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트레이시 제일교회/아침묵상 (마가복음 강해)

마가복음 5:21-43절 달리다굼 (연약한 자여 일어나라!!)

by 소리벼리 2021. 3. 21.

마가복음 5:21-43절 달리다굼 (연약한 자여 일어나라!!)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21절) 이방인의 땅에서 다시 유대인의 땅으로, 갈릴리 가버나움의 땅으로..

야이로의 사건과 12년동안 혈두증 앓던 여인 

  • 두 개의 사건이지만 결국 하나의 메시지 (액자 소설- 하나의 스토리 안에 또 다른 스토리가 있어서 의미를 강화) 
  • 혈루증 앓는 여인의 사건은 야이로와 제자들, 그리고 무리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 야이로라는 뜻: 깨인자, 각성된 자, 깨우친 자, 통달한 자 
  • 회당장이라는 것은 학교로 말하면 교장 선생님이고 교회로 말하면 수석 장로 되는 분이다. 시로 말하면 시장이다. 
    예수님 당시의 회당은 교육과 종교, 그리고 정치까지도 관할하는 종합기구였다. 거기의 수장이니까 지역에서는 이름꾀나 떨치던 유지였다. 그 동네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 사람을 깔보지 못했을 것이다.

     지식적으로나 물질적, 사회적, 명예 모든 면에서 그는 부족함이 없는, 아쉬울 것이 없는 자- 그런데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 

-> 그가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린다.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와서 그 위에 손을 얹으시옵소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옵소서" -> 그 딸이 잘 살 수 있도록... 

예수 앞에 자손짐이나 세상 권위를 다 내려놓고 딸의 죽음 앞에 겸손히 나왔다. 

 

  • 24절: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사며 에워싸 밀어다. 

             The two went together and a large crowed followed, pushing against Jesus.

             마을에서 가장 권위있던 그가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간청하며 겸손히 나아가자 예수와 함께 거닐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둘러쌓이자 예수와 그가 멀어지도록 밀게 된다. 

             사람들의 이목- 때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체면, 권위의식이 예수와 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베드로가 파도 속에서도 주님만 보고 걸을 땐 물 위를 걷다가 주위를 보니 빠지게 되는 것과 같이 무리가 야이로와 주님 사이를 떼어 놓는다. 

             

  • 회당장과 예수님 사이를 이렇게 큰 무리들이 밀면서 떨어뜨리려 할 때 일어난 사건이 혈루증 앓는 여인의 사건이다. 
  • 지금 딸은 죽고 있어서 예수님과 함께 딸이 있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무리들이 막고 있다. 사회적인 통념이, 고정관념이, 편견이, 체면이, 자신의 권위가 예수님과 나를 막고 있다.

그 찰나 일어난 사건이 혈루증 앓는 여인의 사건. 

  • 야이로와 혈루증 앓는 여인: 남자와 여자, 회당장과 부정한 여인, 유명인과 무명인. 
  • 혈루증 앓던 여인과 야이로의 딸: 고질병에 걸린 자와 지금 급히 병에 걸려 죽게 된 자. 어린 소녀와 나이든 여인, 딸은 곧 야이로의 이름으로 불림, 여인의 이름은 곧 병의 이름. 가난한 자와 부한자, 모든 것이 대조적으로 보이는 두 지체 사이의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고 주님만이 그것을 치료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 예수 앞에서는 야이로나 야이로의 딸이나 혈루증 앓던 여인이나 모두 똑같은 죄인이요, 도움이 필요한 자요, 구원이 필요한 자....그리고 믿음이 요구되는 자들... 
  • 혈루증이라는 것 자체가 부정한 병, "많은 의사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받았다.." 온 몸과 옷이 의사의 손에 치유되지 못하고 몸도 모든 물질과 함께 더 더렵혀지고 악화되었다. 그녀의 몸에 손을 대는 모든 자들도 똑같이 부정해졌다. 
  • 그녀는 문등병처럼 격리시켜야 할 환자였다. 12년간 혈루증을 앓아 오면서 그녀는 건강도, 돈도, 사회에서의 지위도, 친구도, 여성으로서의 고귀함도, 안식도 모두 다 잃어버린 여인이었다. 
  • 그런데 그런 그녀가 예수님 곁에만 있어도, 심지어 그 분의 옷만 만져도 그녀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용감하게 무리들 틈에 섞여서 예수님을 만진다. 
  • 그녀가 무리 틈에 끼인 다는 것, 그녀의 몸에 닿는 것마다 부정해지는 것-> 발각되면 죽는다. 그런데 그 위험을 무릎쓰고 그녀가 예수님의 옷을 만졌다! 
  • 이것은 그녀 자신 뿐만 아니라 그녀가 예수님을 만졌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발각되는 즉시 예수님 자신도 부정한 자가 되어 버린다. 자신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상황. 
  • 옷: 능력, 세례...
  • 예수님과 여인이 동시에 능력이 흘러 간 것을 깨닫게 됨. 아가서의 입맞춤. 하나님이 나를 만지듯 내가 주님을 만지듯- 만질 때에 일어나는 것- 하나님의 역사, 임재, 
  • 만짐 (Touching) - 마가복음의 중요한 이미지, 그 분이 죄인을 만짐으로 우리의 죄가 그 분께 전가되고 우리가 그 분을 만짐으로 그 분의 거룩하심이 우리에게 임했다!!! 
  • 그의 병의 근원이 말랐다. 소금으로 물 근원을 치유한 것처럼 모든 부정한 것이 깨끗함을 입었다. 언제? 그녀가 예수님을 만졌을 때...
  • 예수는 단지 그녀를 보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모든 무리와 제자들, 특별히 야이로가 그녀의 믿음을 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 "누가 나를 만졌느냐?" "제자들...: 수많은 사람들이 만졌을 겁니다..." "아니 믿음을 가지고 나를 만져서 믿음대로 열매를 거둔 자가 누군가?" 
  • 딸아! "누구의 딸인가?" 예수의 딸, 하나님의 딸....나를 믿는 자가 곧 내 형제요 내 가족이니라...
  •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때 아직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실 때에...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전한다. (35절)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5절) 

 

야이로에게 있어서 본격적인 신앙의 사건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이제까지는 야이로가 다급해서 예수님께 나왔다. 야이로가 한 것은 예수 앞에 엎드려 매달리고 간구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 절망의 소식이 들려온다. 

예수가 미쳐 손을 쓰기도 전에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이젠 어떤 일도 하지 못할 것이라 단정한다.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아는가? 지금까지는 야이로가 예수님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애썼지만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으신다

당황스러움과 절망에 빠진 야이로를 그가 붙잡으신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이제 혈루증 앓던 여인이 한데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믿기만 하라! 그 예를, 믿음의 모델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가장 먼저 하신 것은 자신의 가장 아끼는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가신다. 나머지 제자들과 무리들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신다. 

아마도 좀 전에 혈루증 앓는 여인에게서 멈추어 섰던 것을 탓했던 제자들을 떼어놓으셨을 것이다. 

집에 갔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어떤 사람들은 아이의 죽음을 통곡하며 운다. 

그리고 우는 사람들 곁에 있는 자들이 있다. 떠드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신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했는지 아는가? 

그들이 비웃더라

아주 짧은 한 문장이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을 비웃는 자들은 도대체 왜 어떤 자들일까? 

 

주님이 오셨는데 그 와중에서 우는 사람들 곁에서 떠드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 

아마도 예수님이 늦게 오신 것에 대해서 수근수근했을 수도 있다. 다 늦은 후에 도착해서 이제 당신도 별수 없다하면서 비웃은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어 보내셨다. 그들에게 거기 똑바로 서서 내가 하는 것을 잘보라고 하지 않으셨다. 

우리같은면 자신을 비웃는 자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싶을 텐데 예수님은 그저 그들을 내어 보내셨다. 

사방에서 야유가 날아오지만 신경도 안쓰신다. 사람들의 수근거리는 소리에 귀를 닫는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아얘 자리를 뜨는 것이다. 

잠시만 나가 달라 정중히 부탁하는 것도 아니다. 마구 등을 떠밀어 내보내신다. 원문을 보면 "내보내시다의 동사는 성전에서 잡상인들을 내어 쫓으셨던 바로 그 동사"이다. 

그리고 야이로와 자기와 함께 온 자들, 곧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신다. 

무엇인가?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자, 기적을 믿는 자,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을 간절히 바라는 자와 함께 방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에 방해가 되는 자들, 소음을 내는 자들은 과감히 내어 쫓으신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에게 구태여 믿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이 짖건 말건, 비웃건 말건, 그들의 소리에 열받거나 논박하지 않고 그저 믿는 자에게, 오직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능력을 보이시는 것이다. 

 

이제 야이로의 집은 기도하는 자, 믿는 자들만이 거하는 교회가 된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야이로와 제자들에게 말씀 하신 것이다. 

어느 순간인가? 이제 상식적으로 늦었다고 하는 순간,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웃고 조롱하며 떠들고 있는 그  순간, 오직 소수의 제자들과 기적이 간절히 필요한 야이로와 처만을 데리고 그들의 말에 신경쓰지 말고 믿으라고 하는 것이다. 

믿기만 하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보이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들리는 것에 휘둘리지 말고 세상의 논리에 좌지우지 되지 말고, 전지전능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딸에게 가서 달리가굼!하고 외치신다. 

달리다굼’이란 말은 원문이 Ταλιθα κουμ(탈리다 쿰)인데, 이 말은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틴에서 통용되던 아람어 ‘탈리다 쿰’에서 유래한 말이다. 

‘탈리다’는 ‘연약한 것, 불쌍한 것, 미천한 것’을 뜻하는 단어로서 여기에서는 ‘소녀'를 뜻한다. ‘쿰’은 ‘일어나라’는 말인데 이 말의 합성어가 ‘달리다굼’인 것이다. 

이 ‘달리다굼’은 당시의 가정에서 일상화 된 용어였다. 곧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린아이들을 깨울 때 사용한 단어로서 "자녀들에게 아들 일어나!"하며 깨우던 일상용어이다.

 

성경에서는 이 "일어나라"는 용어가 중요한 순간마다 반복적으로 쓰인다. 

(수 7: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아이성에서 패한 뒤에) 

(사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눅 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관에 실려서 나갈 때에) 

(행 12: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감옥에 갇힌 베드로에게) 

(엡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야이로의 딸 - 열두살 (42) - 

야이로의 딸로 부유하게 살다가 이젠 위기를 맞은... 

혈루증 앓던 여인 - 이름없는 여인이었지만 이젠 하나님의 딸이 된

-12- 이스라엘 12지파- 하나님의 백성

이제 구약의 시대가 가고 그리스도의 시대가 왔다.  

 

묵상질문) 

1. 나의 삶에 있어서 주님과 나 사이를 뗴어놓는 "무리"와 같은 존재나 장벽이 무엇인가?

2. "두려워 말고 믿기만하라." 사회적인 통념이, 믿음없는 자의 소리들이, 주위에서 소리치며 비웃을 때에, 여전히 내 안에서 들리는 달리다굼의 소리를 듣기를 간구하자.