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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주일예배설교

한 밤 중에 부르는 노래 (합 3:16-19)

by 소리벼리 2022. 8. 28.

한 밤 중에 부르는 노래 (합 3:16-19) 

 

[합 3:16-19]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1. 서론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냐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살아가는가!"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택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는 책. 

그런데 창세기 강해를 보았듯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근심과 걱정이 끊이질 않는 삶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송이 원망과 불평으로 변하는데 걸렸던 시간 - 단 3일 - 물이 없음으로... 

물이 없다는 것 - 은혜가 끊어졌다는 것

그들의 삶에 정말 은혜가 사라졌나? 

광야 40년동안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나날 - 하늘에서의 만나 (말씀)이 공급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을 이끌고, 

모세와 아론과 같은 지도자 - 그런데도 광야길 40년의 세월 - 근심과 걱정, 불안의 연속

 

그러한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 - 내 영혼의 밤, 깊은 밤, 흑암

- 안 믿는 자들의 상태가 아니라 믿는 자들, 신실한 자들에게도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상태 - 

은혜가 넘치더라도 어느 순간 갑작스레 찾아오는 내 영혼의 공활상태, 

-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일 수도 있고, 주위의 상황 때문일수도 있고, 사회적인 어떤 사건이나 정치적 혼란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영적 공황의 상태는 삶의 어느 순간, 다양한 이유로 찾아온다. 

 

오늘은 구약 시대 하박국이라는 한 선지자를 통해 그가 당한 문제가 어떤 것이었나? 그는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고,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여전히 다양한 이유로 은혜없이 영적 공황을 경험하는 나 자신의 삶을 살펴 보 수 있기를 바란다.  

 

 

2. 하박국의 배경 

  • 그의 이름은 "포옹"이라는 의미이다.

 

하박국은 예레미야와 동시대 사람으로 바벨론에 의해 유다나라가 파멸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던 흑암의 시대의 선지자였습니다. 피 토하듯이 말씀을 전했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귀 기울이지 않았고, 민족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형제국가였던 북왕국이 앗수르에게 망했어도 남왕국 유다는 태연하게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살아갔습니다.

바벨론이 갑자기 떠올라 앗수르와 애굽을 차례로 제치고 주변 지대를 장악해 갑니다. 그리고 급기야 유다를 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 옵니다. 

 

이 때의 상황을 하박국이 이렇게 표현합니다. 

[합 3:16] - 외부적 상황 (사회적 상황)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얼마나 두렵고 절망했으면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렸겠습니까? 

지금도 어려운데 닥쳐올 환날 날은 더욱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내 뼈가 썪는 것 같다고 하고 온 몸이 집안 처소에서조차 떨린다는 것입니다. (처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해야 할 가정, 그 가정 안에 안식이 없다)  

 

온 몸과 뼈가 다 떨리는 위기의 때에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은 어떻습니까? 

[합 3:17] 내부적 상황)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이 한 절에 "없다"라는 표현이 다섯 번, 무성하지 못하며까지 합치면 여섯 번이나 등장합니다. 위기는 닥쳐오는데, 온 몸은 절망하는데 내가 가진 것을 보니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그저 완전히 없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그런 인생의 캄캄한 밤을 보내는 하박국이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합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뿐만 아닙니다. 

모세도, 다윗도, 바울도 한참을 자신들의 처한 칠흙같은 밤을 하나님 앞에 아뢰다가도 그들의 끝은 언제나 찬양으로 마칩니다. 의례껏 하는 형식이 아닙니다. 흑암 중의 보화를 캐내는 것이고 은밀한 중에 재물을 주시듯 그들의 입술에 찬양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사 45: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바벨론의 압제 하에서 흑암의 밤을 지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준다는 것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값진 진주를 장사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흑암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케 하시고 역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의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철저히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한동대학의 세워진 기록을 담은 [갈대상자]의 서문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습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길이었지만 그 길은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 나는 길목 길목마다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수없이 지켜보며 그 분의 손에 이끌려 길을 떠난 사람은 그 길이 아무리 캄캄하다 할지라도 가장 안전하다고 감히 외칠 수 있는 간 큰 사람이 되어 갔다." 

바로 흑암 중의 보화를 캐내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찬양, 이 고백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안 그런데 입술로만 외치는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1장부터 흘러오는 하박국의 마음의 흐름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1장: 하박국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이 두 번 반복됩니다. 

첫 번째 기도 

[합 1:2-4]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 지금 그들이 처한 현실은 흑암처럼 어렵기만 한데 하박국의 눈에 비친 가장 큰 고통은 유다 백성이 그러한 현실에도 죄악으로, 패역으로, 갑탈과 강포, 변론과 분쟁, 정의가 없고, 말씀도 없는, 전혀 정신 못차릴 뿐만 아니라 악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 외부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급박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는 유다인들을 향한 고통-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시행되지 못하는 하나님의 나라, 지금으로 말하면 부패로 전혀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교회에 대한 부르짖음. 

 

하나님의 응답 

[합 1:6]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  무슨 소리입니까? 유다 백성의 죄악이 극에 달했으므로 그들보다 더 악하고 강한 갈대아 사람, 바벨론 사람을 일으키어 그들을 삼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응답에 놀란 하박국이  기가막혀 더 크게 기도합니다. 

[합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 뭐라 기도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이게 말이나 됩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못을 했다고 그래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배하지도 않는 이방인들을 통해 성전을 짓밟고, 허물어 낼 수 있습니까? 기도라기 보다는 항변을 하는 것입니다. 

 

 

2장의 주된 내용은 무엇입니까? 

(1절)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맗씀하시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 내 파수하는 곳에 선다 - 토요 아침예배 - 네 자리에 앉고 깨어있으라, 그 자리를 떠나지 말라. 흑암의 깊음 중에서도 그 처소를 떠나지 않는 것, 예배의 장소, 기도의 장소를 떠나지 않는 것 

->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기다리고 바라본다 -> 기도의 마침 (그의 대답을 듣는 것, 바라보는 것) 

 

2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라. -> 제발 잊어버리지 말아라. 마음 판에 깊이 새기라. 

->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 삶이 아무리 분주하고 네 마음이 흔들릴지라도 내게 네게 주는 말씀 놓지지 말아라. 늘 기억하고 붙잡으라. -> 은혜는 경험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간직하고 붙잡는 자의 것이다. 

 

 

[3절)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디라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 하나님이 주신 말씀, 내가 붙잡고 있는 레마의 말씀, 은혜의 말씀, 하나님의 정한 때, 그 D-Day가 반드시 있다. 더딜지라도 기라리면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할 것이다. (믿음의 또 다른 표현은 신뢰하고 기다리는 것

 

(4절]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2장을 꽤뚫는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재산이 늘어나고, 은행의 잔고가 늘어나고, 부동산이 늘어가고...좋은 직장, 좋은 대학..세상 일이 잘되는 재미로 살아가지만 하박국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재미로 살아가는 것이란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단다.

 

이 말씀을 들은 하박국은 더 이상 하나님께 따지지 않습니다. 항변하지 않습니다. 바벨론이 유다 백성을 어렵게 할지라도 하나님은 종국에 악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엄청난 흑암과 어둔 밤같은 인생일지라도 그는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나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아무 것도 없지만 나의 아버지 하나님은 그분을 믿는 모든 자의 능력이요, 구원이요, 생명인 것을 알았습니다. 

고통의 현장과 아픔의 현장 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뚝 서 계신 모습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를 둘러싼 모든 "없음의 상황"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3장으로 가면 하박국은 지나온 자신의 삶과 이스라엘의 지나온 과거를 돌아봅니다. 

[합 3:3]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 데만과 바란- 바로 시내산과 동일한 지명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광야 땅에서 언제까지,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셔서 다가오셨던 곳,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주면서 약속해 주셨던 바로 그 곳입니다. 
  •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다. 내가 너희를 돌본다. 다스린다"는 말씀을 주시고 확인시켜 주신 장소가 데만이고 바란 산입니다. 

 

위기에 처해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어려움이 없었던 자가 없습니다. 환란이 없었던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환란 중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신뢰하게 되었고 결국 승리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예배는 과거에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여 현실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여 현실로 가져오도록 절기를 정하여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같은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만찬 사건을 통해서 그 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념하라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끌어와서 오늘 여기에서 그것을 다시 맛보고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기억하고 기념하여 현실로 가져오는 시간입니다. 

군대에서 9시에 점호를 끝내고 10시에 취침. 가장 군기가 들어있는 시간 - 청소상태 및 하루의 일과를 장교가 와서 점검하는 시간 - 그 점호가 끝나면 취침 전까지 TV를 틀어놓고 뉴스를 본다. -> 아 내가 저런 세계에 살고 있었지. 군생활을 끝내면 내가 다시 저 세상으로 갈테지... 막연하였지만 내가 돌아갈 집, 사회를 보여준 시간 - 예배는 그런 것이다. 

이 곳이 진짜가 아니라 내가 갈 세상이, 내가 가야 할 집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짧은 한 시간.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는 것 입니다. 

과거에 나를 인도하시고 도와주신 하나님을 오늘 여기에서 만나게 되고, 경험하게 되면, 미래에도, 장래에도 끝까지 나를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는 비전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과거의 것을 이끌어와서 현재에 경험하는 것임과 동시에 미래의 사건을 끌어당겨서 여기 내가 처한 현실에서 맛보는 것입니다. 장래 하나님의 나라에서 맛보게 될 혼인잔치를 끌어당겨서 지금 칠흙과도 어두운 흑암의 현실에서 맛보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다 끊어진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지금이 제일 힘들다. 지금 처럼 힘든 날이 없었다." 

여러분 그런데 그 말 진짜입니까? 진짜 지금보다 더 힘든 때가 없었습니까? 

 

있었지요? 고통스러워 밤 잠 못누리고, 서럽고 외롭던 시간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시간들, 그 순간들 지금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나갔지요? 잘 기억도 안나지요? 그럼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은 어떨까요? 또 지나가고 기억도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은혜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과거의 구원과 미래의 하늘 나라 사이에서 각자가 선택한 배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객일 뿐입니다. 

지나온 삶들을 돌아보십시오. 지금 보다 힘든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아픔이 있었지만 동시에 은혜가 있었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문제들이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큰 지나가버리지 않았습니까? 

 

돌이켜 보면 은혜 아닌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답답하고 안타까운 날 들 중에서 인생의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손 길이 없었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고통은 과거도 잊게 만들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다 끊어버리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다가올 미래를 소망하게 합니다. 

우리는 죄악 중에서도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여전히 연약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장받았습니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은혜의 과거와 은혜의 미래 속에서 지금을 이기는 것입니다. 

 

  • 하박국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다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늘 옳았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덜 가치있는 것을 가장 가치있다 말하고, 덜 좋은 것을 가장 좋은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행복하고 좋은 것을 아시고 주십니다. 

농부의 고백: 한 낮의 더위가 너무 뜨거워 일하지 못할 때,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그 때조차 곡식은 익어갔습니다. 한겨울의 추위가 온 몸을 얼어붙게 해서 논밭을 들여다볼 수 조차 없을 때에 땅 속의 온갖 병충들이 다 죽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난 내 손길이 다 열매인 줄 알았는데, 정작 농작물은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그 때에 자연이, 자연의 주인이신 당신께서 모든 열매를 익게 하시고 열게 하시고 또 다음 해에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 이생진 시인의 하늘을 본다 - 개미에 관한 많은 시를 남겼는데 한 구절이 기억나는 시

 

가진 것이 없으면 하늘을 자주 보게 된다. 

가진 것이 많은 개미는 하늘을 보지 않는다. 

머리를 땅에 박고 땅만 뒤진다. 

 

물론 성실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하늘을 잊고 땅만 뒤지면서 사는 개미들은 자기가 가는 길도, 본향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내 인생의 과거와 미래, 그 방향을 바라보며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침입으로 유다가 멸망당하면서도 그저 악행을 그치지 않고 멸망당하는 자기 민족을 바라보며 부르짖었습니다. 자기들보다 더 악한 자들에게 핍박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부르짖음을 노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의 과거를 기억하게 하시고, 현실을 넘어 흑암 너머의 소망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래사 하나님의 백성은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하박국은 모든 없음의 상황에서도 난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난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내 마음이 무언가에 의해 요동치며 한 밤, 흑암의 때를 경험할 때 들어온 구절 - 

난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난 오직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삶을 사는가? 왜 그렇지 못한가? 

그러면 하박국은 어떻게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하며 기뻐할 수 있었는가? 

그가 당한 상황 - 국가적 재난의 상황 

그의 현실 - 없고 없고 없고의 연속....

그 때 그가 한 것 - 그가 파수하는 곳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린 것 

그 전에도 그는 부르짖고 기도하던 자 

그런데 그 응답되지 않는 기도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린 자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너 믿음으로 살고 있니? 날 정말로 믿니? 

네 마음판에 내 말씀이 새겨져 있느냐? 네 인생이 너무 바빠 달릴지라도 그 말씀 잊지 않고 붙잡고 있는가? 

은혜는 경험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붙잡고 간직하는 자의 것이다. 난 언제나 너에게 은혜를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