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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오 유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8.15 다대오라고 하는 유다 (요 14:22-24)
 

다대오라고 하는 유다 

요한복음 14:22-24

(요 14:22)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요 14: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 14:24)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1. 이름 

유다라는 이름의 기원 : 야곱의 네번째 아들. '

"찬양"이라는 뜻.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레아를 하나님께서 태를 여시어 라헬에게는 자녀를 일찍 허락하지 않으시고 레아에게는 자녀를 허락하셨다. 첫째 르우벤, 둘째 시므온, 셋째 레위를 낳을 때 레아는 자신이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함을 자녀를 통해 위로 받고 또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할까 기대한다. 즉 레아의 문제는 하나님께 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사랑을 받느냐 못받느냐에 자기의 삶의 목적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넷째 유다를 낳고 무엇이라 고백하냐면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하며 그의 관심을 남편 야곱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린다. 이제는 남편을 바라보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다의 이름은 "찬양"이다.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가 범죄함으로 야곱의 장자권은 유다에게로 옮겨진다. 하나님의 축복권이 찬양하는 자에게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방민족과 전쟁을 할 때도 유다지파는 맨 앞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있음을 알렸다. 그 이름은 영광의 이름이요 자랑스러운 이름이었다. 그래서 유다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흔한 이름이 되었다. 


흔한 이름이었지만 신약성경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적어도 세사람의 유다가 있다. 

1) 예수님의 동생 유다다. 

(마 13:55)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2) 유다하면 가장 유명한 이름으로 기억되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룟 유다이다. 

3) 우리가 나눌 유다이다. 


요한복음은 유다를 가리켜 가룟이 아닌 유다라고 소개한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다대오라고 그의 별명을 소개한다. 

왜 유다라는 이름대신 가룟이 아닌 유다, 다대오라는 이름으로 불렀을까? 


그것은 신약성경이 씌여질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판 가룟유다로 말미암아 유다라는 이름이 치욕스런 이름, 부정한 이름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이름이 가룟 유다로 말미암아 치욕스러운 이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럼 왜 유다는 다대오로 불렸을까? 

다대오라는 뜻은 '사랑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초대교회의 교부가 쓴 문서 중에 두 명의 유다를 비교한 글이 남아있다. 

"또 하나의 유다는 가롯유다와 여러 면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었던 제자이다. 또 가롯 유다가 불평을 하고 있었을 때에 이 사람은 찬양하고 있었다."

가롯유다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씻기기 위하여 값 비싼 옥합을 깨드렸을 때에그 기름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데 썼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불평을합니다. 그의 마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작은 그 돈에 있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곁에서 유다 다대오는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제자들이 떠들썩하면서 서로 자기가 수제자다. 자기가 높다 하며 논쟁하고 싸울 때에도 유다 다대오는 말없이 고요하게 한 구석에 있으며, 어느 편에도 감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던 제자가 바로 유다 다대오입니다. 모든 제자들이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었을때 조용히 한 옆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제자! 그렇기 때문에 유다는 제자들 사이에서도 적이 없고 사랑받는 제자였고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제자였습니다. 


유다라는 말의 뜻은 "찬양"입니다. 그러나 가롯유다가 좋은 이름을 가졌으면서도이름 값을 하지 못했고, 다대오 유다는 정말 이름 값을 했던 제자입니다. 문서는 "모든 제자들의 사랑과 인정을 가장 많이 받았던 그러면서도 다른 제자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고 언제나 조용히 자기의 할 일을 하던 제자였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한 신학자는 이 인물 연구를 하면서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서 요한이 [적극적인 사랑의 사도]라면, 이 유다는 [조용한 사랑의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유다는 떠들썩하지 않지만 조용히 자리를 지키면서 제자들을 화목하게 만들었고, 주님을 찬양하며 불평과 원망대신에 자기의 할 일을 꼬박꼬박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2. 예수님과의 대화 

요한복음 14장은 마가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는 중에 했던 대화입니다. 

13장에서 발을 씻기시며 제자들로 하여금 "서로 섬겨라. 발을 씻겨라" 하는 말씀을 주시면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한 대상이 가룟 유다 뿐만 아니라 서로 섬기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모든 제자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나를 팔리라는 말씀의 장은 베드로가 세번 부인할 것을 예언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면서 14장에서 더 깊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너희가 그 길을 아느니라"(14:4)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가룟 유다와 베드로가 아닌 다른 세명의 제자가 반응합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도마입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를 다룰 때에 우리는 도마를 가리켜 질문하는 신앙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나사로를 향해 예루살렘으로 갈 때에 "우리가 함께 죽으러 가자"하는 열정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번의 질문과 대화를 통해 참 믿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믿음의 제자가 됩니다. 


길을 모르겠다는 도마의 질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간단하고 단호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십자가의 죽음으로 길을 잃어버린 도마는 결국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다시금 참 길로 들어섭니다. 


이어서 빌립이 등장합니다.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다." 

예수님을 본 것이 곧 하나님을 본 것이다라는 말씀에 빌립은 "아니요, 아버지를 보여 주세요!"합니다.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물질주의자,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바로 이들을 먹이려면 얼마가 필요합니다했던 그 제자는 나를 본 것이 아버지를 본 것이라는 말씀에 다시금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합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우리는 신앙생활이나 또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가 생각하는대로 역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똑같은 일에 있어서도 내가 보는 것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 내가 기대하는 것과 하나님꼐서 역사하시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지만 출애굽 시키려는 방법에 있어서 모세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은 너무나 다릅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왕을 주세요 하지만 하나님은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들어닥칠 환란을 아십니다. 


프란시스라는 유명한 성자가 날마다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후로 자기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누어 주고, 무너진 교회를 세우는데 열심이 특출한 자였습니다. 특히 그는 문등병자들을 잘 돌보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고 잘려고 하는데 밖에서 한 문등병자가 잘 곳이 없다고 하며 문들 두드립니다. 그를 데리고 들어와 따뜻한 음식을 먹이고 자신의 침대 밑에 자리를 내어주고 자라고 하는데 유난히 그 문등병자는 프란시스의 침대에서 자고 싶다고 이야기 합니다. 염치가 없어도 유분수지 얻어먹는 주제에 정말 염치도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문등병자들의 성자라 해도 침대까지 내어주는 것은 병에 걸릴 수 있는 위험이 그만큼 커지고 위험위험한 것이지요. 그래도 꽉 참고 그를 침대에서 재웁니다. 아침이 되니 언제 일어나서 나갔는지 그 문등병자는 온데간데 없습니다. 또 하루를 보내고 하나님께 또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보고 싶습니다.” “내가 어제 너와 함께 머물지 않았느냐?"하나님은 프란시스의 기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우리가 나눈 다대오, 가룟이 아닌 유다가 묻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이 질문은 무엇입니까? 

난 이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압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만 보여주십니까?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보여 주십니까? 


여기에 유다의 마음이 다 담겨있습니다. 

도마와 빌립이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난 주님의 길을 모른다고 자기의 불확실한 믿음, 불완전한 믿음에 대해서 질문하는데 반해 유다는 어떻습니까? 


저는 이제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요? 

그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그들에게도 알려주십시오. 


유다의 관심이 타인을 향합니다. 안타까운 전도자의 마음, 선교사의 마음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왜 유다가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으로 부터 사랑스런 제자였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준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3절) 


네가 내 말을 지키면 하나님께서도 너를 사랑할 것이요. 삼위일체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그러면 네가 가는 곳 마다 너를 통해서 나를 보여 주는 것이다. 나를 통해서 아버지를 보여 주었듯이 너를 통해서 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요? 하는 유다의 질문에 네가 나를 사랑함으로 그들에게 나를 보여 주어라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네가 날 사랑하느냐?하시면서 베드로에게 그럼 내 양을 치라 하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보여 줍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주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 죽기 까지 사랑하는 것.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때까지 사랑하는 것. 

그 사랑을 통해서 주님을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알리신 것처럼... 


3. 나가는 말 

다대오는 잘 드러나지 않은 제자입니다. 오히려 가룟 유다에 가려 그의 이름마져도 제대로 불러지지 못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그 이름값 못하고 찬양대신 불평함으로, 영광대신 치욕적인 열매를 맺었다면 다대오 유다는 조용한 가운데 자기 이름값을 다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고 자신 보다는 타인을 잘 드러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쪽 편을 들진 않았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이고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를 들어서 큰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명한 자를 들어서 유명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영향력이 작은 것을 불평하지 마십시오. 

  약한 것을 불평하지 마십시오. 

  무명한 것을 불평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베드로같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루에 삼천명을 회개시킬 수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물위를 걸을 용기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우리 가운데 유다 다대오는 될수가 있습니다.
내가 비록 유명한 사람이 안 되어도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면 내 이름 값을 다하여 조용히 이름없이 모든 것을 긍정하고 이 삶을 기쁨과 감사와 찬양으로 사는 사람은 될 수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유다는 시리아로,아라비아로,페르시아로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특별히 가장 많은 활동을 한 중심지는 아르메니아입니다. 그 도시에서 그는 바돌로매라는 제자와 둘이서 동역하면서 A.D. 301년에 벌써 그 나라가 기독교화될 만큼 복음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그는 다시 해외 선교를 나갔다가, 시리아라는 곳에서 칼을 맞아 마지막 순교를 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