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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강 노르취의 줄리안과 마음의 간구 묵상기도     

by 소리벼리 2016. 10. 7.

제 7 강 노르취의 줄리안과 마음의 간구 묵상기도     


I. 노르치의 줄리안 (Julian of Norwich 1343-1423)  


  1. 생애  

  • 그녀의 삶이나 이름 조차도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14세기 말 영국의 노르치에 있는 성 줄리안 교회에 붙어있는 작은 방에서 평생을 은수자로 살았던 여류 신비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신실한 여성이 택할 수 있는 신앙적인 삶은 수도원에 들어가 수녀가 되거나 은수자로 사는 것 뿐이었다. 은수자는 주교나 수도원장의 면접을 거쳐서 허락을 받고 두 명의 하인을 두게 했다. 그리고 창문에는 두 개의 창문을 두어 하나의 창문은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두었고, 하나는 내부를 향해서 상담이나 영적인 지도를 받으러 온 사람들을 만나 대화 할 수 있게 하였다. 노리치 시에는 은수자가 많이 살았고, 이런 은수자들이 많다는 것은 그 도시를 위해서 축복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시민들은 기꺼이 거룩한 남녀 은수자들을 돌보아 주었다. 은수자들의 역할은 단지 영적인 도움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의 기도와 영적 지도는 공동체 전체에 유익이 되었다.
  •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 일대는 흑사병(1348년부터)이 창궐하고, 백년 전쟁 (1337-1453)과 농민 혁명(1381), 교회의 커다란 분열의 위기(1378-1417)으로 영국 전체가 혼란했던 시기였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피폐된 상황이 모두 인간의 죄로 말미암았고 하나님께서 이에 대하여 심판하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인간의 부패된 죄성과 이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설교나 글들이 많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 줄리안은 두 개의 텍스트로 이루어진 『계시』라는 한 권의 저서를 남겼다. 이 저서 집필의 목적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으로 삼았다. 이 작품은 길이가 짧은 텍스트(Short text)로 알려진 첫 번 째 작품과 긴 텍스트로 알려진(Long text) 두 번 째 쓴 작품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 텍스트는 『계시』(Showings)라는 제목으로 1373년 5월 8 일에 그녀가 하나님께 받은 환시에 기초하여 쓴 것이다. 두 번째 텍스트는 줄리안이 환시를 받은 후 20년간 줄리안 교회의 은둔소에서 기도와 성찰, 신학화 작업을 거친 뒤에 그녀가 체험한 환시의 의미를 더 깊게 해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첫 번째 텍스트의 네 배의 길이로, 신학적 주석을 붙여 완성시킨 것이다. 줄리안의 사후 거의 2세기 동안이나 그녀의 『계시』는 잊혀진 채 무시되었고 17세기에 와서야 최초로 출간되었다. 출간 후 이 책은 영국 여성이 최초로 영어로 쓴 작품으로서 그 신학적인 깊이와 섬세한 표현으로 영성 문학의 위대한 고전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줄리안은 각각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함으로써만 알 수 있는,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었다.
  • 환시를 받기 이전에 줄리안은 하나님께 세 가지의 은혜를 선물로서 주실 것을 청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실제로 동참하여 그 고통에 깊이 참여할 수 있는 은혜였다. 줄리안은 막달라 마리아 처럼 십자가 밑에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며 그리스도의 고통을 증거하기를 원했다. 둘째로 죽기까지 신체적인 병을 앓을 수 있는 것으로, 줄리안은 신체적 병과 더불어 모든 종류의 신체적 영적 고통을 청했다. 이런 태도는 당대에 유행했던 일반적인 신심행위 중의 하나였다. 셋째로 하나님의 선물로써 세 가지의 상처를 경험할 수 있는 은혜였다. 세 가지의 상처란 줄리안이 일생 동안 느끼게 될 통회의 상처, 연민의 상처, 하나님을 갈망하는 지향으로부터 느끼게 될 상처였다
  • 1373 년 5월 8일, 그녀가 삼십살 육 개월 되던 해, 그녀는 칠일 동안 심한 병으로 죽도록 아팠다. 그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다시 소생할 수 없으리라고 판단했다. "나 또한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줄리안은 젊은 여성으로 하나님께 더 잘 봉사하며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죽음을 목전에 두고 두려움 없이, "나는 마음을 다하여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맡겨드렸다"고 적고 있다. 줄리안이 본당 신부님에게 마지막 병자성사를 받는 순간, 사제는 십자가를 들고 그녀에게 십자가를 보도록 명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당신의 창조주이며 구원자의 상징을 당신께 가져왔으니 이것을 보고 힘을 얻으십시오." 줄리안이 한 동안 죽음의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보였으나 그녀의 생명은 놀랍게도 회복되었다. "별안간 나의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경련이 일었다. 그리고 나는 전보다 좋아졌다." 새벽 4시, 새벽의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올 때, 첫 번째 환시를 체험했다. 죽어가던 줄리안은 눈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 고정시키고 있었는데, 뜻밖에 예수의 가시관에서 흘러나오는 성혈을 보았다. 그 이후 새벽 4시부터 오후 3시까지 15차례의 환시를 보았으며 낮에는 정지되었다. 그 날 밤에 1차례의 환시를 또 보았다. 이 16 차례의 환시를 기록한 것이 오늘 날 우리에게 알려진 『짧은 텍스트』이다. 이 환시는 주로 성 삼위와 예수의 수난에 관한 것이다.  

2) 특징 

A. 중세 여성 신비가 

  • 줄리안의 이 <계시>도 중세 여성신비가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 특징 중 하나는 삼위일체와 같은 신학적 용어를 이성적으로 분석하려 하지 않고 일상적, 혹은 열정적인 사랑의 용어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ex. 잔느귀용의 <아가서 주석>) 
  • "이 계시는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지혜롭게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내게 주어졌다....진실로 우리의 연인은 영혼이 온 힘을 다해 그 분을 의지하기를 바라시며 우리가 항상 그 분의 선하심을 의지하기를 바라신다."

B. 기도  

  • 기도에 관한 줄리언의 글 중 가장 통찰력 있는 부분은 하나님이 과연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는가 하여 그녀가 절망에 빠져 있는 순간 나온 듯한 글이다. "내가 너의 간구의 근거다. 네가 품어야 할 것은 나의 뜻이다. 그러면 나는 네가 그것을 원하도록 해 줄 것이고 네가 그것을 간구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네가 무언가를 간구할 때 그 간구하는 것을 마음에 품지 않고서야 어떻게 구할 수 있느냐?" "아무 느낌이 없을지라도, 아무것도 볼 수 없을지라도, 건조하고 메마른 시기에, 아프고 연약할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전심을 다해 기도하라. 그 때 너의 기도가 나를 가장 기쁘게 할 것이다. 너에게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지라도 말이다. 내가 보기에 살아있는 기도는 그런 것이다."  수년간의 기도의 삶을 통해 줄리안은 이렇게 선언한다. "기도는 우리 영혼을 하나님과 하나되게 한다."  
  • "하지만 이런 느낌은 잠시만 지속되었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난 슬픔 속에 홀로 남겨졌다. 삶의 권태가 몰려왔고, 나 자신이 싫어졌고, 살아갈 힘도 잃어버렸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만이 유일한 위안과 위로였다. 난 그것들을 붙들었다. 느낌은 거의 없었음에도." - 느낌이 없는 기도?-> 근거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 
  • "우리 영혼이 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저 찾고(seek) 아파하고(suffer), 신뢰(trust)하는 그 일 뿐.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하나님을 찾는 일이야말로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그러다 그분의 얼굴을 뵙게 되는 영혼은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C. 그리스도 

  • 그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속죄에 대한 장황한 이론으로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많은 피를 흘리신 몸...흰 살갗, 사랑스런 몸에 가해진 심한 채찍질로 부드러운 살갗에 심한 상처를 입으신 것을" 가까이 다가가서 본다. "뜨거운 피가 엄청나게 흘러내려서, 살갗도 상처도 볼 수가 없었다. 피밖에 없는 것 같았다." 
  • 아담이 넘어졌을 때, 하나님의 아들도 넘어졌습니다. (When Adam fell, God's Son fell) 

D. 어머니 하나님

  • “진실로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또한 진실로 [우리] 어머니이시기도 하다.”(LT 59)  줄리안의 체험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하나님의 여성성"에 대한 통찰로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라고 고백한 점이다. 
  • 하나님을 어머니에 빗댄 사람이 줄리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줄리안의 말은 하나님은 ‘말하자면’ 어머니 같으시다(like a mother)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말 그대로’ 어머니이시다(is Mother)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우리 어머니이신 것은 예수께서 우리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왜 사람이 되셨나?”하는 질문에 줄리안은 이런 답을 내놓는다. 하나님께서는 “만사에 [우리] 어머니의 일을 하시려고” 성육신하셨다.(LT 60) 예수께서는 자신 속에 우리를 품고 계시다가 “전무후무한 극심한 진통과 산고를 겪으셨고, 죽기까지 하셨다.”(LT 60)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Passion)은 우리를 낳으시려고 성자 하나님께서 기꺼이 감수하신 산통이었다. 그 출산의 현장에 “피와 물”(요 19:33)이 쏟아졌다. 여성의 눈으로 성서를 읽는 이들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쏟으셨다는 요한복음서의 말씀에서, 그렇게 물과 피를 쏟으며 새 생명을 출산하신 ‘어머니 예수’를 보았다. 

         E. 만물안에 깃든 하나님의 충만

  • 줄리안은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만물이야말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의 표현임을 이해했다."하늘과 땅과 만물이 위대하고 넉넉하며 아름답고 선하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만물과 모든 복된 일을 가득 채우며 끝없이 흘러 넘친다... 하나님은 모든 선이고 모든 것 안에 있는 선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나는 하나님과 우리의 실체 사이에서 아무런 차이도 보지 못한다. 이를테면 모두가 하나님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실체는 하나님 안의 피조물이다.
  • 그리고 나서 나는 (마음의 눈으로) 한 순간 하나님을 보게 되었는데, 그 비전에서 나는 그분께서 만물 안에 계신 것을 보았다......만사는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죄는 없다......(따라서) 죄란 그저 없는 일이다(sin is no deed). 
  • 좋은 것을 좋은 것이게 하는 그 '좋음'(goodness)은 곧 하나님이다. 어떤 것이 좋은 건 하나님을 가졌기 때문이다. 
  • 하나님보다 작은 것은 그 무엇도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다. (all that is less than He is not enough for us) 
  •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은 곧, 모든 것들에 깃들어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 이 계시에서 주님께서 내게 어떤 자그마한 것을 하나 보여주셨는데, 보니, 개암 크기만하고 동그란 무언가가 내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내가 유심히 보며 물었다, "이게 대체 뭘까?" 대답이 들려왔다, "창조된 만물 전체이니라."(It is all that is made) 나는 그 조그마한 것이 존속되고 있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어찌나 미미한지 금방이라도 없어져 버리고(sink into nothingness) 말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깨닫게 해주시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것은 지금까지 존속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만물이 존속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 줄리안은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을 보는 은혜로운 비전에 의해 압도당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것이 지금껏 존속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만물이 존속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LT 5) 하나님이 ‘크신’ 분인 것은, ‘사랑’이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어찌 큰지 그 사랑 앞에서 우주는 고작 콩알만 하다. 우주를 무한하다 여기기 쉬우나, 터무니없는 상상이다. 우주는 무한하지 않다. 무한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무한하다. 그리고 그 무한한 사랑이 “당장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이 세상을, 만물을, 만인을 지금 이 순간도 떠받쳐 주고 있다.  

  • 줄리안이 살던 중세는 죄, 저주,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주제에 강박 되어 묶여 있었다. 줄리안은 이 비관론에 대해 하나님의 선하심, 사랑, 자비로 대응했다. 줄리안은 수년간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해 심판이나 영원한 벌이라는 두려움이 야기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을 괴로워했다. 그러나 줄리안은 용맹스럽게도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전적인 신앙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갈등을 서서히 풀어나갔다 
  • "죄는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선으로 밝혀질 것이고 종국에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죄가 고통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끝에 가서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II. 마음의 간구 묵상 기도 (Meditation on the Herat’s Longing) 

  • 침묵으로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내 마음 안에 있는 깊은 간구를 발견하도록 한다. 
  • 요한 복음 1: 35-38절을 천천히 낭독하라.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 2분정도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라. 자신이 제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고 예수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구하느냐?"하고 묻고 있는 현장을 생각하라. 
  • 본문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낭독하고 다시 2분 정도의 묵상 시간을 가지라.  
  • 예수의 "무엇을 구하느냐?"라는 질문에 당신은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 지금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간절히 원하는 것과 하나님/예수 그리스도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혹은 전혀 관계가 없는가? 단순히 당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할 때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당신의 깊은 간구를 발견 한 것은 일치하는가, 혹은 다른가? 

  • 당신 마음 속 깊은 간구를 발견케 하신 성령님께 감사드리고 다시 한 번 그 소원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 간구하고 감사함으로 기도를 마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