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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글 모음 /1993-1997 대학시절

서문

by 소리벼리 2012. 8. 23.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만큼 생각을 하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 안에 항상 자기와 전체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것이다. 내게 있어 시는 기도와도 같다. 기도하지 않는 날은 어쩐지 개운치 않은, 무언가 관계와 주체가 어긋난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를 쓰지 않는 시간은 대개 공허한 몸짓의 발광일 뿐이다.

 

잘 써졌건 부족하던 다른 사람과는 달리 난 내 글을 사랑한다. 남을 보여주기는 무엇하기도 하더라도 그 글을 읽고 삶을 회상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에 즐거움을 느낀다. 일종의 자족이다. 내 글을 남에게 보인다는 것은 글을 쓴다는 것과는 또 다른 결심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 자신을 공개하는 것이고 내가 꾸며 왔던 내 무의식의 치부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솔직함이 오히려 글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젠 그저 꾸밈없는 깨끗함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공부를 할수록 삶에 자신을 잃어가는 것은 나 자신의 존재를 깨닫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삶을 꾸준히 이끌어 가는 것은 내 존재 위에 날 인도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변함없는 내 실존의 이유이다.

 

꼬마 철학자로서가 아니라 이젠 진지하게 내 자신의 성숙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젠 정말로 어른을 준비할 때다. 어울릴 수 있고 이끌 수 있고 동시에 이끌림을 참을 수 있는, 그러나 현실에 무너지거나 비린내 나는 합리화 속에 내 이상을 잃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무지개를 간직한 시인이 되고 싶다. 감옥 속에 있을 지라도 삶을 노래할 수 있고 그러나 현실을 파악하고 그 속의 의미를 알 수 잇는 어른인 동시에 빛이 되고 싶다.

 

1993년부터 97년이라는 시간 속에 시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그 이후에는 학문적인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고 색깔을 넣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시들은 그런 목적이 없는 순수함이 배여 있는 글들이다. 그냥 일기와도 같은 내 삶의 기록이다. 살아온 내 숨결이다.

 

19998월 어두운 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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