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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과 안식일논쟁'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1.03.10 금식과 안식일 논쟁 (마가복음 2:18-28)

금식과 안식일 논쟁 (마가복음 2:18-28) 

 

1. 18절과 24절을 조용히 읽어주자. 

바리새인의 마음으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편견을 다 지워보자.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 보자.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대표였다.  

그들은 검소했다. 

그들은 무엇보다 율법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시어 이스라엘의 옛 영광을 회복시킴이라 믿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들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이 임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더 열심을 내기 위해 금식했고, 안식일을 엄격히 준수했으며, 그리고 자기 자신을 꺠끗이 지키기 위해 열심을 냈다. 자기 거룩을 위해 애썼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국가대표인양 이스라엘 나라의 믿음의 보루라 여겼다.  

 

자, 이제 내가 이 바리새인들의 한명으로써 예수와 밑 그의 제자들의 행동들을 보았다고 해 봅시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자 이들과 함께 바리새인들의 심정을 대변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해보도록 합시다. 

지금 이 질문을 하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어떤 마음입니까? 

 

저 북쪽 갈릴리 마을에서부터 들리는 소문. 혹시 메시야가 아닌가?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아닌가? 

그런데 그 제자들은 어부이거나 어제 나눈 마태와 같은 세리. 

그리고 금식도 하지 않고 모이는 곳 마다 흥청망청 노는 것만 같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마져도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동조했다. 

그들은 회개의 세례, 회개의 금식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무리였다. 

 

예수 및 예수의 제자들, 그리고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율법주의자들의 갈등이 심화되는 장면이다. 

많은 기대들을 하면서 예수와 제자들을 주시했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2. 19절을 읽어주자. 

예수님은 자신들과 함께 있는 자들을 향해 신랑과 함께 있는 혼인 집 손님이라고 했다. 

혼인 집 손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1) 어떤 모습들이 떠오르는가? 

감격 기쁨 감사.... 사랑

 

2) 지금 제자들의 모습은 혼인 집 손님이라 여겨질 만한가? 

자기들과 함께 한 예수께서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소외받던 자들에서 관심의 중심에 선 자들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기쁨과 치유, 회복과 풍성함이 있다. 무엇보다 동거동락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룬다. 예수의 공동체는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혼인잔치집이다. 

 

바리새인 공동체 - 거룩을 추구하지만 그 거룩은 항상 금욕적이고, 긴장되어 있었으며, 자유함이 없었다. 

                       - 항상 남들의 시선과 자기에 대한 절제가 팽팽히 그들의 삶을 지배했다. 

                       - 말씀이 자기 자신을 향할 때는 거룩함을 향한 통로가 되고 은혜의 장이 되며 교제를 위한 마당이 된다. 

                       그런데 그 말씀을 통해 남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면 그 말씀은 정죄가 되고, 비교가 되며, 우월하거나 열등해지는 통로가 된다. 

                      

- 아직도 유대인들은 예수를 인정하지 못하고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더 강조한다. 그들에게 맞는 메시야를 여전히 기다린다. 그 메시야는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메시야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열심히 일해놓고 말이나 태도로 다 까먹는 자들이 있다. 

바리새인들은 남들보다 열심히 한다는 것 때문에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기들보다 못한 자와 어울리는 자를 인정하지 못한다. 

 

에덴 동산 - 선악과를 먹기 전 - 아담과 하와는 죄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늘 순종했을까? 불순종할 때는 없었을까? 

게을렀을 때는 없었을까? 그런데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동산에서 그들을 죄 있다 하지 않는다. 

그들 자신이 선악의 기준이 되어 이제 내가 선악의 기준이 되어 살고자 하자마자 그들의 운명은 이미 죄인이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그 기준도 때로는 주님 보시기에 옳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옳지않다고 믿는 그 기준이 때로 주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기준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항상 그분께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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