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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제일교회/주일예배설교

역대하 12장 23-32절 잇사갈 교회, 잇사갈 성도

by 소리벼리 2021. 10. 24.

역대하 12장 23-32절 잇사갈 교회, 잇사갈 성도 

 

본문의 배경 : 11장에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후에 다윗의 나라의 장수들과 지도자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장면 

 

12장 1절 -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로 말미암아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그에게 와서 싸움을 도운 용사...

다윗이 왕은 커녕 사울을 피해 도망다닐 때에 다윗에게 와서 그를 도운 사람들 

22절 -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그리고 나서 23절 - 싸움을 준비한 군대 지휘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그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 

-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 헤브론이라는 작은 지역의 왕이 되었을 때에 모여들었던 사람들.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람들을 모이게 하신다. 

 

24절 - 유다자손들 - 6천 팔백 : 방패와 창을 들고 전쟁하는 자 

25절 - 시므온 자손 - 싸움하는 자 - 칠천 백 

26절 - 레위 자손 - 4천 육백 

27절- 아론의 집 - 삼천 칠백(제사장 가문) 

28절 - 사독 (또 다른 제사장 가문) - 이십 이 

29절- 베냐민 (사울의 자손이지만 다윗에게로 넘어온 자) - 삼천 명 

30절- 에브라임 - 이만팔백명 

31절 - 므낫세 - 이만 팔백명 

 

다 수천에서 만명이 넘는...

 

그중에 자나가듯 소개된 지파의 자손 -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

 

그 뒤에 나오는 스불론, 납달리, 단--- 숫자가 훨씬 더 많아져서 오만, 삼만, 십이만....

잇사갈을 축으로 그 숫자가 훨씬 더 많아진다. 

 

그 중심에서 가장 초라하게 소개된 지파 - 잇사갈: 눈이 멈추게 되는 구절. 

가장 작아 보이지만 그들이 결코 작아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덧붙여진 설명 때문이다. 

 

그외의 족속들 - 병사들, 싸우는 자, 전쟁하는 자. 

그런데 잇사갈 자손에게 덧붙여진 설명 -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 즉 이스라엘이 행하여야 할 본분을 아는 우두머리, 그리고 또 하나- 그들은 이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다. 

 

1. 시세를 안다. - 그 시대의 흐름을 안다. 흐름을 안다는 것은 방향을 알고, 그 앞을 통해 뒤를 미리 예견하는 자이다. 

2. 이스라엘의 본분을 안다 - 이 급변하는 시대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행하고 대처해야 할 것을 안다. 

3. 그리고 그들이 나머지 모든 군사들을 통솔할 것이다. 

 

잇사갈 - 한 번도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두드러진 적이 없었던 지파였다. 

잇사갈은 야곱의 첫번째 아내였던 레아에게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다음으로 난 다섯번 째 아들이다. 

 

창세기 30장에 잇사갈을 낳게 되는 사연이 길게 소개되는데 간단히 소개하면 

레아는 자녀가 있었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반면에 라헬은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가 없었다. 라헬은 자녀가 없자 자신의 하녀였던 빌하를 통해 자녀를 낳자 레아도 자신의 하녀였던 실바를 통해 아이를 낳게 한다. 그렇다보니 라헬 뿐만 아니라 레아의 태도 닫혀버렸다. 

하루는 레아의 아들인 장자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발견하고 가지고 왔다. 뿌리가 사람의 다리 모양으로 통통해서 불임을 해결해주는 임신촉진제로 알려져 있는 식물이다. 아이를 원하는 라헬이 그것을 보고 달라고 하니 레아는 거절했다. “네가 내 남편을 빼앗고도 또 합환채까지 빼앗으려고 하느냐!” 반드시 먹어야 하겠다는 욕심에 라헬은 합환채대신 그 밤에 남편을 레아에게 보낸다.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잇사갈이다. 잇사갈의 이름의 의미는 그래서 합환채를 통해 얻은 아들이므로 "값을 치루고 난 아들"이란 의미이다. 

값을 치루고 난 아들이란 의미는 보다 넓게 예수께서 값주고 산 자녀라는 의미로 확장할 수 있다. 

 

한 지파의 보다 깊은 의미는 야곱과 모세가 그들에게 한 축복의 내용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1) 야곱의 축복 (창세기 49장 14-15)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양들- 돌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귀는 주인의 일꾼이다. 돕는 자이다. 동역자이다. 잇사갈은 튼튼하고 힘쎈 동역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는 쉴 곳을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 메시지 성경) 현대어로 쉽게 그 의미를 해석한 성경 

그는 그가 머문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그 땅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알았기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스스로 종처럼 일하는 것을 택한다. 

 

양처럼 그저 목자의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일하는 것, 그와 함께 머무는 그것의 귀함과 아름다움을 깨달아 스스로 종된 삶을 사는 것 - 잇사갈지파가 얻은 축복이다. 

 

2. 모세의 축복 (신명기 33장 18절)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그들이 백성들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 장막에 있음으로 즐거워하라. (장막 -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 예배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동역하는 것) 

- 백성들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한다 - 무리가 아닌 제자로서 사는 것, 그 제자로서 사람들을 초대하는 삶 

- 거기(산)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의롭다 - 관계가 바르다. 바른 제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삶) 

바다의 풍부한 것 - 세상의 무지개를 쫓는 삶이 아닌 하나님 창조하신 세상을 풍부히 누리는 삶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말씀의 깊은 것, 복음의 깊은 것, 십자가의 비밀, 신앙의 신비를 아는 삶) 

 

유다지파나 레위지파의 축복이 부럽지 않은 최고의 축복이 아닐까? 

 

3. 사울에서 다윗으로 

사울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다윗이 왕이 되기도 전에 다윗에게 모여든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그 중에 극히 소수였던 잇사갈 지파는 세상을 볼 줄 알고, 그 세상 속에서 교회로서, 성도로서 자기가 행할 본분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전쟁하러 모인 수 많은 다윗의 백성들을 인도하는 리더자가 된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지만 다윗을 시기하며 스스로 왕의 직분에서 떨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사울을 따르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윗은 궁극적으로 오실 메시야의 나라, 그리스도가 왕 된 나라의 예표이다. 맛보기이다. 

수 많은 교회가, 성도가 그 그리스도의 나라를 쫓아 그 분을 따르지만, 나는 우리 트레이시제일교회가 이 시대를 읽고 바라보며, 다가올 세대를 예측할 수 있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개척되고 창립된 교회이다. 

개척의 일성으로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준비하자고 했지만 그 사이 시대는 포스트코로나가 아닌 위드코로나, 과거로서의 회복이나 복귀가 아니라 뉴노멀 시대를 말하고 있다.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는 것은 이제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에도 또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인류학자들이 코로나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말하고 그것이 실현되고 있다. 

 

비정상 (Abnormal)이 아니라 뉴 노멀 (New Normal)-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일상을 준비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내외적으로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것이 교회다. 

대면예배가 비대면 예배로, 모일지라도 이젠 축소해서, 선별해서 모이게 됨으로 많은 교회의 성도가 줄어들고, 교회를 떠나고, 교회 자체가 사라져 버리고 있다. 

밖으로는 교회는 코로나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공공의 안전과 이웃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서 교회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위기를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고, 또 다시 사회를 이끌어 구원의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지금 필요한 교회의 비전은 빨리 코로나 이전의 정상으로 돌아가려는 기대, 과거로의 복귀에 대한 희망대신 새롭게 다가올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미 코로나 이전의 교회는 사회로부터 많은 신뢰를 잃어버리고 누구나가 교회의 위기, 영성의 위기를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잘못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 읽은 잇사갈 지파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 

그들은 시세를 알았다. 그 시대의 흐름으로 미래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행해야 할 것을 알았다. 바뀌는 시대의 교회의 본분, 성도로서의 본분을 알았다. 

이전과는 다른 교회의 사명, 선교, 구제, 예배, 교육, 공동체, 모든 것이 새로운 뉴노멀 시대에 맞는 교회와 성도로서의 본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소수이지만 그러한 모습으로 몇천 몇만이나 되는 다윗의 백성들을 지도하고 통솔했다. 

우리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 트레이시에 모인 작은 공동체지만 육신적 나이의 한계에 머물지 말고 이 시대를 볼 수 있는 지혜와 안목을 가질 수 있기를 축원한다. 

그리고 바뀌고 있는, 이미 바뀌어 버린 시대에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 교회와 성도로서의 본분을 알아 행할 수 있는 교회된 성도, 제자된 성도,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축원한다. 

그 모습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주위를 통솔할 수 있는 사명이 주어질 것이다. 

 

시대를 아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을 통해, 성령을 통해 우리의 눈을 열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본분을 아는 것은 곧 훈련받아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할 말이 많지만 내년의 교회의 비전과 우리의 본분을 찾기 위해 다음주부터 Redwood Glen이라는 기도원에 들어가 한주를 본려 한다 성도들 모두도 각자의 처소에서 기도하며 우리에게 잇사갈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