섬기는 대신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일로 삼아 축제하자! 

 

그래서 그들의 땅과 신을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선포하자!하며 

Christ Mass - 로마 제일의 우상 숭배 날을 예수의 예배날로 바꾼 것이다. 

 

그러면서 이 성탄절은 예수를 믿으나 안 믿으나 전쟁 중이나 모든 어려운 환경에서도 모든 어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의 날, 기쁨의 날, 회복의 날로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